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호

‘대한민국 1%’ 실력파, 외교통상부 인턴들

“무슨 일을 하든 우리의 ‘무대’는 세계입니다”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05-05-24 1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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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교통상부 인턴들의 면면은 주목할 만하다. 내로라하는 수재들 중에서 1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이들에게 유창한 영어실력은 기본이다. 상당수가 외국 유수 대학 졸업생이거나 동시통역사 자격증 보유자 혹은 조기 유학파다. 두 개 이상의 외국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는 이도 많다.
    • 눈에 띄는 것은 이들의 90% 이상이 여성이라는 사실.
    • 세계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실력파 커리어 우먼, 바로 이들의 미래상이다.
    ‘대한민국 1%’ 실력파, 외교통상부 인턴들
    외교통상부(이하 외교부) 중남미국 남미과에 근무하는 인턴 박지영(26)씨는 최근 ‘노력하면 인생길이 달라진다’는 말에 공감하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인턴 생활을 한 지 만 1년 만에 주(駐) 코스타리카 대사관에 통·번역, 행정 업무를 맡는 직원으로 채용된 것. 5월22일 출국한다는 그는 첫 중남미행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대학 때 스페인에서 1년간 교환학생으로 공부한 적은 있지만 중남미 국가에는 처음 가보는 거예요. 다른 건 제쳐두고라도 일하러 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고 흥분돼요. 가보고 싶은 나라들을 다 다녀보고 싶어요. 또 틈틈이 중남미 미술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공부해볼 계획입니다.”

    덕성여대 스페인어과 졸업 후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한 박씨의 원래 꿈은 전문 번역가가 되는 것이었다. 동화책 두 권을 번역하기도 했다. 하지만 외교부 유급 인턴으로 채용된 후 스페인어로 된 각종 자료 수집, 서신 번역, 국제 포럼 연설문 작성, 주요 인사 통역 등을 담당하며 시야를 세계로 넓혔다.

    “주 업무는 업데이트되지 않은 통상자료를 그 나라 통계청이나 중앙은행 홈페이지에서 찾아 정리하는 거예요. 큰 행사가 있으면 행사 준비에 전념하고요.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이 남미를 순방할 때 남미 관련 자료란 자료는 모두 찾아 정리해 넘겼죠. 요즘은 5월21일 국빈 방문하는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 맞이에 정신없이 바빴어요.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쓰지만, 스페인어와 비슷해 웬만큼 읽고 쓸 수 있거든요.”

    박씨는 페루 국회의원들이 방한했을 때 통역을 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얼마 전 페루 국회의장으로 선출됐다고 한다. 외신에서 그 뉴스를 봤을 때 마치 친지에게 좋은 일이 생긴 듯 무척 기뻤다고. 또 그들 중 한 명과는 페루의 국민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샤를 주제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좋아하는 작가지만 국내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아 아쉬웠는데, 한 의원이 그 작가와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라고 해 무척 반가웠어요. 그런데 그 작가를 보는 시각이 저와 좀 달라 장시간 ‘논쟁’을 벌였죠. 아주 유익한 경험이었습니다.”

    스페인어 원서 무작정 읽어

    지금은 원어민 수준에 가깝게 스페인어를 구사하지만 박씨는 대학 입학 전까지 스페인어를 공부한 적이 전혀 없었다. 학부제로 대학에 들어온 후 입문 강의를 들은 것이 스페인어와의 첫 만남이었다. 영어는 지긋지긋하게 싫었는데, 이상하게도 스페인어는 쉽고 재미있었다. 그래서 무작정 스페인어로 된 동화책부터 집어들었다. 조금씩 실력이 나아질수록 아동용에서 청소년용으로 옮겨갔고, 스페인어를 전공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까지 읽게 됐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대학에 들어와 접한 스페인 문학이 정말 재미있는 거예요. 사실 언어만 배울 생각이었으면 그렇게 스페인어 원서를 많이 읽을 필요는 없었죠. 스페인 문학은 현실과 상상, 환상이 구분되지 않는 ‘마술적 사실주의’ 경향을 보여요. 또 남미를 포함해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워낙 많은 만큼 훌륭한 작가도, 뛰어난 작품도 많죠.”

    문학작품을 읽어 실력을 쌓은 박씨는 1년간 스페인 마드리드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오픈 마인드’에 말하기 좋아하고 정열적이며 잘 노는 스페인 사람들과 사귀는 것은 말을 배우기에 더없이 좋았다. 게다가 그가 다닌 대학 부설 어학원에는 유럽 각지에서 온 학생이 많았는데, 그들의 ‘고향’으로 함께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그때 만난 친구들과는 지금도 이메일이나 전화로 연락한다. 또 대학 때 복수전공한 서양미술사의 현장을 직접 볼 수 있었던 것도 큰 소득이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스페인어 위성방송을 들으며 언어 감각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고, 외교부 인턴을 하면서 외교 문서나 국제회의에서 사용하는 ‘고급 언어’를 익힐 수 있었다.

    현대종합상사에 근무하는 아버지는 박씨가 어릴 때부터 “영어는 기본이고, 외국어 하나쯤은 더 할 줄 알아야 국제무대에서 살아남는다”며 “외국인 친구도 많이 사귀고 여행도 많이 다녀라”고 충고했다. 아버지는 지금도 박씨가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게끔 힘 닿는 데까지 도와준다.

    “제가 아는 스페인어 원어민은 ‘세상 어디를 가나 스페인어를 쓰는데, 영어를 왜 배우냐’고 했어요.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그만큼 대단해요. 그 얘기를 듣고 우리말을 소홀하게 여겨온 저 자신을 반성했죠. 사실 한국어를 잘해야 외국어도 잘할 수 있어요.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해야 세계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고요. 앞으로 어떤 일을 맡든 이런 마음가짐으로 임하려고 합니다.”

    외교부는 지난해 5월 유급 인턴 50명을 공개 채용했다. 부족한 외교 인력을 보충하고 고학력자의 실업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국가기관이 유급 인턴을 공개 모집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50명 선발에 무려 650명이나 몰렸다. 지원자의 면면도 화려했다. 영어실력은 기본. 상당수가 외국 유수 대학 출신이거나 동시통역사 자격증 보유자 또는 조기 유학파거나 못해도 한두 해씩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 등으로 외국을 체험한 젊은이들이었다. 제2외국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는 것은 물론 3개 이상의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도 있었다.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의 경우 세계적인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인턴 생활을 한 지원자도 많았다.

    8년 노력 끝에 도달한 ‘중국통’

    9월에 2차로 25명을 채용할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결원이 생기면 홈페이지에 모집 공고를 띄워 수시 선발을 했는데, 오히려 이때 더 훌륭한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원서가 밀려들었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채용된 인턴들의 뛰어난 면면에 외교부 관계자들도 ‘대한민국 1%’ 실력파라며 놀라워했을 정도다. 재미있는 사실은 75명의 인턴 중 90% 이상이 여성이라는 것. 외무인사기획담당관실 이장근 인사운영계장은 “지원자들 중에도 여성이 많았지만, 외국어 실력이나 업무 능력 면에서 여성들이 확연히 뛰어났다”고 설명했다.

    아시아태평양국 동북아2과 사람들은 중화권 국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면 인턴 엄수민(26)씨를 찾아간다. 그의 업무 중 하나가 중국, 홍콩, 대만, 마카오, 몽골 등의 신문을 검색해 중요 정보를 정리하는 일이기 때문. 하지만 그는 단지 최신 정보뿐 아니라 사건의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과거의 중요한 사건들까지 두루 꿰고 있다.

    “대학(숙명여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후 KBS 국제방송국 중국어 방송 파트에서 작가로 일했어요. 번역도 하고 편지도 관리하며 원고도 썼죠. 그렇게 하려면 중국을 비롯한 중화권 국가들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어야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중국 사회나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죠.”

    지금은 ‘중국통’이라고 하지만 8년 전 대학에 입학할 때에는 중국어를 발음할 줄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중어중문학과에는 외국어고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학생에서 중국으로 조기유학을 다녀온 학생까지 쟁쟁한 실력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아예 과를 두 반으로 나눴어요. 발음부터 시작하는 반과 실력자반. 처음엔 암담하더라고요. 그런데 교수님이 ‘딱 2년만 있으면 두 반 사이의 실력차는 없어진다’며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주셨죠. 교수님 조언대로 교재를 정말 100번씩 소리 내어 읽었고 EBS 라디오도 열심히 들었어요. 그렇게 2년이 지나니 정말 실력차가 사라지더군요.”

    3학년 2학기 때는 1년간 교환학생으로 대만에 갔다. 국내에서 제법 공부한다고 했는데, 막상 현지에 가니 현지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엄씨가 택한 방법은 무조건 TV를 열심히 보는 것이었다. 다행히 중국어 방송은 화면 밑에 자막이 나온다. 지역마다 발음이 워낙 다르기 때문이다.

    “대만 방송은 중간 중간에 3분씩 쉬는 시간이 있어요. 방송에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노트에 적어놓았다가 그 3분 안에 사전을 찾아 외웠죠. 또 기숙사에서 4명이 한방을 썼는데, 저만 외국인이었어요. 그래서 매일 일기를 쓰고 룸메이트들에게 보여줬죠. 그것도 꼭 앞에서 소리내어 읽었어요. 성조(聲調)가 제대로 맞는지도 봐달라고 하면서. 또 대학의 영화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친구도 많이 사귀었어요. 그때 실력이 훌쩍 는 것 같아요.”

    현재 동북아2과에서 엄씨가 주로 맡은 일은 ‘21세기 한중미래지향교류사업’이다. 중국을 이끌 차세대 지도자들을 초청해 한국을 알려주는 ‘친한화’ 사업이다. 방한단의 통역 및 가이드 역을 맡아 한 달에 한 번, 총 10회 이상 수행했다. 중국의 상류층인 그들은 친절하고 인품도 훌륭하다. 특히 조선족 출신으로 장관급에 오른 이덕수 국가민족사무위 주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중국 인사들이 은연중 한국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할 때마다 발끈했죠. 하지만 ‘작은 나라가 감수해야 하는 게 있구나’ 하는 것도 어렴풋이 알았죠. 그러던 중 소수민족으로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이덕수 선생님을 뵈니 존경스럽고 새삼 애국심도 생기더라고요.”

    앞으로 그는 통·번역대학원에 들어가 전문 통역관이 되거나 외국계 기업에 입사하고 싶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 중국 관련 업무를 하고 싶다는 그는 “노력하면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대한민국 1%’ 실력파, 외교통상부 인턴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75명의 유급 인턴.

    외교부 인턴에는 외국어 실력자만 있는 게 아니다. 미래의 환경전문가, 금융 전문가도 있다. 국제경제국 환경과학과 인턴 한채언(28)씨는 국제연합환경계획(UNEP)에서 일하는 것이 목표다. UNEP는 환경 분야에서 국제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국제연합총회 산하에 설치된 환경관련 종합조정기관. 한씨는 환경과학과에서 2년 가까이 인턴으로 일했다.

    “대학(한국외대 불어과) 졸업 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에서 미국학을 공부했어요. 우연한 기회에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강의를 들었는데, 참 흥미로웠어요. 그후로 환경과 국제협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논문도 그쪽으로 준비했죠. 그러던 중 외교부 환경과학과 인턴을 지원하게 된 거예요. 제 관심사와 맞고, 여기서 일한 경력이 UNEP에 들어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요.”

    한씨의 주요 업무는 국제회의 준비다. 자료 수집, 대표단 연설문 및 회의록 작성은 물론 국제회의에 직접 참가하기도 한다. 인턴이 공식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 그만큼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다. 현재는 외무부에서 주관하는 초급전문가(JPO) 제도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JPO는 일은 국제기구에서 하고 임금은 우리 정부에서 지급하는 일종의 인턴제도. 선발되면 1∼2년 근무한 후 인사고과에 따라 해당기구에 정식직원으로 채용된다.

    “JPO로 선발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죠. 하지만 안 된다 해도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해보려고요. 국제기구에 들어가려면 영어는 기본이고 불어도 할 줄 아는 게 좋아요. 그래서 요즘 다시 불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하지만 언어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절대 안 되죠. 외교부 인턴뿐 아니라 정부 산하 환경전문기관 등에서도 경력을 쌓을 계획입니다. 또 이왕 시작한 공부니, 유학 가서 박사까지 마쳐야지요.”

    한씨는 은행에 근무하는 아버지를 따라 다섯 살 때부터 3년간 싱가포르에,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미국에 살아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한다. 주말마다 한글학교에 다니며 공부했기 때문에 한국어 능력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해마다 여름캠프에 참가해 미국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현지 문화를 만끽했다. 이는 다양한 사회, 다양한 문화를 맛보면서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잊지 않도록 가르친 부모님 덕분이다.

    “사실 1년만 늦게 들어왔어도 특례입학으로 쉽게 대학에 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원칙주의자인 아버지 덕분에 고생고생해서 대학에 입학했죠.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가 고마워요. 그처럼 힘들게 수능 언어영역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 정도의 국어 실력을 갖추지 못했겠죠. 외교부 일을 하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외국어 이상으로 한국어 실력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국제경제국 경제기구과 인턴 장수정(25)씨는 글로벌 M&A(기업 인수·합병) 전문가가 되는 게 꿈이다. 미국 회계사 자격증을 딴 후 회계 컨설팅 회사에 들어가 2년간 근무하고 MBA를 받은 다음 다국적기업 매킨지&컴퍼니에서 M&A 전문가로 활약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 간 장씨는 사우스캘리포니아대(USC)에서 ‘글로벌 비즈니스’를 전공했다. 금융 전문가를 꿈꾸는 그는 재학시절부터 HSBC,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UBS 페인 웨버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금융시장 모니터링과 프레젠테이션, 세미나 준비, PB(프라이비트 뱅킹) 업무 보조, 블룸버그 자료조사, 펀드 레이징(재원마련) 등이 주요 업무였다.

    “보통 미국 증권시장이 오전 6시에 열어서 오후 1시에 파해요. 그 시간에 맞춰서 출퇴근했기 때문에 수업과 병행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오히려 학교 공부에 도움이 됐죠. 졸업 후에는 미국 현지 은행에 입사해 PB팀에서 일했어요. 비자가 만료돼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외교부 인턴 모집 공지를 보고 지원한 거예요. 어릴 적 꿈이 외교관이었거든요(웃음). 물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관련 업무를 배워보고 싶은 게 가장 컸고요. 지금은 OECD 관련 자료 정리 및 번역, 정부 대표단 연설문 영작 등을 하고 있어요.”

    여섯 살 때 원어민 가정교사에게 처음 영어를 배운 그는 초등학교 시절 미국을 오가며 지내다가 15세 때부터 10년간 미국에서 공부했다. 그래서 전공인 경제·경영·금융 분야에서는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하다. 처음 번역할 때는 경제용어의 한국어 표현이 어려워 꽤 고생했다고 한다.

    “물론 말하는 건 한국어가 더 편하죠. 그런데 읽기, 특히 전공과 관련된 것을 읽을 때는 어느 순간부터 영어가 더 편하더라고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후 잡지든, 소설이든, 전문서적이든 한국어로 된 책을 무작정 읽고 있어요. 미국에서 재미있게 읽은 책 중 ‘매킨지 컨설팅 마인드’라는 게 있거든요. 국내 서점에 갔더니 번역본이 있더라고요. 당장 사서 읽었죠. 얼마 전에 나온 김별아씨의 소설 ‘미실’도 한번 읽어볼까 해요. 옛말이 많이 나와서 어렵다고 하지만, 그럴수록 도전해보고 싶거든요.”

    장씨가 금융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아버지는 장씨가 어릴 적부터 ‘국제무대’ 특히 ‘글로벌 비즈니스’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고 한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혼자 유학을 떠난다고 할 때도 “잘 결정했다”며 독려해줬다.

    “모든 판단과 결정은 제게 맡기세요. 그런 다음에 무조건 저를 믿고 도와주시죠. 하지만 아버지가 강조하시는 게 있어요. ‘친구를 많이 사귀라’는 거죠. 여러 나라에서 온 여러 문화의 사람들과 교류하라고 하셨어요. 저 역시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문화적 공통점과 차이를 찾아내는 게 너무 재미있었죠. 그러면서 좀더 개방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어요.”

    최근 그는 중국어 공부에 푹 빠져 있다. 지난해 말 중국 여행을 다녀온 후 본격적으로 배워 공부를 시작한 지 6개월도 안 됐지만 중급 회화는 가능하다. 자신을 가르치던 중국어 학원 강사와 1주일에 한 번씩 만날 정도로 친해진 것도 실력 향상에 일조했다. 하지만 장씨가 관심을 갖는 건 중국어뿐이 아니다.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이런 궁금증은 중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푼다. 주로 영어로 이야기하지만 요즘은 중국어로 대화하려고 한다. 중국어가 능숙해지면 중국에서도 일해보고 싶다고 한다.

    “물론 전세계를 대상으로 일해야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한국에 정착할 생각이에요. 전자나 반도체 쪽은 우리나라가 많이 발전했지만 금융 쪽은 아직 취약하거든요. PB가 도입된 지도 얼마 안 됐고 M&A 전문가의 수도 턱없이 부족하죠. 외국에서 더 많이 배우고 경험을 쌓은 후 국내 금융분야 발전에 나름의 몫을 해내고 싶어요.”

    세계 각국에 흩어진 친구들

    국제경제국 경제기구과에서 인턴으로 일하다가 최근 영국계 은행 스탠더드차터드에 입사한 이지현(24)씨는 말 그대로 ‘코스모폴리탄’이다. 이씨를 만난 시간은 오전 7시50분. 저녁 때는 외국 고객과의 미팅이 수시로 잡혀 아예 업무 시작하기 전인 아침에 만나기로 한 것이다.

    “외교부에서 일한 경험이 직간접적으로 제 업무에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큰 틀에서 세계 경제가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죠. 특히 1월에는 다보스 포럼을 준비하느라 새벽까지 일한 적도 많아요.”

    그의 영어 구사력도 원어민급이다. 해외 근무가 잦은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때 각각 동남아에서 3년, 아프리카에서 3년씩 살았다. 국제학교를 다닌 덕에 친구들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다. 한국에 돌아와 대학(한국과학기술원 산업공학과)에 입학한 후에는 혼자 여행도 많이 했다. 주로 국제학교 시절 친구들의 나라를 방문했는데, 그렇게 돌아다닌 곳이 20개국이 넘는다. 그 과정에서 타민족, 타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한다.

    2002년에는 월드컵조직위에서 자원봉사도 했다. 경기장 VIP라운지에서 통역 및 각종 외국어 서비스를 한 것. 축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적인 행사에 어떻게든 참여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무척 후회할 것 같았다고 한다.

    이씨는 오는 9월부터 두 달 동안 말레이시아에서 그룹 전체 교육을 받는다. 이후 발령지는 세계 곳곳의 지점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국내에만 머물고 싶지는 않다”며 웃었다.

    이는 ‘대한민국 1%’ 실력파 모두의 생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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