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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줄은 대부업 檢·警·재벌 커넥션 탄탄”

요즘 강남 조폭들

  • 남훈희 | 자유기고가(고려대 영어영문학과) brentnam11@gmail.com

“밥줄은 대부업 檢·警·재벌 커넥션 탄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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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 야, 너 그게 무슨 뜻인 줄 알아? 하늘 건(乾), 이를 달(達). 하늘에 통달했다는 뜻이야. ‘간다르바(乾達婆)’라고 세상의 좋은 향기만 맡고 하늘을 떠다닌다는 신의 이름이기도 해. 그런데 하는 짓마다 썩은 내 풍기는 니들이 무슨 건달은 건달이야. 깡패새끼들이지.”

1997년 개봉 영화 ‘넘버3’에서 주인공 서태주(한석규 분)가 자신을 시종 ‘깡패’라고 부르는 마동팔 검사(최민식 분)에게 “건달이라고 불러주쇼”라며 대들자 마 검사는 이렇게 한방을 먹인다.

우리말에서 폭력을 생업으로 삼는 이를 지칭하는 단어는 다양하다. 주먹, 건달, 깡패, 조폭, 왈짜, 왈패, 어깨, 무뢰배, 불량배, 폭력배, 불한당, 깍두기, 양아치…. 자유당 시절 이정재의 ‘동대문사단’ 핵심 참모 유지광은 자서전 ‘대명(大命)’에서 깡패, 건달, 협객 등의 표현을 나열한 뒤 각각의 어원과 의미를 풀어 설명했다.

가령 ‘깡패’는 영어로 폭력단을 뜻하는 ‘갱(gang)’에 무리를 뜻하는 ‘패(牌)’가 결합해 파생된 ‘갱패’가 깽패를 거쳐  깡패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는 깡패를 ‘경제적 이득을 목적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김두한, 이성순(시라소니), 이화룡 등 당대 주먹들이 깡패라는 말에 모욕감을 느낀 것은 “돈을 노려 주먹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요즘 주먹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들은 어떻게 진화해 무엇으로 먹고사는 걸까.





권투 트레이너 조폭

필자는 대학생이다. 태생적으로 겁이라곤 요만큼도 없는, 문자 그대로 열혈남아다운 기질 탓에, 공부만 해온 대다수 동기들과는 매우 다른 궤적의 지난날을 보냈다. 초·중·고 시절을 통틀어, 공부를 잘해 교장, 교감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교무실에 간 횟수와 싸움을 잘해 담임, 특히 학생주임 선생님의 ‘호출’로 교무실에 끌려간 횟수가 얼추 비슷하다.

거액이 든 지갑의 주인을 찾아줬고, 고등학교 1학년 땐 동네 아파트 단지에서 젊은 여자를 성폭행하려던 치한의 얼굴에 주먹을 연타로 내리꽂은 공로를 경찰의 ‘선행 표창장’으로 인정받은 전력도 있다. 늦은 밤 길거리에서 시비가 붙어 (‘선행 표창장’을 받은) 파출소에서 자정 넘게까지 진술서를 작성하느라 애를 먹은 기억도 있다.

각설하고, 필자가 다니는 권투체육관의 트레이너 A씨는 무명의 프로복서다. 나이가 다섯 살 많아 형이라 부른다. 권투로 인연을 맺은 후 친분을 쌓았는데, 어느 날 그가 단둘만 있는 자리에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털어놨다. 암담한 한국 프로복싱계 현실에서 권투만으론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오래 전부터 ‘조직’ 생활을 병행한다는 것, 그가 몸담은 조직은 소위 ‘전국구’로, 서울에서도 노른자위인 강남이 ‘나와바리(구역)’라는 것이다.    

평소 대한민국 사회의 음지(陰地)에 관심이 많던 필자에겐 요즘 주먹계의 판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들의 주수입원은 무엇인지, 주먹과 공권력 간 유착관계의 진실은 어떤 것인지…온갖 궁금증이 몰려들었다. 그래서 A씨에게 달라붙어 그가 ‘형님’으로 모시는 중간보스 등 동료 조직원들과 만나는 자리에 끼워달라고 졸라댔다.


건달과 깡패 사이

한 달쯤 뒤 서울시내 요정에서 두 번의 헛수고 끝에 A씨가 속한 조직의 중간보스 B씨, 핵심 조직원 2명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은 만나기 전 2가지를 당부했다. 사진 촬영에 응하지 않겠다, 자신들의 표현을 가감 없이 전해달라.

인상 깊었던 건 B씨의 인상. 주먹계의 실력자로, 체격은 필자의 맨발 신장 179cm와 엇비슷했지만 악수를 나눌 때의 완력은 대단했다. 날렵한 턱선에 강한 눈매를 지닌 인상은 인터넷의 ‘연예인 싸움 순위’ 검색 결과에 늘 언급되는 모 연예인과 일란성 쌍둥이처럼 흡사했다. 그는 나이를 밝히지 않았다. B씨는 착석 후 “나와 만나고 싶어 한 이유를 딱 하나만 대보라”며 고급 양주를 따라줬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또박또박 대답했다.

“저는 현실주의자입니다. 가식을 싫어하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이들을 매우 미련하게 여기지요. 지상세계에서 다뤄지는 이야기는 어지간해선 믿지 않습니다. 누구나 일견 받아들이기엔 ‘불편한 진실’일지언정 지하세계에서 이뤄지는 우리 사회의 진실을 알고 싶기에 뵙자고 했습니다.”

B씨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렇게 필자와 B씨, 나머지 핵심 조직원 2명과 3시간에 걸친 만남이 시작됐다. 먼저 B씨의 정체성이 궁금했다. 강남 요지를 나와바리로 둔 OO파 중간보스로서 두목, 부두목, 고문 다음 서열이라는 그는 자신을 당연하게 건달로 여겼다. 깡패나 조폭은 모욕적 표현, 양아치는 경멸적 표현이라고 했다.

“진정한 건달에겐 의협심이 있다. 의협심 없이 오로지 돈을 목적으로 무의미하게 폭력을 남발하는 이가 깡패이고, 그런 깡패들이 집단을 이룬 게 조폭이다.”

그렇다면 양아치는? B씨 옆에 앉아 있던 조직원 C씨는 “양아치란 가진 게 없는 이들을 등쳐먹고 기생하는 수준 이하의 쓰레기”라고 정의했다.



최고 덕목은 배짱

다음으로 궁금했던 건 싸움 기술. 현역 주먹들은 1대 1 맞짱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뭐라고 생각할까. 필자의 경험으론 주먹 자체보다는 배짱과 ‘깡다구’다. 그들의 답은 이러했다.

“당연히 선빵(선제공격)이지. 1대 1 맞짱 싸움에서 선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생존한 대한민국 주먹 최고 실세는 명동을 거점으로 전국을 장악한 신상사파 신상현 씨다. 1932년생인 신씨는 1950년대 명동에서 가장 강한 조직을 이끌었고, 1960년대 초부터 1980년대 말까지 전국구 보스 ‘신상사’로 군림했다. 그 역시 2013년 발간한 저서 ‘주먹으로 꽃을 꺾으랴’에서 1대 1 맞짱 철학을 이렇게 설명했다.

“1대 1 맞짱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선빵’이다. 체구가 아무리 커도 주먹으로 턱을 한 번 정확하게 맞으면 단번에 쓰러진다. 제대로 된 선빵은 상대의 전의를 완전히 상실시키는 데도 효과적이다. 선빵의 충격을 이겨내고 상대를 꺾으려면 상대보다 몇 배 뛰어난 싸움 실력을 보유해야 하는 데다, 건달들의 체력이나 싸움 실력은 사실 대동소이하기에 선빵이야말로 승패를 좌우하는 절대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옳은 얘기다. 필자도 다양한 싸움을 경험하고 목격했지만 1대 1 맞짱 싸움에선 선빵만한 무기가 없다고 단언한다. 다수를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실전에선 상대가 10명이든 20명이든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 단신(單身)으로라도 우두머리급 두세 명만 눕히면 그걸로 끝이다. 보스가 꺾이면 부하들은 오합지졸이 된다.

건달에게도 최상의 전략이란 게 있을까. B씨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강한 담력이라고 했다. 1대 1 맞짱 싸움 제의도 먼저 하고, 상대방이 나이가 많든, 직위가 높든, 체격이 크든 개의치 않고 들이댈 수 있는 배짱이야말로 진정한 건달이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이라 했다.

본론으로 접근했다. 바로 생존의 문제. 지금 주먹들은 뭘 해서 먹고살까. B씨에 따르면, 요즘 주먹들의 주수입원은 단연 대부업(사채). 그들이 움직이는 지하자금은 천문학적 규모로, 사채 이자수익에 비하면 유흥업소 이권은 별게 아니라고 했다. 특히 국내에서 대부업이 양성화한 2002년 이후 대부업이 발달한 일본에서 ‘소비자금융’이란 이름으로 다양한 대부업체가 한국으로 진출했는데, 월등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높여왔다고 한다. B씨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 대부업에 일본계 회사가 많이 진출한 건 사채 금리가 일본과 비교가 안 되게 높아서다. 일본은 법정 사채이율이 연 15~20% 수준이지만, 한국은 2014년 초까지만 해도 법적으로 보장된 사채이율이 39%였다. 땅 짚고 헤엄치는 격이었다. 대부업이 양성화한 지금은 모두 정식으로 사업자등록을 마치고 영업하기에 더욱 거리낄 게 없다.”  


“마른 걸레에도 물이…”

대부업의 주고객은 누구일까. 돈 때문에 막다른 골목에 몰린 서민층일까. 이에 대해선 OO파가 운영하는 대부업체 사무실에서 실장 직함을 맡고 있는 조직원 C씨가 답했다.

“서민이 이용하는 대부업은 길거리에 명함 뿌려대는 일수 업체가 대다수이고, 주먹계 대부업을 찾는 이들은 ‘사’자 돌림의 전문직종이나 잘 알려진 연예인들이다. 특히 과거에 각종 사건, 사고를 일으켜 방송 출연은 물론 연예활동도 안 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고객이라고 보면 된다.”

C씨는 필자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인생 조언’이라며 말을 이었다.

“그들이 돈을 빌리는 목적은 대개 사업과 도박이다. 각각 절반쯤 된다. 명심할 것은, 사채를 쓰면 무조건 망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알기로 지금까지 우리(주먹계 대부업)하고 거래해서 사업에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히 사채 끌어다 도박하는 건 몇 대에 걸친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족보 하나가 그냥 궤멸되는 거지(웃음).”

돈을 빌린 후 갚지 못하는 이들에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까. B씨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검사들이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신조를 갖고 있다면, 우리는 ‘마른 걸레도 쥐어짜면 물이 나온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 사람을 쥐어짜는 데도 노하우가 있다. 채무자의 집이나 직장으로 찾아가는 건 양반 축에 든다. 정말 안 되겠다 싶으면 인근 야산으로 끌고 가 아무 말 없이 흙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안 갚고 배기겠나.”

가만, 아까는 건달과 깡패, 조폭을 가르는 기준이 의협심이라 하지 않았나. 돈을 목적으로 폭력을 남발하는 이는 건달의 자격이 없다고 해놓고. 그런 의문에는 C씨가 답해줬다.  

“우리는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등 쳐먹는 게 아니다. 돈 빌리고 제때 안 갚는 이들에게 갚으라고 정당하게 요구할 뿐이다. 재삼 강조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전문직종에 종사하거나 돈 잘 버는 유명 연예인들이다. 충분히 갚을 능력이 있는데도 안 갚는 이가 너무 많다. 그러니 산으로 끌고 갈 수밖에.”

지금도 조직 간 ‘전쟁’이 벌어질까. C씨의 말에 따르면 예전만큼은 아니란다. 나눠 먹을 파이가 커진 만큼 웬만하면 타협해서 피 보는 일을 피한다고. 하지만 주먹은 주먹이기에 전쟁은 왕왕 터진다. 전쟁엔 ‘연장’도 동원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주먹들이 사시미칼(회칼)을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B씨가 말했다.

“사시미칼은 용도가 조리용으로 등록돼 도검법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일본도 같은 여타 칼들은 소유에 따른 도검 소지 허가 절차가 필요한데, 사시미칼은 안 그렇다. 회를 뜨는 데 쓰는 칼이라 날이 예리하다는 장점도 있고.”  

사시미칼을 쓸 때 선호하는 부위는 발목 아킬레스건이다. 일반인은 흔히 상대방의 배를 찌를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눈에 잘 띄고 생명까지 위협하는 복부, 흉부에 대한 공격은 무조건 피한다. C씨의 설명이다.

“죽으면 말할 것도 없고, 죽진 않더라도 복부나 흉부를 공격하면 죄가 무거워 학교(교도소)에서 기본 20바퀴(징역 20년)는 돌아야 한다. 주먹에게 징역살이만큼 지긋지긋한 건 없다. 그러나 아킬레스건은 눈에 잘 띄지 않으면서 생명에도 별 지장을 주지 않는다. 지금까지 내 경험상 특별한 법률적 후폭풍은 없었다. 조직 간 전쟁의 목적은 상대를 죽이는 게 아니라 불구로 만들어 주먹 세계에서 퇴장시키는 데 있다.”

주먹들은 여전히 공권력과도 연결고리가 있을까. B씨는 자신들이 전국구로 인정받는 이유는 규모와 역사, 단결력 면에서 상대가 될 만한 조직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공권력과의 커넥션에서도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수준으로 고위층에.접대와 상납을 수없이 한다고 했다.

“검찰, 경찰은 물론 재벌과도 커넥션이 있다. 그래서 누구 하나 죽어나가는 일이 생긴다면 모를까, 어지간한 일로는 우리를 쉽게 잡아넣지 못한다. 접대, 상납 사실을 죄다 불면 자기들도 끝장인데 뭘.”



정치권과는 거리 두기

C씨는 요즘 주먹들은 정치권과는 일부러 거리를 둔다고 밝혔다. 과거 동대문사단의 이정재부터 정치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커온 주먹은 말로가 비참하다는 것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라며, 이는 그간 주먹 역사에 축적돼온 일종의 학습효과라고 전했다.  

B씨에게 건달로 살아온 삶에 만족하는지 물었다. 그는 웃으며 답했다.

“세파에 떠밀려 여기까지 왔지만 후회는 없다. 후회하면 뭐 하겠어. 다만 이 세계를 동경하는 청소년이 없길 바라지. 하긴, 내가 그렇게 희망한다고 주먹 될 놈이 안 될 일은 없겠지만. 다만 남군(필자)은 기질이 시원시원하고 똑 부러진 게, 우리 조직의 브레인으로 영입하고픈 마음이 생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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