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中 알리 공습에 쿠팡 vs LG생건 극적 화해

[유통 인사이드] “중국 기업 몰려오는데 우리끼리 싸워서야”

  • 김민지 뉴스웨이 기자

    kmj@newsway.co.kr

    입력2024-02-16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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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무장한 알리익스프레스

    • 終戰 돌입한 쿠팡 vs 제조사 ‘갑을 전쟁’

    • 외침이 불러온 내부 평화

    • 反쿠팡 연대 맹주 CJ제일제당과 화해는 아직

    [Gettyimage]

    [Gettyimage]

    쿠팡과 최저가 납품 요구로 수년 동안 전쟁을 치르던 업체들이 다시 쿠팡으로 돌아가고 있다. 크린랲에 이어 LG생활건강까지 쿠팡과 상품 직거래를 재개하며 해묵은 갈등을 봉합하는 모양새다. 이유는 간단하다. 쿠팡 처지에서는 상품 구색의 다양화를 꾀할 수 있고, 제조사는 대형 유통 기업으로 거듭난 쿠팡을 통해 판로를 넓힐 수 있다. 서로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진 결과인 것이다.

    쿠팡과 제조사 간 갈등은 꽤 해묵은 일이다. 사건의 발단은 2019년으로 거슬러 간다. 당시 쿠팡의 주요 납품업체와 경쟁사들(우아한형제들·위메프·LG생활건강·크린랲)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로 줄지어 달려갔다. 이들은 쿠팡이 납품업체에 가격 인하를 과도하게 요구하는 등 불공정행위를 했다며 쿠팡을 신고했다.

    통상적으로 유통망을 앞세운 유통업체는 ‘갑(甲)’, 유통업체에 제품을 납품하는 납품업체는 ‘을(乙)’로 일컬어진다. 물론 1위 상품이나 대형 브랜드를 보유한 제조업체는 유통업체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통상 납품업체가 유통업체를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 대형 유통업체와 거래가 끊기면 당장 매출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인데, 판로가 제한적일수록 유통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다.

    돌아온 LG생건·크린랲… “우리 화해했어요”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LG생활건강 사옥. [LG생활건강]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LG생활건강 사옥. [LG생활건강]

    생활용품 기업 크린랲은 2019년 7월 납품 갈등 사태 이후 4년여 만인 지난해 8월 쿠팡과 거래를 재개했다. 이로써 쿠팡에서 크린랲과 크린백, 크린장갑, 크린 종이호일 등 40여 종의 제품을 로켓배송으로 받아볼 수 있게 됐다. 크린랲은 2019년 7월 직거래 제안 거절을 이유로 쿠팡이 자사 대리점과 거래를 중단하는 등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며 공정위에 제소한 바 있다.

    LG생활건강도 쿠팡의 불공정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며 갈등을 빚었다. LG생활건강은 국내 화장품업계에서 아모레퍼시픽과 함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데다, 생활용품 부문 1등 기업이다. 코카콜라 또한 LG생활건강에서 독점으로 생산해 판매한다. LG생활건강은 자사 제품을 빼면 쿠팡의 타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쿠팡을 대규모유통업법 및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공정위에 신고하기도 했다. 쿠팡은 대규모유통업법상 대규모유통업자로 분류돼 다수 납품업체와 직매입 거래 약정을 체결해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대규모유통업법에 따르면 대규모유통업자는 직매입한 제품을 반품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LG생활건강은 쿠팡이 판매 부진으로 목표액을 채우지 못한 상품에 대해 반품 처리를 해달라며 손해보전을 요구하고, 공급 단가를 더 낮춰달라는 등 부당한 요구를 했다고 주장했다. 또 쿠팡이 다른 이커머스 기업과 거래 해지를 유도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LG생활건강 처지에선 쿠팡의 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당시 쿠팡은 “절대 불법행위를 저지른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주문 취소 의사를 밝힌 3일 뒤 LG생활건강이 발주 취소를 인식하고도 상품을 당사로 임의 발송한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두 기업이 전쟁을 치르면서 쿠팡에서 판매하는 LG생활건강 제품 가운데 LG생활건강의 직접 공급 제품은 몇 년간 자취를 감췄다. 중간유통업체를 거친 제품들만 판매됐고 ‘로켓배송’ 이용도 불가능했다.

    2021년 8월 쿠팡에 대한 공정위의 제재 결과가 나왔다. 공정위는 쿠팡이 공정거래법과 대규모유통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2억9700만 원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LG생활건강을 비롯해 다른 납품업체의 피해 사례도 함께 검토했는데, 쿠팡이 자사 ‘최저가 보장’ 정책에 따른 마진 손실을 줄이기 위해 납품업체를 상대로 불공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의 결정에 불복한 쿠팡은 2022년 공정위에 대한 결정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판결 선고를 앞둔 올해 1월 12일 LG생활건강과 극적으로 화해했다. 2019년 4월 말 거래가 중단된 후 4년 9개월 만이다. 이후 올해 2월 법원은 쿠팡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쿠팡이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이른바 ‘갑질’을 했다는 공정위 판단은 적법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LG생활건강의 생활용품 브랜드 엘라스틴과 페리오, 테크 등은 물론 코카콜라 등 음료 제품과 CNP 등 프리미엄 화장품 브랜드의 로켓배송이 가능해졌다. 여기에 궁중 화장품 브랜드 더후와 숨37, 오휘 등 글로벌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는 뷰티 브랜드 전용관 ‘로켓럭셔리’에 입점했다.

    중국發 시장 위협에 ‘제로섬’ 대신 ‘윈윈’ 선택

    서울 송파구 송파대로 쿠팡 사옥. [쿠팡]

    서울 송파구 송파대로 쿠팡 사옥. [쿠팡]

    크린랲에 이어 LG생활건강까지 쿠팡으로 돌아간 이유는 서로 힘겨루기를 지속하는 것이 누구에게도 좋지 않다는 판단일 공산이 크다. 최근 쿠팡을 둘러싼 이커머스 업계 환경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 등 중국 직구 플랫폼이 속속 진출하며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중국 직구 플랫폼의 차별화 포인트는 중국 현지 판매자들을 위시한 상품 가짓수와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이다. 그간 쿠팡은 저렴한 가격 등 가격경쟁력과 로켓배송을 앞세운 빠른 배송으로 소비자를 끌어모았지만 중국 플랫폼 앞에선 더는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게다가 알리익스프레스가 익일배송 제공을 위해 국내 물류센터 건립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빠른 배송의 장점도 위협받는 상황에 놓였다. 결국 저렴한 가격, 빠른 배송 두 가지 강점이 힘이 빠지게 되면 남는 수단은 좋은 품질의 다양한 상품 구색이기에 쿠팡은 판매자 유치에 더 공을 들이는 수밖에 없다.

    사실 유통업체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가장 큰 요소는 상품 구색의 품질, 다양성, 차별성이다. 크린랲이나 LG생활건강 모두 소비자에게 깊이 각인된 제품 포트폴리오를 가진 곳이다. 이들 기업이 보유한 브랜드 가운데 우리나라 국민이 모르는 것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이런 제품이 단지 제조사와의 힘겨루기 때문에 몇 년 동안이나 직배송이 되지 않은 것이다. 브랜드 파워가 강력한 제품일수록 충성도 높은 소비자가 있게 마련이다. 단 한 명의 소비자라도 쿠팡을 통해 구매하게끔 하는 것이 중요해진 시점에서 쿠팡도 더 버티기가 쉽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쿠팡은 온라인 뷰티 사업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계획하에선 아모레퍼시픽과 함께 국내 화장품업계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LG생활건강이 빠진 상품 구색이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쿠팡과 LG생활건강의 화해가 급물살을 타게 된 것도 쿠팡이 먼저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란 후문이 나온다.

    또 하나의 이유는 쿠팡이 유통업계에서 더는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크린랲과 LG생활건강은 쿠팡으로 돌아가며 판로를 크게 넓힐 수 있게 됐다. 쿠팡은 이제 명실상부한 유통 강자다. 지난해 3분기까지 실적만 봐도 이를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지난해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의 지난해 3분기 매출액은 8조1028억 원으로 2022년 3분기 대비 약 18% 늘었다. 영업이익은 1146억 원으로 2022년 3분기와 비교해 11% 증가했다. 이로써 쿠팡은 2022년 3분기부터 5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흑자 규모는 4448억 원이다. 2022년 같은 기간 2288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점을 고려하면 눈에 띄는 수익성 개선을 이뤘다.

    쿠팡의 지난해 3분기 실적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고객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활성 고객(제품을 분기에 한 번이라도 산 고객) 수가 가파른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쿠팡의 활성 고객 수는 2042만 명으로 2022년 3분기 대비 14%가량 증가했다. 활성 고객 1인당 매출액은 39만7040원으로 약 7% 늘었다.

    쿠팡은 전통 유통 기업인 이마트를 위협할 정도로 몸집이 커졌다. 유료 멤버십 ‘로켓와우’ 회원만 1100만 명에 달한다. 지난해 12월 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기준 우리나라의 총인구가 5132만 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국민의 5분의 1이 와우 회원이고, 절반이 조금 안 되는 인원이 활성 고객인 셈이다. 쿠팡이라는 판로를 잡는 것은 곧 매출을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특히 LG생활건강은 주력 시장인 중국의 경기 둔화로 실적 부진에 빠진 상황이라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안정적 매출을 확보해야 한다. 이 때문에 LG생활건강이 더후와 같이 중국 소비자의 선호도가 높은 럭셔리 라인을 쿠팡에 입점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상황이 ‘데탕트’로 흘러가는 가운데 아직 쿠팡으로 돌아가지 않은 곳이 있다. CJ제일제당이다. 쿠팡과 CJ제일제당은 2022년 11월 납품가를 두고 이견을 보이다 사이가 틀어졌다. 이후 협상을 이어가고 있으나 1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아직 요원한 쿠팡에서 햇반 사기

    서울 중구 동호로 CJ제일제당 사옥 (왼쪽)과 CJ제일제당의 대표 상품 햇반. [CJ제일제당]

    서울 중구 동호로 CJ제일제당 사옥 (왼쪽)과 CJ제일제당의 대표 상품 햇반. [CJ제일제당]

    애당초 업계는 CJ제일제당이 온라인 판로 유지를 위해 한발 물러설 것으로 봤지만 CJ제일제당은 다른 대형 유통업체들과 협업하는 방안을 택했다. 이후 CJ제일제당은 신세계그룹 통합 멤버십 출시 행사, 컬리 푸드 페스타 등에서 부스를 차려 협업 제품을 선보이면서 반(反)쿠팡 연대를 조직했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8월 신상품 13종을 다른 유통 채널보다 이마트에서 두 달 먼저 선보이기도 했다. 9월엔 쿠팡이츠 경쟁업체인 배달의민족과 손잡고 배달 커머스 전용 상품을 개발하기로 했다.

    업계에선 CJ제일제당을 주축으로 한 반(反)쿠팡 연대가 제대로 힘을 쓸 수 있을지를 놓고 의견이 갈렸다. 쿠팡의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지만, 제조업체로서는 브랜드 파워가 있다면 쿠팡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장기적으론 더 긍정적이라는 이유에서다.

    CJ제일제당의 ‘믿는 구석’이 바로 브랜드 파워다. 소비자의 입맛과 관련된 상품은 확실한 대체재를 찾기가 어렵다. 이미 한번 길든 맛을 바꾸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나 ‘햇반’ 모두 충성도가 높은 제품에 속한다. 자신이 있을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 쿠팡과 CJ제일제당의 갈등 봉합은 요원하다. 게다가 쿠팡은 온라인 화장품 시장에서는 CJ올리브영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는 티빙과, 물류에서는 CJ대한통운과 맞붙는 등 CJ제일제당뿐 아니라 CJ그룹 전체를 상대로 여러 분야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앞서 두 업체와 다른, ‘제 살길’을 찾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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