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호

왕의 한의학 外

  • 담당·최호열 기자

    입력2015-01-20 17: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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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왕의 한의학

    이상곤 지음, 사이언스북스, 440쪽, 1만7000원

    왕의 한의학 外
    역사를 히스토리라고 하지만 병력(病歷)도 히스토리다. 병의 진행 과정을 추적하고 원인과 결과를 유전자를 통해 내려오는 가족력에서 시작해 생활 습관과 생리학적, 면역학적 관계까지 두루 살피며 한 사람의 건강을 총체적으로 분석한다는 지점에서 의사와 역사가는 만나게 된다.

    매일매일 수많은 환자를 만나 그들이 호소하는 고통을 듣고, 그들을 진찰하며 처방하지만, 질병의 근원은 그들이 아프다고 하는 곳에 있지 않은 경우가 왕왕 있고, 진단과 처방도 환자가 기대했던 것과 달라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의사는 환자와 환자를 둘러싼 현재의 상황뿐 아니라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예단 없이 살피며 가족력과 생활 습관은 물론 부부 관계, 자식 문제, 직장 생활 고민 등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를 확인해가면서 질병의 원인에 접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감과 대화가 필수다.



    조선 왕들은 당대에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초월적 존재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체제 전반의 정점에 위치한 존재였다. 그러나 한의사의 눈으로 볼 때 그들 역시 환자일 뿐이었다. 그들은 질투와 시샘과 불화로 얼룩진 부부 관계에 괴로워했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식 문제, 후사 문제로 고민했다. 나랏일을 한다고 새벽 출근과 야근과 과로에 시달려야 했고, 신하들과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파워 게임을 해야 했다. 과다한 업무로 만성적인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는 현대인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니 현대인이 늘 앓는 질병이 조선 왕들을 괴롭힌 것도 당연하다. 소화 불량은 물론 이명, 종기, 치통, 요통, 관절염, 우울증, 고혈압, 중풍, 뇌일혈, 성기능 저하 등 기업 CEO와 직장인이 달고 사는 병의 증후를 우리는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 역사 기록 곳곳에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병 이름도 다르고 그 병리를 설명하는 개념과 원리도 지금과는 다르지만 조선 왕들의 질병과 치료 기록 속에서 나는 “왕 노릇 못해먹겠다!”라는 왕들의 생생한 육성을 들을 수 있었고, 사표 한 장씩 마음에 품고 출퇴근을 하는 현대 우리의 모습을 만났다.

    따라서 이 책은 조선 왕들에 대한 현대 한의사의 진단이요, 처방이요, 차트다. 그리고 공감과 대화의 기록이기도 하다. 특히 당대에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 안아야만 했던 최정상 리더의 고뇌와 슬픔이 어떻게 마음의 화(火)가 되어 오장육부를 갉아먹고 사지육신으로 퍼져 병으로 똬리를 틀게 됐는지 구석구석 살폈다.

    최근 조선 사극 붐이 일지만 조선 왕들의 내면을 깊이 탐색하고 그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이 역사와 어떻게 상호 작용했는지 살핀 책은 많지 않다. 이 책에서 누누이 강조하는 점이지만 조선 왕의 몸은 조선 왕실의 바로미터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말과 행동보다, 심지어 그들의 마음보다 그들의 몸이 더 정직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건강에 대한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이 책이 우리 역사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기 바란다.

    이상곤 | 한의사 |

    진혼곡의 끝자락이 흐느끼는 까닭은

    왕의 한의학 外
    3선 국회의원을 지낸 노(老)논객 정재호 씨의 칼럼집. 언론과 정계에서 폭넓은 경륜을 쌓은 그의 깊고 예리한 관찰력과 촌철살인의 격조 높은 필력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특히 2부 박정희와 박근혜의 계주 편에 실린 ‘딸의 눈빛과 아버지의 氣’, ‘인사만사는 영원한 고전, 여성대권의 새지평’, 3부 대통령의 구용(九容) 편에 실린 ‘박정희의 대국대식론’, ‘새마을 깃발 속의 박정희’, ‘노무현의 토설’ 등은 지금 읽어도 무릎을 치게 한다. 흔히 칼럼을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글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칼럼은 시대와 동행하는 시대의 증언”이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이 역사이기에 비록 과거의 칼럼이어도 분명 현재와 공명하는 그 무엇이 담겨 있기 마련이라는 것. 정재호 지음, 길마당, 352쪽, 1만5000원

    북한과 중국

    왕의 한의학 外
    북·중 관계가 심상치 않다. 김일성과 마오쩌둥 시대의 ‘혈맹’ 관계는 점차 희미해진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하는 사상 초유의 행보를 보였다. 북한은 중국의 제지에도 핵실험을 강행했다. 한국과 중국에서 모두 근무한 일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북·중 관계가 철저히 자국 이익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북한이 경제난으로 붕괴할 것이라는 예견이나 중국이 결국 한국 편에 설 것으로 보는 것은 순진한 의견이라고 말한다. 중국은 경제·문화적으로 한국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천안함 폭침 사건 같은 주요 사안에서는 여전히 북한의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 취재를 통해 입수한 자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생생함을 더했다. 고마 요지 지음, 김동욱·박준상· 이용빈 옮김, 280쪽, 2만4000원

    조정래의 시선

    왕의 한의학 外
    저자는 “문학과 우리 역사, 그리고 사회적인 긴급한 문제에 한해 발언한다”는 원칙을 문학 인생 45년간 지켜왔다.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으로 우리나라 근현대 비극을 예리하게 그려내고 ‘정글만리’를 통해 세계 정세의 격변 속에서 이정표를 제시하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드러내는 일이 드물었던 이유다. 그런 저자가 그간 인터뷰와 강연, 신문 칼럼 등에 공개했던 의견을 엄선하고 보충해 엮은 산문집이다. 소설에서 직접 말하지 않은 저자의 문학론, 인생관, 민족과 사회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인생이란 자기 스스로를 말로 삼아 끝없이 채찍질을 가하며 달리는 노정”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소설 ‘정글만리’를 쓰게 된 동기부터 한국과 중국의 미래에 대한 전망 등 우리가 당면한 굵직한 주제들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다. 조정래 지음, 해냄출판사, 372쪽, 1만3500원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한국 방송기자 통사

    김성호 지음, 21세기북스, 240쪽, 1만5000원

    왕의 한의학 外
    2015년은 대한민국에서 ‘방송기자’가 탄생한 지 7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자 일제(日帝) 방송인이 주도적으로 운영하던 경성중앙방송국이 서울중앙방송국으로 전환, 승계되자 한국인방송인은 스스로 ‘뉴스원’을 공급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때 한국인 방송 현업 간부로 유일했던 이혜구(1909~2010, 초대 서울중앙방송국장을 지낸 후 1947년 서울대 교수가 되어 국악과를 창설한 국악학자의 태두)는 광복 다음 날인 8월 16일 문제안(1920~2012)을 방송기자로 구두 발령하고 ‘뉴스 시간에 방송할 기사를 취재해 오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해서 한국 최초의 방송기자가 탄생했다.

    이 책은 한국 방송사상 처음으로 펴내는 한국 방송기자의 역사서이자 인명사전이다. 수록 범위는 이 땅에서 방송기자가 출현한 1945년 광복 후부터 텔레비전 3국시대가 열리는 1969년까지다. 이 사반세기는 1945년 미 군정기를 시작으로 1948년 정부 수립 시기를 거쳐 1950년대 국영방송 시대를 지나 1960년대 민영방송 3사가 출범해 정착하는 시기인데, 특히 1969년에는 KBS, TBC(동양TV)에 이어 MBC가 TV를 개국해 텔레비전 3국시대가 개막했다. 이러한 시기 설정은 1970년대 이후로는 해당 사료나 사람이 현존하는 사례가 많을 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내가 방송에 입문하기 전까지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내가 고(古)사료를 뒤적이며 힘겨운 작업을 하는 데는 몇 가지 생각이 담겼다. 가장 큰 뜻은 우리 사회에 인물을 기록하고 기리는 정신(문화)을 배양하기 위해서다. 방송의 힘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그 원천은 사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인데, 우리 사회는 그 기본의 소중함을 방기하는 경향이 보편화됐다.

    둘째로는 내가 더 나이 들기 전에 소장한 사료를 정리해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마지막 또 한 가지는 후학에게 방송의 역사를 전수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 때문이다. 서울올림픽이나 월드컵, 한류 열풍 등으로 세계적 방송의 기틀을 다진 한국의 방송이 박물관 하나 설립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 책 서문에서도 밝혔지만, ‘방송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방송기자는 TV윈도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따라서 나는 전·현직 방송기자나 지망생에게 당부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자기 분야의 역사와 인물을 공부하기를 당부한다. 이러한 기본과 상식을 아는 이야말로 참다운 기자다. 아무리 ‘방송(放送)’이 ‘놓아 보내는’ 것이라 하지만 ‘기자(記者)’는 ‘기록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감히 말하지만, 이 책은 한국방송사 사료의 보존, 계승 차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성호 | 언론학 박사, 전 광운대 정보콘텐츠대학원장, 전 KBS인터넷 사장 |

    바운스 백

    왕의 한의학 外
    위기의 시대다. 실직, 취업난, 정리해고, 사업 실패, 급기야 경제위기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문제는 실패가 아니라 실패 이후의 과정, 즉 실패를 극복하는 과정의 차이가 진정한 성공과 실패를 낳는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하버드대를 비롯한 세계 최고 대학의 경영학 수업에서 강조하는 것 역시 실패한 이후의 회복력, 즉 바운스 백이다. 이 책은 예비 글로벌 리더에게 실패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대비하도록 돕는지 자세히 소개한다. ‘역경지수(AQ)’가 높은 사람일수록 일에서의 경쟁력·생산성·창조성·동기부여·위험감수·개선·지구력·배움·변화 수용하기·회복력 등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희망적인 것은 이러한 AQ가 훈련과 노력으로 학습할 수도, 개선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김현중 지음, 김영사, 272쪽, 1만3000원

    변화와 혁신, 역사에서 길을 찾다

    왕의 한의학 外
    비즈니스 현장에서 끊임없이 요구되는 것이 변화와 혁신이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항상 ‘10년 후 우리는 무엇을 먹고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혁신에서 찾으라고 말했다. 변화와 혁신은 시기에 대한 대응 능력이다.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면 비즈니스 현장에서 사라지게 되고, 혁신의 시기를 놓치게 되면 1인자의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목재회사였던 노키아는 발 빠르게 전자회사로 변신해 세계 휴대전화 시장점유율 1위 회사로 성공했지만, 혁신의 키워드를 읽어내지 못해 무너지고 말았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그 순간, 리더가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 책은 바로 그 승자와 패자를 가른 결정적인 순간을 보여줘 독자로 하여금 지금 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미래를 위한 답을 찾도록 한다. 안계환 지음, 대림북스, 332쪽, 1만5000원

    2015 한국경제 대예측

    왕의 한의학 外
    최근 한국 경제 상황은 한마디로 ‘제조업의 위기’다. 2010년까지 한국 제조업과 생산 상황은 매우 견실했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둔화되면서 생산과 재고 조정 시기에 들어서게 됐다. 최근 화두가 된 사내유보금 문제 역시 자금의 투자처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정부가 조세제도를 통해 기업의 수익을 투자로 돌리려 해도 과잉 재고 해소, 노후화된 과잉 설비 감소 등의 문제가 선행되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면서 제시하는 대안은 임금 인상과 배당 확대다. 이를 통해 기업의 부가 가계로 흘러들면 개인 소비의 회복과 경제 활성화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것. 한국 경제는 물론, 미국·유럽·일본 등 세계경제 전망도 함께 담았다. 노무라종합연구소 지음, 청림출판, 372쪽, 1만7000원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풍수화(風水火)

    김용운 지음, 맥스미디어, 572쪽, 2만5000원

    왕의 한의학 外
    2015년은 광복 70년이자 분단 70년, 그리고 한일 수교 정상화 50년이 되는 해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 질서의 재편을 앞둔 시기가 바로 올해다. 이토록 중요한 시점에 나라 안은 정치·사회·경제 등의 문제가 뒤섞여 소란스럽다. 일본의 우경화는 극에 달하고, 중국은 새롭게 군사강국, 신흥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했다. 특히 미국은 중국의 팽창과 북한의 핵 문제를 막으려고 아시아로 돌아왔다. 미국이 동북아 안보 파트너로 택한 일본은 평화헌법 개정 과정을 밟는다. 그런데 우리는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강대국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대체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얼마 전 신문에 실린 어느 기자의 칼럼, ‘列强의 독서 목록’은 시의적으로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한 글이 아닐까 싶다. 칼럼을 쓴 기자는 “베스트셀러 순위를 100권 넓게 훑어가는 동안에도 미·일·중·러 동북아 패권 다툼에 대한 분석이나 그 속에서 한국이 가야 할 길을 고민한 책은 찾을 수 없었다”고 전제한 뒤 “머리에 핵을 진 채 미·중 사이에서 생존을 위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한국의 전략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올해가 그 어느 해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풍수화(風水火)-원형사관으로 본 한·중·일 갈등의 돌파구’라는 문화·문명 비평서를 펴 관계학을 집대성할 필요를 느낀 것도 이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과의 사이에 풍토와 지정학에 어울리는 문화를 구축함으로써 생존한다. 각 민족의 문화 기반에는 고유의 민족 원형이 있고 민족 고유의 문학, 정치, 역사 등 모든 문화를 형성한다. 정신분석학적 수법으로 동북아 시대의 신삼국(新三國)이 유교 문화, 한자 문화 등 폭넓은 문화적 동질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내용이 서로 확연히 다름을 확인해준다.

    이 책은 삼국의 원형 특성을 한국은 바람(風), 중국은 물(水), 일본은 불(火)로 비유하면서 세 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종횡으로 분석해놓았다. 민족 자원의 진화론이자 언어와 원형의 관계를 밝힌 정신분석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은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신바람을 일으키는 민족이다. 중국은 만리장성을 넘어 들어오는 이민족 등 다른 문명조차 중화(中華)라는 큰 틀에 녹여버리는 융합적 원형을 품고 있다. 일본은 또 어떠한가. 침략전쟁을 합리화하려 내건 구호인 팔굉일우(八紘一宇) 정신으로 모든 침략과 정복을 정당화해왔다. 동북아 시대를 열어가는 신삼국(新三國)뿐 아니라 북한과 러시아, 미국 등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나아갈 방향도 제시해보았다.

    현재 진행 중인 한·중·일 간의 갈등을 원형충돌론의 관점에서 극복하고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 맞춰 우리가 나아갈 길이 어디인지 심도 있게 논의하는 것은 당연한 시대적 과제다. 이 책이 우리 민족의 생존과 공존을 위한 냉철한 지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갖고, 다시 한 번 동북아 시대의 주인공이 돼야 할 이 시기에 꼭 한 번 펼쳐보길 바란다.

    김용운 |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

    욕망할 자유

    왕의 한의학 外
    ‘욕망’의 관점에서 사랑과 결혼, 가족 제도의 변천을 다뤘다. ‘허리하학’에 대한 ‘형이상학’의 역사라고나 할까, 누구나 호기심을 가질 만한 ‘성(性)’을 신화, 문학, 철학사로 꿰었다. 저자는 우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등 이성의 힘으로 욕망을 억누르려 한 철인(哲人)들과 국가권력과 가부장제에 도전하는 디오니소스적 축제의 대비를 통해 우리 의식 속에 내재하는 대립항을 설정한다. 이어 보카치오의 소설 ‘데카메론’, 성도덕에 도발적인 도전장을 던진 사드, 미셸 푸코의 성 담론 분석 등을 통해 그 같은 대립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변천을 겪었는지 분석한다.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모든 욕망은 무죄”라는 저자는 욕망과 문명의 공존을 위해 오르가슴을 목표로 하는 성기 중심의 성행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박흥순 지음, 사우, 320쪽, 1만5000원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

    왕의 한의학 外
    사랑하는 가족이 아프기 시작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는 심정은 어떨까, 그리고 이때 가족은 어떤 선택을 하는 게 현명할까. 병석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아흔의 아버지를 3년 반 동안 간호한 단상을 담은 소설가 아들의 에세이. 저자는 아버지가 최소한의 자립과 존엄을 유지하면서 자기 삶의 터전과 사람들과의 감정적 유대를 끊지 않고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요양병원을 거부한 채, 현실감각을 서서히 잃어가는 아버지의 기저귀와 오줌통을 묵묵히 갈며 인간의 늙음과 죽음에 대해 깊이 사유할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늙고 병든 사람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요양병원, 간병인 제도 등 우리 의료 시스템의 미흡함을 지켜본다.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닥칠 죽음의 과정에 대비해 무엇을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지 생각하게 만든다. 이상운 지음, 256쪽, 1만3000원

    차도르 속 이란 이야기

    왕의 한의학 外
    환갑을 넘긴 부부가 배낭을 메고 속속들이 살펴본 이란 이야기. ‘악의 축’ ‘위험한 나라’로 낙인찍힌 이란에 대해 저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치안이 잘된 나라이고, 특별한 것이 많으며 배울 점도 많다고 강조한다. 이란은 자동차 번호판에 아라비아 숫자 대신 파르시(페르시아어) 숫자가 쓰여 있을 정도로 페르시아 문명 계승자임을 큰 자랑으로 여긴다. 의무적으로 금식하며 기도해야 하는 라마단 기간에도 여행자와 병자, 임산부에게는 이 의무를 면제해주는 ‘관용’을 지녔다. 남녀가 유별한 나라지만 지하철에 여성 전용 객차가 있을 정도로 여자를 우대하기도 한다. 부부가 삶 속에서 체득한 혜안과 사회 활동을 통해 섭렵한 다양한 지식이 곳곳에 녹아 있다. 또한 이들의 따뜻한 시각이 담긴 사진들이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김광원·남하현 지음, 한가람서원, 268쪽, 1만5000원

    번역자가 말하는 “내 책은…”

    굶주린 길

    벤 오크리, 장재영 옮김, 문학과지성사, 752쪽, 2만2000원

    왕의 한의학 外
    사람들은 아프리카가 세계사의 변방이고, 아프리카 문학은 세계문학의 비주류라고 생각한다. 변방, 비주류가 중심부, 주류보다 열등할까? 아닐 거다.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거나 평가받지 못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소설 ‘굶주린 길’은 아프리카 현대문학의 아이콘 작가로 불리는 나이지리아 출신 벤 오크리의 대표작이다. 오크리는 이 소설로 1991년 영연방 최고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했다. 부커상 선정위원회는 “이 작품은 유럽 소설이 주류인 문학계에 흑인 아프리카 소설의 독특한 작법과 세계관을 유입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부커상 위원회가 ‘독특한 작법’이라고 평가한 것은 이 소설이 현실, 환상, 꿈이 교차하는 서사 구조이기 때문이다. 부커상 수상으로 이 소설이 세계적인 이목을 끌면서 오크리는 ‘백년의 고독’을 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비교되기도 하고 그를 ‘마술적 리얼리즘’ 작가로 분류하기도 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아자로는 보통 사람이 아닌 혼령아이(아비쿠)다. 아비쿠는 인간세계와 혼령세계를 오갈 수 있고, 끊임없이 탄생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론 혼령세계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런데 주인공 아자로는 혼령세계의 이단아다. 아자로는 아비쿠들의 협정을 위반하고 ‘이 세계’에 머물기로 한다. 자신의 어머니가 된 여인의 상처 난 얼굴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즉 혼령세계의 무한한 자유와 끝없는 풍요를 거부하고 이 세계의 제한된 자유와 궁핍한 삶을 선택한다.

    작가는 혼령아이 아자로의 시선을 통해 나이지리아와 아프리카 현실을 보여준다. “가난과 굶주림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세상” “부자와 정치인이 국가의 미래에 눈감은 부패한 세상” “사회의 분열상과 단결력의 부재,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메울 수 없는 간극” “위기가 극단으로 치달을 때마다 독재자들이 항상 머리를 들이밀고 등장하는 광경과 그 독재자들이 장기 집권과 혼돈을 남기고 축출되는 세상”을 본다. 그리고 “당장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 당장 균형이 회복되는 세상”을 꿈꾼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해법은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오크리는 정통 리얼리즘을 넘어선 환상의 언어로 현실 너머의 현실, 겉으론 보이지 않지만 실재함으로써 우리를 짓누르는 현실,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세계를 드러내 보이려 한다.

    소설 ‘굶주린 길’의 배경은 1960년 나이지리아이고 오크리가 이 작품을 1990년 런던에서 썼지만, 이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와 테마는 매우 현재적이고 아직도 지극히 유효하다. 왜냐하면 세상은 여전히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 폭압정치와 쿠데타의 혼란, 궁핍과 정신적 혼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굶주림 또한 사라지지 않았으므로.

    오크리는 이 작품 하나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고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로 꼽힌다. 소설 ‘굶주린 길’은 20세기 세계문학 필독서 5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소설과 문학 세계에 대한 국내 연구는 전무하다시피 하며, 이번 번역 또한 국내 초역이다.

    장재영 | 번역가 |

    나의 서양사 편력(전2권)

    왕의 한의학 外
    고대, 중세, 근대, 현대에서 저자가 뽑은 서양사 94개 장면을 모았다. 여기에 저자가 오랜 기간 각별한 관심을 갖고 연구한 주제인 존 밀턴에 관한 5편의 글을 한데 모아 별도로 편성했다. 서양의 역사를 탐구하듯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짧게 끊어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사건을 다루는 대신 현실의 거울이 될 만한 장면들에 집중했다. 16세기 북극항로 개설에 나섰다가 선원들이 굶어 죽는 참사 속에서도 러시아 고객에게 배달할 무역 상품에 손대지 않았던 네덜란드 상인에게서 신용이 무너진 현대사회를 바라보고, 새로운 로마를 짓기 위해 옛 로마를 손상시킨 르네상스 시대 로마인에게서 새로운 서울을 만들기 위해 역사 도시 서울을 지워나가는 우리를 돌아본다. 박상익 지음, 푸른역사, 각권 300쪽 내외, 각권 1만5000원

    돈의 생태계(전 3권)

    왕의 한의학 外
    정치학 박사가 쓴 한반도를 무대로 한 가상소설. ‘정치학 박사가 웬 소설?’인가 싶지만 김정은, 장성택, 최룡해 등 실존 인물들이 등장해 마치 현재 북한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리얼하게 읽힌다. 운동권 출신 경제학자인 주인공은 주가 조작을 하다 쫓겨 북한으로 망명해 김정은의 비자금을 관리하게 되는데…. 소설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돈이라는 피할 수 없는 원리가 작용함을 보여준다. 1권에서는 먹고 먹히는 남한의 자본주의 정글 생태계를, 2·3권에서는 ‘시장’과 ‘강호(江湖)’라는 북한의 두 가지 사회 원리를 다룬다. 북한은 겉으로는 수령체계를 이루지만 내부적으로는 급격하게 시장화가 이뤄지면서 시장의 냉혹함을 보전하기 위한 ‘강호’의 원리가 작동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강호의 원리는 의리, 의형제, 인정이다. 윤성학 지음, 푸른영토, 각권 310쪽 내외, 각권 1만2000원

    승(勝)과 패(敗)

    왕의 한의학 外
    만족하면서 일상을 보낸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구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위로부터 늘 비교 대상이 되고, 그러는 사이 불안과 불만이 커지며, 결국 의도하지 않은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착하고 인정 많은 은행 만년과장 이성재가 그렇다. 영업 실적 탓에 번번이 승진에서 탈락하던 그는 승진을 위해 실적에 욕심을 내다 뜻하지 않게 불법대출에 휘말리고, 그 과정에서 뇌물수수 혐의까지 얽혀 구속 위기에 처한다. 반면 바로 위 상사는 불법을 통해 자기 잇속을 챙겨왔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돈으로 잘 무마하고, 부하 여직원은 이를 협박해 거액의 합의금을 뜯어낸다. 저자는 은행원 출신의 소설가답게 은행을 배경으로 돈과 관련된 갈등, 음모와 좌절, 인간의 욕망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손용권 지음, 북사비, 280쪽,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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