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예수’ 박영호 지음/교양인/537쪽/2만원
저자는 여느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그런 학자는 아니다. 평생 농사꾼으로 흙과 거름을 만지며 일하는 가운데 몸과 마음으로 진리를 깨달았다. 대학 공부를 하진 않았으나 석학인 류영모 선생, 위대한 사상가 함석헌 선생에게서 직접 삶과 사상을 배웠으므로 깊고 분명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다. 깨달음이 깊고 자유로워서 막힘이 없고 말과 글에 어려움이 없다. 책 속 곳곳에 실린 신앙 시(詩)에 저자의 깨달음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책은 ‘다석 사상으로 다시 읽는 요한복음’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다석 류영모의 사상에 비춰 요한복음을 풀이한다. 소아시아에서 작성된 요한복음은 앎과 믿음과 행함의 일치를 강조하고 깊은 영성과 공동체적 사귐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수행과 깨달음을 강조하고 공동체적 영성을 강조한 아시아의 종교 문화적 심성과 통한다. 아시아의 영성을 추구한 류영모, 함석헌 그리고 이용도가 특별히 요한복음을 좋아했다. 저자는 요한복음 풀이를 통해 기독교 정통 교의신앙을 거부하고 예수의 영성신앙을 확인한다.
제나가 죽어 얼나로 부활
왜 교회는 예수를 잃어버렸을까? 저자는 ‘대속신앙’과 ‘육체부활’을 내세운 바울의 교의신앙이 예수의 영성신앙을 왜곡하고 변질시킴으로써 예수를 잃어버리게 됐다고 본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제나(몸의 나)가 죽어 얼나(얼의 나)로 사는 것”이다. 예수 자신도 깨달은 이다. “예수의 제나(自我)의 개체의식이 깨어지고 하느님의 전체의식으로 바뀐 것이다. 짐승인 제나(ego)로 죽고 하느님 아들인 얼나로 솟아난 것이다.”(80쪽) 예수는 “하느님을 바로 알고 참되게 사랑한 이”이며 “생·사를 알고 전체인 하느님을 안 이”이다.(224~225쪽)
저자에 따르면 몸의 나가 죽고 얼의 나로 살아나는 것이 구원이고 부활이다. 이것이 예수 자신의 깨달음이고 영성이다. 그리고 예수는 사람들을 얼의 나로 솟아나는 길로 이끈다. 그런데 바울이 강조한 대속신앙과 육체부활에 관한 신앙이 이런 영성적 진리를 왜곡하고 예수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음으로써 모든 인류의 죄가 씻어진다는 대속신앙은 몸의 피에 의존하는, 마술적인 유치한 신앙이며 육체부활은 육체에 집착하는 환상이다. 이런 신앙은 현실에서 책임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게 한다. 육체의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 얼의 나로 자유롭게 되는 것이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참된 부활이다.
저자는 이런 주장을 스승인 류영모의 사상에 비춰 펼친다. 류영모는 예수를 기념하는 종교가 아니라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예수를 사는 신앙”을 강조했다. 류영모에게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예수처럼 산다”는 것은 예수의 정신으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 몸 바쳐 사는 것이다. 류영모는 이런 신앙을 나타내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어서 그리스도록”(예수를 이어서 그리스도의 자리에 서도록)으로 풀이했다. “제나로 죽고 예수의 얼로 살아나서” 예수의 자리에서 예수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오늘 예수의 삶을 살려면 예수의 얼과 영으로 살아나야 한다. 예수의 얼과 영이 살아나도록 하기 위해 저자는 제사종교, 의식(儀式)종교를 영적인 신앙으로 바꾼다. “마음의 심주(心柱)에 성령의 불을 붙여 말씀의 향내를 피워 올려야 한다.”(211쪽) 하느님은 “없이 계시는 이”이며 유무상통(有無相通)하여 있음과 없음의 세계를 함께 아우르는 이다. 기독교의 신앙을 영성신앙으로 파악하고 하느님을 없음과 있음을 아우르는 “없이 계신 이”로 이해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서면서 유·불·도를 회통(會通)하는 자유롭고 통합적인 영성에 이른다. 기독교와 성경의 깊은 체험적 진리 이해에 도달함으로써 다른 종교들의 영성적 진리와 막힘없이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필자는 저자가 내세우는 예수의 영성신앙에 공감하고 동의한다. 예수의 영성신앙이 예수의 본래 신앙이고 신약성경의 기본내용이었다고 본다. 저자의 글을 통해서 오늘의 교회가 잃어버린 예수를 만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바울, 대속신앙과 육체부활에 관해서는 다른 평가가 있을 수 있음을 밝히고 싶다. 바울은 생전의 예수를 몰랐으나 예수의 삶과 영에 누구보다 헌신했다. 그는 육과 영을 대립시키고 영을 내세웠고 자신은 죽어도 예수의 생명과 영이 살기만을 바랐다. 문익환 목사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바울의 교리적 주장이 대통합과 평화를 가져오는 생명의 원리라고 보았다. 바리사이파는 율법의 행위와 공적을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움으로써 흑백논리와 당파주의에 빠졌으나 믿음만을 내세운 바울은 만인을 평화와 통합으로 이끄는 생명과 영성의 신학을 가졌다는 것이다.
“바울, 예수의 영에 충실”
대속신앙과 육체부활의 문제는 역사와 삶의 상황에 충실했기에 몸을 중시한 성경과 기독교의 특성과 맞물려 있다. 구체적인 삶의 현실과 상황에서는 몸을 벗어날 수 없으며, 연약한 몸을 안고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고 해도 역사의 현실과 상황에 두려움과 떨림을 느낀다. 아브라함, 모세, 예수, 베드로, 바울이 다 흔들리고 떨리는 존재다.
대속신앙과 부활신앙은 오랜 역사의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겪은 고난의 경험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나라를 잃고 오랜 고난을 겪은 ‘고난의 종’에 관한 이야기가 이사야 53장에 나온다. 여기서 역사 속에서 짓밟힌 희생자의 고난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를 씻고 병을 낫게 한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이런 깨달음이 희생양 개념과 결합돼 예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메시아적 구원사건으로 이해하게 됐다.
대속신앙을 단순히 교리적으로만 이해하면 마술적이고 신화적인 것이지만 오랜 역사의 고난과 관련해서 보면 생명과 영의 진리로 이해될 수 있다. 육체의 부활도 단순히 죽은 시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이해하면 유치하고 신화적이지만, 몸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보면 생명과 영의 진리로 이해될 수 있다.
사변적 교리적 신앙 깨야
성경에서는 하느님이 물질세계를 긍정하고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으로 오시며, 몸으로 십자가에 달리고 몸으로 부활한다고 함으로써 처음부터 끝까지 몸을 버리지 않았다. 성경은 몸을 배제한 영에 대한 관심이 관념적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했다. 영은 몸과 공존한다고 보았다. 바울이 말한 부활은 정확히 표현하면 육체의 부활이 아니라 몸의 부활, 다시 말해 몸의 새로운 형태로의 부활이다. 그리고 성경에서 몸은 인간의 한 부분이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를 나타내는 전인적 표현이다. 동양종교에서도 “몸을 닦는다”(修身)는 것은 정신과 인격을 닦는 것을 뜻한다. 이와 함께 성경은 몸의 덧없음과 허망함을 잘 알고 있다. 몸은 흙으로 빚어진 것이며 티끌, 먼지와 같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논의와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해도 이 책의 기본 내용과 논지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성경의 중심과 핵심을 뚫어 밝힘으로써 성경과 예수의 가르침에로 우리를 이끈다. 사변적이고 교리적인 신앙, 미신적이고 신화적이며 주술적인 신앙을 깨버리고 삶과 영의 진리로 이끌어서 힘 있게 살도록 촉구한다.
류영모, 함석헌 두 분의 정신과 철학을 연구하고 알리는 씨재단이 창립되는 시점에 ‘잃어버린 예수’가 나온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다. 이 책은 씨재단의 과제와 사명을 밝혀준다. 이 땅에 예수의 생명과 영성이 살아서 꿈틀거리게 함으로써 정의와 평화의 세상을 이루게 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