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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박사의 ‘왕의 한의학’

원기 부족 탓 정신질환 귀신 쫓는 돌팔이가 병 키워

인조 말려 죽인 ‘저주病’

  • 이상곤│갑산한의원 원장·한의학 박사

원기 부족 탓 정신질환 귀신 쫓는 돌팔이가 병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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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심 아닌 ‘도덕성 과시’

원기 부족 탓 정신질환 귀신 쫓는 돌팔이가 병 키워

저주에 쓰이는 인형.

인조의 건강은 1623년 인목대비의 상(6월 28일)을 당한 이후 더욱 나빠졌다. 인조 10년 8월 3일의 실록은 이렇게 전한다.

“전하께서 상사를 당한 이래로 밤낮으로 애를 태운다. 수면과 수라에 절도를 잃어버렸다. 병이 나 시중을 든 지 3개월이 지났지만 곡읍(哭泣)을 슬프게 하고 푸성귀 밥을 물에 말아 드시니 손상된 건강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증상은 날로 악화된다. 8월 25일엔 안색이 검게 변하고 땀이 비 오듯 하면서 몸에 오한이 생겨 반신이 마비됐다. 약방에서는 상사로 인한 과로가 큰 질병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사람이 무리를 하면 큰 병이 생기고 내상을 입게 된다. 병을 일으키는 데에는 과로보다 더한 것이 없고 곡읍보다 심한 게 없다”면서 “지나친 슬픔과 과로를 피하라”고 조언한다.

도덕성 과시를 위한 인조의 이렇듯 과도한 반응은 ‘하늘이 낸 효성’ ‘신민이 감탄하면서 걱정한다’는 등의 찬사를 이끌어낸다. 하지만 실록에 실린 얘기들은 인조의 과로와 슬픔이 인목대비에 대한 존경과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만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목왕후의 상이 난 첫해, 글이 쓰인 비단 백서(帛書) 3폭을 궁중에서 발견했는데 임금을 폐하고 다시 세우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상(上)이 척속들에게 백서를 보여주고 얼마 후 친히 가져다가 불살라버렸다. 어떤 사람은 왕후가 서궁에 유폐당했을 때 직접 쓴 것이라고 말하지만, 외부 사람들은 그러한지 아닌지를 알 수 없었다.”

인조는 이 백서가 인목대비가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일찌감치 저주를 건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때부터 인조는 ‘저주병’에 들렸다. 심지어 인목대비의 측근이자 선조의 후궁이던 귀희(歸希)와 상궁 옥지가 자신을 죽이려는 저주를 걸었다는 혐의를 씌워 처형했다. 실록의 내용은 끔찍하다.

“귀희의 계집종 덕개는 ‘나인 이애단의 동생 이장풍이 흰 고양이의 머리를 주방에 놓아두었으며 이애단은 죽은 아이의 머리를 가지고 와 왕이 장보문에 문안드리러 다니는 길에 묻도록 했습니다’라고 자백했다.”

인조는 인목대비의 딸 정명공주도 자신을 저주했다고 몰아붙였다. 사건은 인조 17년인 1639년 10월 14일 원손이 거주할 예정이던 향교동 본궁에서 저주를 할 때 쓰는 물건들이 발견되면서 비롯됐다. 일단의 무녀들 외에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 중에는 정명공주의 나인과 인목대비의 궁녀가 있었다. 인조는 이 사건에 정명공주가 관련된 것으로 확신하고 공주 집 나인들을 체포해 진실을 캐내려고 했지만 최명길을 비롯한 대신들이 “선왕의 핏줄을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된다”고 막아서자 그때서야 중단했다.

‘여우에게 홀린 듯한 病’

인조의 이런 처세는 인목대비에 대한 상례(喪禮)가 진심이 아니라 도덕성 과시에 불과했으며 그가 광해를 내쫓은 사대부의 여망을 안은 유학적 인간이라기보다 저주를 믿는 범부(凡夫)에 불과했음을 보여준다.

유학은 질병을 치료함에 있어 그 원인을 저주나 그릇된 기운(邪氣)에서 찾는 행태를 배격하고 환자 본인의 마음에서 찾는다. 치료도 마음의 근본을 되돌아보는 수양론에 무게를 둔다. 예조참의 이준은 인조의 저주설에 의한 불안증에 강력한 제동을 걸며 유학적 의료 논리를 전개한다.

“왕의 병은 저주할 때 쓰는 물건인 썩은 뼈가 어떤 작용을 일으켜 생겨난 괴질이 아니라 원기가 허약해 생기는 호매(狐魅·여우에게 홀린 듯 정신 줄을 잃는 질환)나 사수(邪?·귀신이 붙은 듯 제정신을 잃고 미친 사람처럼 되는 증상)라는 질환으로 보인다.”

이준은 인조가 자신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자 ‘뱀 그림자’ 고사를 빗대어 설명한다. 진나라 주부 두선이란 자가 상관인 응림의 집에서 술대접을 받고 집에 온 후 갑자기 큰 병을 앓게 됐다. 두선은 술을 먹을 때 술잔에 어른거린 붉은 뱀의 그림자가 저주로 작용해 자신의 병이 생겼다고 확신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응림은 두선을 초대해 벽에 걸린 붉은 활을 가리키며 “술잔에 비친 붉은 뱀은 저 활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설명했고, 이후 두선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는 것.

이준은 이런 고사를 인용한 후, 유학의 조종(祖宗)인 주자의 치료론을 덧붙였다. ‘병중에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오로지 마음을 안정하고 기운을 기르는 데만 힘써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동의보감’ 사수문의 전체적인 해석도 대체로 유학자들의 논리에 부합한다.

“사람이 헛것에 들리면 슬프지 않은 일에도 슬퍼하고, 마음이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인다. 정신이 산란해 늘 술에 취한 것 같고 미친 말을 하며 놀라거나 무서워한다. 벽을 향해 슬프게 울기도 한다. 꿈에 헛것과 성교를 하고( 房事), 가위에 잘 눌린다. 추위와 더위가 매 시간 반복하며 명치끝에 꽉 찬 느낌이 들고 숨결이 가빠오며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이것은 모두 정신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실제로 헛것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니다. 원기가 극도로 허약해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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