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호

프랑스의 원자력정책

30년 중단 없는 전진으로 원자력발전 수출 국가 도달

  • 봉기형 한국수력원자력 월성본부 신월성건설소 공정관리부장 bkh@khnp.co.kr

    입력2006-12-14 17:4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드골 대통령의 의지로 일찌감치 원자력청을 만든 프랑스는 1차 석유파동을 계기로 에너지 자립을 위해 원자력 발전을 선택했다. 미국의 경수로 기술을 도입한 프랑스는 같은 종류의 원자로를 연속해서 지으면서 기술 자립도를 높이다 마침내 독자적인 원전 설계와 건설 기술을 확보했다. 프랑스는 국내 소비 전력의 80% 정도를 원자력으로 해결하고 있다. 그리고 녹색당에 발목이 잡혀 원전 건설을 중단한 독일에 전력을 수출하고 있다.
    프랑스의 원자력정책

    유럽형 가압 경수로 EPR 건설 후보지인 플라망빌 원자력 발전소 단지. 프랑스는 자국에서 소비하는 전기의 80%를 원자력 발전으로 충당한다.

    1956년 영국이 서방세계 최초로 상업용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한 이래 ‘원자력발전이 일반 화력발전보다 훨씬 더 경제적일 것이다’라는 계산에서,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원자력발전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이어진 1960년대에는 석유라는 매우 편리한 에너지원이 풍부하게 채굴했기 때문에 원자력발전소의 필요성이 일시적으로 약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대부분이 매장돼 있는 중동지역은 종교적·정치적인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1973년 중동에서 발발한 10월전쟁을 계기로 석유시장의 질서가 흐트러져 3개월 만에 석유 값이 네 배가량 인상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른바 ‘1차 석유파동’인데 이를 기화로 세계 각국은 대체에너지 개발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소비 전력 80%를 원자력발전으로 충당

    부존자원 상황이 우리나라와 유사한 프랑스는 모든 조건과 가능성을 재빨리 검토해 1차 에너지원으로 원자력을 선택하고, 그 이용을 확대해 나가는 한편 국내자원을 개발하고 에너지를 절약하며 에너지 자원을 다양화하는 에너지 정책을 추진했다.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 두 발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드골 정권은 ‘원자력청(CEA)’을 만들어 원자력 에너지 개발의 첫발을 내딛는다. 프랑스는 자체 기술에 의한 흑연 가스냉각로형 원전 개발에 도전했으나, 경제성과 기술적인 이유로 1968년부터 경수로형 원전 개발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고 경수로형 원전의 원천(源泉) 기술을 갖고 있던 미국으로부터 인가를 받아 경수로 건설에 착수함으로써, 원자력정책에 새 전환점을 맞았다.



    드골 정권부터 원자력 에너지에 관심을 기울인 프랑스는 퐁피두 대통령 재임 때인 1973년 원자력발전 사업을 국책사업으로 채택했다. 1974년 3월 발전용량 90만㎾급 원자력발전소 16기를 짓는 안(案)이 프랑스 국회를 통과했다. 그리고 1976년에는 130만㎾급 원자력발전소 20기를 짓는 계획을 확정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의 원전 정책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아니다. 1997년 조스팽 총리는 고속증식로인 ‘슈퍼 피닉스’의 폐쇄방침을 밝히고 이듬해 전격적으로 폐쇄를 결정한 바 있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으로 에너지원을 확보한다는 프랑스의 정책은 최근까지 지속돼, 프랑스는 현재 58기의 경수로와 발전용량 23만3000㎾급 고속중성자로 1기 등 총 59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 프랑스의 원자력발전소가 생산하는 전력은 프랑스인이 소모하는 전력의 80% 정도를 감당하고 있다.

    체계적으로 추진된 원자력 기술자립

    프랑스는 원자력 개발을 시작하면서부터 꾸준히 기술개발과 표준화를 추진해 기술성과 경제성을 증진시킨 대표적인 나라로 꼽힌다. 1977년에 가동을 개시한 ‘피센아임(Fessenheim) 1호기’를 시작으로 1980년까지 88만~90만㎾급 원전 6기를 건설해 표준화를 준비했고, 1980년부터 7년간은 90만㎾급 원전 28기를 건설하면서 2단계에 걸쳐 표준화를 추진하였다.

    1985년부터 1991년까지는 그간의 원전 건설과 운영 경험을 반영해, 130만㎾급 원전 20기를 표준화해 건설하였다. 그리고 1996년부터 2002년까지 4기의 140만㎾급 원전을 운영했는데, 이때부터는 미국 기술에서 완전 탈피해 기술자립을 이룩했다.

    프랑스의 원자력정책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는 프랑스의 라아그 재처리 공장.

    프랑스는 1992년부터 독일과 공동으로 미래형 신형 원자로 연구개발에 착수했는데, 이것이 제3세대 원전이라 하는‘유럽형 가압경수로(EPR)’이다. 160만㎾급인 EPR은 프랑스의 프라마톰과 독일의 지멘스가 공동 개발한 프로젝트로 2004년 프랑스 정부는 플라망빌 원전 단지에 실증로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프랑스에 건설되는 첫 번째 EPR은 2007년 착공해 2012년 완공될 예정이다. 그리고 3년간의 시험운영을 거쳐, 2015년경에는 수명이 다하는 기존 원전과 대체할지를 결정하기로 하였다.

    30여 년간 흔들리지 않고 추진한 원자력 정책 덕분에 프랑스의 원자력 설비 용량 비율은 1973년 22.7%에서 63% 수준으로 높아졌다. 이에 따라 프랑스의 에너지 자급률도 1970년대 23% 수준에서 50% 이상으로 높아졌다.

    원자력은 프랑스의 환경을 보호하는 데도 일등공신 구실을 했다. 원자력발전소를 지속적으로 건설한 결과 지난 20여 년간 온실가스의 주범인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이 3000만t 정도 감소했다. 또한 원자력을 통한 전력생산으로 kWh당 CO2 발생량도 20년 전의 9분의 1 정도로 감소했다.

    프랑스의 원자력 산업은 고용 창출에도 크게 기여했다. 현재 프랑스의 원자력계 산업체에 종사하는 인력은 줄잡아 10만명에 이른다.

    프랑스는 이러한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해외에도 진출했다. 우리나라에는 울진 1, 2호기를 수출했고, 남아공과 중국에 원자력 기술을 수출한 바 있다. 최근에는 동남아시아와 중국의 신규 원전 건설에 진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원전 폐쇄로 간 독일

    프랑스의 원전 개발 정책은 잉여 전력을 인접한 유럽 국가에 수출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독일을 비롯한 인접 국가에 전력을 수출하는 대가로 프랑스는 연간 20억유로를 벌어들이고 있다.

    독일은 녹색당을 중심으로 한 반핵 운동에 발목이 잡혀 원전 건설을 등한히 했다. 그 사이 프랑스는 세계적인 반핵 단체인 그린피스가 자국 내에서 활동함에도 원전 건설에 매진했다. 그 결과 전기요금을 낮춤으로써 인접 국가에 전기를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가 전기를 싼 값에 공급하는 덕분에 인접 국가들도 전력요금을 인하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프랑스가 생산하는 전력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는 독일이다. 2005년 독일이 프랑스에서 수입한 전력량은 15.7TWh로 프랑스의 전체 수출 전력량의 26%에 달했다. 독일은 프랑스와 달리 석탄자원이 풍부하다. 통일 이전 동독은 70% 이상의 에너지를 국내에서 생산되는 갈탄에 의존하고 있었고, 서독은 석유·석탄·천연가스 및 원자력 등을 통해 1차 에너지를 자급하고 있었다.

    그런데 1990년 통일 이후, 동독에서 서독 지역으로 노동인력이 대거 이동해 동독의 경제활동에 변화가 일어났다. 통일 후 1년간 서독 지역의 에너지 소비량은 전년대비 6% 증가했으나 동독 지역에서는 30% 정도 감소했다. 이에 따라 독일 정부는 신규 에너지원을 개발하기보다는 기존 전원(電源)의 효율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춘 에너지정책을 추진했다.

    1998년 발족한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의 연립내각은 탈(脫)원자력 정책을 채택하고 2021년까지 원자력발전소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2002년 원전의 수명을 32년으로 하는 것을 골자로 한 ‘원자력법’을 만들고, 2003년 11월 슈타데 원전을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독일은 17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는데 이들 원전은 독일이 소비하는 전체 전력의 3분의 1 정도를 감당하고 있다. 2004년 기록에 따르면 원자력 발전량 부문 세계 10위권 이내에 독일 원전 5기가 들어가 있었다. 이는 독일 원전의 운영 실적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2002년 제정한 원자력법 때문에 독일은 우수한 원전을 운영 시작 32년이 되면 무조건 퇴역시켜야 하는 처지에 몰리게 되었다.

    그로 인해 독일 원자력 산업계는 40년간 기울인 노력이 허사가 될 뿐만 아니라 전기요금 인상과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가 불가피해졌다며 반발하고 있다. 독일은 현 정책을 유지하는 한 부족한 전력을 충당키 위해 인접국가로부터 전력을 수입해야 한다. 에너지안보를 타국에 의존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프랑스의 원자력정책

    원자력청을 세운 드골 대통령(오른쪽)이 독일의 아데나워 총리를 만나고 있다. 원안은 원자력 발전을 국책사업으로 정한 퐁피두 대통령.

    이 때문에 독일 총리는 탈원자력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운영 중인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며 새로운 원전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과연 독일이 원자력법을 개정할지에 대해 국제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자체기술로 원전연료주기 수행

    프랑스는 원자력 발전의 주 원료인 천연우라늄을 채광해 농축·성형가공을 하고 그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는 전체 원전연료주기를 자체 기술로 수행하고 있다.

    프랑스는 우라늄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공급선 다원화 정책을 추진했다. 그리하여 캐나다, 가봉, 나이지리아, 미국, 호주 등지로부터 우라늄을 수입한다. 프랑스가 생산하는 핵연료는 전세계 원자력발전소에서 소모되는 연료의 4분의 1에 이른다. 프랑스는 우라늄 농축의 필수단계인 ‘6불화우라늄(UF6)’ 변환기술과 핵분열성 동위원소의 농도를 높이는 농축기술을 자체 개발했으며, 경수로용 연료도 자체 제작하고 있다.

    연료 주기의 마지막 단계는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와 재활용이다. 매년 프랑스 원전에서 발생되는 사용후핵연료는 1200t에 이른다. 이 중 라아그에 자리잡은 재처리시설에서 850t 정도를 재처리해 재사용이 가능한 물질과 사용이 불가능한 물질로 분리한다.

    재처리 과정에서 추출한 우라늄과 플루토늄은 혼합연료(MOX) 형태로 원전에 들어가 재활용된다. 1984년 프랑스는 90만㎾급 원전에 혼합연료를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1987년 생로랑데조 1호기에 혼합연료를 최초로 장전했고, 현재는 90만 ㎾급 원전 28기에 혼합연료를 장전해 연간 300억 ㎾h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와 재활용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발생량을 감소시키는 장점도 갖고 있다. 사용후연료를 재처리 또는 재활용할 경우 발생하는 폐기물량은, 직접 처분할 경우의 반 정도로 줄어든다. 1990년대 중반에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할 경우와 직접 처분할 경우의 소요비용은 대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는 이러한 장점을 모두 취하고 있다.

    2004년 신(新)에너지법안이 프랑스 의회를 통과했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온실가스 방출량을 감축하고 원자력과 신·재생 에너지의 비율을 높인다는 것이다. 2020년까지 1차 에너지원으로 원자력을 유지해 에너지 안보와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현재 가동되는 원전의 수명기간을 30년에서 40년으로 연장하는 내용과 수명이 다하는 기존 원전을 EPR로 대체할지는 2015년에 결정한다는 것도 이 법안에 담긴 주 내용이다.

    혼합연료 확보에 앞장선 프랑스

    지난 30여 년간 프랑스는 정치·경제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원자력 정책만은 일관성 있게 추진했다. 프랑스 정부가 일관성 있게 정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에너지 안보와 자립도를 높이려는 정부의 의지가 매우 확고했고, 국민적 합의 과정을 거쳐 정책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방법으로 공청회와 토론회 등을 택했는데, 이 방법은 미테랑 대통령이 당선된 198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공청회를 여는 주 목적은 정부의 의지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 의견도 듣고 충분한 토론을 통해 궁극적으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원자력정책
    봉기형

    1956년 경기 이천 출생

    홍익대 전기공학과 졸업

    1982년 한국전력공사 입사

    원전 운영 및 정비, 원자력발전소 건설분야 근무

    2003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수력원자력 파리사무소 근무


    프랑스는 최근까지 이러한 절차를 준수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법,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대한 허가 및 건설 절차 등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에너지의 97%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서는 프랑스와 독일의 사례를 면밀히 검토해 장기적인 에너지 정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대안 없는 반(反)원자력 활동은 이제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