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서형 전 금호건설 사장은 은퇴후 미대에서 공부한 4년을 인생에서 가장 알찬 시기로 꼽는다.
과 학생들이 어울려 1박2일 일정으로 다녀오는 스케치 여행도 딱 한 번 참가했다. 함께 술 마시고 뒤풀이를 하면서 젊은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 “마음으로는 또 가고 싶은데, 노는 재주도 별로 없고 노래 한 가락도 잘 못하는 데다 나 때문에 학생들이 불편해져서 분위기 깰까봐” 더는 합류하지 않았다.
대학 캠퍼스에서 보낸 4년은 모방과 아류를 허용하지 않는 예술세계에서 자신만의 미술철학과 독특한 주제를 찾기 위한 노력의 시간이었다. 그 결과 이 전 사장은 평생 추구할 화제(畵題)를 발견했다.
“정중동(靜中動)과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의 바탕인 기(氣)를 화두로 삼아 그림에 담고 싶어요. 정은 음이요 동은 양인데 기는 음에서 양으로, 양에서 음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가장 활성화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예를 들면 기업에서 적자는 음이고 흑자는 양이죠.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서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러시아 출신 프랑스 화가 칸딘스키(1866~1944)의 저서 ‘점·선·면’에 담긴 철학과 접목시켜 동양적이고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표현을 담아 세계 사람이 공감할 수 있게끔 그리는 것이 그의 목표다. 첫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 ‘사계(四季)’와 ‘정중동’ 연작은 이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살풀이춤 등 민속춤 공연장을 찾아다니고, 동양철학 대가로부터 읽어야 할 책을 추천받고, 기를 온몸으로 느껴보기 위해 단전호흡을 배운 것은 자신만의 미술철학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그는 새해 초 미국에 건너가 세계의 화가들이 함께 어울려 작업하는 입주 작가 스튜디오에서 그림 공부를 하며 몇 달간 머물 예정이다. 해외 전시회 스케줄도 조만간 확정될 예정이다.
이 전 사장이 대학편입을 준비할 때 부인은 “환갑 노인네가 무슨 대학이냐, 문화센터에 가서 취미로나 할 일이지…”라며 핀잔을 줬다. 하지만 이 전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정식으로 배워 제대로 하지 않으면 종이와 물감 낭비일 뿐이라는 것. 그의 목소리엔 힘이 넘쳤다.
“두 번째 전시회를 지켜봐주세요. 똑같은 그림은 그리지 않겠습니다. 틀림없이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거예요. 남들이 좋아하는 그림보다 좋은 그림, 명작을 그리기 위해 남은 삶 동안 부단히 노력할 겁니다.”
“4B 연필이 뭡니까?”
2007년 8월 ‘지구촌 풍경 기행’이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개인전을 연 강현두(康賢斗·71) 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언론학 석·박사 과정을 마친 뒤 KBS PD를 거쳐 40년째 대학 강단에 서고 있다. 그림을 시작한 뒤 7년여 동안 여러 차례 단체전에 출품하고 개인전도 열었다. 그 결실은 지난해 대한민국 수채화대전 입선, 세계평화미술대전 특선, 목우회 공모 미술대전 입선 등의 상복(賞福)으로 돌아왔다.
첫 번째 개인전을 열기 전까지 강 교수는 가족과 가까운 지인 외에는 아무에게도 그림 그리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성과를 낸 뒤 공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2004년에 연 첫 전시회는 ‘신고식’인 셈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그림 얘기보다는 서로 안부를 묻는 데 정신이 팔려 신고식은 ‘만남의 장’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