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과 기계가 결합하면서 인류는 새로운 진화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생각의 속도대로 움직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차이를 좁히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블록버스터 SF 영화들이다. ‘터미네이터’ ‘쥐라기 공원’ ‘매트릭스’ 같은 영화는 일반 대중의 기대 수준을 한껏 높여놓았다. 반면에 실제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은 오히려 신중한 목소리를 냈다. 아직 그런 미래가 오려면 멀었고, 연구를 진척시키기가 쉽지 않다고 찬물을 끼얹곤 했다.
하지만 기대 수준과 찬반 논의를 떠나 사이보그, 로봇, 복제인간 등이 미래 사회의 구성원이 될 것이라는 데는 거의 견해가 일치한다(핵전쟁이나 환경재앙으로 문명이 퇴보한다는 예측을 제외한다면). 미국 카네기멜론 대학의 한스 모라벡은 아예 로봇이 인간의 후손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간의 뇌에 담긴 정보를 다 컴퓨터로 내려받아 금속으로 된 몸에 넣어 본래의 의식을 고스란히 지닌 채 살아갈 것이라고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 기동대’는 그런 미래상을 인상적으로 보여줬다.
그런 생각은 몸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지, 의식이란 무엇인지, 어디까지를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하는 다양한 의문을 낳았다. 로봇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적어도 지금의 산업용이나 오락용 로봇은 그렇다. 지식의 양과 계산능력에서는 인간을 이미 초월하고 창의적인 문제해결 능력까지 보여줄 정도로 발전한 컴퓨터도 인간의 병렬처리 능력과 감정을 지니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직 인간 흉내를 낼 수 없다. 인공지능, 인공생명, 양자 컴퓨터, 신경망 회로 등 인간의 능력을 모사하거나 초월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 컴퓨터 관련 분야의 연구가 계속 이뤄지고 있지만, SF 영화를 현실로 만들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반면에 인간을 기계화하는 분야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인간과 기계의 융합체를 흔히 사이보그라고 한다. 대개 뇌를 제외한 신체 부위를 기계로 보강하거나 대체한 형태를 가리킨다. 넓게 보면 이미 인류의 상당수는 사이보그다. 심장 박동기, 의수나 의족, 임플란트 치아 등 몸에 각종 기계 장치와 보철물을 달고 있는 사람들은 일종의 사이보그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인간으로 보지, 후인간(posthuman)으로 보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우선 과학소설이나 SF 영화를 통해 완성된 형태로 접하는 후인간의 모습과 은연중에 일상생활에 배어드는 과학기술의 형태로 접하는 모습은 그 거리감이 다르다. 어느 날 한 벤처기업이 사고를 당해 만신창이가 된 사람을 수술해 뇌만 빼고 전신을 기계장치로 대체하는 데 성공했다고 하자. 그 로보캅 같은 존재는 첨단 과학기술의 결정체라고 발표될 것이고, 사람들은 대체로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즉 인간이 아닌 과학기술의 산물로 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자기 식구나 친한 친구가 몸이 서서히 썩어가는 불치병에 걸려 있고 급속히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아 신체 부위를 조금씩 기계장치로 대체한다고 하면 어떨까. 오늘은 이가 다 빠져서 인공치아를 해 넣고, 한 달 뒤에는 발가락이 못쓰게 되어 인공 발가락을 달았다가 두 달 뒤 무릎까지 의족으로 바꾸고, 며칠 뒤 심장이 멈추는 바람에 서둘러 인공심장으로 대체하는 식으로 진행되다가 결국 뇌를 제외한 몸 전체를 바꾼다면?
그렇게 서서히 진행되는 변화는 비록 완결된다 해도 당사자가 우리의 가족이나 친구, 더 나아가 온전한 인간이라는 인식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다. 로보캅 같은 육중한 금속 덩어리가 아니라 인공피부 등을 통해 본래의 모습과 흡사하게 바뀌었다면 더욱 더 그럴 것이다. 어느 날 별안간 튀어나온 첨단 과학기술의 결정체와 달리, 우리 친구는 몸이 기계로 대체됐다는 데 좀 충격을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적으로 예전과 별다르지 않은 인간으로 여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