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호

김민경 ‘맛 이야기’

집에서 트러플을 즐기는 똑똑한 방법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0-05-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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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러플 모양으로 만든 트러플 초콜릿.

    트러플 모양으로 만든 트러플 초콜릿.

    나는 못 먹는 향신료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서만 즐겨 먹는 깻잎은 물론이며, 깻잎과 닮았지만 훨씬 독특한 향이 나는 시소도 좋아한다. 누군가는 화장품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방아와 미나리, 고수는 물론, 코가 찡해지는 산초와 제피도 즐긴다. 달콤한 맛과 향이 나는 바질, 풋풋한 파슬리, 향긋한 기름 냄새가 나는 펜넬을 염소처럼 아작아작 씹어 먹는다. 이뿐만 아니라 팔각, 갈랑갈, 레몬그라스, 큐민, 육두구 등 국적을 가리지 않고 향이 나는 재료가 들어간 음식을 대체로 좋아한다. 향신료는 향의 농도와 신선함, 개성 등으로 그 값이 매겨진다. 그러나 대체로 요리의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무게 있는 조연이나 강렬하게 등장하는 카메오 구실을 할 뿐이다. 향으로 주인공이 되는 신선한 식료는 아마도 트러플이 유일하지 싶다.

    향기로 값 매기는 못난이 버섯, 트러플

    화산석처럼 생긴 블랙 트러플(왼쪽). 매끈하고 부드러운 트러플 안쪽 모습.

    화산석처럼 생긴 블랙 트러플(왼쪽). 매끈하고 부드러운 트러플 안쪽 모습.

    트러플은 버섯인데 여느 버섯과 영 다르게 생겼다. 작은 돌기로 가득한 화산석 같기도 하고, 자라다 만 못생긴 감자도 좀 닮았다. 꽤 단단한 겉면과 달리 속은 매끈하고 부드럽고 차지다. 작은 몸에서 이글이글 향을 내뿜는데, 저미는 순간 말랑한 속으로부터 훨씬 진하고 개성 있는 향이 훅 뿜어져 나온다. 그나저나 흙속에 파묻힌 조그만 돌멩이 같은 이것은 도대체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로마 군인이며 과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대(大) 플리니우스가 쓴 고대판 백과사전 ‘박물지(Naturalis Historia)’에 고대 로마인이 트러플을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심지어 그때도 트러플은 신이 먹을 법한, 오묘한 향을 가진 중독성 강한 식재료로 귀하게 여겨졌다. 

    이상하게도 로마 붕괴 후 트러플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트러플이 다시 각광받은 것은 ‘부자의 마늘’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1500년대 후반이다. 1600년대에는 트러플을 먹는 이가 부쩍 늘었고, 1700년대에는 트러플 종류와 품질을 구분하며 먹을 만큼 상품화됐으며, 이즈음부터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에서 채취되는 화이트 트러플이 트러플 중 맨 꼭대기 자리를 차지하며 귀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또한 트러플 ‘헌팅’ 즉, 채취가 왕실과 귀족 등 상류층의 재미나고 진귀한 놀이로 여겨졌다. 

    트러플은 촉촉하고 양분이 많은 흙을 좋아하며 온화한 기후에서 더 잘 자란다. 나무뿌리 근처에서 자라는데 지면으로부터 약 30㎝ 정도 되는 깊은 땅속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송로’라고 불리지만 소나무뿐 아니라 느릅나무, 단풍나무, 개암나무, 밤나무, 호두나무 등 여러 나무 아래서 발견된다. 



    트러플은 거의 일 년 내내 채취한다. 땅 속에 묻혀 있어 코 즉, 후각으로 찾는 버섯이다. 여름에는 너무 뜨겁지 않고 땅에서 습기가 피어나는 때인 이른 새벽에 트러플 사냥을 나선다. 겨울에는 땅이 녹는 한낮이 적기다. 숲 냄새, 흙 냄새가 절정에 이를 때 땅 속 트러플 향도 대기를 타고 살살 퍼진다. 

    이탈리아에 가보면 이상하리만치 저렴한 트러플을 종종 볼 수 있다. 수확한 시기에 따라 향이 극명하게 차이나기 때문이다.

    트러플 초심자의 향 즐기기

    트러플을 올린 스테이크(왼쪽). 트러플을 올린 파스타.

    트러플을 올린 스테이크(왼쪽). 트러플을 올린 파스타.

    트러플은 채집 계절에 따라서도 조금씩 다른 특질을 띄며, 당연히 값 차이도 생긴다. 같은 블랙 트러플이라도 자세히 보면 미묘하게 색 차이가 난다. 흐릿한 검정, 붉은 빛 나는 검정, 빈틈없이 새까만 것 등으로 다르다. 겉이 다르면 당연히 속 색깔도 달라진다. 대체로 더운 날 채취하면 색이 밝아지고 겨울로 갈수록 짙은 색을 띤다. 향의 농도도 색을 따라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블랙은 까말수록, 화이트는 뽀얄수록 향이 좋고 값도 비싸다. 

    가장 귀하게 대우받는 화이트 트러플은 이탈리아를 기준으로 9월~1월 중 채취한다. 이름처럼 색이 하얗지는 않고 미숫가루처럼 노르스름하다. 숙성이 잘 되면 연한 갈색에 가까워진다. 화이트 트러플 범주에 속하지만 조금 더 저렴한 가격에 유통되는 베이지 트러플은 1월~4월 채취돼 봄 트러플로 불린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트러플 대부분은 이탈리아 산(産)이다. 다른 나라도 대체로 이탈리아 산을 많이 수입할 것이다. 세계 트러플 유통량의 70%를 차지하는 기업 역시 1852년부터 트러플 사업을 시작한 얼바니 타르투피(Urbani Tartufi)라는 이탈리아 회사다. 

    요 몇 년 사이 우리나라에는 얼바니 타르투피를 비롯한 여러 회사의 트러플 관련 제품이 다양하게 수입되고 있다. 요리에 신선한 트러플을 토핑으로 올려주는 레스토랑도 꽤 많아졌다. 하지만 신선한 트러플은 구하기 쉽지 않고 매우 비싸다. 제대로 요리할 자신 없는 사람이 굳이 욕심낼 필요가 없다. 

    트러플 초심자라면 트러플 오일과 소금부터 맛보자. 트러플 오일은 요리 마지막에 살짝 곁들여 향을 즐기는 용도로 쓰기에 적합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달걀 요리에 곁들이는 것이다. 달걀프라이, 스크램블드에그를 만들고, 먹기 전 트러플 오일을 몇 방울 뿌린다. 소금과 후추로만 간을 해 구운 고기나 생선요리에도 몇 방을 떨어뜨리면 잘 어울린다. 마늘과 오일로 만드는 간단한 파스타에 버섯 조금과 트러플 오일을 한두 큰 술 넣어 볶으면 구수한 맛이 배가된다. 

    조금 과감하게 트러플 오일을 사용하고 싶다면 튀김 기름에 트러플 오일을 섞어 본다. 튀김 요리 전체에 트러플 향이 깊이 밴다.

    오일, 소금, 케첩 등 캐주얼한 트러플 아이템

    다양한 요리에 사용할 수 있는 트러플 소금. [얼바니 타르투피 제공]

    다양한 요리에 사용할 수 있는 트러플 소금. [얼바니 타르투피 제공]

    트러플 향에 좀 익숙해졌다면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듬뿍 떠서 트러플 오일을 몇 방울 뿌려 먹어본다. 솔티드 캬라멜의 ‘단짠’ 조화만큼 기막힌 맛의 궁합을 만날 수 있다. 최근 롯데월드몰과 롯데백화점 명동점에 트러플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는 트러플 숍이 생겼다. 참고로 이 숍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때 토핑 추가를 하면 신선한 트러플을 슬라이스해 얹어준다. 

    트러플 소금은 오일처럼 달걀 요리와 각종 구이, 파스타, 샐러드 등 어디에나 쓸 수 있다. 제일 맛좋은 건 역시 감자칩에 곁들이는 것이다. 튀긴 감자에 트러플 소금을 솔솔 뿌려 짭짤하게 먹는다. 튀김이 번거롭다면 채소를 얇게 썰어 기름에 지지듯 바싹 구워 트러플 소금을 뿌려 먹어도 맛있다. 

    좀 더 재미를 주는 트러플 가공품으로는 케첩이 있다. 새콤달콤한 토마토 케첩에서 트러플 향이 듬뿍 난다. 앞서 말한 감자칩을 찍어 먹고, 오므라이스를 만들어 뿌려 먹고, 햄버거나 샌드위치에도 곁들인다. 트러플 향이 나는 꿀도 있는데 치즈 플레이트나 마른 과일과 함께 먹거나, 요거트 등에 섞어 먹으면 된다. 

    신선한 트러플 대신 즐길만한 트러플 가공품은 이외에도 꽤 많다. 트러플을 통째로 절인 것, 트러플 카르파초(얇게 썬 트러플 절임), 소스나 페이스트처럼 트러플을 갈아 양념한 트러플 소스, 트러플 버터, 트러플 식초 등을 통해 집에서도 트러플 향을 누리고 맛볼 수 있다. 

    품질 좋은 트러플은 1파운드(약 450그램)에 3600달러(약 440만 원) 선이다. 2010년 마카오에서 열린 트러플 경매에는 2파운드(약 900그램)에 33만 달러(약 4억 400만 원)짜리 트러플이 나온 적도 있다. 트러플 값은 향기 값인데 트러플 오일이나 소금 등에 그 향이 고스란히 녹아 있으니 이 얼마나 가격 대비 성능 좋은 미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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