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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號 70돌 | 김호기 교수가 만난 우리 시대 지식인

‘국민’ ‘민족’ 벗어나 ‘세계시민’으로 진화해야

사회학자 송호근

  •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kimhoki@yonsei.ac.kr

‘국민’ ‘민족’ 벗어나 ‘세계시민’으로 진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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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의 한계

‘국민’ ‘민족’ 벗어나 ‘세계시민’으로 진화해야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송호근 나는 한 번도 국가 우선의 가치에 대해 의심해본 적이 없어요. 대학교 때도 그랬고, 1987년 민주화운동까지 국가중심주의에 대해 회의해본 적이 없어요. 내가 사회적으로 눈을 뜰 때부터 시작해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대통령이 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셨을 때 운구행렬을 따라갔어요. 남영동 쪽으로 해서 국립묘지까지 갔어요. 많은 사람이 울면서 따라가던 기억이 나요.

김호기 1974년이었지요. 제가 중학교 다닐 때였습니다.

송호근 굉장히 슬프더라고요. 국모가 돌아가셨으니까요.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을 때엔 무엇이라고 말하기 쉽지 않은 상반된 감정이 들었어요. 분명한 것은 국부가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었어요. 대학원을 다닐 때였는데, 10월 26일 그날, 하루 종일 서울 시내를 헤맸어요.

막막하더라고요. 20대 중반까지 굳건하게 기대왔던 국가주의의 지주가 무너졌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비어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한편으로 생기고, 그다음엔 비어 있는 것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됐어요. 국가란 나보다도 우선시돼야 할 성스러운 불멸의 실체로 판단했던 거지요.



돌아보면, 산업화의 양식이나 민주화의 양식은 동원의 방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같다고 생각해요. 산업화가 반공 이데올로기로 일사불란하게 진행돼 왔고 진보 세력을 밀어붙인 것이라면, 민주화 역시 보수 세력을 밀어붙인 것으로 볼 수 있어요. 그 방식은 비슷했다고 봐요. 산업화든 민주화든 동원해서 이루는 것, 밀어붙여서 빈자리에 제도를 건설하는 것이었어요.

김호기 지난 70년은 ‘국가의 시대’였습니다. 국가는 우리 삶의 모든 것이었지요. 국가의 발전은 나의 발전이었고, 국가의 영광은 나의 영광이었습니다. 문제는 국가주의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없다는 점입니다. 국가가 존재하는 궁극적 이유도 개개인 삶의 행복을 증진하는 데 있습니다. 삶의 행복이란 물질적 빈곤에서 벗어나고 말과 생각의 자유를 누리는 것에 있을 터인데, 국가란 이를 위한 조건이지 그 목표는 아닐 것입니다.

이제 광복 70년을 맞이해 국가의 관점이 아니라 개인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를 사유할 때가 됐습니다. 개인주의에도 물론 빛과 그늘이 존재합니다. 개인주의에는 본디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인 ‘자율’과 자기 이익만을 극대화하는 ‘이기(利己)’가 공존하기 때문이지요. 중요한 것은, 국가로부터 일방적으로 동원되는 게 아니라 개인이 ‘더 많은 자율, 더 많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사회 혁신 기획이 필요하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송호근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한 제도적 기초는 다 놓았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상대방을 척결하는 방식으로는 앞으로 못 나아간다는 점이에요. 예전에 사회적 자본 얘기도 나오고 사회적 타협 얘기도 나오고 그랬는데, 그게 중요한 건 알아요. 그렇지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경험칙이 쌓여 있지 않잖아요. 이 문제에 대해선 지난해 우리가 겪은 사건들이 보란 듯이 기회를 줬다고 봐요. 그런데 이걸 국가가 다시 가져가버렸잖아요.

김호기 이번 학기에 ‘현대사회론’이라는 강의를 했습니다. 학생들에게 내준 과제가 한국 사회를 뭐라고 규정지을 수 있겠느냐, 너희들 경험을 바탕으로 한번 써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불안사회’와 ‘불신사회’였습니다. 세대 문제는 사회학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인데, 요즘 우리 사회에선 나이 든 세대는 나이 든 세대대로 불행하고 젊은 세대는 젊은 세대대로 불행하다고 느낍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 사회가 모범적인 산업화와 모범적인 민주화를 선도적으로 이뤘다고 얘기하는데, 정작 지금 우리 사회에서 행복한 세대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일본화하는 한국 사회

송호근 중국에 갔더니 거기서도 제일 큰 문제가 세대 문제이더군요. 그게 부(富)의 문제이고 기회의 문이 닫히는 것이지요. 시진핑 국가주석이 대(大)서부 개방을 하는 것은 세대적 불만의 지리적 대응인 것으로 보여요. 서부 지역 도시에서 보니까 동부 연안 지역으로 갔던 젊은이들이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요. 개발되면서 불만이 지역적으로 희석되더라고요.

그렇다면 한국은 흡수할 수 있는 기제가 있을까를 생각해봤어요. 지난해 방한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도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던데, 자본소득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을 경우 세습사회가 온다는 거지요. 우리 사회도 미국처럼 세습이 중요해지고 있어요. 그러면 기회의 문이 닫히는 거 아닌가요? 제일 두려운 문제는 젊은 층의 활력이 죽어간다는 점이에요. 그건 진짜 희망 없는 사회지요. 사실 부끄럽긴 해요. 기성세대가 못 푼 거지요.

또 다른 문제는 사회적으로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양산해왔다는 점이에요. 대표적인 게 저출산과 범죄입니다. 그게 결국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올 거란 말이죠. 지난 70년 동안 한국 사회에 주어진 숙제가 워낙 절박한 것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게 사실이죠. 개별화한 국민이 때로는 정치적으로 동원되고 무서운 집단으로 변하지만, 일상 경제 전선에서는 개별화된 국민이 무한히 펼쳐진 출세의 기회를 향해 무한질주를 했기 때문에 공적으로 뭘 쌓을 것인지, 뭘 남겨놓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아직도 문제제기가 잘 안 돼 있고, 그런 면에서 걱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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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kimhok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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