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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경제보고서 | LG경제연구원

작은 디테일, 큰 고객감동

‘스펙 평준화 시대’ 기업의 승부수

  • 유미연 |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myyou@lgeri.com 김영혁 | LG경제연구원 연구원 kimyounghuk@lgeri.com

작은 디테일, 큰 고객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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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불편을 해소하다

도요타 프리우스 S모델의 선루프에는 솔라패널이 있다. 여름철 야외 주차로 실내가 뜨거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주차 중 솔라패널에서 생산된 전기로 공조장치를 작동해서 실내를 환기한다.

여름철 차내 온도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그늘에 주차하거나 차창에 신문지나 종이 박스를 가려두는 게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당연히 운전자의 몫으로 여겨졌다. 이미 익숙해진 불편함, 심지어 그 해결 방법도 알고 있을 고객들을 위해 솔라패널과 간단한 송풍 모터로 실내 온도의 상승을 막은 것이다. 여름철 외부에 세워둔 자동차의 실내 온도는 80℃까지 올라가는데 솔라패널로 이를 45℃까지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에어컨을 덜 켜게 되니 에너지 소비도 줄일 수 있다.

계량컵의 숫자를 확인할 때 사용자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거나 자세를 낮춰야 한다. 컵의 옆면에 숫자가 쓰여 있기에 손으로 들어올리지 말고 편평한 곳에 컵을 놓은 뒤 눈금과 같은 높이에서 측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고 잠깐의 수고인데도 미국 주방용품 브랜드 옥소는 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컵의 앞면을 비스듬히 만들고 여기에 숫자를 써서 고개를 기울이지 않고도 쉽게 계량할 수 있는 컵을 만들었다.

사용자도 미처 인지하지 못한 문제점을 발견해내는 게 제품 개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 옥소는 시중의 제품들을 테스트할 때도 그냥 테스트가 아니라, 사무 공간에 주방을 만들고 직원들로 하여금 취미생활을 즐기듯 직접 요리를 할 수 있게 해놓고는 개발 아이디어를 발굴한다. 옥소는 1990년 창업 이후 매출이 연평균 27%씩 증가하고 있으며, 미국 내 시장점유율 1위, 전 세계 55개국으로 판매되고 있다.



미쓰비시 연필에서 출시한 구루토가 샤프는 ‘빙글빙글(구루쿠루, くるくる) 돌아서 뾰족해진다(도가루, 尖る)’는 뜻을 지녔다. 일반 샤프와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가장 큰 특징은 회전하는 하단부다. 글씨를 쓰느라 힘을 주면 톱니바퀴에 의해 하단부가 회전하면서 샤프심도 같이 회전해, 심이 한쪽만 닳는 현상이 없어져 굵기가 일정해진다. 샤프를 쓰면서 가끔씩 돌려줘야 하는 불편함이 사라지는 것이다.

샤프와 같은 필기구는 대개 기능과 품질 면에서 최상의 수준에 도달해 있으므로 외장이나 디자인 차별화로 명맥이 유지된다. 그런데 미쓰비시 연필은 ‘필기’라는 궁극적 기능으로 돌아갔고, 샤프로 글씨를 쓸 때 획이 점점 굵어지거나 중간에 심이 부서지면서 가루가 날리는 ‘편마모 현상’에 주목해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한 획을 쓸 때 9˚씩, 40획을 쓸 때 샤프심이 한 바퀴 회전하는 톱니바퀴, 일명 ‘구루토가 엔진’이 샤프심을 뾰족하게 유지시킨다. 샤프 하단에는 일부러 톱니바퀴가 보이도록 겉표면을 투명하게 처리해 심 회전 기능을 부각시켰고, 글씨를 쓰는 동안 실제로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소소한 재미를 더했다. 구루토가 샤프는 2008년 3월 출시 이후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으며, 다양한 후속작 역시 일본을 넘어 한국 학생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착한 고민’ 하도록 권한 부여

작은 디테일, 큰 고객감동

샤프심이 한쪽만 닳는 불편을 해소한 구루토가 샤프.

비즈니스에서 디테일은 단순히 미담에 그치지 않고 실제 고객 가치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고객의 관심과 욕구를 진정으로 파악하려는 관찰력과 집요한 실행이 필요하다. 그런 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요소들을 경영 환경 및 고객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살펴보자.

아마존에 인수된 의류 전문 인터넷 쇼핑몰 자포스(Zappos)는 고객 서비스가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고객이 입원 중인 어머니를 위해 자포스에서 신발을 샀는데 어머니가 한번 신어보지도 못하고 사망했다는 사실을 ‘해피콜’을 통해 알게 됐다. 규정상 구매 후 15일이 지난 상품에 대해서는 반품 및 환불을 해줄 수 없지만, 자포스는 기꺼이 신발 값을 환불해줬을 뿐 아니라 장례식에 근조화환과 카드도 보냈다.

자포스에는 콜센터나 고객센터라는 명칭 대신 콘택트센터(Contact Center)라 부르는 부서가 있다. 이곳은 전화뿐 아니라 메일, 라이브 채팅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고객과 접촉한다. 그런데 자포스의 콘택트센터에는 매뉴얼이 없다. 고객의 이런 요청에는 이렇게 답하라는 지침도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고객의 주문이나 문의에 어떻게 답하고, 어떻게 대응할지는 전화를 받는 직원이 각자의 판단에 따라 하면 된다.

고객에게 근조화환과 카드를 보낸 사례도 직원이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것인데, 이는 자포스의 ‘권한 위임 정책’ 덕분에 가능했다. 콜센터 처지에서 당연히 처리해줘야 할 일에만 그치지 않고 ‘만약 내가 고객이라면 어떤 응대를 받아야 행복하게 전화를 끊을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한다. 그 고민이 고객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챙기는 디테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 결과 사람과 상황에 따라 서비스의 내용이 달라지고 고객에게 잊기 어려운 감동을 제공하게 된다.

자를 들고 다니는 CEO가 있다. 직사각형 플라스틱 측정자 5개를 오각형으로 붙여놓아 마치 불가사리 같다. 각각의 측정자에는 1.0mm부터 3.0mm까지 0.5mm 단위로 측정자 두께가 표시되어 있다. 숫자와 단위에서부터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고집이 엿보인다. 이 도구의 주인은 아우디의 루퍼트 슈타들러 회장이다. 불가사리 모양의 측정자는 자동차의 조립 공차(오차)를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어 ‘퀄리티 스타(Quality Star)’라고 불린다.

자동차 외형은 보닛, 사이드패널, 도어, 트렁크 등을 보디(Body)와 연결해 만든다. 각각의 부품 사이에는 일정한 간격을 둬야 여닫을 때 간섭이 생기지 않고, 여름과 겨울을 거치면서 기온 차이로 생기는 팽창·수축 때도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 간격이 넓거나 일정하지 않으면 자동차 외관과 기능에 미세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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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연 |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myyou@lgeri.com 김영혁 | LG경제연구원 연구원 kimyounghuk@lge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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