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호

‘규격 미달’ 장비 구입 재검증·재계약 헛발질

기상장비 ‘라이다’ 논란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4-08-22 09:3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기상청 “프랑스 납품업체 ‘납품 실적 없다’ 인정”
    • 규격 미달이니 기준 낮춰주겠다?
    • 재검증 목표는 계약 해지 아니라 재계약?
    ‘규격 미달’ 장비 구입 재검증·재계약 헛발질

    기상장비 ‘라이다’는 맑은 날 윈드시어(난기류) 등을 측정해 항공기가 안전하게 이·착륙하도록 돕는 장비다.

    ‘신동아’ 5월호는 기상장비 ‘라이다(LIDAR)’ 도입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제기했다. 라이다는 맑은 날 윈드시어(난기류) 등을 측정해 항공기가 안전하게 이·착륙하도록 돕는 기상장비다.

    2011년 12월 한국기상산업진흥원(이하 진흥원)은 48억7000만 원을 투입, 프랑스 레오스피어가 개발한 라이다 ‘윈드큐브200S’ 2대(대당 19억7000만 원)를국내 기상장비업체 케이웨더를 통해 들여오는 계약을 체결했다. 레오스피어에는 장비값 명목 등으로 총 259만3000유로(약 39억2000만 원·외자분)를, 케이웨더에는 국내 설치비 명목 등으로 9억5000만 원(내자분)을 주는 계약이었다.

    하지만 ‘신동아’는 ‘윈드큐브200S’의 실제 가격과 케이웨더가 제출한 윈드큐브 200S 프랑스 공항 납품실적증명서, 그리고 케이웨더와 레오스피어의 계약관계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케이웨더는 언론중재위원회에 해당 기사에 대한 조정을 신청하며 “‘이면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그저 협의 과정에서 주고받은 문서일 뿐이고 송장 등에 찍힌 케이웨더 직인 역시 형식적인 서명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중재위 조정에 따라 ‘신동아’ 8월호에 케이웨더의 반론이 실렸다.

    한편 케이웨더가 진흥원에 청구한 물품대금 청구 민사소송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5월 케이웨더의 손을 들어줬다. 진흥원이 지난해 5월 31일 케이웨더가 납품한 라이다 장비에 대해 검사검수 후 ‘적합’ 판정을 내렸으므로 계약에 따른 공사대금(9억5000만 원) 등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

    진흥원은 “케이웨더가 하자 있는 제품을 납품했고 납품실적서, 측정거리와 관련해 ‘기망행위’를 했으므로 계약을 인정할 수 없다”며 항소했다.



    ‘신동아’는 납품 의혹과 관련해 레오스피어 측에 3차례 e메일로 질의했고, 기상청, 프랑스대사관 등을 통해 취재 내용을 알렸다. 하지만 레오스피어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기자는 정부 고위 관계자를 통해 레오스피어 측의 주장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레오스피어가 ‘한국 기자로부터 메일을 받았지만 현지 파트너(케이웨더)를 배신할 수 없어 답을 할 수 없다’더라”고 알려줬다.

    두 개의 계약서

    “레오스피어는 최근에야 ‘계약서가 두 개’라는 사실을 알았다. 레오스피어는 케이웨더가 국내 설치비 명목으로 9억5000만 원의 내자분 계약을 맺은 사실을 모르고 이 사업 전체 금액이 259만3000유로인 줄로만 알았다. 레오스피어는 케이웨더가 진행한 한국 내 계약관계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하더라.”

    레오스피어가 말한 ‘두 개의 계약서’란 무엇일까. 2012년 초 레오스피어가 케이웨더를 통해 받았다는 영문 계약서에는 외자분인 259만3000유로만 적혔다. 한편 진흥원이 공식 발급한 국문 계약서에는 외자분 외에 케이웨더가 받기로 한 내자분 9억5000만 원이 기재됐다.

    ‘신동아’는 “레오스피어가 케이웨더에 ‘지역 인프라 및 필수 항공 건설’ 명목으로 71만5000유로(10억800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내용 등을 담은 송장(invoice)을 보냈다”고 보도하며 ‘케이웨더는 진흥원으로부터 국내 설치 및 관리비 명목으로 9억5000만 원을 받기로 해놓고 왜 또 레오스피어에 유사한 내용으로 10억 원 이상을 받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윈드시어 탐지 라이다는 처음”

    이에 대해 케이웨더는 “국내 설치공사와 부대시설에 대한 사항을 국내 업체에 발주해 해당 업무를 수행하게 하는 것은 일반적”이라고 답했다. 김동식 케이웨더 사장은 전화 통화에서 “케이웨더가 진흥원과 계약한 국내 공사는 활주로에 네트워크를 설치하고 라이다를 올려두는 타워구조물을 건설하는 등 라이다 ‘설치’를 위한 것이다. 본래 라이다와 케이블을 연결하는 작업 등은 레오스피어 몫인데 그것을 레오스피어 대신 해주고 대가를 받는 것”이라고 두 공사내용을 분리해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장비업체 대표는 “케이웨더가 레오스피어 대신 해줬다는 것은 간단한 작업인 것 같다”며 거액의 공사비에 의문을 나타냈다.

    ‘규격 미달’ 장비 구입 재검증·재계약 헛발질

    레오스피어가 케이웨더로부터 받은 영문 계약서(왼쪽)와 정식 국문 계약서.

    진흥원과 케이웨더 간 민사소송의 쟁점 중 하나가 납품 실적이다. 입찰 당시 진흥원은 제안요청서에 “입찰에 참여한 제품은 국내외 공항에 공고일 기준 3년 이내 납품한 실적이 있어야 한다”며 입찰 업체는 ‘실적 관련 증명자료’를 첨부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케이웨더는 레오스피어 윈드큐브200S가 프랑스 니스공항 및 샤를 드골 공항에 납품됐다는 증명서를 제출했다. 이에 대해 ‘신동아’ 5월호는 “해당 증명서는 정식 납품이 아닌 시험용 납품과 관련된 것이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케이웨더는 “납품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기자는 프랑스 기상청이 진흥원에 제출한 납품 관련 서류를 살펴보았다. 이 서류에는 “2011년 공항 개선 연구 프로그램에서 윈드큐브200S를 몇 주간 쓴 적이 있지만, 윈드시어가 아니라 항공기에 의해 발생하는 항적 소용돌이를 관측하기 위해 약 10종의 관측장비와 함께 설치한 것”이라는 답변이 적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레오스피어 측이 기상청에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라이다를 450대 설치했다’고 자랑하기에 기상청 담당자가 ‘풍력발전이나 레이다와 관련된 것이지, 윈드시어를 잡아내는 항공 라이다로 납품한 것은 한국이 처음 아니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했다”며 “스스로 ‘기존 납품 실적이 없음’을 인정한 것”이라고 전했다. 장비의 가격 및 절차상 문제는 진흥원과 케이웨더가 진행 중인 민사소송과 검찰 수사에서 밝혀질 것이다.

    현재 진흥원은 케이웨더와 물품대금 지급을 둘러싼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동시에 레오스피어와는 ‘재검증’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12월 납품된 장비가 진흥원의 검사검수를 통과했다고 주장하는 레오스피어와, 납품된 장비가 규격에 미달한다고 주장하는 기상청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다가 결국 해외 전문가를 불러와 새롭게 검증하는 절차를 거치자고 합의한 것.

    한편 케이웨더는 “진흥원과의 민사소송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재검증을 거부했다. 레오스피어와 기상청은 각각 2명씩 전문가를 선발해 2014년 2월부터 해당 제품에 대한 검증을 하자고 합의했다. 하지만 6월이 돼서야 4명의 전문가 집단이 꾸려졌다.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출신이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난 8월 현재까지 재검증은 이뤄지지 않았다.

    무엇을 위한 재검증인가

    이에 대해 기상청 관계자와 나눈 대화다.

    ▼ 재검증 작업은 어디까지 진행됐나.

    “레오스피어 측이 입찰 당시 진흥원에 제출한 최초 제안요청서에 대해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 달성하기 어렵다’고 얘기해 현재 전문가들과 함께 수정된 규격을 작성 중이다.”

    ▼ 입찰 당시 제안요청서에 맞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진흥원이 검사검수를 하면서 해당 제품에 대해 ‘적합’판정을 내렸기 때문에 기상청도 이제 와 계약을 해지하면 소송 부담이 크다. 하지만 재검증에 합의했다는 것은 양측 모두 ‘진흥원이 진행한 검사검수는 무효’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 진흥원의 검사검수에 문제가 있었다면 담당 직원을 형사 고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도 진흥원 장비 관련 분야에 근무하는데.

    “법적 조치를 고려한다. 민사소송에서 만약 진흥원이 패소하면 해당 직원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것이다.”

    ▼ 규격을 수정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 같나.

    “레오스피어가 그간 장비 성능을 개선해 진흥원 검사검수 때보다 성능이 향상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각도분해 능력 등 핵심 기술은 여전히 부족하다. 결국 현재 장비는 새로운 규격 조건도 충족하지 못할 것이다.”

    ▼ 기상청이 민사소송에서 ‘계약해지를 위한 절차를 밟는 중’이라고 해놓고 장비 업체와 협의를 통해 재검증을 하는 것은 이치에 안 맞는다.

    “입찰 과정에 불법 행위가 있었고 장비 성능에 하자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계약 해지를 추진하고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다. 다만 어느 시점에 계약을 해지할지는 검토 중이다.”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김경협 의원은 “당초 항공기상청 검사에서 불합격된 것인데 업체 요구 때문에 재검증하는가”라고 기상청장을 몰아세웠고, 홍영표 의원 역시 “항공기상청 전문가들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는데 왜 업체 사람들을 데려다 재검증위원회에 집어넣느냐”며 “외부 압력에 의해 재검증단을 꾸리는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조달청 규정에는 ‘재검증을 할 때는 당초 검사 수준 이상으로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레오스피어가 ‘규격서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다’고 인정한 상황에서 규격을 낮춰 재검증을 시도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항공기상청 관계자는 “본격 입찰 이전에 제안요청서가 잘못됐을 경우 업체들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있다. 그때 수정했어야 한다”며 “만약 진흥원의 검사검수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해당 검사검수를 진행한 직원을 고발하거나 검사검수를 무효화하는 게 원칙이다. 제 식구 감싸기 위해 기상청이 섶을 지고 ‘재검증’이라는 불 속에 들어간 꼴”이라고 비판했다.

    계약 해지 아닌 재계약 속셈?

    지난해 해당 업체와 계약 해지를 위한 법률적 검토도 마친 기상청이 이제 와서 재검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정치권 인사는 “기상청은 국제소송을 두려워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레오스피어 사장과 프랑스대사관 관계자가 기상청을 여러 번 방문해 ‘설치된 라이다 장비 두 대를 회수하고 업그레이드 및 가격 할인을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프랑스대사관은 자국 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이었겠지만, 기상청으로서는 상당한 압박을 느꼈을 것이다. 또한 레오스피어가 끊임없이 장비 성능을 개선한 것에 대해 ‘가상하다’고 여긴다. 실제로 이 장비의 성능이 도입 당시보다 좋아졌다는 얘기가 기상청 내에 돌고 있다. 레오스피어가 한국을 라이다 개발 및 시험 연구소로 삼는 형국이다.”

    기상청이 재검증에 대해 이미 “계약해지 과정”이라고 못 박은 마당에, 레오스피어가 재검증에 응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상청 관계자는 “재검증에서 ‘해당 규격엔 미치지 못하지만 윈드시어를 어느 정도 잡아내는 등 기상장비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정도의 결론이 나오면 결국 재계약을 하거나 장비를 보완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수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상업체 관계자는 “윈드시어를 제대로 잡아내지도 못하는 장비를 아무리 업그레이드하고 여러 대 받는다고 해서 어떻게 나아지느냐. 당장의 소송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며 자가당착”이라고 비판했다.

    평가, 입찰, 검사검수, 재검증까지 기상장비 라이다를 둘러싼 논란이 4년째 지속되는 가운데, 기상청과 기상업계는 큰 대가를 치렀다. 기상청과 산하기관 공무원 10여 명이 고소·고발당해 검찰조사를 받았다. 인사조치되거나 공직을 떠난 사람도 많다. 이 과정에 기상청은 ‘비리청’이라는 불명예를 얻었고, 기상산업 발전과 기상장비 국산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기상업계는 ‘사건’ 이후 ‘올 스톱’ 됐다.

    반면 재검증과 소송의 단초가 된 진흥원 검사검수 담당 실무 직원들은 지금도 국가 기상장비 도입사업에 참여할 뿐 아니라 민사소송 공판에 업체의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지난해 취임한 고윤화 기상청장은 여러 차례 “나는 기상청의 케케묵은 문제를 해결하려 왔다”며 기상청 개혁에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하지만 원리와 원칙을 세우고 제 살을 깎는 아픔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기상청 개혁은 다시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규격 미달’ 장비 구입 재검증·재계약 헛발질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