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사람과 사람

장애인 위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신발 만드는 사람, 남궁정부

“생명 같은 오른팔 잃고 나니 그들의 아픔이 보였어요”

  •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 사진·박해윤 기자

장애인 위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신발 만드는 사람, 남궁정부

2/6
한 팔을 잃고 나자 본드를 묻혀가며 평생 익힌 기술이 무용지물이 될 처지였다. 그는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기가 갑갑해 별생각 없이 평소 절친했던 업계 동료들을 찾아 나섰다.

“그중에 나를 무척 따르던 후배가 있었습니다. 자기 제화점을 운영하던 그 후배가 어느 날 이러는 거예요. ‘형님이 여기 오시는 건 하루 열 번이라도 좋은데, 제가 약주나 점심 대접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때 아, 내가 뭐라도 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얼굴엔 새삼 세상 인심을 본 것 같은 씁쓸한 표정이 스쳤다.

공부와의 전쟁

구두장이를 천직으로 알고 외길을 걸어온 장인에겐 생명과도 같은 오른팔을 잃었지만, 희망은 전혀 뜻밖의 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수(義手)를 맞추려고 서울 응암동의 의료보장구 매장에 드나들던 남궁 소장은 그곳에 진열된 장애아동 신발에 자꾸 눈길이 갔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신발에 관심을 갖는 그를 눈여겨보던 사장이 “장애인용 신발을 만들어보면 어떠냐”고 권했다.



“자기 발에 맞는 신발을 구하기 힘든 장애인의 이야기를 듣자 의욕이 솟았습니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처음으로 장애아용 신발 한 켤레를 완성했는데, 아이의 담당의사가 잘 만들었다고 칭찬했습니다.”

불구의 몸으로 뭘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막막했던 그에게 희망의 서광이 비치는 순간이었다. 문제는 왼손을 오른손처럼 능숙하게 사용하도록 단련하는 일이었다. 이때부터 6개월 동안 피나는 노력이 시작됐다. 자음, 모음 철자 쓰기부터 왼손으로 밥 먹기까지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매달렸다.

“이젠 한 손으로 하는 일에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국수 같은 면 음식을 먹을 때 쇠젓가락 대신 나무젓가락을 쓰는 것, 삼겹살을 쌈 싸먹을 때 좀 불편한 것말고는 특별히 못할 일이 없지요.”

자기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종이에 주문받은 신발 도안을 그리고 즉석에서 끌로 쓱싹쓱싹 능숙하게 잘라냈다. 그 작업을 지켜보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배운 기술을 썩히지 않고 장애인 신발을 만들겠다고 하자 “그것 해선 밥도 못 벌어 먹는다”며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장애인이 되고 나서야 장애인이 당하는 고통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발에 맞는 신발이 없어 제대로 걷지 못하는 장애인들을 보니까 그 아픔이 얼마나 클지 안타까웠어요.”

평생 배운 구두 만드는 기술로 장애인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어 보였다. 그러나 장애인 신발을 만드는 작업은 생각처럼 간단치 않았다.

“구두 만드는 일이 겉으로는 쉬워 보여도 그 과정을 관찰하면 엄청난 과학이 숨어 있습니다. 특히 발 모양이 일반인과 다르고, 양다리의 길이도 다른 장애인의 구두는 훨씬 더 과학적이고 정확한 설계와 제작공정을 요구합니다. 1㎜의 오차도 생기면 안 되니까 우선 발에 대해 엄청나게 공부해야 합니다.”

장애인 구두 제작은 미개척 분야였기에 축적된 기술이나 참고할 만한 자료가 전무한 실정이었다. 세상에 없는 구두를 만들기 위해 그의 손과 발이 돼준 사람은 둘째아들 한균(35)씨다. 한국외국어대 대학원에서 영어를 전공한 아들이 족부의학 관련 원서를 번역한 뒤 A4용지에 타이핑해서 30~40장씩 책처럼 묶어주면 남궁 소장은 그걸 읽으며 지식을 쌓아갔다.

발 뼈와 근육의 신경해부도 등이 실린 원서는 아무리 번역해서 본다고 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마저 중퇴한 그는 말 그대로 ‘공부와의 전쟁’을 치렀다. 더구나 장애인 신발을 만들 때 사용되는 각종 특수 소재는 대부분 외국에서 생산되는 것들이었다.

“관절, 골격, 근육, 발 모양, 발바닥 형태에 대해 하나하나 공부했습니다. 궁금한 건 대학병원 재활의학과와 정형외과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물어보고, 인터넷에서 신발 제작에 관한 자료도 샅샅이 수집했습니다. 당시 아들이 타이핑해준 자료가 빛깔이 바랜 채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의 연구소 한쪽 벽면에는 각종 질병과 사고로 뒤틀리고 절단되고 일그러진 각양각색의 발 모양을 촬영한 사진 100여 장이 걸려 있다. 그 한 장, 한 장이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귀한 자료라고 말하는 남궁 소장. 그는 발을 공부하고 장애인 신발을 만들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이 하늘의 별만큼이나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 생산량 여덟 켤레

“장애인은 발목, 발가락 등 모든 관절에서 힘이 실리는 부분이 비장애인과 다릅니다. 또 같은 장애를 갖고 있어도 비정상적 형상이 제각기 다릅니다. 그래서 고객이 오면 제일 먼저 족관절을 살핍니다. 소아마비 환자의 경우 다리가 짧다고 뒤꿈치를 들고 걸으면 다리 길이가 점점 더 짧아집니다. 흔히 말하는 까치발이 시간이 갈수록 심해져요. 따라서 아킬레스건의 길이와 종아리 근육의 강직도가 달라집니다.”

2/6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 사진·박해윤 기자
목록 닫기

장애인 위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신발 만드는 사람, 남궁정부

댓글 창 닫기

2019/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