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한강을 알지만 잘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서울이 수도로 정해진 이래 600년 동안, 아니 그보다 훨씬 전 한강 주변에 처음 한민족의 국가와 도읍이 정해지던 삼국시대 초기부터, 혹은 그 수천년 전 선사시대 선조들이 강 근처에 부락을 지을 때부터 한강은 많은 이의 삶의 중심에 있었다. 그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복원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로 만드는 작업은 강과 사람,
- 강과 도시에 대한 가르침을 전해줄 것이다.
반포대교 잠수교 남단 위에 건설되는 플로팅 아일랜드 조감도.
풍납토성 테마파크 개념도.
‘한강의 가치 회복’이 서울시의 주요 정책으로 채택됐다는 소식이 그나마 다행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강 유역의 역사 자원에 대한 복원을 시작으로 역사성 회복이 활발하게 추진됨으로써 서울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한 부분으로 제시된 ‘역사·문화 공간화 사업’은 한마디로 단절된 역사를 현재와 미래로 연결하는 복원 및 창조 프로젝트라고 정의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사업의 주요 특성을 살펴보면, 먼저 한강의 역사유적과 연계된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사업과 박물관·전시관 건립을 통해 시민들에게 역사문화 및 교육체험의 기회를 대폭 확대한다는 방안이 눈에 띈다. 한강에 대한 시민들의 이용도를 높이고 강을 역사문화 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한강 유역의 주요 문화유적과 한강공원을 연계하는 역사거리, 보행연결로를 조성해 한강변의 유적을 시민들이 한결 쉽게 탐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사업의 내용 가운데 하나다.
이는 결국 한강을 과거와 현재의 시민 문화가 어우러진 문화 창조의 공간으로 전환해 서울의 대표 브랜드로 개발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이러한 ‘한강 역사·문화공간화 사업’의 주요 내용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기로 하자.
마포나루 테마파크 개념도.
첫 번째로 살펴볼 것은 한강변의 역사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테마파크를 조성하고 역사박물관과 전시관 등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사업이다. 이 가운데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계획은 광나루에 조성될 풍납토성 테마파크다. 이곳에는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조상들의 생활 흔적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 특히 백제 초기의 성곽을 재현함으로써 주변의 몽촌토성이나 석촌동 고분군과 연결해 역사적으로도 가치 있는 장소로 만들 예정이다.
또한 마포 지역에는 1900년대 조선시대 마포나루의 시대상을 체험할 수 있는 마포나루 테마파크를 건립한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이 테마파크가 완공되면 마포구에서 주최하는 한강 마포나루 새우젓 축제(2008년의 경우 10월16~17일에 열렸다)와 더불어 시민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명소가 될 것이다.
아울러 용산 지역에 한강 역사박물관, 강서구에 겸재정선 미술관이 건립되어 테마파크와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암사선사공원은 약 6000년 전 신석기 시대 우리 조상의 생활상을 현장감 있게 체험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미래 세대에게 지금까지 소멸되었던 한강에 대한 역사문화의 교육 현장을 제공함과 동시에, 일반 시민에게는 기존의 단순한 공원 이미지에서 벗어나 한강의 역사성을 재조명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의미 있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강서구 가양동에 들어설 겸재정선 미술관 조감도.
강동 지역의 경우 올림픽대로를 일부 지하화함으로써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아차산성 등의 역사유적지와 한강공원이 지상으로 직접 연결되는 고대 역사유적 탐방로가 조성된다. 강서지역에는 탑산에서 궁산을 연결하는 탐방로가, 마곡지구에는 워터프런트 수변 보행로를 통해 한강공원과 궁산 유적지를 직접 연결하는 탐방로가 만들어지고, 망원지역에는 홍대 문화권과 연계한 ‘걷고 싶은 거리’가 확대 조성된다. 또한 양화대교 보행로 환경개선을 통해 공원과의 연계도 한층 강화된다.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지역 간의 연계성 제고 차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경제적·정치적 논리에 의해 정체되거나 단절됐던 시민들 사이의 소통을 원활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한강이라는 장소가 서울시민들 간의 이해를 돕는 활발한 교류의 장으로 거듭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살펴볼 것은 갤러리와 공연장 등 다양한 문화체험 공간을 조성해 시민들이 녹음이 풍성한 숲에서 휴식을 취하며 여유를 만끽하고 활력 넘치는 다양한 이벤트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사업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반포지역에 건설될 플로팅 아일랜드(Floating Island)다. 강 위에 떠 있는 인공섬 공간에서 각종 예술 공연과 전시를 개최함으로써 문화 중심의 레저, 축제, 생활체육 등 다양한 기능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 기본 개념이다. 한마디로 시민들이 사계절 이용할 수 있는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문화·레저시설을 강 위에 조성하는 것이다. 플로팅 아일랜드 둘레에는 발광다이오드(LED) 글라스를 시공해 ‘안개 속에 핀 등불’을 형상화한 야간 경관을 연출한다는 계획이다.
선유도공원 리모델링 계획 개념도.
이렇듯 문화공간을 확충하는 다양한 사업에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부분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일 것이다. 도심지를 관통하는 강을 이용해 문화공간을 조성한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오스트리아 그라츠 시의 인공섬(Mur Island)과 미술관 쿤스트하우스는 수변공간을 유려하게 활용한 좋은 사례다. 그라츠 시 무어 강에 만들어진 인공섬은 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건축된 것이고, 쿤스트하우스는 그라츠의 역사와 유산을 여유롭게 반영하면서도 현대의 첨단기술과 멋진 조화를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그라츠의 사례는 강변 역사유적과 자연적 특징이 첨단기술과 조화를 이루며 추진된 경우로, ‘한강 역사문화 공간화 사업’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 벤치마킹 사례가 될 만하다.
오스트리아 그라츠 시의 동쪽과 서쪽을 잇는 ‘문화의 다리’와 가운데 설치된 인공섬. 미술기획자 푼켄호퍼씨가 고안한 이 인공섬에서 시민들은 차를 마시며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고 재즈 연주를 즐긴다.
세계 유명 관광도시의 강을 떠올려보자. 프랑스의 센강에서 유람선을 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것이다.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강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아담하고 협소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센강 양옆에 늘어선 유구한 역사의 건축물들을 보면 자연과 문화의 절묘한 조화에 숙연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과거를 소중히 가꾸고 현재와 공존하도록 만드는 지혜가 미래를 열어준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고풍스러운 건물들 위에 불시착한 우주선 같은 독특한 외관을 자랑하는 그라츠 시의 쿤스트하우스.밤이면 푸른색 아크릴 외장재 안쪽에 설치된 700개의 형광등이 컴퓨터 시스템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패턴으로 점멸해 살아 움직이는 생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새로 만들어지는 한강의 역사·문화공간들은 짧지 않은 기간 강남북으로 단절되었던 서울이라는 도시가 한강을 중심으로 재구성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동체’로서의 가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오랜 시간 쌓인 강의 이야기를 통해 서울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이 한강에 포함되고 한강을 통해 윤택해질 수 있도록 하는 장기적인 고려가 필수적이다.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는 20여 년에 걸쳐 이루어지는 큰 사업이다. 안팎으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이 같은 사업이 진행되는 것에 부정적인 시선도 없지 않다. 이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시민들의 합의와 참여다. 한강을 세계적 랜드마크로 만들려면 더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이 필수적이다. 그렇게 될 때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키워드로 제시된 ‘문화’라는 단어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