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호

이영미의 스포츠 ZOOM 人

“혼을 담아 던진다 그렇게 ‘빚’ 갚겠다”

‘지지 않는 남자’ 오·승·환 독점 인터뷰

  • 세인트루이스·샌디에이고=이영미 | 스포츠 칼럼니스트 riveroflym22@naver.com

    입력2016-06-08 16: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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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승환(34·세인트루이스)의 야구 인생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입단 전과 후로 나뉠 것이다. 메이저리그 진출 전까지만 해도 개인 문제로 바닥까지 곤두박질친 이미지가 카디널스에서의 활약을 통해 ‘역대급 반전’을 이뤘고, 지금은 비난보단 응원과 격려를 보내는 이들의 목소리가 더 큰 듯하다.

    오승환은 5월 11일(한국시각) 현재 16경기에서 16⅓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1.65로 순항 중이다. 세인트루이스 불펜 투수 중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했고, 올 시즌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한 한국인 선수 중에서도 눈에 띄는 성적을 기록 중이다.

    ‘돌부처’란 별명 뒤에 숨은 오승환의 인간적 매력과 그의 메이저리그 생활을 해시태그(#)로 정리했다.



    # 오승환이_달라졌어요

    오승환을 만나려 세인트루이스를 방문했을 때 그를 취재한 후배들로부터 이런 얘길 들었다. “선배, 오승환 선수가 달라졌어요. ‘돌부처’ 오승환이 아니더라고요.”

    궁금했다. 마운드에서는 물론 인터뷰할 때도 표정 변화가 거의 없던 그가 달라졌다? 도대체 얼마나 바뀌었기에 한두 명도 아닌 기자 여럿이 그런 얘길 할까.

    메이저리그 경기를 취재하려면 MLB 사무국으로부터 승인받은 번호로 크리덴셜 신청 사이트에 들어가 취재하고 싶은 날짜를 클릭해서 취재 신청을 해야 한다. 취재 신청은 경기 시작 24시간 전까지 마무리해야 한다. 이후에는 신청 자체가 안 되거나 구단 홍보팀에서 승인을 안 해준다.

    그런데 취재 신청이 잘못됐는지, 세인트루이스 홈구장 부시스타디움에 도착해 크리덴셜을 받으려 했더니 창구 직원이 기자의 이름이 명단에 없다면서 데일리 크리덴셜조차 발급해줄 수 없다는 게 아닌가. 나중에 알아보니 취재 신청이 아예 안 돼 있었다.

    난감했다. 기자보다 먼저 경기장에 들어간 다른 매체 후배 기자가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오승환에게 이런 상황을 전한 모양이다. 오승환은 통역을 통해 “멀리서 오셨으니 최대한 도움을 드리라”고 구단에 부탁했고, 통역 구기환 씨는 세인트루이스 홍보팀을 찾아가 사정을 설명한 후 데일리 크리덴셜을 발급받게끔 도와줬다. 살짝 감동했다.

    이렇듯 우여곡절 끝에 경기장에 들어가 팀 훈련 때 첫 대면한 오승환은 “힘들게 오셨는데, 그래도 (야구장에) 들어오셔서 다행이네요”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다른 이들이 전한 ‘오승환이 달라졌어요’가 떠올랐다.

    에피소드 하나 더. 세인트루이스에서 홈경기를 마친 오승환은 샌디에이고 원정을 떠났다. 기자도 원정길에 동행했다. 오승환은 샌디에이고 페코파크에서 기자와 정식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인터뷰 약속 시각은 오후 12시 50분.

    경기장으로 출근할 준비를 하는데 통역 구기환 씨로부터 문자가 왔다. 페코파크의 미디어 게이트 오픈 시간이 오후 3시라 12시 50분에는 기자가 경기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걸 어쩌지…’ 하고 있는데, 구기환 씨가 다시 문자를 보내 샌디에이고 홍보팀을 통해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잠시 후 반가운 문자가 도착했다. ‘12시 40분 스타디움 정문 옆에 있는 프런트 로비에서 기다리면 샌디에이고 홍보팀 직원이 우리가 있는 곳까지 에스코트해줄 것’이라고 했다. 오승환의 배려 덕분에 인터뷰를 무난히 진행할 수 있었다.

    개인적 에피소드를 길게 서술한 이유는 ‘오승환이 달라졌다’는 것을 생생하게 전하고 싶어서다.



    # 행복

    오승환은 메이저리그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행복해했다. 야구만 잘하면 만사 오케이인 메이저리그 환경이 그를 웃게 만들었고, 여유를 안겨줬으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게 한 듯하다.

    “미국 음식과 문화가 잘 맞는 것 같다. 여기 와서 한식을 거의 찾지 않았다. 미국 음식이 아주 좋다. 술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경기 후 통역과 함께 맥주 한잔 하는 것 외엔 제대로 술 마셔본 적이 없다. 일본에선 일본식으로, 미국에선 미국식으로 사는 게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프링캠프 때는 선수들과 자주 어울렸다. 선수들이 초대하는 식사 자리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그들과 빨리 친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않고 찾아오기만 기다리면 아무도 내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내가 먼저 찾아가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면서 선수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노력한 덕분에 생활은 편하다. 모든 선수와 친해질 수 있었으니까.”



    “정답이 없다고 하는 건 심판 성향에 따라 스트라이크 존이 달라서다. 나라별로 스트라이크 존의 기준은 있다. 단, 심판에 따라 낮은 볼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높은 볼을 스트라이크로 선언하는 이도 있다. 그걸 한·미·일 야구 스타일로 비교하기가 어렵다. 한국은 어느 정도 스트라이크 존 기준이 비슷한 반면 메이저리그는 심판에 따라 편차가 심하다.”

    오승환은 1회 혹은 2회를 마친 후 다른 투수들과 함께 더그아웃에서 불펜으로 이동한다. 외야에 마련된 불펜에서 대기하는 것이다. 5회 이후부터는 열심히 몸을 풀기 시작한다. 몸을 풀면서 경기도 살펴봐야 한다. 타자의 성향을 분석하고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을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날 심판의 특징을 파악하고 투구해야 유리하다.”

    한국과 일본 야구를 경험했고, 이제 미국 야구를 경험 중인 오승환은  나라별 타자들의 스타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메이저리그는 1번부터 9번까지 누구나 홈런 칠 파워를 갖고 있다”는 말로 스타일의 차이를 설명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기본적인 파워가 있기 때문에 어느 타순도 쉽게 상대하기가 어렵다. 일본은 3, 4, 5번을 치는 선수들은 장타를 노리는 반면 나머지 타순 선수들은 방망이에 맞히는 능력에 집중한다. KBO 리그의 최근 경기들을 보니 한국 타자들의 파워가 크게 향상됐더라. 미국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다. 한국 프로야구를 떠난 지 3년이 되는데 그새 선수들의 파워가 더 강해졌다.”



    # 슬라이더

    메이저리그에서 안정된 피칭을 이어가자 메이저리그 선배인 서재응, 김선우 해설위원은 오승환이 결정구로 종종 던지는 슬라이더에 대해 궁금증을 나타냈다. 한국과 일본에서 던질 때보다 슬라이더의 각이 좀 더 커지고 구속이 빨라졌다는 것이다. 오승환에게 실제 그런지 물었더니 ‘그렇다’고 답했다.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사용할 때는 안타나 홈런을 맞지 않기 위해서다. 선배님들이 짚어내신 것처럼 한국, 일본에서 던지던 슬라이더와는 다르게 회전을 좀 더 많이 주는 편이다. 이전보다 힘을 줘 던지다 보니 각이 좀 더 커지고 빨라졌다는 얘길 듣는다.”

    오승환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일부 야구인은 구종(球種)을 추가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 많은 사람이 ‘빠른 볼과 슬라이더만으론 버티기 힘들다. 구종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잘 던질 수 있는 볼을 정확하고 강력하게 뿌리는 게 우선’이라고 대답했다. 1이닝 정도를 책임지는 상황에서 레퍼토리에 변화를 주는 것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정교함을 덧입히려 노력했다. 몸쪽 속구 사인이 나면 좀 더 정교한 제구력으로 파고들고, 슬라이더 사인이 나면 좀 더 예리한 각도로 던지려 노력한다.



    # 필승조   # 추격조  

    세인트루이스 팬이라면 오승환의 등판 상황을 정확히 예측할 것이다. 매시니 감독은 대부분 팀이 이기고 있을 때 오승환을 마운드에 세운다. 팀이 연패 등으로 위기에 빠지거나 동점 등 접전일 때도 오승환은 불펜에서 몸을 풀기 시작한다. 최근 ESPN은 세인트루이스 관련 기사를 내보내며 다음과 같은 설명을 곁들였다.

    ‘세인트루이스의 긍정적인 점은 그들이 원하던 대로 불펜이 강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오승환은 사실상 완벽에 가깝다. 최근 7⅔이닝을 던지는 동안 13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오승환은 ‘필승조’와 ‘추격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어느 투수든 지는 경기보다는 간발의 차이로 이기거나 동점 상황에서 나가는 게 자극도 되고 훨씬 힘을 낼 수 있다. 그럼에도 필승조, 추격조를 구분하고 싶진 않다. 감독 지시가 있다면 어떤 상황이라도 올라가 내 임무를 완수하면 되는 것이다. 한동안 나의 연투 문제로 시끄러웠는데, 그 또한 구단에서 체력 관리를 해주고 있기에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시즌 초라 그런지 등판 횟수가 잦다고 해서 체력적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 기념구  

    오승환의 메이저리그 데뷔 첫 등판은 4월 4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홈구장인 PNC파크에서 펼쳐진 원정 개막전이었다. 팀이 0-3으로 뒤진 7회말 마운드에 오른 오승환은 1이닝 동안 안타는 내주지 않았지만, 2볼넷(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투구 수는 27개, 최고구속은 93마일(149km)이었다. 팀은 오승환이 처음으로 삼진을 잡은 공을 따로 챙겼고, 기념구인 만큼 팀 트레이너가 특별한 포장에 담아 오승환에게 선물했다.

    팀 피지컬 트레이너는 오승환의 통역 구기환 씨의 도움으로 한글을 배웠고, 열심히 연습한 끝에 오승환이 삼진을 잡은 공에다 한글로 멋진 글자와 기록을 새겨줬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최초의 한국인 투수’라고 적힌 공에는 오승환이 데뷔한 날짜와 장소, 그날 기록한 숫자들을 정성 들여 표시해 넣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로고도 함께! 오승환은 팀에서 기념구에 글씨를 써준 건 처음이라고 했다.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 팀은 선수에게 감동을 주는 법을 아는 듯하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데뷔 첫해인데 마치 오래전부터 이 팀에 있던 것처럼 모든 게 편하고 익숙하다. 무엇보다 이기는 법을 알고, 이기려고 최선을 다하는 팀에서 뛴다는 게 행복하다.”

    오승환을 인터뷰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단어가 ‘행복’이다. 한국에서 그를 여러 차례 인터뷰했지만 그때는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에서 오승환은 야구를 통해 인생을 배우면서 삶의 여유를 되찾았다.

    “여기 와서 한 경기, 공 한 개에 혼을 담아 최선을 다하는 게 목표라는 말을 자주 한다. 모든 게 새롭고, 모든 게 처음인 상황에서는 열심히 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 팬들에게 빚진 것을 야구로 갚아나갈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 좋은 공을 던지는 게 내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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