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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에세이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조상호 │나남출판 회장 겸 발행인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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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라는 이름의 상수리나무

참나무라는 나무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동요의 ‘(다람쥐가) 도토리 점심 가지고 소풍을 간다’는 그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를 총칭해서 참나무라고 한다. 나무 중에서 가장 재질이 좋은 진짜 나무(眞木)란 뜻의 ‘참’나무다.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6종이 그들이다. 참나무는 떨켜가 잘 생기지 않아 가을에 단풍이 들어 다음 해 봄까지 절반 넘게 잎이 나무에 붙어 있다. 대부분의 활엽수가 나신(裸身)인 채로 엄동설한의 장엄한 고독 속에 얼어붙는데 참나무만은 삭막한 추위 속에서도 가을의 추억을 고스란히 곱씹으며 봄의 새싹을 기다린다. 10여 년 동안 오가는 파주출판도시의 가로수 500여 그루가 모두 참나무다. 이를 기획한 이기웅 이사장의 혜안에 고맙다는 인사를 정식으로 하고 싶다. 가을이면 도토리를 더 줍겠다는 탐욕의 소인배들에게 ‘나무를 때리지 말라’는 경고문을 일일이 붙여야 하는 일도 물론 그이의 몫이다.

굴참나무는 표피에 골이 길게 깊이 팼고 두툼한 코르크로 덮여 있어 찾기가 쉽다. 강원도 산골의 굴피 집은 이 굴참나무 껍질로 지붕을 덮은 집이지, 굴피나무라는 나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계곡 주변에 많은 졸참나무는 가장 작은 잎을 가진 참나무다. 단풍이 가장 아름답고 도토리묵 중에서 가장 맛이 있다고 한다.

갈참나무는 가을 참나무로, 큰 잎이 물들면 가을의 전령사 노릇도 한다.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에서 ‘갈잎’이 갈참나무의 잎이라고 ‘우리 나무의 세계’를 쓴 박상진 박사는 말한다. 고갯마루 주변의 척박한 땅에 자라는 신갈나무는 늦봄에야 신선한 새잎이 난다. 옛날 짚신 바닥에 신갈나무 잎을 깔아 편하게 신었대서 신갈이다. 참나무 중에서 잎이 가장 큰 떡갈나무는 떡을 찔 때 잎을 같이 넣어 그 향기를 즐겼다. 겨울 내내 잎이 가장 많이 남는 나무도 떡갈나무다.

도토리 알이 가장 큰 상수리나무는 야트막한 동네 뒷산에 가장 많아 우리에게 무척 친숙한 나무다. 우리와 아주 가까이 살아 초가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의 온기로 겨울을 나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상수리나무 밭은 우리의 놀이터였다. 쭉쭉 뻗은 거목이 안겨준 녹음(綠陰)은 ‘평화로운’ 전쟁놀이에 안성맞춤이었다. 심심해지면 상수리나무에 구멍을 뚫고 숨어 있는 집게벌레를 잡아 싸움시키며 노는 일도 재미있었다. 이 집게벌레가 나중에 곤충도감을 찾아보니 딱정벌레목의 사슴벌레였지 싶다. 떫은 도토리로 허기를 채우기도 하고, 집에 돌아올 때 주머니에 가득 채워 와서 어머니의 손길을 거치면 도토리묵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하기는 16세기말 왜란에 쫓겨 의주까지 피난했던 못난 선조인 선조 왕께서 도토리묵에 맛을 들여 전쟁이 끝나고 가끔 이를 찾아서 수라상에 올렸다고 해서 ‘상수라’라고 하던 것이 ‘상수리’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조상호

1950년 전남 장흥 출생

고려대 법학과 졸업, 한양대 언론학 박사

저서 : ‘한국언론과출판저널리즘’ ‘언론의병장의꿈

現 나남출판 발행인, 지훈상 상임운영위원, 나남수목원 이사장


50여 년이 지나 그 소년은 이제 초로(初老)가 되었다. 나남수목원의 상수리 군락지 앞에 참나무처럼 서 있다. 지난가을 ‘조림의 역사’를 쓴 배상원 박사가 탄성을 지르며 찾아준 거목의 상수리 숲이다. 수목원이 넓은 만큼 수종도 많다. 몇 년 동안 이곳을 지나치면서 수세(樹勢)가 범상치 않다고 늘 생각했던 군락지다. 곱게 늙는 것은 나무뿐인가. 이 나무처럼 나이 들고 싶은 마음은 과욕인가.

순진무구하고 초롱초롱했던 소년의 눈동자는 이제 세파와 탐욕에 찌들었다. 그걸 나무에게 들킬까봐 겁이 나고 부끄러워 상수리나무 앞에서 나는 지금 눈을 질끈 감는다.

신동아 201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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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호 │나남출판 회장 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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