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호

“질문이 연구를 살찌운다 끝없이 묻고 소통하라”

고려대 ‘미래과학콘서트’-노벨상 수상자와 과학영재들의 만남

  • 김유림 기자│rim@donga.com

    입력2013-11-21 14: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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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대에서 열린 세계적 분자포럼 MFS
    • 올해 노벨화학상 등 수상자 4명 강의
    • ‘석학 멘토’ 만난 고교생 700명 질문 경쟁
    • “대학과 과학자가 받은 혜택, 대중에게 돌려주자”
    • “과학자는 소통으로 얻은 것을 실험실에서 구현”
    “질문이 연구를 살찌운다 끝없이 묻고 소통하라”

    10월 28~29일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미래과학콘서트에 국내외 과학영웅 12명과 고교생 700여 명이 참석했다.

    “10년 후 어떤 과학기술이 유용할지 예측하기가 힘든데, 제가 노벨상을 받으려면 어떤 분야 공부를 해야 할까요?”

    한 고교생의 당돌한 질문에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 아리에 와르셸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 교수가 잠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웃으며 답했다.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도 학자지만 10년 후를 내다볼 수 없어요. 개인적으로 연구하고 싶은 분야가 갑자기 바뀔 수도 있죠. 그러니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열정의 불씨를 품고 있어야 합니다. 언제든 집중해야 할 분야가 생기면 그 열정의 불꽃을 활활 지필 수 있게요.”

    10월 28일, 가을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교정에 국내외 고교생들이 모여들었다. 노벨상 수상자와 세계 각국의 과학도, 과학영재들이 강연하고 토론하는 ‘미래과학콘서트(Molecular Frontiers Sym-posium 2013, 이하 MFS)’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MFS는 스웨덴 왕립과학원이 2006년부터 주최해온 행사로, 그동안은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한 관련 전문가 50여 명이 모여 강연을 하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전문 포럼으로 진행됐다. 고려대에서 열린 이번 MFS는 처음으로 대중, 특히 고교생을 위한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탈바꿈했다.



    이번 행사에는 와르셸 교수뿐 아니라 아다 요나트 이스라엘 바이츠만 과학연구소 박사(2009 노벨화학상), 앤드루 파이어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2006 노벨생리학상), 리처드 로버츠 미국 뉴잉글랜드 바이오랩스 박사(1993 노벨생리학상) 등 노벨상 수상자 4명이 참석했다. 로버트 랭어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 교수, CNR 라오 인도 네루 고등과학연구센터 명예센터장, 스웨덴 요리 전문가 제니 윌든 씨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 8명도 연사로 참여해 자리를 빛냈다. 이 밖에도 국내외 고등학생 700여 명과 고려대 학생, 국내외 과학자 등 모두 1000여 명이 참여해 집단 지성의 향연을 펼쳤다.

    최초의 토크콘서트 MFS

    토크콘서트 형식의 미래과학콘서트는 김병철 고려대 총장의 아이디어였다. 2011년 취임한 김 총장은 고려대 최초의 자연계 출신 총장이다. 김 총장은 지난해 싱가포르 난양공대에서 열린 MFS에 참석한 후 올해 MFS를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난양공대에서 열린 MFS에는 대학생과 고교생이 각 200명씩 참여해 방청했지만, 고려대 MFS엔 고교생 700여 명이 참여했다.

    국내에서는 ‘안철수·박경철의 청춘콘서트’‘삼성그룹의 열정樂서’ 등 토론 형식의 강연회가 대중적으로 확산됐지만 외국에서는 낯설다. 고려대 측은 “분자과학연구재단 등 주최 측에서는 ‘토크콘서트’라는 말을 듣고 ‘노래를 하는 건가?’라며 의아해했지만 국내에서 열린 다양한 토크콘서트 영상을 본 후 ‘젊은이들에게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키울 수 있는 형식’이라며 적극 찬성했다”고 전했다.

    행사에 참여한 700여 명의 고교생은 각양각색이다. 고려대 측이 전국 고교에 공문을 보내 각 학교에서 1~2명씩 선발돼 참가했다. 참가자 중에는 특목고, 영재고 등에서 과학 특화교육을 받은 학생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일반고 출신이다. 고려대 측은 “전체 참가 고교생 중 30%가 서울·경기 이외 지역에서 왔다”고 밝혔다. 고려대는 이들의 2박3일 일정을 위해 인근 호텔 두 곳을 빌렸다.

    참가 학생 중에는 전남의 보육시설에서 온 학생도 있고, 재일교포 13명과 나이지리아에서 온 학생 5명, 미국 LA 빈민가에서 온 학생 2명도 포함됐다. 대구 정화여고 최연진(17) 양은 “대구에서는 노벨상 수상자를 만날 기회를 상상도 못했다. 고려대 측에서 모든 걸 지원해준 덕분에 부담 없이 설레는 마음으로 왔다”고 말했다.

    고교생도 패널로 참가

    고려대는 미래과학콘서트를 왜 고등학생에게까지 개방했을까. 이는 사회공헌에 대한 고민과 연관이 있다. 고려대는 국내 대학 최초로 10월 말 일부 강의를 일반인에게 공개해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수강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했다. 울산대, 이화여대 등 인터넷을 통해 강의를 공유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오프라인에서 강의실을 공개한 것은 고려대가 처음이다.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그간 받은 혜택을 대중에게 돌려주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과학자를 꿈꾸는 아이들이 롤모델인 노벨상 수상자를 만나는 것은 상상 이상의 기쁨이다. 아이들은 백발의 석학들 앞에서 마치 아이돌 가수를 만난 것처럼 열광했다. 둘째 날 점심시간, 앤드루 파이어 교수는 학생들과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단출하고 사적인 자리라 학생들은 진로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을 많이 했다. 파이어 교수는 “나 역시 수학을 연구하다가 생물로 전공을 바꿨다”면서 “열정은 (다른 분야로) 옮겨갈 수 있으니 크게 고민하지 말고 일단 덤벼라”라고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을 해줬다.

    고려대 화학과 전승준 교수는 “유교적 배경 탓인지 우리나라엔 세계적인 명성의 인물을 경외(敬畏)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이들이 노벨상 수상자들을 보며 그들도 자기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목격하면 자신감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마동훈 대외협력처장(미디어학부 교수)은 “이들이 다 과학자가 되진 않더라도 삶의 태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주 참가자가 고교생이다보니 행사 프로그램도 대거 바뀌었다. 학자들이 자신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강의 시간은 15~20분으로 줄였고, 대신 참가자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토론 시간을 대폭 늘렸다. 토론 시간에는 고교생들도 무대 위에서 패널로 적극 참가했다.

    과학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연사를 무대에 올리는 파격도 눈에 띄었다. 첫째 날 연사로 선 제니 윌든은 5세 때 스웨덴으로 입양된 한국계로 요리 경연대회 ‘마스터 셰프 스웨덴 2013’ 우승자다. 요리사, 요리 창작자, 음식 블로거, 리더십 강연자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요리와 과학, 경영의 융합’에 대한 강연으로 학생들의 호응을 얻었다.

    과학이 사회에 진 빚

    토크콘서트 형식의 강연 프로그램을 짜면서 고려대 측도 반신반의했다. 과연 고교생들이 수준 높은 과학 강의를 듣고 자발적으로 질문할 수 있을까. 지난해 싱가포르 행사를 치른 난양공대 재료과 조남준 교수는 당시 경험을 떠올리며 고려대 교수들에게 “혹시 모르니 교수들이 4~5개씩 질문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주는 게 어떠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기우였다. 학생들은 수준 높은 영어로 질문을 던지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질문 시간마다 질문자들이 무대 양옆의 마이크 앞에 줄을 서도록 했는데, 마지막 질문 시간에는 줄이 너무 길어 미처 질문을 못한 이들도 있었다. 미국 시카고에서 온 한 언론인은 “영어가 모국어인 나도 이해 못하는 복잡한 원리를 한국의 어린 학생들이 이해하고 질문하다니 정말 놀랍다”며 혀를 내둘렀다.

    고교생들의 적극적인 참가는 대학생들에게 큰 자극이 됐다. 고려대 생명과학부 류아람 씨는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저는 고교시절 ‘생물학을 공부하고 싶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게 한(恨)’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 생물학 수준을 알지 못하니 그저 ‘노벨상 수상자도, 뛰어난 학자도 없다’며 혼자 개탄했던 겁니다. 이런 심포지엄이나 노벨상 수상자를 접할 기회가 있으리라곤 생각조차 못했죠. 대학에 와서야 우리의 생물학이 뛰어난 수준임을 알게 됐습니다. 어려서부터 암에 대해 연구하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생물학과를 가야 하는지 의대를 가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오늘 이들 고교생을 보니 부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요.”

    미래과학콘서트에 참여한 12명의 연사는 각 연구 분야를 이끄는 대표 연구자들이다. 세계에서 앞다퉈 모셔가려는 ‘몸값’ 높은 이들이 한국 고교생들 앞에서 기껏 20분 동안 연구 성과를 발표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래과학콘서트를 찾은 것은 자신들이 받은 혜택을 한국의 고교생에게 돌려주기 위해서다. 요나트 박사는 “과학은 사회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하므로 과학의 모든 결과는 전적으로 사회에 환원돼야 한다”며 “젊은이들은 과학에 노출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내가 받은 혜택을 여러 형태의 강의를 통해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고 참가 의의를 밝혔다. 파이어 교수도 “노벨상을 탄 것은 나 혼자만의 성과가 아니다. 내가 연구실 바깥에서도 목소리를 가졌다는 걸 의미한다. 그것을 필요한 곳에 쓰고자 한국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인도에서 온 라오 교수는 70대 노령에도 모든 강연에서 첫 줄에 앉아 강의를 듣고 끊임없이 메모해 눈길을 끌었다.

    문제는 창의력!

    “질문이 연구를 살찌운다 끝없이 묻고 소통하라”

    각 강의가 끝날 때마다 질문하려는 학생들의 줄이 끊이지 않았다.

    국제경영개발원(IMD) 지표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과학경쟁력은 세계 7위, 기술경쟁력은 11위다. 지난해 총 7개의 국제 과학올림피아드가 열렸는데 한국 학생들은 수학, 화학, 천문, 지구화학 등 총 4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정작 과학기술에 대한 청소년들의 자신감이나 흥미는 평균 이하로 드러났다. 2011년 수학·과학 성취도 추이변화 국제비교 연구(TIMSS)에 따르면 국내 중학교 2학년 학생 중 “수학 및 과학에 자신 있다”고 밝힌 이들은 3%, “수학 및 과학을 좋아한다”는 학생은 4%에 불과했다. 수학과 과학 학습 능력은 뛰어나지만 창의력은 떨어지고, 그 결과 과학에 재능 있는 학생들은 정작 이공계를 기피해 국가적 기초과학 기반이 축적되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간 과학영재들은 ‘점수 따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창의적이지 못하고, 이공계에 진학해서도 자신의 영달을 위해 의대 진학을 바라는 속물’로 비쳐졌다.

    미래과학콘서트에서 과학영재 고교생들의 현실을 여실히 볼 수 있었다. 경기 동화고 이종환(17) 군은 “제3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태양열 조리기를 만들겠다”며 학교 운동장 한가운데 작은 비닐하우스를 만드는 ‘괴짜 소년’이다. 지난해 교장선생님을 끈질기게 설득해 ‘실험반’ 동아리를 만들었다. 끈질긴 영입 작전으로 7명의 부원을 끌어들여 한 달에 2번씩 화학선생님 지도 아래 실험을 한다. 일반고에서 고군분투 실험반을 만든 과정을 들으면서 그런 열정을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일반고에선 실험을 할 기회가 드물다. 그저 과학 수행평가 때 실험실에 잠깐 가서 정해진 실험만 수행할 뿐. 이 군은 “친구 대부분이 과학 실험에 관심을 가질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한다”며 아쉬워했다.

    반면 “분자는 꼭 주변 환경과 ‘밀당(밀고 당기기)’을 하는 것 같아 정말 재미있다”는 서울과학고 이소영(16) 양은 아주대와 경원대, 서울과학고 영재교육원을 거쳐 과학고에 진학해 과학영재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경우다. 서울과학고는 초중등교육법을 따르지 않는 영재학교다. 자체 교육과정에 따라 수학의 경우 고등수학 1, 2, 3, 4와 미적분학, 선형대수학, 기초통계학 등을 추가로 배운다.

    학생들은 특기 분야에 따라 올림피아드를 준비한다. 이 양은 화학이 특기인데 화학올림피아드의 경우 대한화학회 주도로 대표를 선발한다. 대한화학회는 1년에 2번, 각 2주씩 학생들을 대학에 모아놓고 캠프를 연다. 지도교수와 함께 실험하고 연구하는 과정을 통해 우수한 학생을 우선 선발하고, 나머지 학생 중 시험을 통해 몇 명을 선발한다. 이렇게 4차례 학생을 추려 최종시험을 통과한 최후의 4인은 국제 화학올림피아드 대회에 나갈 수 있다. 이 양은 “국가대표를 뽑는 4단계 최종시험이 오히려 국제 시험보다 더 어렵다. 그러니 매번 화학올림피아드에서 우승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고려대 전승준 교수는 “과학고의 경우 실험이나 과학 관련 정보를 얻기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들만 있어 소통하고 창의성을 기르기가 어려울 수 있다. 반면 일반고의 경우 실험을 하거나 과학 특화 교육을 받을 기회는 적지만 다양한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지적했다. 어떤 환경이 과학영재에게 더 좋은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학생들의 창의성과 흥미 부족을 비판하기 전에 우리가 과연 그들에게 창의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풍토를 제공하고 있는지는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창의력=소통

    마침 미래과학콘서트 첫날의 마지막 토론 주제도 ‘창의성’이었다. 창의성의 정의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파이어 교수는 “창의성이란 기본적인 틀에서 벗어난 것을 찾으며 지속적인 개선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벵트 노르덴 분자과학연구재단 회장은 “한마디로 정의되거나 평가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창의성이란 예술처럼 아주 직관적인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질문이 연구를 살찌운다 끝없이 묻고 소통하라”

    행사 참가자들이 11월 7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에 다시 모여 ‘미래과학콘서트’의 의미에 대해 되돌아보았다. 왼쪽부터 고려대 생명과학부 류아람 씨, 생명공학부 이로운 씨, 화학과 전승준 교수, 서울 과학고 이소영 양, 경기 동화고 이종환 군.

    하지만 창의력을 발휘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바로 ‘소통’이다. 파이어 교수는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학교 중 하나인 영국 케임브리지대에는 곳곳에 티룸(차를 마시는 공간)이 있어 서로 많은 대화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엔 학자들끼리 점심식사를 하면서 냅킨에 아이디어를 메모하는 문화가 있어 점심시간이 끝나면 테이블 위에 냅킨이 수북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1997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오바마 정부 초대 에너지부 장관을 지낸 스티븐 추 미국 미시간대 교수는 “처음 연구실에 들어갔을 때 1년간 아무 임무가 없었다”고 한 적이 있다. 주어진 주제 없이 자유롭게 도서관을 들락거리고 사람들과 대화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연구 주제가 떠오른다는 얘기다.

    전승준 교수는 미국에 공부하러 갔을 때 복도 곳곳에 칠판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교수와 학생들이 복도에 서서 이야기를 하다가 자유롭게 칠판에 아이디어를 쓰고 수식도 계산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반면 한국에서는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라는 분위기가 강해 소통을 통한 창의성 개발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마동훈 교수는 “그저 주어진 문제를 잘 푸는 차원을 넘어 좋은 문제를 만들 줄 알아야 한다”며 “학생이 교수에게 언제든 자유롭게 질문하는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창의력=소통’임을 증명하듯 이번 미래과학콘서트에 참여한 12명의 연사는 하나같이 소통에 능했다. 학생들이 때로 서툰 영어로 엉성한 질문을 해도 질문의 핵심을 짚어내 깊이 있는 답변을 했다. 과학자들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사회성이 떨어지는 ‘괴짜(greek)’일 것이라는 편견이 무색해졌다. 한 고교생은 “과학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괴짜가 아니라 소통으로 얻은 것을 실험실에서 구현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대학 들어가면 사라지는 열정

    1903년 퀴리 부인이 여성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지 100년도 더 지났지만 과학은 여전히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미래과학콘서트에선 과학 분야의 여성 파워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연사 12명 중 5명이 여성일 뿐 아니라 패널로 참가한 고교생 중 상당수가 여학생이었다.

    요나트 박사는 세포 소기관인 ‘리보솜’ 소단위체의 3차원 구조를 규명한 성과로 2009년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는 “어린 여학생들로부터 ‘여성으로서 노벨화학상을 받은 비법이 뭐냐’ ‘여자인 내가 과학계에 남아 있어도 될까? 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여성들은 과학계에 들어섬과 동시에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다”고 털어놨다. 여학생들의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과학은 여성과 남성을 가리지 않고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여성이라고 특혜를 바라지도, 겁먹지도 말라는 의미다.

    둘째 날 연사로 선 알렉산드라 코드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 박사는 다섯 아이를 둔 워킹맘이다. 한 여학생이 코드 박사에게 “아이가 다섯이나 되는데 어떻게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나”라고 질문했다. 코드 박사는 “나도 균형을 잘 못 맞춘다”며 답변을 이어갔다.

    “저의 일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열정을 쏟습니다. 제 삶의 반을 아이들에게 투자하면 아이들은 제 삶을 더 충만하게 만들어줍니다. 또한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영감(inspiration)을 주는 것이 중요해요. 자연스럽게 존중하면 아이들은 잘 성장합니다.”

    열정적인 고교생들의 질문 퍼레이드는 한국 과학의 희망찬 미래를 기대하게 했지만, 한국 과학계는 여전히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일단 과학계에서도 “10년 안에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학자가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크다. 현재의 과학교육이 학생들의 열정을 지속시키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려대 이공계의 모 교수는 “대학에 들어올 때만 해도 학생들이 기초과학에 관심이 많고 열정적이지만, 들어온 뒤에는 그런 열정이 사라지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요즘 학생들이 답을 빨리 구할 수 있는 문제는 빠르고 정확하게 풀지만, 고민해서 풀어야 하는 문제는 수강생 전원이 0점을 맞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고등학생 때 쉬운 문제를 정확하고 빠르게 푸는 훈련만 해서 그런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과학 高大’의 약진

    고려대 생명공학부 이로운 씨는 “고교시절엔 꿈도 열정도 많았지만 대학에 들어온 뒤로는 보상심리와 해방감 때문에 학업에 집중하지 못한 것 같다”고 반성했다. 생명과학부 류아람 씨는 “대학 1~2학년 때는 튀어 보일까봐 학업에 열정적으로 빠져들지 못했고, 학년이 올라가면 취업 걱정 때문에 실험에 전념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전승준 교수는 학생들에게 “미래를 걱정하지 마라”고 당부했다.

    “요즘 학생들에겐 ‘미래에 확실한 직업이 있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어요. 미래의 확실한 목표가 있는 것도 좋지만, 현재를 열심히 살다보면 미래의 길은 자연히 열리거든요. 저희 세대는 미국 유학을 가면 돈이 없기 때문에 장학금이 끊기면 곧장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어요. 그래서 매 학기 장학금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부했는데, 대부분의 유학생이 교수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그 공부를 하고 싶어서 했어요. 불확실한 미래를 절대 두려워하지 마세요. 길은 어떻게든 열립니다.”

    그동안 법대와 경영대 등 문과대 명문 대학으로 손꼽혀온 고려대는 김병철 총장 취임 이후 ‘혁신적인 투자(Innovative Investment)’를 핵심 전략으로 삼아 자연계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려대(KU)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함께 만든 KU-KIST 융합대학원이다. KU-KIST 융합대학원은 학생 전원에게 수업료를 면제해주고 생활비 혜택을 제공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교수와 연구원은 고려대와 KIST 양쪽에서 지원받으며 공동연구 과제를 수행하기 때문에 높은 시너지 효과가 예상된다.

    자연과학 육성을 위한 다각도의 방안들이 실행되면서 성과도 가시화하고 있다. 영국 대학평가기관 QS가 내놓은 2013 대학평가에서 고려대는 30개 평가대상 분야 중 15개 분야에서 세계 10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공학-화학 분야, 공학-전기 분야, 약학-약리학 등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최근 고려대의 자연과학 분야 발전을 보여주는 성과로 꼽힌다.

    미래과학콘서트에 참가한 싱가포르 난양공대 베르틸 안데르손 총장은 “한국 정부의 노력과 고려대의 과감한 투자가 인상적이다. 고려대는 세계 1등 대학이 될 수 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전승준 교수는 “우수한 학생들이 열정을 잃지 않고 정부와 대학이 과학 영재들을 적극 지원한다면 노벨상 수상도 머지않다”고 확신했다.

    고려대 MFS 주요 질의응답

    MFS는 가장 좋은 질문을 한 사람에게 ‘질문상(Inquiry Prize)’를 수여한다. 만 18세 이하 참가자가 좋은 질문을 하면 아이패드 등의 선물을 상으로 준다. 이는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잠언과 궤를 같이한다. 강연이 끝나면 강연 시간에 버금가는 질문 시간이 있어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하다. 다음은 이번 고려대 미래과학콘서트에서 나온 주요 질문과 답이다.

    Q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노벨상을 받은 후 개인적인 삶이 바뀌었습니까.

    A 아침 6시에 전화를 받았는데 일어나기가 싫었어요. 전화를 건 사람이 ‘혹시 뉴스 보셨습니까?’ 하기에 ‘지금이 6시인데 무슨 뉴스를 봐요?’라고 했죠. 그런데 뉴스를 보니 제가 노벨상을 탔다는 거예요(웃음). 노벨상을 탔다는 건 제 연구에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입증한 겁니다. 그때부터 제 세계관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제 제가 받은 혜택은 세계인에게 돌려줘야죠. -리처드 로버츠 미국 뉴잉글랜드 바이오랩스 박사

    Q 경제적 가치가 없는 연구도 진행합니까.

    A 특정 연구의 경제적 가치 여부를 주제 선정 단계부터 알기는 어렵습니다. 일단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를 연구해야 합니다. 자신이 사랑하고 열정 있는 분야를 연구하다보면 경제적 보상도 따를 수 있습니다. 스톡홀름 왕립과학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응용된 리서치뿐 아니라 응용되지 않은 리서치에도 많은 투자를 합니다. -베르틸 안데르손 싱가포르 난양공대 총장

    Q 세포 과학이 크게 발전해 심장과 같은 장기도 만들 수 있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언젠가는 인간 전체도 만들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가 아이언맨이 되는 건가요.

    A 시간만 충분하다면 아마 가능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람의 삶에 심오한 영향을 미치면서도 세계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방향으로 과학 기술을 이용해야겠죠. -로버트 랭어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 교수

    Q 바이오 분야를 연구하고 바이오 메디컬 연구 분야에서 널리 알려졌는데, 유명해진 뒤에 혹시 ‘반드시 신약을 발명해야 한다’는 압박 같은 건 없나요.

    A 저희가 하는 일을 과대포장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과학적 논문을 발표해 특허를 내는데, 때로 언론에서 저희의 일을 주목해 과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언론과 접촉할 때도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정확하게 전달합니다.” -로버트 랭어 교수

    Q 제 나이 때 뭘 하셨나요.

    A 8세 때부터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선생님들은 생물을 못하는 저를 보고 아마 멍청하다고 생각했을 거예요(웃음). 하지만 저는 계속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했어요. 질문을 많이 해야 하는데, 특히 충분한 답을 못 얻었을 때 계속해서 질문하는 게 중요해요. -알렉산드라 코드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 박사

    Q 현대 과학은 너무 특화돼서 대중이 다가가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A 그래서 과학자가 다른 분야와 연결고리를 찾는 게 중요해요.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여러 분야에 전문성 있는 사람이 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다른 분야와의 통섭이 중요하죠.” -아리에 와르셸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교수

    Q 올해 노벨상을 받았는데 인생의 최종 목표는 뭔가요.

    A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아요. 인생에서 궁극적 목표를 이미 달성했다고 하는 건 좋지 않고, 재빨리 다음 목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지금은, 음…디즈니랜드에 가고 싶어요. -아리에 와르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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