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이재명, 인천 계양을 재출마는 희생 아니다” [+영상]

쓰레기通 소장파 이동학의 민주당 개조론

  • reporterImage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3-11-28 09: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노점상→법대생→정치인→환경 전문가

    • 진보, 기업 적대시해서 얻을 게 없다

    • 가족 뒤캐고 압수수색, 정치 사망 상태

    • 민주당은 가진 자들의 정당 돼버렸다

    • 친명 호소하는 사람들은 있더라

    • ‘조국 신당’, 막을 수는 없겠지만…

    [+영상] 쓰레기通 소장파 이동학의 민주당 개조론



    11월 9일 ‘신동아’와 인터뷰 전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이동학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지호영 기자]

    11월 9일 ‘신동아’와 인터뷰 전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이동학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지호영 기자]

    그는 음지(陰地)에서 자란 사람이다. 1982년 강원 화천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자랐다. 열세 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생계를 위해 신문과 피자를 배달했다. 겨울엔 군고구마 장수가 됐다. 대전공고를 나왔다. 해병대 전역 이후 200만 원짜리 구닥다리 트럭을 사서 노점상을 했다. 토스트와 생과일주스를 팔았다. 스물네 살에 느닷없이 경기대 법학과에 입학했는데, ‘불법’ 노점상을 하면서 법을 알아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란다. 졸업 뒤엔 서울 영등포에 카페를 차렸다. 임차료 내기도 벅차 금세 접었다곤 했지만 말이다.

    애처롭되 흥미를 돋우는 이 서사의 주인공은 이동학이다. 생글생글한 미소가 돋보이는 인상이다. 고난이 사람의 낯에 그늘을 드리운다는 건 편견에 불과하다. 2015년 문재인 대표 체제의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에서 혁신위원에 발탁돼 주목받았다. 그의 나이 서른세 살 때다. 혁신위에서 함께 활동한 인물 중 한 명이 조국 당시 서울대 교수(전 법무부 장관)다. 2021년에는 지명직 청년 최고위원에 기용됐다. 어느덧 사십 줄을 넘겼지만 지금도 청년 정치의 상징적 인물로 꼽힌다.

    당내 선출직 경쟁에선 실패를 거듭했다. 전국청년위원장에 두 번 낙선했다. 대학생위원회의 산파이거늘 초대 대학생위원장 선거에서 떨어졌다. 지난해 전당대회에선 당대표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예비경선에서 탈락했다. 역량이 부족한 탓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그는 두 차례 전국청년위원장 선거에서 모두 현장 대의원 투표 1위를 했다. 다만 강성 지지층 입김이 강한 권리당원 투표에서 큰 격차로 져 낙마했다. 반골의 피가 흐르는 소장파에게는 어쩌면 예정된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쓰레기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 2020년에 낸 ‘쓰레기책: 왜 지구의 절반은 쓰레기로 뒤덮이는가’는 누적 3만 권이 팔렸다. 출판 불황 시대에 인문·사회 도서로는 놀라운 판매고다. 최근에는 ‘전 민주당 최고위원’보다 ‘쓰레기센터 대표’ 직함이 익숙하다. 그와 인터뷰한 날은 11월 9일이었는데, 이날 오전에도 초등학교에서 강연을 하고 왔다고 했다.



    “학교에 갔더니 아이들이 ‘나 저 사람 알아, 동학 아저씨 아니야?’ 이래요.(웃음) 이 친구들이 3학년 때 제 책을 읽었다는 거예요. 놀랐는데, ‘책이 잘 팔리고 있구나’ 생각했죠.”

    환경 전문가로 경력을 이어가면 되지 않나요. 왜 꼭 정치를 하려 합니까.

    “고등학교 3학년 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세 가지로 정의했어요. 첫 번째로는 봉사활동을 하는 거예요. 전 세계는 아니어도 내가 돕는 사람의 세상을 바꿀 수 있죠. 두 번째로, 돈을 많이 벌면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 1000만 원 벌어 1000명의 아이들에게 1만 원씩 기부하는 것도 세상을 바꾸는 방법이죠. 세 번째가 정치였어요. 좋은 법을 만들어 가장 효율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수단이 정치라고 생각했어요. 쓰레기 문제에 대한 활동으로도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가장 효율적이고 강력한 수단은 정치예요. 그래서 ‘생활 정치인’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오스트리아 슈피텔라우 소각장 앞. 궁전처럼 디자인된 소각장엔 연 40만 명이 방문한다. [이동학]

    오스트리아 슈피텔라우 소각장 앞. 궁전처럼 디자인된 소각장엔 연 40만 명이 방문한다. [이동학]

    여의도 정치의 맨얼굴

    그는 혁신위원이던 2015년 “(당이) 대기업을 적대시하고 기업주와 노동자를 가해자와 피해자로 보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주류의 인식과는 결이 명징하게 다르다.

    한국 진보는 기업을 착취의 주체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데 기업을 적대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해온 이유가 뭔가요.

    “기업을 적대시해서 얻을 게 없어요. 기업이 불법·탈법을 저지르면 사회정의 차원에서 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기업가들을 전부 도둑놈으로만 봐서는 안 되죠. 정당이 집권하면 기업가들을 중용해 함께 일하잖아요. 그런데도 (기업인들에게) 적대감을 갖는 건 위선적이라고 봤어요. 노동에도 악(惡)의 요소가 있고 기업에도 악(惡)의 요소가 있지, 노동이라고 선이고 기업이라고 악이 아니죠.”

    8년 전 ‘최저임금 인상 구호’를 두고 공허하다고 했던데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민심을 잃는 도화선 중 하나가 됐습니다.

    “문재인 정부 내부에서도 논쟁은 했을 거예요. 다만 정책적으로 결단을 내린 거죠. 그 파고는 소상공인뿐 아니라 기업도 견디기 어려웠을 겁니다. 최저임금 인상과 자영업자 지원책, 임대료 정책이 패키지로 시행됐어야 해요. 소상공인 처지에서는 양쪽(피고용인, 임대인)에 뜯기는 상황이 돼버리니 화날 수밖에 없죠.”

    그는 한국 정치가 ‘복수극’에 매달리고 있다고 본다. 그의 말대로라면 “서로 가족의 뒤를 캐고 압수수색해서 상대를 감옥에 보내려는 방식”이자 “정치 사망 상태”다. 여당이 되면 무작정 밀어붙이고 야당이 되면 무조건 반대한다. 독주와 비토크라시(vetocracy·상대 정책은 무조건 거부하는 파당 정치)는 여의도 정치의 맨얼굴이다. 양당 사이의 교착상태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산업화·민주화 세대에 기대하기는 어렵고, 다음 세대의 과제가 됐다”고 했다.

    86(1980년대 학번·1960년대 출생) 세대 용퇴론도 묵은 이야기가 됐습니다. 결국 권력을 가진 자의 선의에 기대야 하는 한계가 또렷하지 않습니까.

    “선의만 기대했던 건 아니에요. 세 가지를 지적했어요. 첫째, 86세대의 어젠다가 무엇이냐는 겁니다. 둘째,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할까요. 올라오려는 에너지를 억누른다고 생각했어요. 셋째, (후세대를) 키워내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보수는 전관예우하듯 관료 중에서 인재를 충원해요. 민주당은 시민사회와 운동권에서 충원하고 전문성 있는 사람을 한두 명 보태는 수준이었는데, 더는 빼먹을 데가 없는 거예요. 씨앗을 뿌리지 않으니 ‘이어달리기’를 할 사람이 없어요. ‘떴다방’ 정당이 돼가는 겁니다. 지금도 저는 86그룹이 (민주당에) 아주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데,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들만의 책임으로 볼 수 없고 자극제가 되지 못한 젊은 정치인들에게 첫 번째 책임이 있죠.”

    아래 세대가 정치적 에너지를 보여주지 못한 결과 아닐까요. 청년 정치가 실패한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기도 하고요.

    “당연히 성찰하고 반성해야 해요. 독일 사민당과 청년 사민당을 찾아가 인터뷰해 보니, 이견을 거침없이 얘기하는 분위기였어요. 우리 양당에는 ‘내부 총질’이라는 무서운 단어가 횡행하잖아요. 주류와 생각을 달리하면 ‘틀렸다’고 하는 거예요. 사람 중심으로 사고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그 말을 했으면 옳은 말이 되는 거예요. 우리 세대도 더 용기 있게 말하면서 뚫고 나갔어야 했는데, 그런 점에서 반성이 필요하죠. 우리의 비전이 무엇이냐 물어도 공허한 거예요. 이번 선거에서는 누가 선의로 ‘물러나겠다’거나 ‘험지 가겠다’는 데 기대지 않고 비전을 갖고 경쟁할 수 있는 경선판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86세대의 상징적 인사들에 대한 불출마 내지 험지 출마 요구는 할 생각이 없습니까.

    “저는 그런 요구를 하지 않을 겁니다. 실력으로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훨씬 강해요. 현직에 있는 사람들이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면 세상이 더 나아지겠다는 기대감이 있으세요?”

    기대감은 사실….

    “많은 사람이 느끼는 바가 비슷할 거예요. 그러면 대체할 인물이 있어야 하잖아요. 싸워야죠.”

    민주당은 시민의 삶과 괴리됐다

    상투적 반론을 들이밀자. 문제는 현실이라고. 멀리 갈 것도 없다. 그의 이력을 복기하면 된다. 그는 대의원 투표에 앞서고도 권리당원 투표에서 부진해 연거푸 좌절한 경험이 있다. 지금처럼 적대가 일상인 정치 현실에서 치러지는 총선은 어떻겠는가. 냉소하자면, 당내 경선은 ‘강경하고 결집력 강한’ 당원들이 결정하는 무대가 됐다.

    경선의 성패를 결정하는 건 당원입니다. 민주당을 두고는 ‘개딸’로 대표되는 강성 지지층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정치인은 지지층이 원하는 일을 해야 할 역할이 있죠. 그리고 지지층이 원하지 않더라도, 혹은 싫더라도 해야 하는 일이 있어요. 지금 후자는 완전히 사라진 거예요. (지지층의) 호응을 받을 일만 하죠. 무책임한 겁니다. 연금개혁, 해도 벌써 했어야 됐죠. 임기 뒤로 미루려면 왜 정치를 하는 거예요? 정치가 지지층만을 위한 서비스로 바뀌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의 국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또 배지를 단다 해도 새로운 세상으로 가겠다는 기대가 없어요.”

    김용민 민주당 의원이 국회 시정연설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악수하면서 “이제 그만두셔야죠”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공개했습니다. 강성 지지층에 어필하려 드는 건 당내 경선에 대한 두려움 때문 아닙니까.

    “지지층이 있어야 공천받고 또 본선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되는 거죠.”

    불편한 진실이겠으나, 당원이 극단화되니 정치인도 따라가는 셈 아닌가요.

    “민주주의가 다수결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민주주의는 합의이자 조율이에요. 저는 무조건 투표를 통해 당원들만의 의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만 보지 않아요. 정당이 공론장을 어떻게 운영할지가 중요해요. 민주주의는 서로 마주 앉아 숙의하면서 각자의 생각을 보완·발전시켜 나가는 제도예요. 지금처럼 자기 의견을 확대재생산하면서 사람을 모으고, 또 그들과만 교류하다 보니 (당이) 국민 평균의 생각과 계속 괴리되는 것 아닙니까.”

    그는 이 대목에서 지역별·광역별·전국별로 공론장을 시스템화하자고 했다. 그의 명명대로라면 ‘배심원제’다. 이런 식이다. 각 단위별로 100~500명씩 배심원을 둔다. 그들이 1~2주간 온라인에서 자유로이 찬반 의견을 낸다. 그 뒤 체육관 등의 장소를 빌려 토론을 한다. 사뭇 이상적으로 비칠 법한 제안이다. 하지만 이상이 없으면 정치인과 장사꾼이 다를 바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제안을 여기에 적어둔다.

    “시스템 구축에는 돈이 들죠. 민주주의는 원래 돈이 들어갑니다. 이견 있는 사람과 마주 앉아 토론할 인내심을 키우는 거예요. 정치가 성난 시민을 육성하면서 사회를 화나고 스트레스 있는 곳으로 끌고 가선 안 되죠. 당내 경선도 마찬가지예요. 배심원제로 해야 해요. 배심원제는 한 방에 만들 수 없어요. 배심원단 관리부터 교육에 이르는 프로그램이 함께 돌아가야 해요.”

    배심원으로 참여할 사람들의 상당수는 을(乙)일 겁니다. 그런데 지금의 민주당은 고학력 중산층의 표를 받는 당이 된 것 아닙니까.

    “배심원단은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이웃들과 검찰개혁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눠야 합니다. 육아 문제도 나오고 어르신 돌봄 문제도 나오겠죠. 그런 이슈가 253개 지역위원회에서 보고서 형태로 한 달에 1~2건씩 올라와야 합니다. 사람들의 삶과 민주당을 연결해야 해요. 민주당은 이 연결고리가 깨져버렸죠. 질문의 의도가 뭔지 알겠어요. 민주당은 괴리됐어요. 기득권 정당이 돼버렸고 가진 자들의 정당이 돼 있어요. ‘조국 사태’ 때도 대전에 있는 제 친구들은 관심이 없었어요. 말로만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얘기할 게 아니라, 실제로 사람을 만나 조직하고 얘기를 듣고 이것을 정책으로 연결해야죠.”

    ‘MSG’ 첨가하는 순간…

    이상을 경유했으니 다시 현실을 짚자. 민주당 내 계파 갈등 이슈다. 흔한 표현을 빌면 ‘친명(친이재명) 일색’ 구도 얘기다.

    친명이냐 비명(비이재명)이냐 묻는다면 무어라 답하겠습니까.

    “우리 모두 친명 아닌가요? 친명 호소를 하는 사람들은 있는 것 같아요. 비명계라고 자칭하는 분들도 있고요. 그런데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친명과 비명 사이의) 경계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지금 대통령이 아주 무능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민주주의니까 투표 결과를 존중하는 거예요. 이재명 대표도 마찬가지예요. 임기 동안 존중하는 거예요. 이견을 얘기하면 비명이고 좋은 말만 하면 친명이다? 그런 구분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총선에서 ‘비명 찍어내기’가 있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많습니다. 조응천 의원은 “비명계는 ‘도마 위 생선’ 신세”라는 표현도 했고요.

    “가능성은 5대 5겠죠. 이재명 대표가 만약 그렇게(‘비명 찍어내기’를) 할 경우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받겠죠. 이재명이라는 사람은 다음에 대통령을 노려야 하는 사람이고, 민주당으로서는 아주 소중한 자원입니다. 확장하는 모양새가 아니라 나한테 반대하는 사람을 잘라내는 이미지로 간다? 굉장히 안 좋은 시그널이 될 겁니다. 경선에서 지는 것까지 (대표가) 이기게 만들지는 못하는 거 아닙니까. (다만)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둬야지, 인위적인 ‘MSG’를 첨가한다는 느낌이 나는 순간 이 대표한테 타격일 겁니다. 이 대표 입장에서는 오히려 (비명계를) 확 품어버리면 훨씬 큰 지도자의 이미지로 갈 수가 있죠.”

    비명계 이원욱 의원은 11월 8일 BBS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이 대표가 먼저 험지 출마를 결정하라”고 했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김두관 의원은 KBS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당 지도부부터 험지 출마를 하겠다는 각오로 해야 다선 의원들이 설득도 된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의 험지 출마 요구에 대한 입장은 어떻습니까.

    “이 대표가 헌신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죠. 이 대표가 인천 계양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당대표 선거에 나오는 과정에서 그전에 이재명을 좋아했던 많은 사람이 ‘저건 아닌데’ 생각했단 말이에요. (이 대표의) 그런 행보에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이 꽤 많아요. 저는 구체적으로 험지냐 뭐냐 말은 못 하겠지만, 그런 (헌신하는) 움직임을 보여줌으로써 확실히 달라진 이미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죠.”

    지금 지역구(인천 계양을)에서 다시 출마하는 건 희생은 아니다?

    “그건 희생 아니죠.(헛웃음)”

    양당 공히 위성정당 내지 말아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주도하는 ‘조국 신당’의 출현 가능성은 어떻게 봅니까.

    “‘조국 신당’을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조국 신당’이 나오면 비전으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조국 신당’이 나올 경우 또다시 자녀 논란, 표창장 논란, 검찰 논란 등으로 총선이 상당히 어지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민주당이 조 전 장관과 어떻게 관계 설정을 해야 합니까.

    “관계 설정을 할 필요가 없죠. 굳이 우리와 ‘친하다’ ‘안 친하다’ 얘기를 할 필요가 없고, (설사) 안 친하다고 한들 국민이 믿어주시겠어요? 그냥 (현실을) 인정하고 가는 거죠.”

    선거제 개혁을 놓고 진전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비례 위성정당이 출현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은데요.

    “위성정당 출현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봐요. 대신 기존 정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골목상권까지 침투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국민의힘은 애초 법에 동의한 바 없기 때문에 위성정당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법이 통과됐잖아요. 통과됐다면 인정하고 존중해야죠. 윤석열 대통령의 인기가 그리 좋지 않은 상황에서 위성정당까지 만든다? 국민한테 심판받을 겁니다. 민주당은 이전에 이미 약속한 대로 위성정당을 안 내는 게 맞습니다.”

    [신동아 12월호 표지]

    [신동아 12월호 표지]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늘 조국과 비교당하며 견제받을 것

    우유 고를 때 ‘두 가지’만 확인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