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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리포트

결혼 거부하는 비혼주의자들

“혼자 사는 내 인생은 외로운 낙원”

  • 고려대 김우진, 유진예, 호문군, 홍승아

결혼 거부하는 비혼주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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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결혼하면 삶의 질 추락”
    ● “사상 최악 취업난에 1인 가구 선호 겹쳐”
    ● 비혼식, 싱글웨딩 행사 늘어
    ● 출산율 더 떨어질 것
한국의 출산율(가임기 여성 1명당 1.125명)은 전 세계 225개국 중 220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젊은이들 중 상당수는 취업이 안 되어서 혹은 혼자 자유롭게 사는 게 좋아서 결혼 자체를 기피한다. 일부 조사에 따르면, 평균 결혼연령도 남자는 34~36세, 여자는 31~33세로 높아졌다.

이젠 ‘미혼’ 아닌 ‘비혼’

이런 가운데 단지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미혼(未婚)자가 아닌, 결혼 자체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비혼(非婚)자가 주변에서 부쩍 늘어나는 것으로 비친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중요한 트렌드가 될 조짐을 보이는 비혼 양상을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안호용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비혼은 시각의 문제다. 똑같이 결혼하지 않은 상태지만 사람에 따라 그것을 미혼으로 볼 수도 있고 비혼으로 볼 수도 있다. 최근엔 비혼으로 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비혼자가 많이 생겨나면서 이들을 위한 ‘비혼식’과 ‘싱글웨딩’ 행사도 늘고 있다. 결혼식이 하객들 앞에서 ‘결혼’을 선언하는 행사라면, 비혼식은 사람들 앞에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행사다. 

직장인 신수연(여·25) 씨는 얼마 전 서울 신촌의 한 파티 룸에서 친구들과 함께 비혼식을 열었다. 이 자리엔 신씨 같은 비혼주의자 5명이 함께했다. 이들은 모두 빨간색 계통 옷을 입었고 서로 선물을 주고받았다. 기념사진도 촬영했다. 



비혼을 결심한 계기는? 
“딱히 계기라고 할 만한 일은 없었어요. 나는 평소 친구들과 만나는 것을 즐겨요. 이야기하다 보면 네다섯 시간은 금방 가죠. 요즘 우리의 중요한 화두는 자신의 삶이에요.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자신을 아끼면서 즐겁게 늙어갈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다들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기 위한 방법으로 비혼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나는 혼자가 둘보다 편해 비혼을 결심했어요. 어떤 친구는 어릴 때 부모님의 불화로 결혼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해요. 다른 어떤 친구는 다른 사람을 책임질 자신이 없어 비혼을 결심했다고 하고요.” 

비혼식을 연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런 행사를 통해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 축하해주고 싶었죠. 또 비혼으로 평생을 산다면 결혼식을 올릴 기회가 없기에 조금 아쉬운 마음이 있었어요. 서양에서 자주색 드레스를 입고 모여서 파티를 연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자주색을 좋아하지는 않아 빨간색으로 변경했어요. 청첩장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보내줬습니다. 파티 룸에서 비혼 선언문 낭독, 축하연설, 선물교환, 댄스파티 순으로 진행했어요.”

“선언문 낭독”

신수연 씨는 이야기를 하는 내내 비혼식의 기억을 떠올리며 즐겁게 웃었다. 이 비혼식에 동참한 이모(여·25) 씨는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결혼하지 않고 오늘처럼 즐겁게 시간을 보내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비혼주의자가 홀로 결혼사진을 찍는 싱글웨딩도 비혼을 상징하는 최신 문화다. 싱글웨딩은 사진관에서 웨딩사진을 찍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예약을 미리 하고 당일이 되면 웨딩 전문 메이크업을 받은 뒤 직접 의상을 골라서 입는다. 이어 전문 사진가가 웨딩사진을 찍는다. 일반 웨딩사진과 다른 것은 배우자와 함께 찍지 않고 혼자 찍는다는 점이다. 결혼을 하고 싶지 않지만, 웨딩드레스나 턱시도를 입어보고 사진을 남기고 싶은 젊은 비혼족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다. 

인천 S사진관 측은 “사진가의 입장에서 싱글웨딩은 한 사람을 위한 사진만 찍으면 되기에 작업하기 편하다. 요즘 싱글웨딩 사진 촬영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최근 3년간 싱글웨딩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도 20곳이 생겼다. 부산 ‘아벨웨딩’이라는 웨딩사진 전문 스튜디오의 직원 김모 씨는 “싱글웨딩 문의가 굉장히 많아졌다”고 말했다. 김씨는 “고객 대부분이 20대 후반~30대 초반 여성으로 자기만의 추억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큰 것 같다. 친구와 함께 와서 싱글웨딩 촬영을 한 뒤 그 친구와 우정촬영을 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결혼 기피 풍조로 인해 다른 스튜디오업체도 웨딩 촬영 일감이 줄다 보니 싱글웨딩을 따로 준비해놓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연예인 김숙이 싱글웨딩 촬영을 진행했다. 배우 한채아와 레인보우 지숙도 TV에서 싱글웨딩을 촬영했다. 

20대를 중심으로 결혼을 필수로 여기는 인식이 점점 희미해지는 듯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8년과 2014년을 비교할 때 결혼에 대한 긍정적 응답이 10%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이에 따라 요즘 20대 중에선 비혼으로 살겠다는 사람이 쉽게 눈에 띈다.

“남편 외도하고 시댁과 갈등하고”

한 웨딩업체의 ‘싱글웨딩’ 사진. [동아DB]

한 웨딩업체의 ‘싱글웨딩’ 사진. [동아DB]

서울 K대 미디어학과 재학생 허모(여·24) 씨는 “난 비혼을 택했다. 결혼을 하면 삶의 질이 추락한다. 시어머니와 소통이 안 돼 갈등하고 남편이 외도하는 사례가 많다. 이런 게 너무 귀찮아 결혼을 마주하기 싫다”고 말했다.
 
같은 대학 국어국문학과 재학생 왕모(여·19) 씨는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면서 살 필요가 없다. 결혼하면 남자 쪽 가정도 챙겨야 하고 자녀도 양육해야 한다. 이런 예속된 생활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N포 세대라는 유행어에 따르면, 요즘 젊은이들은 사상 최악의 취업난에 시달리고 결혼비용이나 양육비용도 부담이 되어 결혼을 포기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것도 중요한 원인이겠지만, 허씨나 왕씨의 증언에서 알 수 있듯이, ‘결혼 후의 새로운 인간관계’에 대한 부담감도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다른 중요한 이유가 된다. 적지 않은 젊은이는 ‘관계들’에 속박당하지 않은 채로 혼자 살고 싶어 비혼을 택한다. 

직장인 왕모(33) 씨는 “결혼은 내게 안정을 줄 수 없다. 연애는 하겠지만 누구와도 결혼까지 가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서울 S대 경영학과 재학생 이모(여·25) 씨는 “내 힘으로 나의 욕구들을 충족할 수 있을 것 같다. 스스로 돈 벌어 눈치 안 보고 사는 것이 결혼해서 사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허례허식 많은 우리 결혼 문화”

“우리나라 기성세대가 은연중에 강요하는 결혼 문화 속엔 허례허식이 너무 많아요. 자녀 결혼에 부모 하객이 구름처럼 오는 것, 친한 사이가 아닌데도 축의금 주고받는 것, 상견례며 예단 오가는 것, 직장에까지 청첩장 돌리며 다 알려야 하는 것, 체면 안 깎이게 집이며 혼수 준비해야 하는 것…. 이런 것들이 다 허례허식이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죠. 결혼한 뒤에도 배우자에게, 양가 부모에게 갖춰야 할 예의가 너무 많아요. 서양 영화에서처럼 교회에서 친한 친구 몇 명만 불러 예식 올리고 둘이서 알아서 사는 그런 결혼이라면 그나마 낫죠. 우리나라식으로 이렇게 결혼하느니 차라리 그냥 쭉 혼자 살고 싶어요.” 

그러나 아직 비혼은 20대의 주류적 가치가 되진 않는다. “난 평생 결혼 안 하고 혼자 살 거야”라고 말하면 주변에선 “과연 그렇게 될지 두고 보겠다”는 반응이 우선 나온다. 서울 E대 대학원생 이모(여·25) 씨는 “‘영원히 결혼 안 하겠다’고 친구들한테 말했더니 ‘너 같은 애들이 제일 먼저 결혼하더라’라는 답이 돌아왔다. 기가 찼다”고 했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연구보고에 따르면, 결혼할 의사가 없는 남자(20%)보단 결혼할 의사가 없는 여자(31%)가 더 많다. 남성보단 여성이 비혼에 더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생 박나현(여·21) 씨는 자신이 비혼주의자라면서 실명 인터뷰에 응했다. 

박씨는 “여성이 결혼하면 직장일, 집안일, 육아를 맡아야 한다. 이런 희생을 해야 한다면 결혼하지 않고 삶을 즐기면서 사는 게 낫다”고 말했다. 박씨는 “친구들은 내 생각을 이해한다. 어머니는 ‘네가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아버지는 ‘네가 결혼하면 좋겠다’고 말한다”고 했다. 이어 박씨는 “결혼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비혼이라는 단어가 나와 반갑다. 비혼을 위한 사회적 분위기나 제도적 기반이 생기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대학생 김지훈(23)씨는 “남자인 나도 자유롭게 살기 위해 비혼을 택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결혼해 아이를 낳게 된다면 나를 위한 시간은 더 줄어든다. 경제적으로도 여러 제약이 생길 수 있다. 혼자 살 땐 나 하나만 건사하면 되지만 결혼하면 아내와 자녀까지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내가 번 돈을 온전히 내 삶에 투자하고 싶다”고 말했다. 

젊은 비혼주의자들이 어떤 이성을 만나 사랑하게 될 때 이들이 결혼 대신 주로 선택하는 것은 동거다. 한 비혼주의자의 말이다. 

“결혼을 안 하고 싶은 거지 연애를 안 한다는 말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도 결혼에 대한 제 생각은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둘이 사랑하더라도 결혼하면 행복할 수만은 없으니까. 결혼 대신 동거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요즘 동거가 미디어에서 자주 다뤄지고 있고 예전보다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뀐 것 같아요. 저도 어떤 여성을 사랑하게 되고 그 여성이 동의한다면 동거를 할 것 같아요.”

“여자는 자유가 구속당해”

결혼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혼자가 둘보다 더 편하다”고 말한다.

결혼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혼자가 둘보다 더 편하다”고 말한다.

김애순(여·76) 작가는 한평생을 홀로 살아온 ‘원조 비혼주의자’다. 비혼자의 인생을 직접 살아봤고 이를 문학으로 녹여내었을 김 작가의 말을 들어봤다. 

비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최근에야 등장한 단어죠. 예전에는 35세 이상 성인이 혼자 살면 독신이라고 했어요. 비혼은 자발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죠.” 

비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제가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할 것 같아서죠. 예전엔 결혼하면 여자는 자유가 구속당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남편에게 예속되는 것이 당연시됐어요. 그게 싫어 결혼하지 않았어요. 또한, 제가 아주 어릴 적에 아버지가 바람을 심하게 피워서 어머니가 매일 가슴앓이를 하셨어요. 제가 팔삭둥이인데, 어머니가 나를 뱄을 때부터 마음고생을 많이 하셔서 조산하신 거예요. 그런 모습을 보며 자라서 결혼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어요.” 

결혼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가족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어머니는 제게 결혼하라는 말씀이 없으셨죠. 우리 때는 결혼에도 순서가 있어서, 위의 형제가 결혼하기 전까진 막내가 결혼할 수 없었어요. 다행히 내가 막내라 결혼하라는 닦달을 많이 듣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예전엔 결혼에 대해 더 보수적이지 않았나요? 
“맞아요. 결혼은 당연한 절차였어요. 저를 성불구자로 보는 시선이 있을까 봐 제가 먼저 아무 이상 없다고 말했어요. 결혼하지 않으니 제가 사랑에 지독한 상처를 받은 것은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지요. 그러나 직장에서는 결혼하지 않는 것을 반겼어요. 한국 사회에선 아무래도 결혼하면 여성들이 챙겨야 할 것이 많아지기 때문이죠.” 

비혼 때문에 차별받은 경험이 있나요?

“무시당하는 경향이 확실히 있었어요. 나이 든 여자 혼자라고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았죠.”

“결혼하면 외롭지 않은가요?”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으면 늙어서 외롭다’고 말하는데…. 

“결혼하면 외롭지 않은가요? 결혼해도 사람은 외로움을 느낍니다. 혼자 살아도 외로움을 느낄 것입니다. 그런 말은 가정을 이루는 게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말이라서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로 흘려들어요.” 

비혼을 후회한 적이 있나요?
“없어요. 안 그래도 어제 혼자 사는 친구와 즐겁게 영화 보고 밥 먹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는 부양하고 책임져야 할 가족이 없어서 참 편한 거라고. 내가 하고 싶은 거하고 먹고 싶은 거 먹고 즐겁다고.” 

비혼주의자가 유념할 팁이라면?
“꼭 직장을 가지세요. 그리고 건강을 잘 돌보세요. 혼자 살면 결국 이 두 가지입니다. 직장이 없어서는 안 되죠. 혼자 살면서 돈이 없으면 애로 사항이 많아요. 내 벌이는 내가 책임져야 하죠. 내 몸에 좋은 음식 먹고 꾸준히 운동하는 것도 필수예요. 이 두 가지를 정말 강조하고 싶어요.” 

김 작가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자신의 인생을 ‘외로운 낙원’이라고 표현했다. 

지금 젊은이들은 사상 최악의 취업난에다 치솟는 주거비용과 양육비용, 개인의 삶을 구속하는 기성 결혼 문화에 치여 미혼을 넘어 비혼을 택하려 한다. 그러나 비혼이 젊은이들의 트렌드가 된다면, 가뜩이나 세계 최저 수준인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더 떨어질 것이다. 비혼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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