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이후 지난해 10월 이전까지만 해도 펀드 투자자들에겐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코스피 지수가 600대에서 시동을 걸기 시작해 지난해 7월에는 대망의 2000을 돌파했다. 7월 한 달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 담보대출)라는 암초를 만나 지수가 20% 이상 하락했지만 다시 반등에 성공해 2007년 8월 국내 증권시장 사상 최고치인 2064.8을 기록했다. 2003년부터 2007년 10월 사이에 투자한 이들은 시장의 전반적 상승기에 몸을 실었기에 대부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제법 괜찮은 수익률을 낼 수 있었다.
여기에 중국과 인도가 세계 경제의 전면에 떠오르면서 중국과 인도 펀드도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바야흐로 국내 투자자들이 펀드를 통해 글로벌 투자에 나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이후 상황이 급반전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미국 금융위기가 급속히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세계 증시는 6개월이 넘게 하락세를 거듭했다. 펀드 수익률도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특히 중국 펀드는 다른 펀드들에 비해 더 큰 하락폭을 기록해 많게는 30% 이상 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들도 있다.
사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시장이 좋을 때는 투자 원칙이나 방법 혹은 시기와 상관없이 수익의 크기만 다를 뿐 대부분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다. 하지만 낙관론을 펼칠 수도, 반대로 비관론에 빠지기도 모호한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원칙이고 기본이다. 워런 버핏의 스승이자 가치투자의 창시자인 벤저민 그레이엄은 “원칙에 시효가 있다면 그것은 원칙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투자의 시계(視界)가 짙은 안개에 가려져 있을수록 우리는 펀드 투자의 원칙을 다시금 생각해보고 자신의 원칙을 정립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관건은 투자기간과 자산배분
투자의 성과를 결정짓는 3대 요소는 종목선택, 시장 타이밍, 자산배분이다. 직접투자자이든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자이든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앞의 두 가지다. 가능한 한 바닥에 사서 꼭대기에 팔고 싶은 게 투자자의 욕망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시장 전망에 목을 맨다. 종목 선택도 마찬가지다. 직접투자자들은 고수익을 내줄 종목 발굴에 열을 올리고, 펀드 투자자들은 매년 최고의 수익률을 내줄 펀드를 찾아다닌다. 하지만 실증적 연구 결과는 장기 투자 성과를 결정하는 것이 종목 선택이나 시장 타이밍이 아님을 보여준다.
자산배분이론의 선구자 중 한 명인 개리 브린슨 등이 1974~83년의 연금 플랜을 분석한 결과, 자산배분이 투자성과의 91.5%를 결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종목선택과 시장예측은 각각 4.6%, 1.8%의 영향밖에 미치지 못했다. 이 연구는 각 연금 플랜의 분기별 총 수익률을 자산배분 정책, 시장예측, 종목선택으로 나눠 파악한 것이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종목선택과 시장예측은 투자성과에 5%도 못 미치는 영향력을 행사했을 뿐이다. 이 연구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전개됐는데, 동일한 결과를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