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호

세계 마라톤계의 ‘괴물’ 이봉주

풀코스 완주 29회… 뛰고 또 뛴 ‘국민 영웅’

  • 글: 김화성 동아일보 체육부 차장 mars@donga.com

    입력2003-06-25 1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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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달이는 앞으로도 100번은 몰라도 10번 정도는 더 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체력에는 문제가 없다.
    • 문제는 스피드다. 현대 마라톤은 스피드 싸움이다.
    세계 마라톤계의 ‘괴물’ 이봉주

    제105회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한국 선수로는 51년 만에 우승한 이봉주가 월계관을 쓰고 우승컵에 키스하고 있다(2001.4.18).

    ‘봉달이’ 이봉주(33·삼성전자)가 달리는 모습을 보면 늘 안쓰럽다. 눈물이 난다. 황영조가 달릴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왜 봉달이가 뛰는 것을 보면 그렇게 목이 멜까.

    봉달이는 올해 우리 나이로 서른넷. 그는 종일토록 별 말이 없다. 새벽에 일어나 뛰고 아침 먹고 뛰고, 점심 먹고 한숨 잔 뒤 또 뛰고 뛸 뿐이다. 누가 힘드냐고 물으면 배시시 한번 웃고는 그만이다. 요즘 컨디션이 어떠냐고 물어도 “그냐앙~” 하며 말꼬리를 길게 뺄 뿐 한참을 기다려도 말이 없다.

    목소리도 작고 힘이 하나도 안 들어 간다.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에 나오는 ‘용이’처럼 용해 빠졌다. 그래서 별명도 ‘용이’ 비슷한 ‘봉달이’인지도 모른다.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도 그냥 ‘봉달이’ 하고 가만히 소리내어 불러보면 그 ‘울림’이 그윽하고 편안하다.

    짝발에 평발

    원래 ‘봉달이’라는 별명은 이봉주가 서울시청에 있을 때 당시 오재도 코치가 지어준 것이다. 이름 ‘봉주’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자연스럽게 ‘봉지→봉투→봉달이’로 변했다. 이봉주는 처음엔 ‘봉달이’란 별명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사람들이 하도 봉달이, 봉달이 하면서 좋아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좋아져버렸다”며 또 배시시 웃는다. 이럴 땐 꼭 서산 마애불이 웃는 것 같다. 마침 서산은 그의 고향 천안 성거와 가깝다.



    봉달이는 마라토너에게는 치명적인 짝발이다. 왼발이 248mm, 오른발이 244mm. 게다가 거의 평발에 가깝다. 발 안쪽에 뼈가 하나 더 있다. 보통 사람들의 발바닥은 대개 둥근 아치 모양이다. 이것은 몸무게의 압력을 분산하고 충격을 흡수해줘 발에 무리가 오는 것을 막아준다. 신발의 바닥 안쪽 부분과 뒤꿈치 부분이 동시에 지나치게 많이 닳으면 평발이기 쉽다. 평발인 사람은 발목 관절염에 잘 걸린다. 봉달이가 ‘특수 맞춤신발’을 신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봉달이는 지난해 부산아시아 경기와 올 4월 런던마라톤대회에서 아식스가 제작한 신발을 신고 뛰었다. 이 신발은 시드니올림픽 여자마라톤 우승자 일본의 다카하시 나오코의 마라톤화를 제작했던 일본의 미무라 히토시 박사가 만들었다. 제작비만도 자그마치 7만7000달러(약 9200만원). 봉달이는 “원래 255mm를 신었는데 미무라 박사님이 내 발 구조상 더 좋은 기록을 내려면 260mm를 신는 게 좋다고 권유해 요즘은 좀더 넉넉한 신발을 신고 달린다”고 말한다.

    봉달이는 1999년 런던마라톤에서 낭패를 본 적이 있다. 런던마라톤 코스는 대부분 아스팔트로 돼 있지만 도심 곳곳에 딱딱한 로마시대 대리석 길이 있다. 당시 평발인 봉달이는 무릎에 충격을 많이 받아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고 2시간12분11초(12위)의 저조한 기록을 내는 데 그쳤다. 아스팔트에 적합한 얇은 신발을 신고 뛰었기에 돌길을 달릴 때는 그 충격이 더했다. 봉달이가 올 4월 4년 만에 두 번째로 런던마라톤에 출전해 2시간8분10초의 비교적 좋은 기록으로 7위를 차지한 것은 신발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물론 스포츠 스타 중에서 평발의 불리함을 극복한 것은 봉달이만이 아니다. 미국의 유명한 단거리선수 칼 루이스나 축구국가대표 박지성(PSV 아인트호벤)도 평발이다.

    봉달이는 눈에 쌍꺼풀이 없어 한동안 고생했다. 달릴 때 땀이 눈에 들어가 영 성가셨던 것. 결국 ‘쌍꺼풀 수술’을 했지만 ‘천연’보다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요즘 봉달이는 고글형 선글라스를 쓰고 뛴다.

    선글라스를 쓰고 뛰면 좋은 점이 많다. 우선 따가운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다. 같이 뛰는 주변의 경쟁자들에게 표정변화를 읽히지도 않는다. 또한 ‘밤에 뛰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일반적으로 ‘똑같은 코스와 날씨 조건이라면 밤에 뛰는 게 낮에 뛰는 것보다 기록이 좋다’는 것은 실험을 통해 증명된 바 있다.

    봉달이는 다른 선수들보다 땀을 많이 흘린다. 맨머리가 듬성듬성 드러나 땀이 바로 얼굴로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그 땀이 눈 속으로 파고들면 눈까지 따가워 가뜩이나 힘든 레이스가 더욱 힘들어진다. 그동안 봉달이가 태극 머리띠를 두르고 달린 것은 각오를 다진다는 뜻도 있었지만 이마의 땀이 눈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한 이유가 더 컸다.

    봉달이는 지난 5월9일 서울 강남의 CNP차앤박 모발이식센터에서 휑하던 정수리 부분에 2004가닥의 머리카락을 심었다. 굳이 2004가닥을 심은 것은 2004 아테네올림픽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으로 내년 올림픽에서 반드시 월계관을 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8월에 열리는 아테네올림픽 기간 날씨가 무더울 것으로 예상돼 남자 마라톤 출발 시간을 오후 6시에 잡아놓았을 정도.

    수술을 집도한 황성주 박사는 “이봉주는 머리 앞부분 숱이 많이 줄었고 탈모 증상이 정수리까지 확대돼 머리 뒷부분 모근을 채취해 옮겨 심었다”고 말했다. 황박사는 이봉주의 열성 팬으로 이번 수술도 그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수술비는 무료.

    일단 심은 머리카락은 한달 뒤인 6월초에 다 빠지고 그 자리에 3개월 후부터 새로운 머리가 자라 올림픽 두 달 전인 내년 6월쯤이면 앞 머리에 새카만 머리카락이 가득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라톤 선수의 특징인 머리가 작은 것도 이번 모발 이식 수술에서 톡톡히 효과를 봤다. 보통 마라톤 선수가 머리가 크면 기록이 늦어진다. 황박사는 “이봉주는 다른 사람에 비해 두상이 작아 2004가닥을 심었어도 2600가닥 정도를 심은 듯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수술 과정에서 봉달이는 마라토너다운 ‘철의 심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수술을 할 경우 일반인의 심장 박동수는 분당 90~110회(보통 땐 70~85회)인 데 비해 봉달이는 수술 내내 분당 52회를 기록해 수술진들을 놀라게 한 것.

    봉달이는 “머리카락 심은 모습을 거울로 보니 한 10년은 젊어진 것 같다”며 “요즘 옹알이가 한창인 아들 우석(2월21일생)이도 무럭무럭 잘 자라 남은 소망은 내년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것뿐”이라며 배시시 웃는다. 동갑내기 부인 김미순씨도 “맨머리가 보이는 봉주씨보다는 머리카락이 수북한 봉주씨가 더 멋있다”고 맞장구 친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150kg의 충격

    봉달이는 지금까지 공식대회 풀코스를 29번이나 완주했다. 1년에 2.2회꼴로 5~6개월에 한 번씩은 반드시 뛰었다. 뛰다가 도중에 기권한 것은 2001년 캐나다 에드먼턴 세계선수권대회가 유일하다. 우승 9번에 준우승 6번, 10위권 이내 7번. 두 번에 한 번 꼴로 1, 2위를 다퉜고 10위권 밖으로 처진 것은 7번에 불과하다. 1990년 10월 전국체전에서 2시간19분15초의 기록으로 2위를 차지하며 데뷔한 이래 2000년 2월 도쿄마라톤에서 2시간7분20초의 한국최고기록으로 2위를 차지하며 그 절정을 이뤘다. 봉달이는 그만큼 끈질기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마라토너가 보통 한 대회를 완주하려면 대회 40여 일 전부터 하루 40~50km씩 모두 1500km 안팎을 달려야 한다. 29번을 완주한 봉달이는 여태껏 4만3500km를 달렸다는 계산이다.

    마라토너의 수명은 뛴 거리로 따진다. 실제 나이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 이런 면에서 마라토너의 수명은 자동차 수명과 닮은 꼴이다. 1998년형 승용차라도 거의 운행하지 않았다면 새 차나 마찬가지이고 2003년형 자동차라도 주행 거리가 20만km쯤 된다면 거의 중고차 수준인 것이다.

    마라토너는 풀코스를 한번 완주할 때마다 보통 2만5000~2만6000걸음을 내딛는다. 한 발 내디딜 때 받는 충격은 자기 체중의 2.72배 정도. 체중 55㎏인 봉달이는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약 150㎏의 충격을 받는 셈이다. 풀코스를 완주할 때까지 따져보면 거의 400t이나 된다. 마라토너의 몸무게가 적게 나갈수록 기록이 좋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마라토너의 몸은 기름기가 거의 없다. 남자 마라토너의 체지방률은 8% 내외에 불과하다. 보통 성인 남자의 체지방률이 18%선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마라토너가 너무 많은 거리를 달리면 무릎과 발목이 눈에 띄게 약해진다. 탄력이 줄어들어 스피드가 떨어진다. 봉달이가 준우승한 여섯 번 중에 다섯 번이 1996년(14번째 출전) 동아마라톤 이후에 기록한 것이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1996년 이후 네 번의 우승기록(96 후쿠오카 2시간10분48초, 98 방콕아시아 2시간12분32초, 2001 보스턴 2시간9분43초, 2002 부산아시아 2시간14분4초)이 모두 2시간10분대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세계 마라톤계의 ‘괴물’ 이봉주

    2000 시드니올림픽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역주하는 이봉주

    스페인의 아벨 안톤은 각각 35, 37세 때인 1997년과 1999년 세계선수권마라톤을 연속 제패했다. 서른네 살이었던 1996년 마라톤에 입문해 나이와 상관없이 ‘싱싱한 다리’로 베를린-런던-동아마라톤 등에서 우승을 휩쓸었던 것. 2001년 4월까지 그는 10번 완주에 5번이나 우승했다. 그후 그는 두 번쯤 국제대회에 얼굴을 내밀다가 성적이 좋지 않자 미련 없이 은퇴했다.

    세계가 인정하는 마라톤 천재 황영조도 기껏해야 공식대회에서 8번 밖에 완주하지 않았다. 황영조는 4번째 풀코스 완주인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우승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역대 올림픽 우승자나 세계선수권 우승자의 공식대회 평균 완주 횟수는 7~8회에 불과하다. 외국 마라토너의 경우 많아봐야 15회 완주가 그 한계다. 10회 완주 안팎에서 그만두는 마라토너도 부지기수다.

    이런 면에서 봉달이는 세계 마라톤 무대에서 ‘괴물’로 통한다. 어떻게 29회나 뛸 수 있느냐며 입이 벌어진다. 실제로 봉달이의 종아리 근육을 신기한 듯 만져보는 사람도 있다. 봉달이는 이럴 때마다 수줍은 듯 배시시 웃으며 중얼거린다. “완주는 100번도 더 할 수 있다. 기록이 문제지….”

    그렇다. 아마 봉달이는 앞으로도 100번은 몰라도 10번 정도는 더 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체력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스피드다. 현대 마라톤은 스피드 싸움이다. ‘트랙 싸움’이 일상화 됐다. ‘트랙 싸움’이란 피니시라인을 400m쯤 앞두고 트랙이 그려진 운동장 안에서 우승자가 가려지는 막판 스퍼트 싸움을 말한다. 올 4월 런던마라톤에서 피니시라인 300~400m를 앞두고 4~5명의 아프리카 선수들이 100m 경주하듯 달린 것이나 올 3월 동아마라톤에서 남아공의 거트 타이스와 한국의 지영준이 피말리는 트랙 싸움 끝에 1초 차이로 거트 타이스가 우승한 것이 그 예다. 지켜보는 관중들로선 트랙 싸움으로 승부가 가려지는 마라톤 경주만큼 재미있는 레이스가 없다.

    봉달이는 30만km를 달린 자동차나 비슷하다. 달리기 폼도 약간 힘이 밖으로 흐르는 스타일이다. 달릴 때 발이 약간 뒤로 채이며 힘이 낭비된다. 그만큼 에너지 소비가 많다. 또한 경험은 풍부하지만 이제 스피드는 한계가 있다. 아프리카 선수들과 스피드 싸움에서 이기기 힘들다.

    그러나 코스나 날씨가 평이하지 않거나 무더운 날 열리는 대회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경쟁력이 있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 열리는 올 8월 파리 세계선수권이나 내년 8월 아테네올림픽에서 봉달이는 그 누가 뭐래도 우승 후보자 중 한 명임에 틀림없다. 아프리카 선수들은 무덥거나 코스가 나쁘면 쉽게 포기하고 만다. 이러한 의미에서 2001 보스턴마라톤에서 봉달이가 우승한 것은 난코스에 힘입은 바가 크다.

    미국에서 의사생활을 하는 재미교포 마종기(64) 시인은 2001년 보스턴마라톤에서 봉달이가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고 회고한다.

    보스턴마라톤 우승의 감격

    “해마다 보스턴마라톤이 열릴 때면 고국의 선수가 참가하는지 알아보는 게 30년 버릇이 되었습니다. 알 만한 선수의 이름이 있으면 시간을 내어 실황 중계를 보아왔지요. 그러나 중도에 TV를 꺼버리고 혼자 주눅이 들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지요. 올해(2001)는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아깝게 우승을 놓친 이선수가 참가한다기에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따라 환자가 많아 무척 바빴습니다. 그래서 실황 중계도 못 보고 있다가 마라톤이 시작된 지 거의 한 시간이 지나서야 병원 사무실의 TV를 황급히 켰습니다. 그리고 화면에 나타난 이봉주 선수를 보았습니다. ‘20여 명의 선두 그룹’이라는 설명과 함께 화면에는 태극 마크가 선명한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낯익은 이선수가 한무더기의 선수들과 열심히 뛰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TV를 켠 채 환자를 보다가 TV를 보다가 했지요.

    코스의 3분의 2쯤에서 선두 그룹이 10여 명으로 줄어드는 것을 보았고 나중에 케냐 선수, 에콰도르 선수와 함께 세 명이 선두가 되었을 때 나는 할 수 없이 간호사와 방사선 기사를 불러 30분 동안만 환자 보기를 연기해달라고 청해놓고 사무실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리고 화면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이선수와 함께 뛰기 시작했습니다.

    세 선수는 곧 하트브레이크 힐(고통의 언덕)의 남은 몇 킬로미터 언덕길을 혼신의 힘으로 뛰었습니다. 사력을 다해 달리는 세 명의 선수 중에 드디어 이선수가 다른 선수들을 뒤로 물리고 일등으로 뛰어 나설 때, 그리고 그 거리의 차이가 2m, 5m, 10m로 벌어지고 결승선의 테이프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 때문에 이선수의 이마에 두른 태극 머리띠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라톤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이나 환자 보기를 잊고 자꾸 흘러내리는 눈물을 흰 가운 소매 끝으로 닦아내야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내 영웅이 된 이봉주 선수. ‘이번의 우승을 얼마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께 올린다’고 한 인터뷰 기사를 읽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님의 명복을 멀리서 빌겠습니다.”

    공부하는 지도자가 꿈

    2001년 4월21일 봉달이는 때 빼고 광내고 좌악 빼입은 신사복 차림으로 보스턴마라톤 우승 인사차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났다. 물론 삼성전자 캐릭터 광고에서 “오냐 오냐 내 새끼”라고 말하며 유명해진 어머니 공옥희(68)씨도 같이 갔다. 이때 공옥희씨는 “내 생전에 어떻게 대통령을 뵙게 될 줄 알았남유? 다 우리 막내아들 덕분이쥬”라며 아들 봉달이를 마냥 자랑스러워했다.

    봉달이를 본 김대통령은 다짜고짜 수염 이야기부터 꺼냈다. “이봉주 선수의 힘은 수염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왜 오늘은 그 수염을 깎고 왔느냐”고 물었던 것. 봉달이는 엉겁결에 “어르신네 앞에 수염을 텁수룩하게 하고 가는 것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그랬다”며 “훈련할 때는 기르다가 대회가 끝나면 깨끗하게 깎는다”고 대답했다. 이제 봉달이의 말솜씨는 느리고 어눌하기는 하지만 옛날에 비하면 수준급이다. 본인도 “난 원래 식구들이나 친구들하고는 농담도 잘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며 은근히 엉너리친다.

    봉달이는 마라톤을 안 했으면 축구선수가 됐을 거라고 말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차기를 즐겼으며 요즘도 틈만 나면 공을 찬다. 아니다. 최근엔 골프 재미에 빠졌다. 물론 실력은 아직 걸음마 수준.

    봉달이는 공부하는 지도자가 꿈이다. 일본이나 미국에서 마라톤 지도방법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 그래서 요즘 틈틈이 영어공부도 하고 있다. 팬들 중에는 그가 일본에서 최고 인기를 끌고 있는 다니구치(43)처럼 ‘한국의 국민 마라토너’가 돼 마흔이 넘어도 아마추어 마라토너들과 함께 달렸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테네올림픽이 끝나면 은퇴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테네올림픽은 그에게 하나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많이도 뛴 우리의 봉달이

    그의 신혼 집은 서울 오금동에 있는 43평형 아파트다. 2002년 4월21일 8년 연애 끝에 동갑내기 김미순씨와 결혼했다. 1994년 2월 황영조 선수(현 체육진흥공단 감독) 집에 놀러 갔다가 황감독 소개로 봉달이를 알게 됐다는 그녀다.

    그의 집에는 수많은 인형들과 기념품, 그리고 갖가지 형상의 수석들이 있다. 봉달이는 뭐든 수집하는 걸 좋아한다. 한때는 광적으로 우표를 모은 적도 있다. 그만큼 그는 집념이 강하다. 그의 거실엔 그리스 아테네신전 그림이 있다. 아테네올림픽에서 꼭 우승하겠다는 각오로 그걸 거기에 걸어놨다.

    봉달이는 달리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정말 뼈가 시리도록 외로울까? 달리는 내내 ‘고독’을 씹고 ‘아름답던 시절의 추억’을 생각하며 고통을 이길까?

    천만의 말씀. 봉달이는 피식 웃는다. “아니, 그런 한가한 생각을 할 틈이 어디 있슈? 언지 치고 나갈까, 내 물병은 어디에 있나, 안으로 파고 들어갈까 아니먼 뒤에 따라갈까, 이런 것 생각하기에도 바쁘구먼유~.”

    정작 봉달이가 뼈가 시리도록 외로운 때는 따로 있다. 선두 그룹에서 떨어져 꽁무니를 따라갈 때다. 그런 때는 옛날 일들이 주마등처럼 서럽게 생각난다. 근육과 뼈마디가 송곳에 찔린 것처럼 쑤셔온다. “아이고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지? 그만 포기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난다. 죽고 싶고 비참한 심정도 들고 옛날 생각이 불쑥 떠오르기도 한다. “왜 하필 마라톤을 했을까” 후회와 회한이 가슴에 밀물처럼 밀려온다.

    부인 김미순씨는 말한다. “연애시절에도 봉주씨가 늘 안돼 보였었는데 결혼해 곁에서 보니 더 안쓰러워요. 밥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늘 뛰기만 하니 빨리 그만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물론 그만큼 존경심도 커졌어요. 저렇게 땀을 흘렸으니까 국민 영웅이 되었구나 하고….”

    그렇다. 봉달이는 정말 많이도 뛰었다. 이제 그만 뛰겠다고 해도 뭐라 할 사람 없다. “봉달아, 아테네올림픽이 끝나면 그땐 좀 쉬고 뛰렴”, 합장.

    (‘김화성 기자의 스포츠 別曲’은 이번호로 끝맺습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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