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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룸펜이 생산하고 젊은 아줌마 부대가 전파

‘혹세무민’ 인터넷 괴담의 세계

  • 정해윤 │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진보 룸펜이 생산하고 젊은 아줌마 부대가 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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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음모론에서 출발한 인터넷 괴담은 대체로 진보 성향을 띤다. 미네르바 괴담과 광우병 괴담의 온상은 다음(daum)의 아고라였다. 여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라 있다. 이것은 인터넷 괴담의 창작자들이 어떤 정치적 성향을 가졌는지를 보여준다.

진보 진영은 공안사건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다. 군사정권이 국가안보를 구실로 공정한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한 것도 사실이다. 덕분에 현재까지도 과거 사건에 대한 재심청구가 줄을 잇는다. 보수 정권이 음모론, 괴담의 주 공격대상이 된 것은 이러한 과거의 업보와 관련됐다.

인터넷 괴담의 시초로 2002년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건을 꼽는다. 돌이켜보면 괴담이 대규모 촛불시위 같은 사회적 소요로 이어지는 전범(典範)과 같다. 조사 끝에 내려진 결론은, 훈련 중인 미군이 장갑차 내의 사각지대와 관제병과의 통신장애로 학생들을 발견하지 못해 벌어진 안타까운 사고였다. 그러나 사이비 전문가들이 참혹한 학살로 규정하면서 전혀 다른 성격으로 재구성됐다.

진보 진영은 전차병 출신인 이들을 탱크 전문가라고 내세웠다. 이들이 전문가라면 군대에서 전차를 몰아본 수많은 남성이 모두 전문가인 셈이다. 이들은 선정적 주장으로 미군 측 발표를 한순간에 뒤집었다. 전차 내부에서 심리적으로 극한 상황에 도달한 미군 운전병이 토끼몰이 하듯이 여학생들을 고의적으로 희롱하다 압살한 후 후진으로 확인 압살했다고 주장했다. 과실치사가 사이코패스 범죄로 둔갑한 것이다.

이후 또 다른 괴담 생산자들이 가세하면서 사태는 겉잡을 수없이 커졌다. 이들은 SOFA(주한미군지위협정)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파고들었다. 피해 여학생들의 사체 사진이 떠돌며 민심을 자극했다. 결국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사과의 뜻을 표했다. 그러나 불붙은 민심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초여름에 벌어진 이 사건은 그해 연말 대선까지 촛불시위로 이어졌다.



부분적으론 사실

보통 괴담은 작자 미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선 얼굴을 드러내놓고 생산하기도 한다. 광우병 괴담은 MBC ‘PD수첩’팀이 주인공이었다.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과장했고 여기에 한국인의 체질이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비과학적 사실을 버무렸다. 삽시간에 광우병 공포가 한국 사회를 뒤덮었다. 괴담은 사회적 임계점을 넘어 자연 증식하는 양상을 보였다. 유명 연예인들이 괴담 유포에 동참한 것이다. 광우병 사태는 과학적 진실을 완전히 벗어나고 말았다.

익명이든 실명이든 괴담의 생산자들은 괴담을 사실로 믿는 경향이 있다. 1월 21일 여의도연구원이 주최한 ‘민영화 괴담’ 토론회에서 홍성기 아주대 교수는 괴담에 대해 “맥락에서 팩트를 떼어내 특정 방향으로 재조직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괴담 창작자들의 주장도 부분적으로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사실들로부터 합리적 결론에 도달하는 대신 ‘보수정권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신념에 사실들을 꿰맞추는 점이다. 그래서 부분적으로는 맞는 소리일지라도 전체 그림은 괴담이 되어버리고 만다.

괴담의 최초 창작자는 대개 익명의 네티즌이다. 괴담이 넷상에서 충분히 확산된 뒤 일부 언론이 여기에 낚이는 식이다. 이어 이들 언론이 괴담의 생산자 대열에 합류해 괴담을 사회 주류의 담론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익명의 괴담 창작자들, 즉 고스트라이터들(Ghost writers)은 어떤 사람들일까.

명함 없는 창작자들

노무현 정권은 소수파로 집권한 후 주류 언론과 각을 세웠다. 노 정권 사람들에게 인터넷 지지자들은 소중한 우군이었다. 당시 집권세력은 인터넷 논객들을 특별 관리했는데 실제 이들을 대면한 후 이들의 예상외 모습에 당황했다고 한다. 꽤 논리적으로 보수를 공격한 글을 보고 대단한 오피니언 리더라도 될 줄 알았지만 잘해야 자영업자거나 아니면 이렇다할 명함이 없는 사람이 태반이었다는 것이다. 괴담의 최초 창작자들은 대개 하루 종일 모니터를 들여다볼 시간적 여유가 있는 진보 성향의 룸펜 계층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또한 괴담의 창작자들은 사회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시대나 사회에 불만이 가장 많은 집단은 최하층 계급이 아닌 상류사회 진입이 좌절된 애매한 중간 부류다. 이들은 가진 사람들을 시기하고 적대시한다. 또한 못 배우고 전혀 가지지 않는 사람들도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고위직을 독식하는 명문대 출신에 분개하면서 동시에 불행한 시대를 살아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노인에게도 수구꼴통이라고 비난을 퍼붓는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마침내 미네르바라는 희대의 익명 괴담 창작자가 얼굴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의 주장처럼 고구마 파는 늙은이도 아니었고 많은 네티즌이 기대한 고위 관료도, 지식인도 아니었다. 전문대 졸업 학력의 백수인 미네르바는 괴담 창작자의 맨 얼굴이 어떠한지 보여준다.

괴담의 창작자들은 해커와 비슷한 심리 상태를 갖고 있다. 이들은 사회적 평형상태를 깨뜨리는 것을 목표로 둔다.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아주 좋은 놀이터다. 우리 사회는 인화성과 동질성이 강한데 이러한 특성은 괴담을 유포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기 때문이다.

수요공급의 법칙상 괴담의 생산자가 있으면 괴담의 소비자도 있기 마련이다. 나아가 괴담이 상시적으로 대량생산되는 현실은, 이런 괴담이 누군가에 의해 상시적으로 대량소비된다는 점을 강하게 암시한다. 그렇다면 누가 괴담을 소비할까. 이와 관련해 2004년 ‘주간동아’는 ‘우리 안의 개떼 정신’이라는 인상적인 분석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괴담의 주된 소비층은 급진적 성향을 가진 젊은 세대다. 그중에서도 젊은 아줌마 부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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