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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토요타 품고, 북미 IRA 은혜 입고 글로벌 시장서 한 단계 도약한 LG엔솔

  • 유수진 연합인포맥스 기자

    sjyoo@yna.co.kr

    입력2023-11-14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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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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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기가 계속 잘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형태로 협력할 지에 대해선 아직 논의 중이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부회장)는 3월 정기 주주총회 후 취재진과 만나 일본 토요타(Toyota)와의 협력 관련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연초부터 업계에서 돌던 소문이 권 부회장의 입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그는 “시기를 이야기할 순 없다”면서도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시장의 관심은 양사가 어떤 형태로 손을 잡을지에 쏠렸다. 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과 맞물려 완성차업체와 배터리사 간 합작공장(JV) 설립 발표가 잇따르던 시기다. 권 부회장은 수차례 반복된 질문에 늘 똑같이 “논의 중인 건 맞지만 세부 사항은 미정이다”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들이 어떤 방식을 택하든 서로의 포트폴리오에 상당한 플러스(+)가 될 거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10년간 30조 원 매출 증대 효과

    LG에너지솔루션 북미 생산능력 현황(완공 기준). [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 북미 생산능력 현황(완공 기준). [LG에너지솔루션]

    마침내 10월 LG에너지솔루션은 토요타와의 협력 소식을 전했다. 그간 비밀에 부쳐온 방식과 규모도 공개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부터 10년 동안 연간 2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를 토요타에 공급한다. 그간 따낸 단일 수주 계약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이번 계약으로 연 3조 원, 10년간 30조 원 이상의 매출 증대가 예상된다.

    이를 위해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미시간 공장에 추가 투자를 단행한다. 올해 말부터 2025년까지 총 4조 원을 투입해 토요타 전용 배터리 셀 및 모듈 생산라인을 구축할 예정이다. 현지 법인이 주체로 나서지만 본사가 아낌없이 지원한다. 미시간 법인에 약 1조3000억 원을 출자하고 채무보증을 통해 현지 차입도 돕기로 했다. 증설이 끝나면 미시간 공장의 생산능력은 총 40GWh 규모로 확대된다.



    토요타 전용 라인에서는 하이니켈 NCMA 기반 파우치셀이 탑재된 모듈을 생산한다. 니켈과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을 사용한 4원계 리튬이온 배터리로, 기존 NCM에 알루미늄을 추가해 안전성을 높인 제품이다. 이 모듈은 토요타 미국 켄터키 공장에서 팩으로 조립돼 토요타의 북미향 신형 전기차에 탑재된다.

    LG에너지솔루션 파우치 롱셀 배터리. [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 파우치 롱셀 배터리. [LG에너지솔루션]

    데쓰오 오가와 토요타 북미법인 CEO는 “북미에서 전기차 판매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은 제조 및 제품 계획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LG에너지솔루션과의 협력으로 고객의 기대에 걸맞은 제품을 제공할 수 있게 돼 매우 기쁘다”고 덧붙였다.

    “LG엔솔, 고객 포트폴리오에 화룡점정”

    LG에너지솔루션 처지에서 토요타와의 협력은 단순히 고객사 하나가 추가된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번 계약을 통해 북미 시장, 나아가 글로벌 시장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보는 게 더 맞다.

    토요타가 평범한 고객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판매량 1048만3000대를 기록한 글로벌 1위 완성차 그룹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연간 1000만 대 이상의 판매실적을 올린다. 2위 폴크스바겐(848만1000대), 3위 현대차그룹(684만5000대)과의 격차도 상당하다. 단기간에 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북미 시장으로 범위를 한정해도 영향력이 여전하다. 판매 대수 기준 GM에 이어 2위다. IRA 영향 등으로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가장 가파른 북미를 최우선 타깃으로 삼고 있는 배터리사로선 꼭 잡고 싶은, 아니 반드시 잡아야 하는 고객인 셈이다.

    판매가 꾸준하다는 장점도 있다. 지난해 주요 완성차 그룹 대부분은 전년 대비 판매가 줄었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 여파로 생산 차질을 겪은 영향이다. 르노-닛산-미쓰비시 연합의 경우 판매실적이 14.1%(100만7000대) 감소하며 현대차그룹에 3위 자리를 내줬을 정도다. 반면 토요타는 0.1% 감소에 그치며 무리 없이 왕좌를 지켰다.

    권 부회장은 “글로벌 1위 자동차 회사와의 새로운 협력이 북미 전기차 시장의 커다란 진전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번 협력을 통해 북미 생산 네트워크와 혁신적인 제품 경쟁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도 공언했다.

    토요타가 매력적인 이유는 또 있다. 다른 완성차 대비 전동화 전환이 늦었다는 점이다. 토요타를 포함해 일본 완성차 기업들은 하이브리드 기술개발에 집중하느라 뒤늦게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럼에도 글로벌 흐름에 맞춰 전동화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선 믿음직한 배터리 파트너와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게 필수다.

    토요타는 2030년까지 총 30종의 전기차를 출시하고 연간 350만 대의 전기차를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놨다. 럭셔리 브랜드 렉서스는 한발 더 나갔다. 2030년 모든 라인업에 전기차 모델을 도입하고 2035년에는 100% 전동화를 달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토요타가 뒤처진 전동화 전략에 속도를 내기 위해 업계 선두 주자인 LG에너지솔루션과 손을 잡은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고 성급하게 파트너를 정한 건 아니다. 일본 기업들은 핵심 부품 공급망을 꾸릴 때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이번 계약에 앞서 충북 오창과 미시간 공장 등을 둘러보며 기술력에 대한 검증을 마친 것으로 알려진다. 즉 이번 계약이 성사됐다는 건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의 성능을 인정했다는 의미다.

    LG에너지솔루션은 고객사 리스트에 토요타를 추가하며 ‘글로벌 톱5’ 완성차업체 모두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회사로 거듭났다. 이를 두고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LG에너지솔루션이 고객 포트폴리오에 화룡점정을 찍었다”고 평가했다. ‘톱10’으로 범위를 넓히면 아홉 곳이 고객사다. 아직 관계가 없는 나머지 한 곳은 일본의 스즈키다.

    “길게 봐야 한다” 빛 발한 구본무 ‘뚝심’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계약으로 북미 생산능력(예정)이 342GWh로 늘게 됐다. 연간 약 430만 대의 전기차에 탑재할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사실상 북미 전기차 시장에서 압도적 경쟁 우위를 선점했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북미 생산능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경쟁사 SK온(183.5GWh)과 삼성SDI(97GWh)를 한참 앞선다.

    현재 북미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는 테슬라의 파트너인 일본 파나소닉이다. 하지만 LG에너지솔루션이 현재까지 건설 계획을 밝힌 공장(합작 포함 8개)들이 모두 완공되는 2026년엔 순위가 뒤바뀐다.

    LG에너지솔루션이 북미에서 발 빠르게 양산 능력을 확보한 비결은 시장이 본격 개화하기 전 미래를 내다보고 선제적 투자를 단행한 덕분이다. 그 중심엔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이 있다.

    LG가 그룹 차원에서 2차전지 사업에 뛰어든 건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룹 부회장이던 구 선대회장이 영국 출장 중 2차전지를 접하고 미래 성장동력으로 낙점한 것이 시작이다. 구 선대회장은 챙겨온 샘플을 당시 럭키금속(현 LG화학)에 주고 2차전지 연구를 지시했다.

    이후 수년간 적지 않은 돈을 투입했으나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진 못했다. 그러자 그룹 내에서 회의론이 일었다. 고위급 임원들이 “수익이 나지 않는다”며 사업 중단을 건의했을 정도다. 그러나 구 선대회장은 “사업은 길게 보고 투자해야 한다”며 “연구개발에 더욱 집중하라”고 되레 임직원을 격려했다.

    이런 노력 끝에 LG화학은 1998년 국내 최초로 리튬이온 배터리 대량생산에 성공했다. 일본에 이어 두 번째였다. 희망을 본 LG는 2000년 본격적으로 전기차용 중대형 배터리 개발에 착수했다. 가시적 성과를 내기까진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걸렸다. 이 기간 끝없는 적자가 이어졌지만 구 선대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재촉도 없었다. ‘인내’와 ‘끈기’의 리더십이다.

    오랜 투자가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한 건 2009년이다. LG화학이 GM의 볼트용 배터리 단독 공급업체로 선정되는 쾌거를 거둔 것이다. 이에 2009년 충북 오창에 이어 이듬해엔 미국 미시간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이 공장은 미국 내에서도 크게 주목을 받았다. 2010년 7월 기공식에 구 선대회장은 물론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도 자리했다. 현직 미국 대통령이 외국 기업 공장 기공식에 참석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매우 이례적 일이다. 이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LG가 미국에 클린에너지 산업 중 하나인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는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넉넉한 인센티브도 제공했다.

    북미 생산·판매 증가에 IRA 수혜까지

    이후 글로벌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이 내연기관차에서 친환경차로 전환하며 배터리 사업이 점점 주목받았다. 이제는 배터리가 LG그룹의 대표 사업 중 하나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에서만 2개의 단독 공장과 6개의 합작공장을 운영·건설하며 사업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갈수록 생산능력이 늘고 고객사 포트폴리오도 다양해진다.

    그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한때 제동이 걸릴 뻔한 적도 있다. 지난해 6월 미국 애리조나주에 짓기로 한 원통형 배터리 공장 계획이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투자비 급등 탓이다. 올해 3월 투자 금액과 규모를 더 키워 건설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IRA 시행으로 북미 지역 내에서 고품질·고성능 배터리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한 만큼 공격적 설비 확충으로 대응하는 게 최선이라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올해부터 시행된 IRA가 추가 수익을 가져다주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3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 7312억 원을 기록했다. 분기 기준 역대 최대 규모 흑자다. 여기엔 IRA 효과가 주효하게 작용했다. 세액공제 금액 2155억 원이 영업이익에 반영됐다. GM과 합작한 얼티엄셀즈 1공장의 출하량이 빠르게 증가한 영향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1분기부터 IRA 시행에 따른 택스 크레디트를 영업손익에 반영해 오고 있다. 도합 2000억 원을 넘겼다. 1분기는 1003억 원, 2분기엔 1109억 원이다. 갈수록 생산성이 좋아지고 출하량이 증가해 택스 크레디트 수혜도 덩달아 커질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3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북미 지역에서 생산과 판매가 큰 폭으로 상승해 IRA 택스 크레디트 효과가 전 분기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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