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덩샤오핑 동상 앞에 선 김상문 회장.
“군대에서 생각한 게 ‘마흔 살까지는 세상 공부를 하고, 그다음엔 내 사업을 하자. 그리고 60세가 되면 사회에 좋은 일을 하며 살자’였다. 직장을 다니다 마흔 살이 되던 1991년 사표를 내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채석 사업이었다. 당시 200만호 주택 건설 사업과 맞물려 유망하다고 확신했다. 그는 인천에 있는 돌산을 주목했다. 지금 공장과 사옥이 있는 부지다.
“돈도 없었지만 무작정 땅주인을 일주일에 두 번씩 찾아갔다. 처음엔 만나주지도 않았고, 겨우 만났을 때에도 외상으로 달라고 했더니 말도 못 붙이게 했다. 그렇게 1년 2개월 동안 일주일에 두 번씩 총 114번을 찾아가니까 나를 믿고 외상으로 팔겠다고 하더라.”
▼ 갚았나.
“6개월 만에 갚았다. 당시는 채석 허가만 받으면 레미콘·아스콘 회사에서 선불을 주고 돌을 선점했으니까.”
114번을 찾아간 당시의 무모한 끈기와 정성을 그는 지금 기업정신으로 삼고 있다.
경영혁신형 중소기업
재미있는 건 아이케이는 친환경 재생산업 회사인데, 시작은 채석 사업, 일종의 환경 파괴 사업으로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그땐 환경이 뭔지도 몰랐다. 산의 돌을 캐서 골재로 팔았는데, 다른 사업자들은 산을 다 들어내면 다른 곳으로 사업장을 옮겼다. 그런데 돌은 지하에도 있지 않은가. 땅을 파서 돌을 캐면 산을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지하 60m까지 채석을 했다. 당시 법에 지하 채석에 대한 기준이 없어 내가 관련 기관에 문의하고 법제처 등에 유권해석을 의뢰해 지하 채석을 할 수 있게 선례를 남겼다.”
더 이상 돌을 캘 수 없게 되면 파내려간 공간을 메워야 한다. 보통은 흙으로 메우는데, 그는 건설폐기물을 중간 처리해 생산한 재활용 골재로 메웠다.
▼ 폐기물로 메우면 땅이 오염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폐기물로 메운 것이 아니라 반입된 건설폐기물은 분리·선별·파쇄의 중간처리 과정을 거쳐 폐기물은 지정된 곳에서 소각이나 매립을 하고,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 생산한 골재는 순환골재라 해서 재활용이 가능하다. 이처럼 재활용이 가능한 골재로 메운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는 골재 리사이클링 사업에 눈을 뜨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건설폐기물 중간처리 사업에 뛰어든 그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세계 최대 규모로 건설폐기물 중간처리 및 순환골재 생산시설을 옥내 공장으로 지었다. 옥내화 시설은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냄새를 차단할 뿐 아니라 비산먼지를 제거해 대기질도 개선하는 말 그대로 친환경 시설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기름이나 중금속으로 오염된 흙을 정화해서 깨끗한 흙으로 만드는 토양정화 사업, 해양투기가 전면 금지된 하수슬러지를 고화시킬 수 있는 고화재를 생산하는 사업도 한다. 최근엔 기후변화연구원을 설립해 기후변화 및 에너지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아이케이는 전 직원 100여 명, 연매출 600억 원 규모의 크지 않은 회사다. 하지만 특허등록 13건, 특허출원 1건을 보유할 정도로 기술개발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다. 한국지질연구원, 산업자원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등 정부부처와 공동연구도 여러 건 진행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정부에서 경영혁신형 중소기업으로 선정한 이유다.
▼ 경영에 어려움은 없었나.
“적자를 보거나 재정적 어려움을 겪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새로운 사업에 투자할 때도 실패하더라도 회사에 어려움이 없을 정도 내에서만 진행했다. 올인(all in)하면 전체가 흔들려서 안 된다. 회사 신용도도 AA를 유지한다. IMF외환위기 때도 우리 어음은 유통됐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