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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위기의 자본주의를 구한 경기침체기 ‘만병통치약’

  • 김학순│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위기의 자본주의를 구한 경기침체기 ‘만병통치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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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경제학의 아버지

케인스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인 ‘사회철학’에서 자신의 이론이 지향하는 사회개혁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이자생활자의 안락사’라는 용어까지 구사해가며 금융자본을 견제했고, 사회적으로 무익하거나 낭비적인 공공사업보다는 소득재분배의 경제부양효과를 선호하는 견해를 드러냈다.

“자본주의의 이자생활자적 측면은 제가 할 일을 다 한 뒤에는 사라져버릴 하나의 과도적 단계라고 본다. 그리고 이자생활자적 측면이 사라지면 자본주의 안에 있는 그밖의 다른 많은 것이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자생활자와 기능을 상실한 투자자의 안락사는 결코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케인스가 책 제목에 ‘일반이론’이란 말을 붙인 까닭은 거시 경제시장의 원리가 일반적인 이론이고, 고전경제학파가 말하는 자율적인 시장에 의한 조화는 매우 특수한 이론이라는 것을 한층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케인스는 이론적으로 완전하고 고결한 경제학보다 현실 세상을 좀 더 잘 예측하고 활용할 수 있는 경제학을 이 책을 통해서 설명하려고 한 것이다. 그는 오만하게 보일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다. 케인스는 이 책이 발간되기 1년 전 친구 버나드 쇼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금 나는 사람들이 경제적 문제를 생각하는 방식을, 당장은 아니지만 추측건대 앞으로 10년 안에, 거의 완전히 바꿔놓을 경제 이론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고 믿네”라고 썼다. 이 예측은 적중했다.

이 책은 거시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과를 낳았다. 케인스가 ‘거시경제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은 것도 이 책 때문이다. 이 책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주도한 뉴딜정책의 이론적 기반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케인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듬해인 1946년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이 책이 정책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걸 보지 못했다. 출간된 뒤 얼마 안 있어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전시체제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뒤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케인스 이론은 30여 년간 자본주의 세계의 지배적인 경제사상으로 군림했다. 이 책으로 ‘케인스 혁명’이라는 말이 탄생했으며, ‘수정자본주의’라는 용어도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이 책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더불어 3대 경제학 바이블로 꼽힌다. 케인스가 자본주의를 구했다고 말할 정도다.

3대 경제학 바이블

케인스만큼 미국 역대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도 드물다. 토드 부크홀츠 하버드대 교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에서 리처드 닉슨에 이르는 미국의 모든 대통령이 케인스 넥타이를 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상찬한다. 이 책은 경기 침체 때마다 미국 대통령이 애용하는 ‘만병통치약’이 됐다. 불경기가 오면 정부는 연방지출을 늘리거나 세금을 인하해 경제가 회생할 때까지 일시적으로 재정적자를 냈다. 반대로 상품의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만큼 급증해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면 정부는 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올려 수요를 안정시켜 나갔다. 케인스의 처방은 다른 주요 국가에서도 채택돼 성공을 거뒀다. 덕분에 세계경제는 장기호황을 누렸다. 대공황 이후 케인스 이론에 도전하는 사람이 없었다.

1965년 마지막 날 시사주간지 ‘타임’은 커버스토리에 ‘이제 우리는 모두 케인스주의자다’라는 유명한 제목을 달았다. 1971년 보수주의자인 리처드 닉슨 대통령도 “나는 이제 경제정책에서 케인스주의자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케인스의 최대 라이벌이자 신자유주의의 기수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케인스 사후 “그는 내가 알았던 이들 가운데 유일하게 진정으로 위대한 인물이었으며, 나는 그를 존경해 마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케인스는 경제학 학위를 받은 적이 없으며, 학위라고는 수학 학사 학위가 전부였다.

1970년대 후반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나면서 케인스 이론은 통화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밀려나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30여 년이 지난 후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가 몰려오자 케인스가 갑자기 복권됐다. 시장 친화력을 강조하는 관료는 물론 시장주의자·신자유주의의 첨병이던 월가의 투자은행들조차 케인스를 읊어댔다. 이 정도면 가히 ‘롤러코스터를 탄 케인스’다. 케인스 전기를 쓴 로버트 스키델스키는 “케인스 사상은 세계가 필요로 하는 한 살아 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신동아 201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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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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