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후보와 소통하는 現 대통령
현직 대통령이 한참 일해야 할 때 각 정당이 대통령 후보를 뽑는 경선을 하는 것은 현직 대통령을 조기에 레임덕에 빠뜨릴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각 당에서 대통령후보 경선에 참여한 후보들은 자기의 국정 운영 철학을 제시한다. 그때 현직 대통령은 임기가 많이 남아 있고 권한도 강한지라, 각 당의 여러 후보가 밝힌 철학에 대해 자기 의견을 내놓는다.
그것이 바로 ‘소통’이 돼, 현직 대통령은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국정에 반영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을 거쳐 각 당이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면, 그들은 ‘현직 대통령의 2년’을 지켜보면서 ‘정치’를 하게 된다.
당연히 현 대통령과 여야 대통령후보 간에 직간접적인 대화가 이뤄진다. 국민은 그것을 지켜보며 차기 대통령후보들의 능력을 검증한다. 국민이 검증할 수 있는 기간이 매우 길기 때문에 각 당 후보들은 피 말리는 경쟁을 하게 된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대통령직을 훈련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선거 공식 운동 기간은 고작 23일이다. 물론 그 몇 달 전 각 당은 예비후보 등록을 받고, 전당대회를 통해 최종후보를 선출하니 실질적인 대통령 선거운동은 그보다 길지만, 국민이 이들의 능력이나 도덕성을 검증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각 당 후보들은 ‘이기기 위해’ 불가능한 공약도 남발하고 상대를 헐뜯는다. 국민의 눈을 덜 의식하는 것이다. 대통령직 수행을 연습해본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현직 대통령과 소통해 국정의 연속성을 꾀한다는 것은 안중에도 없게 된다.
‘리바이어던’ 출현 막아야
스위스도 흥미로운 제도를 택하고 있다. 스위스는 7명의 연방각료가 1년씩 윤번제로 대통령에 선출돼 연방각의를 주재하고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한다. 연방각료가 되면 누구나 국가를 이끌 수 있기에 이들은 전임자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외교와 국방을 담당하고, 총리는 경제와 내치를 담당하는 이원집정제의 프랑스 대통령제도 다시 보아야 한다. 프랑스의 대통령제는 정권교체로 인한 연속성 단절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 대통령과 총리가 권한과 책임을 분점하기에, 두 직책 간에 불협화음과 주도권 경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 1인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독선은 불가능하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하는 체제에서는 그에 저항하는 세력도 커지기에, 국정의 연속성이 단절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한 방해를 뚫고 권력을 장악하는 대통령이 있다면, 그는 그야말로 ‘리바이어던(Leviathan)’이 된다. 프랑스의 이원집정제는 리바이어던의 출현을 원천적으로 막는다.
중국은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가 국가를 이끄는 집단지도체제를 택했다. 주석은 7명으로 구성된 상무위원 중 1명이다. 주석이 되려면 전 정부에서 임기 5년의 상무위원직을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준비된 주석을 배출하고 국정 연속성의 단절도 겪지 않는다.
대통령과 대통령직을 같은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대통령직은 헌법이 만든 직책이고, 이 직을 수행하는 사람이 대통령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한 사람의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둘을 나누는 것은 실효가 없다. 그러나 대통령직과 대통령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책임 있는 자리를 맡으려 노력하는데, 막상 그 자리를 맡고 나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많은 준비를 했지만 현실에 부딪혀보니 크게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반면 이임할 때는 처리하지 못한 일 때문에 아쉬워한다. 대통령에 취임하면 아마추어적인 착오를 범하고, 퇴임할 때는 아쉬움을 토로하고, 재임 시 처리한 것에 대한 책임 추궁을 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오류를 피해가야 한다. 대통령직을 대통령이 된 한 사람이 독자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빚어지는 문제를 없애자는 것이다. 대통령은, 다음 대통령을 할 사람들과 함께 대통령직을 수행함으로써, 다음 대통령이 될 사람들에게 대통령직을 경험하게 해준다. 국민에게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대통령 후보자들을 검증하게 해주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코스타리카 모델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제안하는 것은 트로이카 시스템이다. 대통령직을 3인의 대통령직 구성원이 공동으로 수행하는 것이니,’대통령직 협의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대통령직을 구성하는 3명의 대통령 임기는 6년이나 9년으로 한다. 그리고 2년이나 3년마다 한 번씩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다. 이렇게 뽑힌 이들은 ‘예비 대통령’이 된다. 예비 대통령은 4년이나 6년을 기다렸다가 현직 대통령이 된다. 그 기간에 현직 대통령이 하는 것을 지켜보며 현직 대통령을 보좌한다. 대통령직 수행을 훈련하는 것이다.
다시 2년이나 3년이 지나면 ‘예예비’ 대통령을 뽑는다. 예예비 대통령도 현직 대통령과 예비 대통령을 보좌하며 대통령직 수행을 연습한다. 이렇게 하면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인 국정의 연속성 단절은 상당히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현직 대통령이 유고나 의사유고에 빠졌을 때도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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