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맘에 드는 그림 한 점을 방금 샀다”는 그는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하더니 그림값으로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거액(급매로 구입한 그림이라 가격은 공개하지 않는다)을 지급했다. 오지호 화백의 6호짜리 그림(1965년 작품)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사진기자의 입이 쩍 벌어졌다. 황씨의 얼굴에 뜻을 가늠하기 어려운 미소가 감돌았다.
“지금의 내 마음, 아무도 모를 겁니다.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지. 제가 운이 좋은 거지요. 싸게 산 건 둘째 치고 이렇게 좋은 그림을 얻었으니.”
“돈 생각하면 미술관 못 지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줄도 모르고 소년처럼 즐거워하던 그는 “그림도 부동산처럼 돈이 급하면 싸게 팔아야 하기 때문에 일반 거래가보다 낮은 금액에 거래가 되기도 한다”며 “인사동에 급매로 나오는 좋은 그림이 종종 있다”고 했다. 그는 “인사동에서 얼굴 없는 큰손으로 소문이 났더라”는 필자의 말에 손사래를 쳤다.
“큰손은 무슨. 갤러리 현대의 박명자씨도 있고, 가나(아트센터)의 이호재씨도 있는데. 그런 이들에 견주면 나는 ‘쨉’도 안 돼요. 그쪽에서 어떻게 나를 알았는지, 만나자고 연락이 왔는데 안 만났어요. 만나서 딱히 할 이야기도 없고, 만날 이유도 없어서요.”
황씨가 구입한 오지호 화백의 그림은 10월20일 개관한 휘목미술관(전북 부안군 진서면 소재)에 전시됐다. 변산반도 바닷가 인근 운호초등학교 폐교 부지에 세워진 휘목미술관은 개인이 지은 미술관으로는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그가 시골에, 그것도 서울에서 차로 4시간 남짓 달려야 닿는 ‘촌구석’에 미술관을 짓겠다고 하자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이 말렸다고 한다. 돈 안 되는 사업에 큰돈 들이지 말라고들 했다.
▼ 미술관을 짓게 된 동기가 있습니까.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가죽을 남긴다는데, 저는 이 세상에 남겨놓을 게 없더라고요. 사업하는 사람은 기업체를 남길 거고, 학자는 이름을 남길 텐데. 딱히 남길 게 없으니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남기고 죽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인터뷰에 응하는 것도 사실 부끄럽습니다. 내가 몇 번 거절했잖소. 내 과거를 들춰내는 것도 좀 뭣하고. 거창한 미술관을 만든 것도 아니고. 그냥 나 같은 서민이 마음껏 그림을 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었을 뿐인데.”
휘목미술관은 3만3000여m2(1만여 평)의 부지에 2곳(588m2, 628m2)의 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미술관 야외에는 조각공원이 조성돼 있다. 야외음악당과 전시실 2곳이 더 들어설 예정이다.
▼ 미술관을 짓는 데 적지 않은 돈이 들었을 텐데요.
“돈 생각하면 미술관 절대 못 지어요. 사실, 미술관 짓는 데 돈이 그렇게 많이 드는지도 몰랐어요. 한 40억~50억(원)이면 짓겠지 싶었는데, 해보니 그걸론 턱도 없습디다. 미술관 짓는다고 하니 시골인데도 땅값을 만만찮게 부르고. 그림값이 폭등하기 전이었다면 좀 덜 들어갔을 텐데. 몇 대째 화랑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왜 미술관을 짓지 않나 궁금했는데 지어보니 이해가 가더라고요. 나 같은 ‘막무가내’나 짓는 게 미술관입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