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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와 맺은 불륜」에 대한 성찰

「기계와 맺은 불륜」에 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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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와 맺은 불륜」에 대한 성찰
인간과거의 같게 만들어진 안드로이드를 제거하는 임무를 맡은 대원이 결국은 안드로이드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그들의 사랑의 도주는 매우 낭만적이다.

인공 지능에 감성까지 지닌 소년 로봇이 어느 가정에 입양된다. 로봇은 그 가정의 친아들을 질투하게 되고 어머니의 사랑을 얻으려 경쟁한다. 이때 모성애는 둘 사이에서 방황한다.

좀 그로테스크하지만 유비쿼터스 망이 최첨단에 이른 21세기의 어느 시대, 집안의 유비쿼터스 시스템을 총괄하는 중앙 컴퓨터가 부부의 침실을 훔쳐본다. 그러고는 자신도 사랑을 해서 후세를 번식하겠다는 욕망에 집주인 아내와 불륜의 관계를 계획한다.

이러한 공상은 이미 수십 년 전 공상과학소설(SF)이 제시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믿지 않지만 제법 즐긴다. 이런 거리감 있는 즐김이 가능한 것은 그런 공상을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로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아주 먼 미래의 얘기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기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왔다. 그것이 여타 생물과 다른 인간 진화의 특성이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생물학적 진화만 하는 게 아니라, 문명을 창조하면서 자신이 만든 피조물인 도구 및 기계와 공진화(Co-evolution)한다.



공진화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역사학자 브루스 매즐리시는 인간이 기계를 창조함으로써 그것을 자신의 보철적 확장에 사용한다는 것을 관찰했다. 예를 들어 인간은 망원경을 이용함으로써 독수리의 눈을 얻었고 증기기관이나 내연기관을 발명함으로써 말이나 코끼리의 힘을 얻었다. 인간은 천체망원경과 분자현미경을 발명해 신(神)의 눈을 가지려 하며, 초음속 비행기와 우주왕복선을 개발함으로써 신의 보폭으로 여행하려 한다.

우주로 확장하는 인간 진화의 역사에서 일상으로 돌아와 보자. 흔히 지나치지만, 인간이 자신의 피조물인 기계와 공진화한다는 사실은 매우 일상적인 것이다. 현대인은 차를 타고 다니면서 웬만해선 멀미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차를 타면 멀미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어릴 적 내 모친은 ‘탈것’ 안에서 멀미를 느끼는 편이어서 시내버스보다는 전차를, 시외버스보다는 기차를 선호했다. 오늘날 노인들은 교통수단 안에서 별로 멀미를 느끼지 않는다. 현대인은 탈것과 함께 공진화한 것이다.

산업사회 때의 공진화 현상은 그래도 단순한 편이었다. 20세기 후반 이른바 후기산업사회가 시작되면서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는 다양한 차원에서 눈에 띄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일상화된 공진화를 가속화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기계의 개인화(personalization) 현상이다. 사람들은 산업사회 때 기계를 공동으로 사용하던 것과 달리, 각자의 기계를 갖게 되었고 그것을 휴대할 수 있게 됐다. 대표적인 것이 퍼스널 컴퓨터(PC)와 휴대전화다. 개인과 기계의 삶은 더욱 밀착하면서 새로운 진화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공진화라고 하면 신체의 진화만 생각하기 쉽다. 휴대전화의 사용이 청각 기관의 기능적 진화에 영향을 끼친다든지, 요즘 젊은이들처럼 휴대전화를 활용하는 데 양손 엄지를 많이 쓰면 손가락의 형태가 달라질 것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인간 심성과 의식도 기계와 붙어 살면서 진화한다. 더구나 PC와 휴대전화는 ‘미디어’ 역할을 하는 퍼스널한 기계라서 심성과 의식의 진화에 더욱 영향을 끼친다.

헌데 미디어가 뭐기에 또다시 강조하는가. 미디어는 이미 진부할 정도로 수십 년 전부터 시대의 화두가 아니던가. 마셜 맥루한은 일찍이 20세기 중반 인간 삶에 대한 미디어의 총체적 영향을 간파하면서 인간 문명과 개인의 일상생활에서 미디어가 침투하지 않은 처녀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디지털 문명과 함께 ‘미디어의 힘’이 더욱 증가하고 있어 그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미디어(media) 또는 매체가 갖는 힘의 본질은 매개하는(mediate) 데에 있다. 다시 말해 모든 즉각적(im-mediate) 관계를 매개하여 비즉각적인 상태로 만드는 데에 있다. 인간관계에 미디어가 침투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뜻이다. 침투의 결과 인간관계는 미디어를 사이에 두고 즉각성에서 비즉각성으로 전환하지만, 인간과 미디어는 즉각적으로 밀착한다.

매체는 매개하지만 매체 스스로는 인간과 비매개적(즉각적) 관계를 형성한다는 역설, 이것이 미디어의 이중성이며 미디어의 힘이다. 그러므로 인간-미디어-인간의 삼각관계에서 인간은 이런 관계의 현실을 쉽게 감지하지 못하며 미디어는 ‘외도(外道)의 삼각관계’를 마치 더 친근한 상호 관계처럼 정당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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