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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 속 ‘위기의 사랑’ 2

사랑과 욕망, 그 모호한 경계의 줄타기… 승리를 자신하지 말라!

  • 강유정 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사랑과 욕망, 그 모호한 경계의 줄타기… 승리를 자신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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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욕망, 그 모호한 경계의 줄타기… 승리를 자신하지 말라!

사랑이 아닌 욕망의 게임에서 결국 모두 패자가 되고 마는 영화 ‘스캔들’의 한 장면.

결국 콘치타는 마티유의 재산과 정력을 모두 앗아간다. 마티유는 여자가 돈을 벌기 위해 옷을 벗는다고 하자 자신의 재산을 내주고, 다른 남자와 섹스를 나누는 여자에게 화를 내면서도 그녀를 떠나지 못한다. 여자는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고 나체로 춤을 추면서 돈을 벌지만 여전히 마티유에게만큼은 수상한 처녀성을 지킨다.

영화는 마티유가 “이젠 콘치타를 떠나겠다”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마지막 순간 그는 다시 콘치타를 향해 간다. 아직 그녀를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녀가 섹스를 허락하지 않는 한 이 기묘한 게임은 지속될 것이다.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권태’는 이 욕망의 게임을 우스꽝스러운 희극으로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욕망의 게임이 ‘욕망의 모호한 대상’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라는 점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그녀는 원하면 다 준다. 시도 때도 없이 준다. 아무리 모욕을 해도 준다. 가라고 하면 간다.

다 주면서도 주지 않는

그런데 무엇이 문제일까. 그녀는 모든 남자에게 준다. 모든 남자에게 몸은 허락하지만 어떤 남자에게도 귀속되지 않는다. 그러면 창녀가 아닌가. 도리도리. 창녀는 돈으로 살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그녀를 움직일 수 없다. 그녀를 움직이려 할수록 그녀 앞에 있는 자신만 엉뚱한 곳에 가 있다. 그녀는 돈을 받지 않는다. 심지어 어마어마한 규모의 유산을 다 준다고 해도 거절한다. 결혼 따위는 생각도 없다. 과연 그녀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 그녀는 ‘여자’라고 통칭되는 사람들이 원하는 보편적인 것들을 거부한다. 도대체 모르겠다. 그래서 그녀는 마치 살아 있는 물음표처럼 난해하다.



‘권태’에는 욕망을 정신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철학자가 등장한다. 그는, 손가락 크기만한 성기에 휘둘리는 인간은 정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열등한 존재라고 비아냥거린다. 그런데 세련된 철학으로 무장한 이 남자 앞에 열일곱 살 소녀가 등장한다. 가슴과 엉덩이만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소녀는 그렇게 예쁘거나 섹시하지 않다. 그녀는 백치 같은 눈빛과 색정적인 가슴을 소유하고 있다. 보티첼리의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온 듯 퉁퉁한 몸매의 소녀에게 신기한 게 있다면 노(老)화가의 연인이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노화가는 소녀와 정사(情事)를 나누다 죽었다.

궁금증에 시달리던 남자는 이 소녀 세실리아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소녀는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한다. 남자는 매주 월요일 1시에 자신의 아파트로 찾아오라고 요구한다. 세실리아는 그렇게 매주 월요일 1시에 마르땅을 찾아온다. 아파트에 들어서자마자 소녀는 옷을 벗고 침대에 뛰어든다. 그녀는 전희도 필요 없다는 듯이 마르땅의 품에 파고들어 열심히 섹스를 나눈다.

마르땅은 자신의 말에 인형처럼 움직이는 세실리아를 보며 권태를 느낀다. 바보 같은 세실리아에게 권태를 느낀 마르땅은 여자에게 수치심을 주고자 한다. 남자는 옷을 벗고 침대에 뛰어드는 그녀에게 커튼을 치라고 명령하고 커튼을 치고 되돌아온 그녀에게 또다시 전화기를 내려놓으라고 시킨다. 전화기를 내려놓자 이번에는 문을 닫고 오라고 한다.

만일 당신이라면, 섹스를 위해 상대 앞에서 옷 벗은 당신이라면 이런 명령들 앞에서 어떤 행동을 취할까. 세실리아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한다. 이런 세실리아가 마르땅에게는 너무 의아하다. 그녀는 상처조차 받지 않는다. 욕하고 비난하고 수치스러운 말들을 퍼부어도 별 반응이 없다.

영화 ‘권태’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 중 하나는 둘의 관계가 역전되는 대목이다. 상처를 주고 싶어 안달이 난 마르땅은 그녀에게 헤어지자고 말하리라 다짐한다. 그런데 그날 세실리아가 약속을 어긴다. 헤어지기로 마음먹은 마르땅은 막상 세실리아가 나타나지 않자 종일 전화기 앞에 붙어서 전전긍긍한다. 그리고 마침내 세실리아가 나타나자 마르땅은 오히려 화를 내며 다그친다. 그때 세실리아는 이제 정해진 시간에 올 수 없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한다. 갑자기 상황은 역전된다. 그녀가 상처받을 것을 대비해 준비한 선물은 그녀를 붙잡기 위한 뇌물로 바뀐다. 상처는 고스란히 마르땅에게 되돌아오고 만다.

누군가는 이런 세실리아를 보며 ‘호수 같은 여자’라고 표현했다. 나만 비추는 줄 알았더니 들여다보는 모든 사람의 얼굴을 비추는 여자, 들여다봐도 나밖에 안 보이는 여자라는 의미로 말이다. 세실리아는 원할 때마다 가질 수 있는 여자지만 결코 그만의 것이 될 수 없는 여자다. 남자는 이 기묘한 사랑의 게임 앞에서 점점 미쳐가고 바보가 되어간다. 세실리아에게는 마음도, 욕망도, 그리고 그 회로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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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 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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