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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끈한 밥에 김치 한 장 올려 후루룩[김민경 ‘맛 이야기’]

쌀쌀한 겨울 더 생각나는 ‘밥상 보약’ 김치 열전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뜨끈한 밥에 김치 한 장 올려 후루룩[김민경 ‘맛 이야기’]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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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김치를 담가 먹는 사람보다 사 먹는 사람이 훨씬 많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1년 중 가장 중요한 일로 늘 김장을 꼽던 분이다. 하지만 힘에 부치고, 자식들 먹는 양도 줄어드는 바람에 김장을 접은 지 5년이 됐다.

사실 1년을 두고 먹을 엄청난 양의 김치를 만드는 건 엄두가 안 난다. 하지만 겉절이 정도라면 어떨까. 노르스름 앙증맞은 알배추를 숭덩숭덩 썰어 무채와 쪽파 넣고 김치 양념에 버무려 먹으면 아삭아삭 고소한 채소 맛이 난다. 익혀 먹으면 감칠맛이 더해져 개운하다. 덜어 먹을 때마다 미나리처럼 향긋한 채소를 조금씩 섞어 내면 매번 맛이 새롭다.

향긋 알싸 달콤한 대파김치 레시피

알배추에 쪽파, 홍고추 등을 썰어 넣고 양념에 쓱쓱 무쳐 먹는 겉절이. 밥 위에, 고기 위에, 이불처럼 척척 얹어 먹으면 좋다(왼쪽). 쪽파와 고춧가루, 액젓, 설탕, 풀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쪽파김치. [GettyImage]

알배추에 쪽파, 홍고추 등을 썰어 넣고 양념에 쓱쓱 무쳐 먹는 겉절이. 밥 위에, 고기 위에, 이불처럼 척척 얹어 먹으면 좋다(왼쪽). 쪽파와 고춧가루, 액젓, 설탕, 풀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쪽파김치. [GettyImage]

양념 재료로는 고춧가루, 액젓, 다진 마늘, 다진 생강, 풀을 준비한다. 간단한 김치라도 풀은 꼭 필요하다. 유산균의 먹이이기 때문이다. 풀이 들어가야 김치가 맛좋게 익는다. 또 풀은 끈적거리는 성질로 양념이 채소에 착착 들러붙게 해준다. 풀은 주로 밀가루나 찹쌀가루를 물과 같이 끓여 만든다. 믹서에 흰 밥과 물을 넣고 걸쭉하게 갈아서 사용해도 된다.

겉절이는 이름처럼 살짝 절이는 게 포인트다. 알배추 한 통을 낱장으로 뜯어 큼직하게 썬 뒤 소금(1/2컵)을 뿌리고 대강 섞어 60~90분 동안 둔다. 물에 살짝 헹궈 물기를 잘 빼고 양념에 버무린다. 겉절이는 무쳐서 바로 먹는 음식이라 고춧가루 입자가 굵으면 입에서 겉돌 수 있다. 고춧가루와 액젓을 먼저 섞어 살짝 불려 부드럽게 한 다음 양념을 만들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 다 만든 겉절이는 밥 위에, 고기 위에, 이불처럼 길게 얹어 우적우적 먹는다. 넓은 그릇에 수북하게 담아도 금세 비운다.

요즘 많이 나오는 고수도 김치 양념에 버무리면 잘 어울린다. 고들빼기처럼 잔뿌리가 달린 걸로 골라 소금에 살짝 절인다. 고수 다발이 굵지 않으면 굳이 가르지 않고 한 뿌리 통째로 김치를 담가도 된다. 실온에서 하루 정도 폭 익히면 부드러우면서도 향긋한 맛이 뜨끈한 햅쌀밥을 부르고 또 부른다.



집에서 가장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건 쪽파김치다. 쪽파 1kg과 고춧가루(2/3컵), 멸치액젓(2/3컵), 설탕(2.5큰술), 풀(2큰술)을 준비한다. 쪽파가 누울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그릇에 양념 재료를 잘 섞은 다음 쪽파를 가지런하게 놓고 살살 버무린다. 그대로 30분 동안 뒀다가 다시 버무린다. 이러면 다 된 것이다. 통에 담고, 이틀 정도 실온에 뒀다가 냉장실에 넣는다.

쪽파의 알싸한 맛은 액젓과 딱 맞아 떨어진다. 입맛에 따라 멸치진젓이나 꽁치젓처럼 진한 걸 써도, 다진 새우젓처럼 순한 걸 써도 된다. 대파김치 만드는 법도 이와 비슷한데, 파 굵기 때문에 억세고 매울 수 있다. 대파 흰 부분을 액젓에 서너 시간 담갔다가 같은 방법으로 김치를 담그면 된다. 아작아작 씹을 때마다 단맛이 스며 나온다.

달고 시원한 무로 담근 국물 자박자박 깍두기. 밥이 끊임없이 들어가게 만드는 진정한 ‘밥도둑’이다.  [GettyImage]

달고 시원한 무로 담근 국물 자박자박 깍두기. 밥이 끊임없이 들어가게 만드는 진정한 ‘밥도둑’이다. [GettyImage]

이번엔 한창 맛이 오르고 있는 무로 만드는 깍두기! 무를 깍둑깍둑 썬 다음 양념에 버무리면 끝난다. 쪽파 양념보다 고춧가루와 액젓을 적게 사용해 무 자체의 달고 시원한 맛을 살린다. 무는 쪽파처럼 톡 쏘는 향과 맛이 부족하니 다진 마늘과 생강 등 향채를 조금 넣는다. 이렇게 완성한 깍두기 역시 실온에서 이틀 정도 익히면 국물이 생긴다. 무에서 나온 물이 달고 시원해 국물 맛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하얀 햅쌀밥에 깍두기 국물 졸졸 끼얹어 촉촉하게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국물 깍두기를 원치 않을 경우 무를 소금에 살짝 절여 물기를 빼고 담그면 된다.

겨울이 깊어지면 동치미 맛도 떠오른다. 지금은 잘 상상이 안 되지만 나는 꽤 오랫동안 종이로 된 지도를 들고 여행지 취재를 다녔다. 여러 지역 식당을 찾아다닐 때도 종이 지도가 길잡이 구실을 했다. 전국 국도와 지방도가 한눈에 보이는 커다란 지도, 지역별 도로를 확대해 책자로 엮은 것 이렇게 두 종류를 보며 길을 잡았다. 아침마다 자동차 보닛 위에 지도를 펼쳐놓고 “오늘은 어디로 갈까. 시간은 얼마나 필요할까” 예측하는 게 그 시절 가장 중요한 일과였다.

당시 하루 계획이 중요했던 건 해가 진 다음 잘 곳을 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로 지도를 볼 수 없던 시절, 숙박 애플리케이션이 있었을 리 없다. 가본 적 없는 길을 이리저리 들쑤시며 다니다 보면 해가 잘도 넘어갔다. 한겨울은 아니었으나 꽤 차갑던 어느 밤, 나와 동행은 적막한 도로 위에 덩그러니 있었다. 차는 움직이는데 새까만 풍경은 도무지 변하지 않고 기름도 간당간당했다. 서로 내색은 안 했지만 불안함에 말문이 막혀 있던 우리 앞에 길쭉하게 선 식당 간판이 보였다. 죽을 뻔한 것도 아닌데 “살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날 저녁, 정갈하게 관리한 손길이 느껴지는 작은 옛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순메밀국수, 김가루, 통깨, 달걀 반쪽과 동치밋국이 어우러진 음식 대접이 상에 놓이자 국물부터 들이켰다. 잔뜩 웅크렸던 몸이 사르르 풀렸다. 그제야 웃음도, 말도 터졌다. 13년 전 밤에 만난 송월메밀국수 집은 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요즘 가면 “어랏, 대로변이잖아” 싶어 아련해진다.

시큰둥 입맛도 일으켜 세울 백김치

할머니가 계실 때는 겨울마다 관자놀이가 찌릿하도록 차가운 동치미를 맛봤다. 반면 엄마는 한 번도 동치미를 담그지 않으셨다. 메밀국수나 냉면을 동치밋국에 말아주는 식당이 적지 않지만, 우적우적 씹어 먹던 시린 무맛은 느끼기 어렵다. 식당에서 반찬처럼 내주는 동치미는 단맛이 세고, 무가 연해 아쉽다. 간혹 총각무로 동치미를 담가 내는 곳에 가면 무의 아삭한 맛이 살아 있어 반갑다.

동치미 자리를 대신할 만한 걸 꼽자면 백김치로 하겠다. 두툼하고 아삭한 배추 줄기, 짠 국물이 쭉쭉 배어나는 부들부들한 이파리 끝까지 모두 맛있다. 무엇이랑 곁들여도 잘 어울리고,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 짭짤한데 달고, 시원한데 깊다. 색이 고와지라고 홍고추, 쪽파, 당근 등을 넣고 만드는 화사한 백김치도 좋지만, 그저 배추만으로 담박한 모양을 낸 것은 그대로 오롯한 맛을 지녔다. 독특한 맛으로 치면 돌산갓으로 담근 백김치를 빼놓을 수 없다. 산뜻하게 톡 쏘아 붙이는 맛과 향은 아무리 시큰둥한 입맛이라도 금세 일으켜 세울 만하다.

김치를 직접 담그기 어렵다면, 김치 요리에라도 도전해 보자. 나는 김장철이면 김치를 담그는 엄마 옆에 쪼그리고 앉아 구경하기를 좋아했다. “저거 가져와라” “이 뚜껑 열어라” “두 숟가락 넣어라” 같은 자잘한 심부름을 하다 보면 드디어 “간 좀 봐라”라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 온다. 엄마는 배춧속의 노랗고 작은 잎 부분을 툭 뜯어 새빨간 양념을 한 번 더 묻힌 다음 잘 접어 내 입에 쏙 넣어주셨다. 채 어우러지지 않아 저마다의 향긋함, 산뜻함, 아삭함, 콤콤함이 살아 있는 김치 양념에 무쳐 먹는 절인 배추의 맛! 첫맛은 매콤하고, 아삭아삭 씹을수록 달고 짜며 삼키고 나면 감칠맛이 남는다. 나는 이 생김치를 무척 좋아했다.

묵국수, 김치전… 김치보다 맛있는 김치요리들

큰 그릇에 가늘게 썬 묵과, 김치, 오이를 소복하게 담고 멸치 국물을 부은 뒤 김과 통깨를 솔솔 뿌려 먹는 묵국수(왼쪽)와 김치와 각종 재료로 만든 김치전. [GettyImage]

큰 그릇에 가늘게 썬 묵과, 김치, 오이를 소복하게 담고 멸치 국물을 부은 뒤 김과 통깨를 솔솔 뿌려 먹는 묵국수(왼쪽)와 김치와 각종 재료로 만든 김치전. [GettyImage]

김치가 익은 뒤엔 그 자체보다 김치로 만든 요리가 더 좋았다. 특히 엄마가 묵은 김치로 만들어주는 요리는 뭐든 잘 먹었다. 엄마는 신김치를 입에 잘 대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나랑 같이 맛있게 드시는 게 있었다. 묵국수다.

묵이 부서지지 않도록 살살 달래가며 막대처럼 가늘고 길게 썰고, 김치는 잘게 썬다. 이때 씹는 맛이 좋은 배추 줄기 부분을 많이 넣어야 맛있다. 오이를 가늘게 채 썰어 넣으면 씹는 맛을 더한다. 김치는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어 무친다. 구운 김은 잘게 부순다. 멸치를 가득 넣고 국물을 낸다. 대접에 묵, 무친 김치, 오이를 소복하게 담고 멸치 국물을 붓고 김과 통깨를 솔솔 뿌려 먹는다. 내 그릇에는 김치가 듬뿍, 엄마 그릇에는 묵이 듬뿍 담긴 게 다를 뿐 둘 다 국물 하나 남기지 않고 시원하게 먹어치우기 일쑤였다.

겨울철 주말에는 김치전이 단골이다. 들기름에 부칠 때도 있고, 해물과 땡고추를 잘게 썰어 넣기도 하고, 조선호박이나 늙은호박 살을 채 썰어 넣고 굽기도 했다. 어느 날은 큼직하고, 어느 날은 손바닥만 했다. 넙데데한 김치전은 부드럽고 촉촉해 좋다. 자그마한 김치전은 가장자리 바삭한 부분이 많아 맛있다.

지금도 나는 생김치가 가장 맛있고, 익은 김치는 그 자체보다 요리로 먹기를 좋아한다. 신김치는 밥반찬 만들기에 좋은 재료인 만큼 밥과 같이 요리하면 딱이다. 돼지고기를 잘게 썰어 다진 마늘, 간장, 후춧가루로 살짝 밑간을 한다. 돼지고기가 없으면 햄을 잘게 썰어 활용한다. 신김치는 속을 대강 털어내고 잘게 썰어둔다. 냄비에 기름을 조금만 두르고 돼지고기(햄)와 김치를 넣어 볶는다. 물을 바닥에 살짝 고일 만큼 붓고 찬밥을 펼쳐 올린다. 그 위에 콩나물을 얹고 뚜껑을 덮어 익힌다. 콩나물 숨이 폭 죽으면 불을 끄고 위아래를 잘 섞어 먹는다. 양념간장이 있으면 조금 넣어도 좋고, 김자반을 뿌려 섞거나, 날김에 볶음밥을 싸서 간장에 찍어 먹어도 맛있다. 콩나물과 함께 곱게 썬 무채, 팽이버섯을 넣어도 잘 어울린다.

신김치로 만드는 짜장김치소스의 매력

잘게 썬 김치를 베이컨, 양파와 함께 물기 없이 달달 볶아 밥에 넣고 조물조물 뭉쳐 주먹밥을 만들어도 된다. 조금 더 부지런을 떨자면 김치 줄기 부분을 볶고, 남은 잎은 양념을 씻어 물기를 꽉 짠다. 거기 밥을 넣고 쌈밥처럼 만든다. 신김치를 넣고 돌돌 말아 싸 먹는 김밥도 별미다. 참치와 깻잎을 넣으면 맛있고, 잔멸치와 매운 고추로 조합을 맞춰도 된다.

먹성 좋은 이란성 쌍둥이를 키우는 내 친구가 이맘때 캠핑 가면 하는 요리가 있다. 김치와 햄, 또는 김치와 작게 썬 오징어를 프라이팬에 넣고 달달 볶는다. 햄이나 오징어가 익을 때쯤 짜장라면의 가루 수프를 넣고 볶는다. 뻑뻑하면 물을 조금 넣어 걸쭉하게 만든다. 면을 삶아 각자 그릇에 나눠 담고 짜장김치소스를 끼얹고, 달걀프라이로 예쁘게 덮어 완성한다. 어른 그릇에는 고춧가루를 솔솔 뿌린다. 먹어보지 않았지만 절반 이상은 아는 맛이라 군침이 절로 돈다.

문제는 지금 우리집에 신김치가 똑 떨어졌다는 것. 아무리 맛난 김치를 얻어 와도 제대로 보관할 줄 모르는 내 솜씨 탓에 늘 김치가 궁핍하다. 신김치를 수거하러 시댁과 친정을 한 바퀴 빙 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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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2021년 12월호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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