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 이사장은 무호적자들에게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준 일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고 말했다.
“법률구조공단이 국가기관이긴 하지만 필요한 모든 부분을 국가가 해결해줄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법률상담서비스 자체가 수익사업이 아니다 보니 국가 예산으로 해결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어요. 예를 들어 개인파산을 신청한 사람들은 재기하지 못하면 사회에 커다란 짐이 될 수밖에 없지만 현실적으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취업 알선을 비롯해 생계유지와 안정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이는 법률적 테두리를 벗어나는 일이지만 법이 가진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범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죄는 엄중히 다스려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법이 가진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법률구조공단은 이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고자 노동부와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습니다. 신용회복위원회에서도 갱생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고요. 필요에 따라서는 기업이 적극 나서기도 합니다. 농협에서는 농민들의 법률소송 관련 비용을 지원해주고, 수협에서는 어민들의 법률소송에 관련된 비용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KT·G에서는 담배소매인 등 담배인삼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법률소송 관련 비용을 지원해주고 있어요. 신한은행도 생활보호대상자와 탈북자, 의사상자에 대해 무료 법률지원서비스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사실 무슨 일이든 개인이 독단적으로 나서서, 혹은 국가기관 혼자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각자의 자리에서 얼마만큼 공조하고 협조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취업알선 서비스도 제공
▼ 개인회생·파산종합지원센터는 정 이사장님께서 취임하신 이후에 생긴 것으로 압니다.
“2008년 취임 당시 경제상황이 몹시 안 좋았습니다. 이런 시기에는 체불임금과 관련된 갈등이 대폭 증가하지요. 이 문제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초 마련한 것이 개인회생·파산종합지원센터입니다. 그동안 개인회생과 파산을 신청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법률지원서비스를 제공해왔는데, 앞서도 말했듯 공단에서 지원하는 것은 단순한 법률상담 수준이 아닙니다. 취업알선과 재무설계 등 재기에 필요한 다양한 서비스를 원스톱 시스템으로 병행한 것이 좋은 성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인파산을 신청했던 사람들의 80% 이상이 사회 일원으로 복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고마운 일입니다. 다행히 올해는 국내 경제상황이 조금씩 나아져 체불임금 관련 접수 건수 역시 감소하고 있습니다.”
▼ 법조계에 몸담고 있을 당시에도 범죄자의 계도에 적극 앞장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수부 검사 생활을 오래했는데 검찰 재직 당시에는 사회 비리를 척결하는 데 긍지와 사명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나니 기억에 또렷하게 남는 것은 내가 사건을 맡았을 당시에는 피고인이었지만 이후 잘못을 뉘우치고 개과천선해 사회에 꼭 필요한 일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그는 이 부분에서 만면에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기억할는지 모르겠지만 김영삼 정부 시절, 우리나라 최초의 해커 사건이 있었어요. 이 사건을 처음 맡았을 때는 어마어마한 거물급 스파이가 관련된 줄 알았는데 범인을 잡고 보니 순진한 재수생이었습니다. 은행 휴면계좌에 묶인 돈이 수백억원이라는 뉴스를 보고 그걸 빼내 학비도 마련하고 집에도 보탬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죄는 컸지만, 이 친구를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시키면 국가로서는 오히려 큰 손해를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해커나 인터넷상에서의 국가안보에 대한 인식이 뚜렷하지 않았을 때였어요. 이런 재능을 가진 인물이 성장해 국가에 이익이 되는 큰일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다행히 그 학생은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이후 국가에서 지정하는 신지식인으로 발탁되어 공직에서도 근무했습니다. 국가 정보를 지키는 보안 관련 업무를 맡았지요. 그 후에는 대기업 임원이 되어 기업정보를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커다란 보람을 느끼죠. 물론 안타까운 일도 있습니다. 특히 톱스타였던 한 가수가 마약사건에 연루되면서 모든 사회적 명망을 잃어버린 일이 그래요. 죗값을 치른 그는 이후 한 시인과 함께 교도소를 순회하며 공연을 펼치는 교화원 역할도 톡톡히 해주었지요. 그의 행적이 고마워서 수소문했더니 큰 병을 얻어 춘천의 한 병원에 입원한 상태더라고요. 그제야 그를 찾아가 당시 검사로서의 소임을 다하느라 주고받지 못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몹시 아팠습니다.”
▼ 그동안 법률구조공단이 거둔 이런저런 성과도 설명해주시죠.
“현재 법률구조공단은 전국적으로 72개 지부, 출장소, 지소를 두고 있으며 이곳을 통해 법률상담 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한 해 120만명이 넘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법률구조공단의 존재를 모르거나, 안다고 해도 무엇을 하는 곳이며 어떻게 이용하면 되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법률구조공단의 법률상담은 국민 모두에게 무료로 열려 있습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 사회적으로 약자의 처지에 놓인 이들은 법을 몰라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알아도 여건상 법률적인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이들을 위해 민·가사 소송대리와 형사변호 등 법률구조사업을 수행하는 것이 법률구조공단의 주요 업무입니다. 기초생활수급자, 농어민, 장애인, 임금체불 피해근로자, 한 부모 가족 등에게 전액 무료 법률지원을 해주는 것은 물론 전 국민의 50%에 해당하는 월수입 260만원 이하 국민에게도 민·형사, 행정, 헌법소원 등 전 분야에 걸쳐 소송업무를 대행해주고 있습니다. 지난해 성탄절 즈음에는 경기도의 한 노인요양시설을 방문해 호적이 없는 어르신들의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드는 기획소송사업도 진행했습니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 땅을 밟고 산 엄연한 국민임에도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 아무런 권리도, 의무도 행사할 수 없었던 분들이었거든요. 고령의 어르신들이 주민등록증을 손에 쥐고 눈물을 글썽이며 기뻐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무호적자로 살아가는 사람이 1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이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를 전달하고 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 역시 법률구조공단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