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호

G마켓 인수 막전막후…롯데는 왜 발 뺐나

‘늦둥이’ 신세계, 이커머스 파워게임 불 질렀다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1-07-25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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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年 거래액 24조 원…3강 구도 구축

    • 자체 물류 인프라 없는 오픈마켓

    • PP센터, 온라인 물류 전진기지?

    • ‘실탄’ 갖춘 롯데의 소극 행보

    • 온라인 플랫폼 ‘롯데ON’ 키울 듯

    • 네이버·쿠팡의 반격 시작되나

    신세계그룹의 이마트가 이베이코리아 지분 80%를 3조4400억 원에 사들였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얼마가 아니라 얼마짜리로 만들 수 있느냐가 의사결정의 기준”이라고 말했다. [신세계그룹 제공]

    신세계그룹의 이마트가 이베이코리아 지분 80%를 3조4400억 원에 사들였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얼마가 아니라 얼마짜리로 만들 수 있느냐가 의사결정의 기준”이라고 말했다. [신세계그룹 제공]

    G마켓과 옥션, G9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가 신세계그룹에 인수됐다. 신세계는 이로써 이커머스 연간 거래액이 24조 원에 달하는 사업자가 됐다. 신세계의 온라인 플랫폼인 SSG닷컴의 연간 거래액은 4조 원에 불과했다. 이번 인수로 단숨에 네이버(27조 원), 쿠팡(22조 원)에 견줄 만한 수준이 됐다.

    이번 인수전은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 이베이코리아의 몸값이 4조~5조 원에 달한다는 점부터 눈길을 끌었다. 전통의 ‘유통 라이벌’인 롯데와 신세계가 맞대결을 펼쳤다는 점도 흥행 요소였다. 네이버가 신세계와 연합하는 듯하다가 돌연 발을 빼는 등의 반전도 있었다.

    이런 점은 흥미롭기도 하지만 국내 이커머스 산업의 단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 이베이코리아는 매물로 나왔으며, 신세계는 3조 원이 넘는 거금을 들여 인수를 밀어붙였을까. 또 롯데와 네이버가 발을 뺀 이유는 무엇일까.

    쿠팡 상장의 나비효과

    애초 미국 이베이 본사가 원한 가격은 5조 원이다. 이베이는 국내에서 지난 2001년 옥션을 1500억 원에 사들였고, 2009년에는 G마켓을 5500억 원에 인수한 바 있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지만 10여 년 만에 몸값이 몇 배나 뛴 셈이다.

    이베이가 G마켓을 인수했을 당시 이베이코리아의 오픈마켓 시장점유율은 90%에 육박했다. G마켓이 1위 사업자, 옥션이 2위 사업자였다. 이베이코리아는 이후 10년 가까이 국내 온라인 유통산업의 선두 자리를 지켜왔다. 지난해 연간 거래액도 20조 원으로 업계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 정도면 5조 원이라는 가격이 적당하지 않나 싶을 수 있다.



    하지만 그새 국내 이커머스 업계의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일단 네이버와 쿠팡이라는 걸출한 경쟁자가 등장했다. 쿠팡은 로켓배송이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들고 나와 소비자를 끌어들였다. 게다가 올해 초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하면서 더욱 힘을 받고 있다.

    네이버의 경우 포털 기반 플랫폼 기업이라는 장점을 살려 쇼핑 영역의 새로운 강자로 금세 자리 잡았다. 업계에서는 쿠팡과 네이버가 국내 이커머스의 ‘양강’으로 장악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베이코리아에 대한 관심은 점차 사그라졌다.

    G마켓과 옥션은 오픈마켓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이다. 오픈마켓이란 판매자와 소비자를 중개하고 수수료를 챙기는 사업이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이제 단순 오픈마켓만으로는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물건이 많고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단골이 되지는 않았다. 차별화한 서비스를 원했다. 쿠팡의 로켓배송이나 마켓컬리의 새벽배송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점에서 이베이코리아의 미래 성장성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이들이 많았다.

    게다가 이베이코리아는 오픈마켓 사업자인 탓에 쿠팡과 같은 자체 물류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단점도 있다.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해 주는 플랫폼 사업자니 당연한 일이다. 이베이코리아에는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자산’이 대부분인데, 이를 큰돈 주고 살 기업이 있을지가 문제였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이베이 본사는 5조 원이라는 거금을 원했다.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업계에서는 쿠팡의 뉴욕 증시 상장을 꼽는다. 쿠팡은 지난 3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직상장하면서 시가총액이 한때 100조 원을 넘어섰다. 시가총액과 매각가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쿠팡의 기업가치가 100조 원이라면, 이베이코리아의 5조 원도 비싼 편은 아니라고 주장할 만한 일이다.

    쿠팡의 상장으로 경쟁사들의 마음이 조급해진 것도 이베이에는 호재였다. 롯데나 신세계, 카카오, SK텔레콤(11번가) 등이 쿠팡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이른 시일 안에 몸집을 불려야 했다. 연간 거래액 20조 원에 달하는 이베이코리아가 딱 맞는 매물로 여겨질 가능성이 컸다. 한동안 이 정도 규모의 매물이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

    시장서 통한 이베이의 ‘계산법’

    이베이의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신세계그룹 이마트는 이베이코리아 지분 80%를 3조4400억 원에 사들이기로 했다. 이를 지분 100%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이베이코리아의 가치를 4조3000억 원 정도로 평가한 셈이다. 이베이 본사는 남은 지분 20%가량을 보유하기로 했다. 실제 매각 소식이 알려진 뒤 미국 이베이 본사의 주가도 상승세를 탔다.

    이번 인수전 본입찰에 참여한 기업은 신세계와 롯데 두 곳이었다. 일단 두 기업이 유통업계 전통의 라이벌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흥미를 끌었다. 하지만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승부는 쉽게 갈렸다. 신세계는 큰돈을 써냈고, 롯데는 사실상 인수 의지가 없는 듯한 가격을 제시했다. 본입찰에 참여한 롯데쇼핑이 인수가로 정확히 얼마를 제시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시장에서는 롯데가 2조 원대 후반에서 3조 원대 초반을 제시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롯데가 돈이 없었던 건 아니다. 롯데쇼핑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2조9000억 원가량이었다. 단기금융상품까지 더하면 4조 원에 육박하는 ‘실탄’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마트의 경우 현금성 자산이 1조 원 정도였다. 결국 롯데는 신세계에 자금력에서 밀렸다기보다는 이베이코리아를 사지 않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는 게 맞다.

    그렇다면 롯데와 신세계가 이처럼 다른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살펴보면 두 기업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또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신세계그룹에는 ‘SSG닷컴’이라는 이커머스 채널이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연간 거래액이 4조 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SSG닷컴은 국내 이커머스 업체 중 ‘식품’ 영역의 강자로 여겨졌다. 대형마트 채널인 이마트가 신선식품에 강점이 있다는 점을 살려 이 영역에 집중한 결과다.

    특히 신세계그룹은 오프라인의 강점을 살려 온라인과 시너지를 만드는데 가장 적극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이마트는 기존 점포를 리뉴얼해 ‘물류 센터’ 기능을 더하는 작업에 공을 들여왔다. 이를 통해 110여 개 매장에 PP센터(Picking&Packing)를 만들었다. 점포 한쪽에 ‘창고’를 만들고, 온라인으로 주문이 들어오면 이 창고에서 배송을 해주는 전략을 적극 추진했다.

    이를 통해 지난해 기준 SSG닷컴의 일평균 처리 물량의 절반을 이 PP센터가 담당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시너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마트가 이번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서 과감한 베팅을 할 수 있던 것도 이런 경험에서 얻은 자신감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룹의 오프라인 거점을 온라인 물류 전진기지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다.

    “얼마짜리 만드느냐가 기준”

    더욱이 SSG닷컴은 마침 오픈마켓 사업을 강화하려던 참이었다. 이베이코리아는 오픈마켓을 확대하는 동시에 몸집까지 불릴 수 있는 매력적인 매물이었다.
    실제 신세계의 인수 의지는 강했다. 애초 신세계는 네이버와 함께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할 계획이었다. 양사는 앞서 지난 3월 2500억 원대 지분교환을 통해 ‘혈맹’을 맺은 바 있다. 이번 ‘합동 인수’가 첫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네이버는 돌연 철수를 선언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높은 몸값에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과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할 경우 시장 독과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악재에도 신세계는 끝까지 인수를 밀어붙였다. 

    무엇보다 오너의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과감한 베팅을 할 수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마트는 이베이코리아 인수를 확정한 뒤 보도자료를 통해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인수 의지가 강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마트에 따르면 정 부회장은 “얼마가 아니라 얼마짜리로 만들 수 있느냐가 의사결정의 기준”이라고 언급했다.

    신세계가 앞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많다. 당장 이커머스 업계 강자로 올라선 것은 아니다. 아직은 큰돈을 들여 몸집만 키운 데 불과하다. SSG닷컴과 G마켓, 옥션은 당분간 각자도생해야 한다. 사업 영역이 다소 겹치는 탓에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비효율적 구조다. 이를 효율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오프라인 점포와 연계한 사업 구조를 만드는 작업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롯데가 사실상 중도 포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강희태 롯데쇼핑 대표는 6월 18일 사내 인트라넷에 이번 인수전에 관한 입장을 올렸다. 그는 “기대했던 것보다 시너지 실현은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보수적으로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신세계라는 라이벌이 뛰어드니 덩달아 참여했지만 계산기를 두드려본 결과 ‘우리와는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듯하다.

    시장에서는 롯데가 적극적이기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로 ‘롯데ON’을 꼽는다. 롯데ON은 지난해 4월 출범한 롯데그룹의 통합 온라인 플랫폼이다. 롯데가 그룹 차원에서 온라인에 힘을 주기 위해 만들었지만, 시작이 좋지 않았다. 롯데ON의 지난해 연간 거래액은 7조6000억 원가량으로 전년(7조1000억 원)보다 7% 성장하는 데 그쳤다. 같은 해 이커머스 시장 성장률이 20%에 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성적이다.

    이에 롯데그룹은 롯데ON 출범 1년 만인 지난 4월 수장을 교체하며 조직 재정비에 나선 바 있다. 이베이코리아에서 전략기획본부장 등을 지낸 나영호 대표다. 롯데는 나 대표를 부사장으로 격상하며 힘을 실어줬다. 롯데쇼핑 사업 부분 가운데 부사장급은 백화점 부문장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베이코리아를 사들일 경우 다시 ‘통합’ 작업을 하느라 허송세월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많았다.

    2020년 4월 출범한 롯데그룹의 통합 온라인 플랫폼 ‘롯데ON’. 롯데 측은 롯데ON 출범 1년 만인 지난 4월 수장을 이베이코리아 전략기획본부장 출신 나영호 대표로 교체하며 재정비에 나서고 있다. [롯데쇼핑 제공]

    2020년 4월 출범한 롯데그룹의 통합 온라인 플랫폼 ‘롯데ON’. 롯데 측은 롯데ON 출범 1년 만인 지난 4월 수장을 이베이코리아 전략기획본부장 출신 나영호 대표로 교체하며 재정비에 나서고 있다. [롯데쇼핑 제공]

    현금 쌓아둔 롯데, 다크호스 될까

    증권가에서도 롯데의 선택에 손을 들어줬다. 안지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롯데쇼핑의 결정에 대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으로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주영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롯데는 계열사 채널별 이커머스를 롯데ON이라는 한 채널로 융합하는 데 고생해 왔다”며 “현재의 채널들로 최대한의 융합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주력하는 데 방점을 두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국내 이커머스 산업은 네이버와 쿠팡, 그리고 이베이코리아를 삼킨 신세계의 ‘3강 구도’가 됐다. 여기에 더해 거액의 현금을 쌓아둔 롯데가 어떤 식으로 반격을 가할지가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또 앞서 혈맹을 맺었던 네이버와 신세계가 언제까지 손을 잡을지도 관심사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국내 온라인 유통시장은 또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며 “여전히 이커머스 시장을 장악한 ‘지배적 사업자’가 정해지지 않은 만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것은 물론 앞으로도 다양한 변수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세계 #정용진 #G마켓 #롯데ON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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