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승 수원시의원은 정치인으로, 택시기사로 이중생활을 한다. 핸들을 잡으며 지역 주민의 생각과 바람을 온몸으로 공감한다. 그가 모는 택시 안에서 그의 남다른 정치철학을 들어봤다.
“메르스 때문에 일하는 게 곤욕이에요. 나는 주로 밤에 일하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손님이 탔다가 ‘강도인 줄 알았다’며 깜짝 놀라요. 그래서 마스크를 벗고 있으면 ‘직업의식이 없다’ ‘안전불감증이다’며 화를 내요.”
한 택시기사의 말에 모두 공감의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다들 그를 ‘이씨’도 ‘이 기사’도 아닌 ‘이 의원’이라고 불렀다. 그는 수원시의회 문화복지교육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이철승(42·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다.
대부분 일회성 행사에 그치긴 하지만, 정치인들이 종종 지역 민심을 듣겠다며 택시기사로 변신하곤 한다. 그래서 의원이 택시운전을 한다는 건 더는 기삿거리가 되지 않는다. ‘택시운전을 하는 젊은 시의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그렇고 그런 ‘정치꾼’이 한번 튀어보려고 정치적 상술을 부리겠거니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이 사람, 알고 보니 벌써 햇수로 4년째 택시를 몰고 있다. 지난해 6·4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뒤로도 핸들을 놓지 않았다. ‘의원기사’ 노릇도 1년이 넘었다.
지방의회 의원들 중엔 지역에서 방귀깨나 뀌는 유지나 운동권(학생운동, 지역시민운동단체) 출신이 많다. 이 의원은 40대 초반의 야당 의원이라 운동권 출신의 좀 ‘튀는’ 정치인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십보(十步)’가 별명
“고등학교 때 운동을 하긴 했다. 몸 쓰는 운동(웃음). 나? 오히려 지역 유지에 가깝다. 수원에서 태어나 한 번도 수원을 떠나본 적이 없는 토박이니 지역 유지 맞지(웃음).”
넉넉한 몸매처럼 성격도 말하는 것도 둥글둥글하다.
“어릴 때 별명이 ‘십보’였다. 열 걸음만 걸으면 아는 사람을 만난다고 친구들이 붙여줬다. 그만큼 사교성이 좋았던 모양이다.”
시의원을 꿈꾸기 시작한 건 20대 후반이다.
“영업 일을 하면서 시군 행사에 갈 일이 많았다. 그런 행사장에 가면 두루두루 악수하고 돌아다니며 거들먹거리는 사람이 꼭 있다. 십중팔구 시의원, 군의원이다. 정치인들은 원래 그런 줄 알았다. 어느 날 TV에서 미국 플로리다 주 시의원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주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주민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그를 보면서 나도 저 사람처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의 현실은 정치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남들처럼 좋은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좋은 직업을 가진 것도,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수천만 원 빚을 진 상태에서 결혼을 했고, 곧바로 아이가 태어났다.
“그때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내가 죽으면 남은 가족이라도 보험금 받아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악착같이 일했다. 방역장비 수도권 총판을 했는데, 그걸로는 먹고살기 힘들어 의료기기도 팔고, 밤엔 대리운전을 하고, 주말엔 건물청소 같은 일을 했다. 한꺼번에 7가지 일을 했다. 그렇게 2년을 하니까 빚도 갚고, 작지만 내 집도 생겼다.”
“나, 생계형 택시기사”
형편이 좀 나아진 뒤에도 대리운전을 그만두지 않았다. 밤마다 각양각색의 수원시민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즐거웠다. 그들의 생각을 읽고 공감하려 노력했다. 지역의 불편사항, 시에 바라는 점을 들으면 메모를 했다. 그들의 가려워하는 곳을 어떻게 하면 시원하게 긁어줄 수 있을지 생각했다. 시나브로 시의원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해나간 것이다. 마침내 2011년 아내에게 다음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결혼 직후 ‘40대가 되면 시의원에 출마할 거야’라고 했을 땐 집사람이 웃으며 ‘빚 다 갚고 나면 마음대로 하라’고 타박했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 하겠다고 하니 말문이 막힌 듯했다. 아내가 ‘먹고살 대책은 세우고 하라’길래 생각한 게 택시운전이었다. ‘시의원을 하려면 사람을 많이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게 생활정치다, 선거에서 떨어져도 택시운전 경력을 살려 개인택시를 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택시운전면허를 따고 2012년 10월부터 운전을 시작했다.”
원일운수에 취직했다. 낮에는 방역장비와 의료기기 영업을 해야 하기에 야간운전만 하기로 했다.
▼ 택시운전을 한 게 선거에 도움이 됐나.
“손님을 태우고 지역 곳곳을 다니다보니 주민들이 불편해하는 게 뭔지 많이 알게 됐다. 주민들의 사소하지만 가려운 부분을 잘 알고 이야기하니까 유권자들이 많이 공감했다. 그러니까 남다른 경력도 없고, 학력도 별로인 나를 선택한 것 아니겠나.”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그는 3명을 뽑는 선거구(매교, 매산, 고등, 화서1·2, 서둔)에서 4위 후보와 새벽까지 엎치락뒤치락 경합을 벌인 끝에 100여 표 차로 당선됐다.
▼ 시의원의 일상은 어떤가.
“밖에서 보던 것과 달리 할 일이 많다. 의정활동도 해야 하고, 지역활동도 만만치 않다. 나는 지역구가 6개 동이나 돼서 더 바쁘다. 동마다 월례회의를 한 번씩 하니까 모두 6번을 해야 한다. 또한 꼭 참석해야 하는 단체와 조직이 동마다 평균 11개씩 된다. 합하면 66개다. 거기도 한 달에 한 번은 들러야 한다. 거기서 나온 지역 민원을 수렴하는 것도 시의원이 할 일이니 안 갈 수 없다. 그 외에 수원시나 관내 행사가 있으면 참석해야 한다. 틈틈이 의정활동을 더 잘하기 위해 공부도 해야 하는데, 그것도 만만치 않다.”
천태만상 진상 승객
이철승 의원은 “주민과 소통하고 뒷골목 불편을 해소하는 일은 국회의원도 할 수 없는 시의원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실수령액이 360만 원 조금 넘는다.”
▼ 수입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젠 택시운전 안 해도 되지 않나.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근데 몸이 편해지면 마음이 편해지고, 마음이 편해지면 나태해질 수 있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핸들을 놓지 않으려 한다. 사람들이 가장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이 택시기사다. 민심을 가장 잘 알 수 있다.”
▼ 한 달에 며칠이나 택시운전을 하나.
“원래는 23일을 채워야 하는데, 회사에서 배려해줘 최소 근무일수인 13일만 채우고 있다. 출근을 못해도 사납금 6만7000원은 채워넣어야 한다. 야간에만 일을 하는데, 아침부터 의정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 저녁 8시30분부터 새벽 1시30분까지 일한다. 대개 사납금 채울 때까지 한다. 그렇게 하면 한 달에 27만 원 받는다.”
▼ 밤에 택시를 몰다보면 별별 일을 다 겪을 것 같다.
“판교에 손님을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경찰차가 승용차를 비스듬히 막고 있고, 경찰관 한 명은 차 앞에, 다른 경찰관은 운전석 창문을 내리라며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승용차가 핸들을 꺾더니 앞에 있던 경찰을 치고 도주했다. 경찰차 안에는 사람이 없어서 쫓아갈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바로 추격했다. 112상황실에 계속 연락하면서 그 차가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쫓아갔다. 내가 직접 운전자를 제압할 수도 있었지만 112상황실에서 만류해 운전자 위치를 확인하고 경찰에 인계했다. 음주 뺑소니였다.”
밤에 택시 운행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야간순찰도 겸하게 된 셈이다.
“언젠가는 골목길을 지나는데 청소년 2명이 한 명을 구타하는 게 보였다. 쓰러진 아이에게 계속 발길질을 하는데, 얼마나 맞았는지 쓰러진 아이가 맞으면서 반응도 없었다. 재빨리 119에 연락해 구급차를 부르고, 가해자들을 붙잡아 경찰에 인계했다.”
▼ ‘진상’ 손님도 많나.
“어느 남녀는 차에 타자마자 싸우기 시작했다. 남자는 유흥가 쪽으로 가자고 하고, 여자는 싫다며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여자의 요구대로 집 방향으로 갔더니 남자가 갑자기 욕을 하면서 나를 때렸다. 남자를 제압해 지구대로 데려갔더니 이번엔 여자가 남자를 두둔하며 내게 욕을 해대는데, 정말 황당하더라.”
택시 안 민원실
시의원이 된 후에도 이런 손님은 부지기수로 만났다고 한다.
“타면서부터 술에 취해 욕하는 손님이 있었다. 그런데 목적지가 바로 내 지역구여서 참고 갔다. 도착해서 요금이 얼마가 나왔다고 하니까, 갑자기 또 욕을 하며 자기 지갑을 내놓으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럴 땐 그냥 지구대로 가야 한다. 괜히 시비가 붙어 싸움이 되면 택시기사만 손해다. 경찰관 입회 아래 차 안을 살펴보니 그 취객 가방 속에 지갑이 있었다.”
손님의 발에 머리를 차이기도 하고, 차 안에서 취객이 토해내는 토사물을 맞아본 일도 있다.
“택시기사가 잘못한 건 언론에 많이 나오는데 택시기사가 피해를 당한 건 보도가 잘 안 된다. 특히 나이 드신 분이나 여성 운전기사가 이런 피해를 많이 당한다. 그래서 시의원이 된 후 시내 모든 택시에 양방향 블랙박스를 설치하도록 규정을 만들었다. 택시 실내 상황도 녹화하는 게 택시기사와 승객 모두 안전해지는 방법이다.”
택시에 탄 지역주민들과 나눈 이야기가 의정활동에 반영되기도 한다.
“아이가 셋인 아주머니가 탄 적이 있다. 나도 아이가 셋이라 얘기가 잘 통했다. 대화 중에 ‘아이들과 문화시설에 갔는데 다자녀 할인혜택이 없더라’며 다자녀 지원정책이 부실하다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아이들을 위한 시설에야말로 다자녀 혜택이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시내 문화복지시설들은 다자녀 할인혜택을 주도록 조례를 개정했다.”
승객들로부터 들은 민원도 바로 처리했다. 귀갓길 골목이 어두워 불안하다는 여성 승객의 이야기를 듣고 보안등 조도를 밝게 하거나 교체했다. 공원 체육시설이 파손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담당 기관에 연락해 보수하기도 했다.
“지역구 큰길에서 주택가로 들어오는 30m 정도 이면도로가 있다. 그 자리에 불법 주정차하는 차량이 많아 지역 주민이 불편하다는 말을 들었다. 통장회의를 통해 지역 주민 서명을 받아 불법주정차 고시지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진정한 생활정치”
▼ 정치권에 대한 밑바닥 민심도 많이 전해 듣겠다.
“정치에 대한 혐오와 불신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야기를 듣다보면 시의원으로서 창피하고 미안할 때가 많다. 특히 시 행정이나 시의회를 비판하는 말을 들을 때는 일을 제대로 못한 내가 부끄럽고 반성하게 된다.”
▼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해 7·30보궐선거에서 수원병에 손학규 전 대표를 전략공천했다. 당시 지역 민심과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바로 내 지역구에서 일어난 일이다(웃음). 수원 인구가 60만에서 120만으로 늘었다. 그만큼 외지인이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지역 정서가 강하다. 중앙당에서도 고심 끝에 내린 선택이겠지만, 당시 지역 민심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수원시민 전체를 무시했다는 분위기가 강했던 게 사실이다. 결국 민심을 읽지 못한 게 패배 요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 택시운전을 하는 것에 대해 동료 의원들 반응은 어떤가.
“아는 의원도 있고 모르는 의원도 있다. 처음엔 ‘시의원이 창피하게 택시 운전을 왜 하냐’며 관두란 소릴 듣기도 했다. 내가 ‘시의원이 택시 운전하는 게 창피한가요? 그런데 왜 선거 때만 되면 택시, 아니 운수 종사자들한테 표를 구걸합니까. 그거야말로 시민들이 혐오하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정치인 아닙니까?’ 했더니 꼬리를 내렸다.”
▼ 앞으로도 계속할 건가.
“당연하다. 택시조합장들을 만났는데 택시운전을 시작한 초심을 잃지 말아달라고 하더라. 자기들도 택시기사 출신 시의원이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해서 마음이 짠했다.”
앞으로 도의원, 국회의원까지 도전할 생각이냐고 묻자 두 손을 내저었다.
“아직 시의원 노릇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지금은 열심히 배우는 단계다. 시의원의 임무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다. 주민과 소통하며 동네 뒷골목 구석구석 주민들 불편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건 도의원도,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못하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중앙 무대에서 활동하는 정치인들이 말하는 생활정치가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생활정치는 이렇게 서민들을 위한 것이다.”
이야기를 마친 그가 택시에 올랐다. 택시는 승객을 태우고 신나게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