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북한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유는 또 있다. 북한이 이른바 ‘중국계 간첩’ 잡기에 열을 올려서다. 올해 들어 김정은 정권은 체제 유지를 위해 나라 안팎에서 ‘간첩 색출’에 혈안이 됐다.
3월 26일 북한 매체들은 “정탐과 모략 행위를 목적으로 침입한 남조선 간첩 2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체포한 이들은 1954년생 김국기 씨와 1959년생 최춘길 씨다. 북한은 김씨와 최씨가 중국에서 국가정보원에 매수돼 북한 정보를 수집하거나 체제를 비방하는 활동을 펼쳤다고 주장했다.
북한 매체들은 중국에서 이들이 간첩활동을 한 증거라며 동영상을 공개했다. 중국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에게도 이와 관련한 정신교육이 실시됐다. 북한 인력 관리자들은 근로자를 전원 소집해 관련 북한 방송을 반복해 보여주며 이들의 행위를 비판하라고 지시했다. 국가안전보위부는 김씨와 최씨가 “조선족과 화교, 북한 보따리상과 접촉해 정보를 수집했다”면서 “몇 푼의 돈 때문에 간첩질을 하는 외국 국적자에게도 준엄한 심판을 내릴 예정”이라고 경고했다.
북한 보위부는 실제로 ‘중국계 간첩’ 색출에 나섰다. 중국의 대북소식통은 필자에게 “평양이 3월, 4월 두 달 동안 화교와 조선족 등 중국인 20명가량을 간첩혐의로 체포하면서 북중 접경지역이 발칵 뒤집혔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에 체포된 이들 중 한국 언론사의 요구에 따라 대가를 받고 정보를 수집한 사례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북-중 접경 지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한 대북소식통은 최근 “단둥에서 일하던 조교(朝僑·북한에서 태어난 중국 화교)가 간첩혐의로 체포됐다”고 전해왔다. 이 조교는 한국 언론사와 하루 180위안, 한화 약 3만2000원에 계약을 맺고 북한 정보를 수집해왔다고 한다. 가치가 있는 사진을 확보하면 5000위안(약 90만 원) 또는 1만 위안(약 180만 원)까지 받는 조건이다.
5월에는 투먼의 경제개발구에서 북한 동향을 수집하던 조선족 중국인 2명이 붙잡혔다. 이들은 북한 근로자가 일하는 공장에 바이어로 위장해 잠입한 뒤 근로 여건 등을 탐문하고 관련 사진을 몰래 촬영하다 중국 공안에 적발됐다. 이들 역시 한국 언론사로부터 대가를 받고 일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린성 정부 관계자가 직접 투먼에 와 “앞으로 접경지역에서의 불법 취재는 결코 용납하지 않고 모두 체포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북한 근로자를 고용한 중국 업체들도 비상이 걸렸다. 자신들이 고용한 직원이 간첩혐의로 잡혀 가니 힘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중국 업체들은 궁여지책으로 대처 방안을 내놓았다. 북한을 드나드는 이들이 휴대전화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정보 취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5월 중순 외교부는 북-중 접경지역에서 각별히 안전에 유의할 것을 당부했다. 해외안전여행 홈페이지를 통해 “동북3성의 북중 접경지역을 방문하는 여행객이나 재외국민은 안전 우려 상황을 감안해 신원 불명자와의 접촉을 자제해달라”며 “개인의 신변 안전에 더욱 유의하라”고 요청했다.
이처럼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5월 31일 투먼의 북한 공업단지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남성 2명이 북한 여성 근로자들을 촬영하다가 집단구타를 당해 구급차에 실려 후송된 것. 구타당한 남성들은 기자라면서 신분증을 제시했는데 미국과 싱가포르 언론사 소속이었다고 한다. 북한은 4월 중순 해외 파견 북한 근로자들에게 외국 기자 등이 사진 촬영에 나설 경우 폭력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노동자가 외신기자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한 투먼 공장의 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