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폐장을 유치한 경주는 홍역을 앓고 있다. 정부 지원금 3000억원을 어떻게 사용할지와 경주로 이전하기로 한 한수원 본사를 경주 내 어느 지역에 둘 것인지를 놓고 지역별·직능별로 나눠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2006년 8월30일 경주시 양북면·양남면·감포읍 주민들이 한수원 본사를 양북면 쪽으로 이전하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주 시의회가 전국 최초로 방폐장 유치를 결의하고 경주시는 유치신청서를 최초로 접수하였다. 이에 시민과 사회단체가 동참해 국책사업 경주유치추진단(이하 추진단)이 구성되었다. 추진단이 읍·면·동별로 조직을 만들어 홍보에 들어간 결과 경주 시민은 주민투표에서 89.5%라는 압도적인 찬성률로 방폐장을 유치했다.
하지만 방폐장만 유치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순진한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첫째는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주민들은 좋은 것 아니냐 하겠지만, 부동산 투기꾼들의 장난으로 가격만 높아졌지 실제 매물은 그다지 없다는 것이다. 방폐장 특수에 대한 기대로 부동산 가격과 경기가 잠시 꿈틀거렸지만 방폐장 건설 주변지역 주민들의 양극화에 따른 허탈감은 심각하다.
방폐장 유치 확정 후 경주의 가장 큰 이슈는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 본사가 어디로 올 것이냐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방폐장 건설 주변지역의 3개 읍·면이 지역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공동대표 김승환·유영태·김수락·임동철)를 구성해 ‘양북면으로 한수원 본사를 옮겨올 것’을 주장하면서 불거져 나왔다.
“한수원 본사는 방폐장 지역으로 오라”
2006년 8월30일 대책위는 주민 3000여 명과 함께 월성원자력본부 앞 도로를 점거하고 한수원 본사의 양북면 이전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9월1일부터 8일까지는 릴레이 집회를 개최했다. 9월11일에는 경주시청 앞에서 한수원 본사 이전을 방폐장과 분리하려는 민관공동협의회(이하 협의회) 구성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후 대책위는 이중재 한수원 사장 면담을 요구하며 ‘본사 이전 후보지로 양북면 이외의 지역은 검토하지 말라. 이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방폐장 유치를 백지화하고 신월성원전 건설과 월성원자력본부의 사용후연료 건식저장고 증설 불가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대책위 소속 200여 명은 10월19일 협의회가 주관해 경주 서라벌문화회관에서 연 ‘시민의견 수렴 및 토론회’에 참여해, “토론회는 한수원 본사가 양북면에 오는 것을 전제로 열어야 한다”며 토론회를 사실상 무산시켰다.
대책위측의 시위가 격렬해지자 이에 반대하는 경주시내 중심권 시민들이 들고일어섰다. 10월26일 경주도심권 27개 단체와 회원으로 구성된 도심 위기대책 범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임창구)는 경주시청 대회의실에서 “한수원 본사 부지는 경주시 미래 100년 대계와 경주 5개 지역권(북경주·남경주·동경주·서경주·도심권)의 ‘균형발전’ 차원에서 결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있다.
방폐장 유치에 따르는 특별지원금 3000억원의 사용처도 문제이다. 이 3000억원 중 일부가 경주문화예술회관 등 지역 숙원사업에 집행될 것이란 소문이 돌자, 방폐장 주변지역 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주변지역 주민들은 이 돈의 집행은 투명해야 하고 방폐장 주변지역의 장기발전에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폐장을 유치할 때 단결하던 모습은 오간 데 없고, 이제는 경주 안에서 지역주의가 작동해 서로 싸우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경주의 미래가 진정 밝아지겠는가.
2006년 10월19일 경주 서라벌문화회관에서 열린 설명회에서 벌어진 몸싸움. 경주는 한수원 본사 이전 문제를 놓고 갈등하고 있다.
한수원 노조의 반발
이에 대해 한수원측은 전적으로 경주시가 시민의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수원은 ‘한수원의 입장’이란 보도자료를 통해 “한수원 본사 이전은 특정지역만의 이익이 아닌 경주시 전체의 발전과 관계있다. 따라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경주시민 전체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 비효율적이고 지역경제를 마비시키는 집단시위나 집회를 최대한 자제하고 민주적인 논의의 장인 ‘민관공동협의회’에 참여해 주장을 표명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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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수원은 한수원대로 갈등을 빚고 있다. 한수원 노조측이 ‘직원들의 처지에서 본사 이전 후보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한수원 직원들은 자녀 교육이 좀더 용이한 곳에 본사가 들어갈 것을 바라고 있다. 방폐장이 들어설 양북면보다는 경주 시내로 본사가 옮겨가야 한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그러나 대책위는 한수원과 경주시가 제안한 민관공동협의회 참가를 거부해 지역간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수원은 ‘방폐장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명시된 법정시한인 2010년 10월31일보다 1년7개월가량 늦어진, 2012년 5월31일이 되어야 한수원 본사가 경주 지역 이전을 완료할 수 있다고 밝혀, 새로운 논란거리를 제공했다.
한수원은 2004년 제정된 ‘국가균형발전특별법’과 2005년 제정된 ‘방폐장 유치지역 지원 특별법’ 그리고 ‘공공기관 지방이전 계획’에 따라 내년 1월1일까지 이전 후보지 선정을 마쳐야 한다.
그런데 이전 지역 결정을 경주시에 맡긴 한수원은 최근 경주시에 ▲기업활동이 자유로운 광역교통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토지 매입이 용이하고 추후 개발할 수 있는 토지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용도 규제가 적은 곳이라야 한다 ▲도시 인프라 활용이 용이해야 한다 ▲경주의 도시 성장축 및 도시기본계획과 부합해야 한다 ▲역사문화 경관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경관이 우수하고 재해 가능성이 적어야 한다는 7가지를 입지조건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경주 지역 안에서 빚어진 갈등을 보건대 과연 내년 1월 초까지 한수원 본사 이전 후보지가 확정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경주는 다른 곳보다 매장 문화재가 많다. 따라서 한수원 본사 이전 후보지를 확정했더라도, 이 후보지에서 매장 문화재가 발견되면 이전은 용이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수원측은 본사 부지로 평지일 경우 5만여 평, 구릉지라면 10만여 평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두산중공업 원자력 분야의 본사를 옮겨오려면 5만6000여 평과 한전기공, 코센, 한전KDN, 한국정수의 경주 사무실을 위해 12만여 평이 더 필요한 형편이다. 이렇게 넓은 땅에 매장 문화재가 묻혀 있지 말라는 법은 없다.
8군데 후보지 용역 평가
한수원은 한수원 본사 이전 후보지로 경주시와 주민들이 제안한 세 지역 외에 추가로 다섯 곳을 더해 평가 용역을 의뢰한 상태다. 평가 결과에 따라 후보지 순위가 결정되면 경주시와 한수원은 공동 실무위원회를 구성해 협의에 들어간다. 이로써 부지가 확정되면 이곳은 사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금지구역으로 지정된다. 이어 공영개발 원칙에 따라 택지를 조성하는데, 난개발과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주변 지역은 일정기간 개발행위 허가가 제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