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호

사랑으로 농익은 연기 전도연 VS 정통 멜로 연기 도전장 낸 김정은

  • 조성아 일요신문 기자 ilyozzanga@hanmail.net

    입력2005-10-25 1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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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최고의 인기를 누린 ‘파리의 연인’에 이어 ‘프라하의 연인’이 최근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연인’ 시리즈로 바통을 주고받은 김정은과 전도연은 극장가에선 각각 ‘사랑니’와 ‘너는 내 운명’이라는 영화로 한창 관객몰이 경쟁을 펼치고 있다. 너무나 잘 알려졌지만 끊임없이 변신을 꾀하기에 작품마다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두 사람의 매력 비교.
    사랑으로 농익은 연기 전도연 VS  정통 멜로 연기 도전장 낸 김정은
    사랑으로 농익은 연기 전도연 VS  정통 멜로 연기 도전장 낸 김정은
    “오빠,나만 바라봐, 바빠 그렇게 바빠, 아파 내 맘이 아파, 내 맘 왜 몰라줘.”

    애교 가득한 눈빛, 요염한 포즈로 ‘이젠 나를 가져보라’며 유혹하는데 어느 남정네라고 빠져들지 않을 수 있으랴. 석중(황정민)은 그렇게 첫눈에 은하(전도연)에게 빠져들고 만다.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은하는 시련 많고 사연 많은 다방 레지다. 시골 다방에서 웃음을 팔고 있기엔 아까운 듯한 미모와 도도함을 지닌. 그러나 은하는 한때의 사랑이 남긴 아픈 기억 때문에 더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런 은하 앞에 어느 날 석중이 나타난다. 오로지 자신만 바라보며 순정을 바치는 석중의 사랑에 은하는 혼란스러워 한다.

    마침내 두 사람이 결혼에 이르고,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은하를 색시로 얻은 석중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다. 그런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신혼의 단꿈도 잠시, 은하가 에이즈 환자라는 비보가 날아든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그리고자 한 사랑은 이제부터다. 전도연의 연기에도 불이 붙는다. 갖은 시련, 모진 사연을 다 끌어안은 여인이지만 그럼에도 풋풋함을 잃지 않은 은하의 모습이 관객의 감정선을 심하게 흔들어댄다.

    애초부터 이 영화는 여주인공으로 전도연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알려졌다시피 이 영화는 몇 해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은 여성과 그 사실을 알고도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준 남편의 이야기. 우연히 신문기사를 보고 사연을 알게 된 박진표 감독은 실제로 그 남자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때 이미 여주인공은 전도연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전도연은 출연 제의에 선뜻 응할 수 없었다. ‘에이즈에 걸린 다방 레지.’ 어느 여배우라도 망설였을 것이다. 전도연이 은하 역을 맡기로 한 건 박 감독의 끈질긴 설득 때문이기도 했지만 박 감독이 보여준 두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박 감독이 영화 속 석중의 모델이 된 실제 인물에게서 받아온 사진이었다. 전도연은 사진을 본 느낌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한 장은 기름기 흐르는 호남이고 다른 한 장은 주름이 갈라지고 머리가 희끗한 남자였다. 여자가 떠나고 불과 몇 달 사이에 남자의 모습이 그렇게 변한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면 모를까,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사진을 본 순간 전도연은 두 사람의 사랑이 어땠을지 무척 궁금해졌다. 그는 결국 ‘레지’가 아닌, 한 남자의 진한 사랑을 받고, 또 그에게 사랑을 주는 한 여인을 연기하기로 결정한다. 그 스스로 누누이 말하듯 전도연의 연기에 대한 모토는 바로 사랑이다.

    ‘너는 내 운명’을 통해 다시 한 번 진가를 보여준 전도연은 우리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지 이미 오래다. 전도연은 고등학교 졸업 후 하이틴 잡지의 거리 패션모델로 우연히 사진을 찍은 뒤 이 잡지의 표지 모델이 됐고, 존슨앤존슨 CF에 출연하는 행운으로 이어졌다.

    명랑하고 꿈 많은 소녀

    첫 CF 촬영까지는 모든 게 순식간에 이뤄졌지만 그가 연기자로 빛을 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연기자로 데뷔한 건 1992년 MBC 청춘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을 통해서다. 뒤이어 최진실과 이병헌이 주연한 ‘사랑의 향기’에 출연했는데, 최진실의 동생으로 오대규와 풋풋한 사랑을 나누는 여대생 역을 맡았다. 조각 같은 미모는 아니지만 귀여운 마스크에 당찬 이미지가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다. 화려하지 않은 외모이기에 더욱 사랑스러운 아가씨였다. 전도연은 ‘종합병원’ ‘젊은이의 양지’ 등의 드라마에서도 명랑하고, 꿈 많은 소녀 같은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다.

    여러 편의 드라마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그에게 비로소 기회가 찾아온 건 1997년. 영화 ‘접속’이었다. 쟁쟁한 배우들을 제치고 그가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되자 우려하는 이도 많았다. 그러나 전도연은 한석규를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는 연기를 펼쳤다. 그를 ‘접속’의 주인공으로 앉히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 당시 명필름의 심보경 이사는 인터뷰에서 “‘접속’을 준비할 무렵 TV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에서 전도연이 연기하는 것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당시 한국 영화계엔 코믹멜로가 유행하고 있었고 심은하, 김남주 가 한창 인기를 끌고 있었지만 전도연만큼 멜로연기를 잘할 수 있는 배우는 없다고 확신했다”고 한다.

    사랑으로 농익은 연기 전도연 VS  정통 멜로 연기 도전장 낸 김정은

    영화 ‘접속’으로 ‘흥행배우’ 반열에 오른 뒤 전도연은 극과 극을 오가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내 마음의 풍금’의 늦깎이 초등학생이 ‘해피엔드’에서 바람난 유부녀로 분해 알몸연기를 펼치고,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는 라운드걸 출신의 가수 지망생으로 분해 액션 연기에 도전했다. 지난해 개봉한 판타지영화 ‘인어공주’에선 1인2역을 매끄럽게 소화해 갈채를 받았다.

    영화 ‘접속’의 케이블TV 홈쇼핑 텔레마케터인 수현은 ‘너는 내 운명’의 은하와 닮은 점이 많다. 사랑의 아픈 기억 때문에 새로운 사랑이 찾아와도 주저하지만 끝내는 용기를 내 사랑을 이루고 만다. 지금까지 전도연은 극장 앞에서 동현(한석규)을 기다리는 ‘접속’의 마지막 장면을 ‘가장 마음에 드는 연기’ 중 하나로 꼽는다.

    이 악물고 연기하다

    전도연은 ‘접속’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됐을 무렵 자신을 둘러싸고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확실하게 대응했다. 전도연이 얼마 전 한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 털어놓은 고백은 의미심장하다.

    “‘영화감독과 그렇고 그런 사이다’ ‘몸으로 승부했다’는 식의 말을 들을 때마다 더욱 이를 악물고 열심히 연기했다.”

    주위의 우려를 씻고 영화 ‘접속’은 개봉 20여 일 만에 전국 관객 100만 명을 동원하는 등 흥행에 크게 성공하고, 젊은이들 사이에 PC 통신 붐을 일으켰다. ‘접속’ OST도 높은 인기를 누렸다. 전도연은 단박에 대종상 신인여우상,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백상예술대상 인기상을 휩쓸었다.

    1998년 ‘약속’에서 전도연은 조직폭력배 두목 공상두(박신양)를 사랑하는 여의사 채희주를 연기했다. 지금도 그 영화를 떠올리면 머리를 뒤로 단정히 묶고 흰 가운을 입은 채 험악한 분위기에도 주눅 들지 않고 두목의 상처를 치료해 주던 당찬 의사의 모습과, 사랑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달려가 키스를 나누던 로맨틱한 여인의 모습이 교차한다.

    출연하는 영화가 잇따라 성공하며 당당히 ‘흥행배우’ 반열에 오른 전도연은 작정이라도 한 듯 연기의 폭을 넓혀갔다. 1999년 ‘내 마음의 풍금’에서 총각선생님을 짝사랑하는 늦깎이 초등학생을 연기했던 그는 곧이어 출연한 영화 ‘해피엔드’에서 불륜에 빠진 유부녀 역할을 맡았다. 단발머리의 순수한 초등학생 ‘홍연’에서 아픈 아기를 집에 재워놓고 나와 애인과 정사를 벌이는 ‘보라’로의 파격적인 변신은 관객들로 하여금 전도연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전도연이 새 작품에 출연할 때마다 파격적인 변신이 화제가 됐지만 그가 지금까지 맡은 역할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이라는 점. 이는 ‘배우 전도연’이 아닌 ‘인간 전도연’의 모습과 꼭 닮아 있다. 전도연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의 모토는 사랑이다. 난 사랑이 너무 좋다. 사랑에 관한 책이 좋고, 사랑에 관한 노래가 좋고, 사랑에 관한 영화가 좋다. 책을 사도 10권 중 8∼9권은 연애소설이다. 내 인생에서 사랑을 빼면 난 갑자기 할머니가 돼버릴 거다.”

    그래서인지 전도연은 연기할 때만큼은 상대배우와 진짜 사랑에 빠진다. 촬영장에서는 같이 연기하지만, 촬영이 끝나면 언제 손을 잡고 포옹을 했냐는 듯 남남이 되어버리는 배우들도 있는 반면 전도연은 상대배우와 진짜 연애라도 하는 듯 친해져야 제대로 연기할 수 있다고 한다. 전도연 연기의 근원은 바로 넘치는 사랑에 있다. 그와 함께 작업했던 한 사진작가는 전도연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전도연은 에너지가 넘치는 배우다. 슬픈 표정을 지으라고 하면 조금 뒤에 아예 펑펑 울어버려 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다. 그 풍부한 감정 때문에 다양한 표정과 연기가 나오는 것 같다.”

    전도연은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도 절절한 사랑을 연기하는 중이다. 그가 맡은 역할 윤재희는 대통령의 딸이자 외교관으로 ‘빵빵한’ 배경을 가졌지만 눈빛과 표정엔 어김없이 이루고픈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이 서려 있다.

    “보이는 것에만 의존하는 현실적인 사람이 볼 수도 없고 손에 넣을 수도 없는 사랑을 기다린다. 내일은 믿지 않고 사랑은 믿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누구보다 강하고 당돌해 보이지만 스스로 나약하다고 말하는 전도연이 한 말이다. 사랑을 믿고 사랑에 집착한다는 전도연의 농익은 연기는 그의 계속된 사랑과 연기, 그리고 삶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듯하다.

    사랑으로 농익은 연기 전도연 VS  정통 멜로 연기 도전장 낸 김정은

    어떤 역할이든 코믹함이 배어 있는 ‘김정은표 캐릭터’로 바꿔놓은 김정은. 지난해 ‘파리의 연인’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그가 얼마 전 막을 내린 ‘루루공주’의 흥행 참패를 딛고 정통 멜로 연기에 도전했다. 첫사랑과 꼭 닮은 고교생 제자와 사랑에 빠지는 학원 강사를 연기한 김정은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고 한다.

    있는 대로 얼굴을 찡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쉴새없이 입술 모양을 바꾸는 여자. ‘내 남자의 로맨스’에서는 ‘현주’였고, ‘파리의 연인’에서는 ‘태영’이었으며, ‘루루공주’에서는 ‘희수’가 됐지만 어수룩해 보이는 그 표정은 여전하다. 그게 바로 김정은이다.

    애드리브에 강한 배우

    김정은에게 ‘파리의 연인’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밝고 꿋꿋하며 따뜻한 가슴으로 사랑할 줄 아는 여자. 그러면서 조신하거나 우아한 여성미와는 거리가 멀고, 솔직하고 담백하며 발랄하고 귀여운 여자. ‘파리의 연인’의 태영은 시청자들에게 ‘김정은표 연기’의 종합선물세트를 선사하는 좋은 기회였다.

    프랑스어도 할 줄 모르고, 가진 돈도 없으면서 프랑스 파리로 훌쩍 날아가 삶을 개척하는 태영은 어느 날 부잣집 가정부로 일하게 된다. 남들처럼 좋은 집안에 태어나 ‘폼 나게’ 유학 생활을 하는 건 아니지만 태영은 당당하고, 자존심도 강하다. 가정부로 일하는 집의 주인인 기주(박신양)가 아무리 대기업 오너의 아들이라지만 꿇릴 이유가 없다.

    김정은은 특유의 발랄한 연기로 태영의 캐릭터를 소화했다. 드라마 기획 단계부터 머리모양과 옷, 가방 등에 대해 고민한 덕분에 캐릭터를 살리기가 훨씬 수월했다. 극중 태영이 늘 등에 메고 다니던 가방은 실제 김정은이 사용하던 헌 가방이다.

    김정은은 ‘애드리브에 강한 배우’로 손꼽힌다. 상당한 내공이 있어야만 자연스러운 애드리브가 가능하다. ‘애드리브의 달인’ 소리를 듣는 탤런트 임현식은 “애드리브는 밥상 위의 반찬, 그 안에 들어간 양념과 같다. 좀 싱거우면 내가 간장도 넣어보고 소금도 쳐보고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임현식의 애드리브가 꽤 많은 독서량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김정은의 애드리브는 특유의 낙천적이고 사교성 많은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정은의 애드리브 중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아무래도 한 신용카드 CF다. 지금까지 회자되는 ‘여러분, 부자되세요. 꼭이요~’라는 광고카피에서 ‘꼭이요~’는 김정은의 애드리브다. 이것은 촬영 당시 김정은이 쏟아낸 무수한 애드리브 중 하나에 불과하다.

    확실하게 망가지는 연기

    김정은은 대학교 2년 때이던 1996년 MBC 공채 탤런트 시험에 합격했다. 그보다 앞서 ‘불의 태양’(1994), ‘아찌아빠’(1995) 같은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했지만 당시의 그를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MBC 공채 탤런트로 여러 편의 드라마에 출연한 김정은은 ‘예스터데이’를 통해 가능성을 인정받는다. 주인공인 김소연의 고등학교 친구 역을 맡은 김정은은 본래 2~3회 분까지만 등장하는 설정이었으나 철저한 준비와 발군의 실력으로 높은 점수를 따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꾸준히 출연했다.

    김정은이 시청자의 기억에 확실히 각인된 건 1998년 차태현과 함께 출연한 드라마 ‘해바라기’를 통해서다. 당시 약간 맹한 듯 천진난만한 정신병원 환자 ‘순영’을 연기한 김정은은 배역을 위해 삭발을 하기도 했다. 차태현과 콤비를 이룬 코믹 연기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여러 편의 CF에도 출연했고, 코믹 연기에 관한 한 실력을 인정받았다.

    2002년 첫 주연을 맡은 영화 ‘재밌는 영화’에서 김정은은 망가지는 게 어떤 건지 확실하게 보여줬다. 최근엔 여배우가 엽기적인 연기를 보여 인기를 끄는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여배우, 그것도 주인공이 망가지는 연기를 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코믹한 연기로 상승세를 타던 김정은은 영화 ‘나비’를 통해 정통 멜로 연기에 도전했다. 그러나 흥행에 참패하자 한 우물을 파는 데 주력한다. ‘가문의 영광’ ‘불어라 봄바람’ ‘내 남자의 로맨스’ 등의 영화에서 모두 코믹한 연기를 선보였고, 드라마 ‘파리의 연인’과 최근작인 ‘루루공주’에서도 보는 이에게 웃음을 주는 연기를 했다.

    김정은은 올해를 연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삼으려는 듯하다. ‘파리의 연인’의 대성공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됐던 ‘루루공주’가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한 가운데 김정은이 다시 한 번 정통 멜로 연기에 도전한 영화 ‘사랑니’가 개봉됐다.

    김정은은 그동안 어떤 식으로든 맡은 캐릭터를 ‘김정은화’했다. ‘김정은화’란 코믹함이 바탕이 된 김정은 특유의 연기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김정은이 배역에 흡수되기보다 그 캐릭터를 김정은 쪽으로 흡수하는 ‘능력’을 보여 왔다. 그러한 능력이 오늘의 김정은을 만든 일등 공신인지도 모른다.

    “‘진짜 연기’를 해보고 싶다”

    하지만 김정은 자신은 늘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다. 지난해 ‘파리의 연인’으로 SBS 연기대상을 받았을 때, 김정은은 정말 어쩔 줄 몰라 했다. “이건 내가 받을 상이 아닌 것 같다”는 수상소감은 그의 진심이 담긴 말이다. 김정은은 “‘진짜 연기’를 하는 배우의 흉내라도 내보고 싶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드라마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김정은은 그 ‘정상’의 자리에 서서 불안과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김정은이 ‘사랑니’ 시나리오를 받아든 때가 드라마 ‘파리의 연인’이 끝난 직후였다. 김정은이 과감히 ‘사랑니’를 택한 것만 봐도 연기 변신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절실했는지 짐작이 된다.

    ‘사랑니’는 그간 그에게 들어온 다른 시나리오들과는 전혀 달랐다. 그동안의 시나리오는 그에게 요구하는 캐릭터가 뻔했던 데 반해, ‘사랑니’의 ‘인연’은 어떤 연기를 해야 하는지 얼른 와닿지 않는 인물이었다. 시나리오를 세 번 읽고 나서야 김정은은 매니저에게 감독을 만나게 해달라고 얘기했다. 그때 만난 정지우 감독은 김정은에게 “인기의 정점에 서 있는데도 어딘지 불안해 보인다”는 얘기를 건넸다고 한다. 정지우 감독의 얘기를 듣고서 김정은은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김정은은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연기’를 했고,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고 한다.

    ‘사랑니’에서 김정은은 과장된 연기 대신 진지한 연기를 보여준다. 그동안 김정은이 보여준 모습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다소 밋밋해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분명 색다르다. 클로즈업 상태로 다양한 표정과 애드리브를 보여주는 대신, 카메라에서 멀리 떨어져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전체를 보여주려고 한다.

    ‘사랑니’를 촬영한 뒤이기에 ‘루루공주’에 출연하며 전과 다른 괴로움을 느꼈을 법하다. 그는 ‘루루공주’ 촬영 도중 인터넷 홈페이지에 드라마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아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의 처신에 대해 아직까지 논란이 있지만 “억지스러운 드라마 전개에 진심으로 연기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데는 분명 배우로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잘하는 코미디 연기와 하고 싶은 멜로 연기 사이에서 갈등하는 김정은이 앞으로 보여줄 연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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