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이라는 ‘발등의 불’이 시골 벽지학교로 옮겨 붙고 있다. 학생 수 부족으로 폐교되는 사례가 속출한다. 오래전부터 전국적으로 벌어진 현상이다. 3년 전 전교생 17명의 미니 학교였던 충남 연기군 쌍류초등학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지금 이 학교는 전학 대기자들이 줄을 섰다.
-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쌍류초교 학생들이 방과후학교에서 사물놀이를 배우고 있다.
“애들이 물건 만들어 판다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월급을 조금 더 줘야 하지 않을까?”
“1000원으로 과자 한 봉지 사 먹는 거보다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더 나은 거 같아.”
“불우이웃에게 돈이 더 필요할 것 같니, 아니면 너희 가족에게 더 필요할 거 같니?”
“불우이웃에게 더 필요하잖아. 그럼 불우이웃에 기부하는 게 좋을 거 같아.”
“독거노인을 돕는 건 어때?”
며칠 뒤 네 명의 아이가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들뜬 표정으로 학교 근처에서 혼자 사는 93세 할머니 집을 찾았다. “할머니, 우리가 고구마 캐서 찌고 달고나 만들어 팔아서 돈을 벌었어요. 그걸로 겨울 따뜻하게 나시라고 털신이랑 스웨터를 사왔어요.” 뜻밖의 선물과 방문에 감격한 할머니를 위해 아이들이 준비한 선물이 또 있다. ‘도라지타령’ 합창. 노래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뿌듯한 행복감이 묻어났다.
2010년, 전교생이 17명에 불과해 폐교 직전까지 갔던 세종특별자치시(이하 세종시) 연서면 쌍류초등학교(옛 연기군 서면 쌍류리)가 힘찬 날갯짓을 시작했다. 지난 한 해 동안 4학년 사회과목의 경제 단원을 ‘행복한 부자 되기’라는 프로젝트 학습으로 진행한 아이들은 ‘사업계획 세우기-판매상품 구하기(만들기)-판매전략 세우기-상품판매-행복한 부자 되기 토의활동’을 했다. 동영상에 담긴 수업 결과물은 교사들에게도 감동을 안겼다.
이 학교 교무부장 조항선 교사는 “아이들이 조를 짜서 직접 시장조사를 하고 사업을 해 얻은 수익금을 유니세프에 기부하기도 했다. 독거노인을 도운 아이들은 사전답사를 통해 할머니에게 필요한 것들을 꼼꼼히 점검했다는데, 활동내용 과정을 동영상으로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고 했다. 이광호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는 최근 교육부의 연구학교 중간보고회에서 ‘행복한 부자 되기’ 수업을 참관한 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중심의 새로운 수업방식을 이뤄낸 게 놀랍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쌍류초교는 2012년 교육부가 지정한 ‘창의·인성모델 연구학교’로 내년까지 3년간 예산을 지원받는다.
1934년 조치원공립보통학교 부설 쌍류간이학교로 출발해 8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쌍류초교는 지난해 2월까지 2399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그 사이 ‘쌍류국민학교’로 승격해 개교하고 병설유치원을 개원하는 등 한때 발전의 길을 걸었지만, 농촌 취학아동이 줄면서 쇠퇴를 면치 못했다. 3년 전에는 전교생이 17명으로 줄어 폐교 위기를 맞았다. 학생 수가 적어 학년을 합친 복식학급으로 3학급을 운영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교생 72명에 학년당 1학급씩 6학급을 갖춘 번듯한 학교로 변모했다.
더 놀라운 것은 지난해 전학을 기다리는 대기자 수가 42명에 달했고 지금도 15명의 대기자가 줄을 서 있다는 사실이다. 5학년 최서원 양의 어머니 임수정 씨는 “대기자 등록 후 6개월을 기다린 끝에 겨우 전학시킬 수 있었다. 그나마 큰딸이 먼저 전학 와서 재학생이 된 덕분에 ‘형제자매’ 특혜를 받았는데도 그 정도였다”며 웃었다.
세종시가 들어서기 전 쌍류초교는 쌍류리 내 거주자만 입학이 가능했다. 이후 학구가 조정되면서 연기군 조치원읍(현 세종시 조치원읍) 거주 학생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학교 규모 등 운영상의 문제 로 외지 학생은 정원이 12명으로 묶여 있어 전학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해마다 대기자 줄이 길어지고 있다.
창의성과 인성 발달에 역점을 둔 영어 원어민수업, 체육시간, 음악시간(왼쪽부터 시계 방향).
6개월 대기하다 전학
쌍류초교는 세종시 유일의 벽지 학교다. 그럼에도 다수 재학생이 시내 아파트에 거주한다. 근처에 큰 학교가 여럿 있는데도 부모들이 굳이 차로 20분을 가야 하는 벽지 학교에 자녀를 보내려는 이유가 뭘까. 대기자 명단에 자녀의 이름을 올리고 이사를 준비 중인 경북 구미의 한 학부모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게 이 학교에 있다”며 매일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교육 프로그램을 꼼꼼하게 둘러보는 게 일과다. 이처럼 학부모들은 교육 프로그램이 좋고 자연친화적 환경을 갖춘 점을 이 학교의 강점으로 꼽는다. 교사들에 대한 신뢰도 두텁다. 조항선 교사는 “벽지 학교다보니 뭔가 해보겠다는 의욕적인 교사가 일반 학교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모가 많다”고 귀띔했다.
쌍류초교는 충남교육청이 실시한 2012년도 청렴학교 인증평가에서 ‘매우 우수’를 받아 청렴인증 학교로 선정됐다. 도내 초등학교 424개를 포함한 775개 학교를 대상으로 업체 선정의 투명성, 민원인과 내부 고객의 만족도, 담당자 친절도 등을 종합해 상위 20%, 85점 이상 취득을 동시에 충족하는 학교에 한해 인증해주는 제도다. 쌍류초교는 업체 선정 과정에 내·외적인 개입을 배제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납품업체를 선정하고자 전자입찰 및 전자계약을 시행했다. 청렴윤리 실천을 위해서도 수시로 직장교육을 실시하고 전 교직원의 청렴 연수 100% 이수를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학부모 관심 뜨거워 두렵다”
조항선 교사는 “요즘 학부모들은 인터넷 카페 활동을 비롯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소통을 많이 하기 때문에 금방 입소문이 퍼진다. 실제로 주위에서 얘기를 듣고 우리 학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학부모가 많다”고 전하며 “학부모들의 관심이 워낙 뜨겁다보니 교사인 우리도 사실 좀 두려울 정도”라고 털어놨다.
조치원읍에서 10㎞ 떨어진 고복저수지 근처 전원 속에 자리한 쌍류초교는 붉은 벽돌로 된 나지막한 2층 교사 뒤편으로 차령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주위로 맑은 물이 흐르고 봄·여름이면 꾀꼬리와 뻐꾸기, 소쩍새 울음소리가 교정의 고요를 뒤흔든다. 근처에 배나무과수원이 있어 5월이면 흩날리는 배꽃이 학교를 온통 뒤덮는 절경이 펼쳐진다. 학부모 임수정 씨는 “창문만 열면 앞뒤가 다 산이고 늘 새소리가 들린다. 개울가에서 올챙이와 다슬기를 잡고, 눈 오는 날 뒷산에서 비료 포대를 타고 노는 아이가 부러울 정도다. 내가 어릴 때는 도시에서 학교와 학원을 오가느라 그런 추억이 없다”고 했다.
아이들이 공부와 성적 경쟁에 찌들지 않고 자연 속에서 맘껏 뛰놀았으면 하는 게 요즘 부모들의 바람이지만, 그렇다고 공부를 소홀히 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다. 수개월의 기다림을 감수하고 아이를 쌍류초교로 전학시키려는 부모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무엇보다 차별화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그중에서도 특성화 교육인 ‘큰 꿈을 키우며 비상하는 쌍류교육’ ‘새로운 도전으로 앞서가는 쌍류교육’ ‘배려와 나눔으로 함께하는 쌍류교육’을 기치로 이 학교만의 독특한 7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13살 꿈 목록 완성하기, 창의·인성 마중물 수업, 생각 디딤돌 창의력 신장 프로그램, 사계절 감성 체험동아리 활동, 앎과 삶을 위한 프로젝트 학습 전개, 인성동아리 활동이 그것.
도서실에서 만난 3학년 김서은 양은 ‘1인 1책 쓰기’ 수업을 통해 벌써 두 권의 창작동화책을 썼다. 서은이는 “스토리를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이 많았다. 3주쯤 생각하다 비염으로 재채기하는 소녀와 마법사가 등장하는 얘기를 완성했다.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리느라 많이 힘들었지만 엄마, 아빠가 보시고 재미있다고 하셔서 뿌듯했다”며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똑 부러지게 얘기했다. 셰프가 되는 게 꿈이라는 아이는 “아빠에게 무좀이 있는데 맛있는 케이크로 무좀을 고쳐드릴 순 없을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의형제가 있는 학교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을 길러주는 학생 중심의 프로젝트 수업과 1인 1책 쓰기 창의력 신장 프로그램 외에 쌍류초교의 또 다른 독특한 프로그램이 인성동아리 활동이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6명씩 짝을 지어 의형제를 맺고, 매달 두 시간씩 진행되는 ‘어깨동무의 날’ 수업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의형제와 함께 운동을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친밀감과 배려, 양보를 배운다. 의형제와 학부모, 교사 모두가 참여하는 1박2일 학교운동장 캠프도 한 달에 한 번씩 연다.
부모를 졸라 조치원에서 전학왔다는 6학년 배희주 양은 “예전 학교는 성적 경쟁도 심하고 끼리끼리 무리 지어 다녀 친구들 사이에 갈등도 많았다. 여기는 학생 수가 적어 전교생이 다 친하고 특히 의형제를 맺은 동생이 많은 게 너무 좋다. 내남동생은 네 살이라 같이 놀 수도 없고 여동생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지금은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동생이 많이 생겼다. 함께 축구하고 발야구도 할 수 있어서 즐겁다”고 했다.
물리적 폭력이 많은 도시 학교와 달리 언어폭력과 따돌림이 많은 시골 학교의 특성상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형제자매가 많지 않아 외로운 요즘 아이들의 심성을 보듬기 위한 인성동아리 활동은 학부모와 아이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세종시교육청의 특성화사업 우수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교사들은 직접 발품을 팔아 아이들의 감성을 키우기 위한 계절별 체험 동아리 활동 콘텐츠를 찾아냈다. 봄이면 아이들이 학교 주변에 많이 피는 진달래꽃을 따다 화전을 부치게 하고, 너른 텃밭에 각종 채소를 길러 수확한 뒤 이웃과 나눠 먹게 한다.
기회 늘어난 아이들
폐교 위기에 몰린 이 학교를 불과 3년 만에 “외지 학생의 정원을 늘려 전학할 수 있게 해달라”는 학부모의 민원이 빗발치는 학교로 만든 밑거름은 ‘어떻게든 학교를 살리겠다’는 교사들의 숨은 열정과 노력이다. 특히 교장을 비롯한 모든 교사가 최대의 공로자로 꼽는 이는 고(故) 신정균 교육감과 윤은석 전임 교장이다.
초대 세종시교육감을 지내다 지난 8월 세상을 떠난 신 교육감은 연기교육지원청(현 세종시교육청으로 통합) 교육장으로 재직할 때 “소규모 학교를 살려야 한다”는 교육철학을 갖고 있었다. 그는 쌍류초교가 폐교 위기에 몰리자 학구 조정을 통해 멀리 조치원에서도 이곳으로 학생들이 올 수 있도록 했다. 등하교에 불편을 겪을 학생들을 위해 통학차량을 지원한 것도 큰 힘이 됐다. 지난해 8월까지 이 학교에 몸담은 윤은석 전임 교장(현 세종시 한솔초교 교장)은 교사들과 머리를 맞대며 차별화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손수 만든 홍보전단을 들고 조치원으로 나가 학교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때부터 전학생이 하나둘 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됐다.
지난해 5월 연기교육지원청 주최 충청남도 자연관찰탐구 군 대회에 출전해 배희주 양과 함께 초등부문 금상을 수상한 6학년 서범석 군은 “3학년 때 여기로 전학 와서 성적이 올랐다. 학생 수가 적어 선생님들이 맞춤지도를 해주시기 때문에 공부가 재미있다”고 했다. 범석이는 “큰 학교에 있을 때는 학교 대표로 각종 대회에 출전할 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지금은 여러 대회에 나갈 수 있고 상 받을 기회도 늘었다”며 활짝 웃었다.
15년째 교직에 몸담고 있는 조항선 교사는 내년이면 쌍류초교를 떠나 다른 학교로 가야 한다. “여기 있어보니 떠나기 싫다”는 그는 주말이면 집에서 쉬는 대신 가족과 함께 학교에 나온다. 취재가 끝난 뒤 현관까지 기자를 배웅한 그는 “아마 이곳을 떠나기 싫은 건 다른 모든 교사와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애정이 가득한 눈길로 텅 빈 운동장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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