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영 프랑켄슈타인’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신체 장기를 이용해 괴물을 만드는 장면.
“어떤 남자건 가슴에 품을 아내가 있고, 어떤 짐승이건 자기 짝이 있는데, 나만 혼자 살라는 것이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부탁한 소원이 이뤄지지 않자 드디어‘그것’은 ‘아버지’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향한 분노를 제대로 표출하기 시작한다. 프랑켄슈타인이 사랑하는 존재들을 파괴하는 것, 그의 ‘편’이라 믿었던 존재들을 하나씩 이 세상에서 삭제하는 것. 그것이 괴물이 생각한 ‘복수’의 방식이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의 공통점은 단지 그들이 가장 인기 있는 공포물의 주인공이라는 점에 그치지 않는다. 드라큘라를 ‘분석’하기 위해 동원된 방법과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하기 위한 방법은 모두 ‘과학’이었다. 즉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은 모두 ‘과학의 승리와 과학의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문제적 인물이다. 드라큘라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각종 과학적 도구를 동원하는 사람들에게 반 헬싱은 말한다.
“우리의 과학이 모든 것을 다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문제라네. 과학은 설명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하면 아예 설명할 것이 없다고 말하지.”
드라큘라의 접근을 막기 위해 반 헬싱 일행이 사용한 것이 첨단 과학무기가 아니라 십자가와 마늘이었다는 것, 드라큘라를 처단하기 위해 동원된 무기도 총이 아니라 칼이었다는 점은 현대 과학이 드라큘라를 실제로 저지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점을 증명한다.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적인 것’과 ‘비과학적인 것’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면서 ‘논리’라는 거대한 환상을 믿는 인간의 이성을 풍자하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드라큘라는 인간인가 비인간인가, 드라큘라는 죽었는가 살았는가. 우리는 이런 질문에 논리적으로만 대답할 수 없다.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인가 괴물인가,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의 승리인가 과학의 실패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도 쉽게 단정할 수 없다. 드라큘라는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닌 존재, 죽었지만 살아 있는 존재이며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이면서도 괴물이고, 과학의 승리와 실패를 동시에 보여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도 아니고 살아 있는 자도 아닌 존재, 저승의 계단을 드나들면서 밤이나 낮이나 저승에서 나와 사람들 곁에 머무는 존재, 증오와 사랑, 선과 악 같은 대립적인 것을 합하는 존재, 모든 규칙을 위반하는 존재, 구세주이자 지옥의 사자, 죽음 속에 생명을 불어넣는다고 주장하는 검은 그리스도, 어두운 힘을 발산하는 존재, 배고픔과 목마름을 지닌 괴물 같은 존재, 공포와 죽음의 갈망을 지닌 존재, 고독을 두려워하는 존재.
-콜로드 르쿠퇴, ‘뱀파이어의 역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