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위 지음, 박영사, 324쪽, 1만9000원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 이후 장제스가 루스벨트와 처칠을 설득해 카이로선언과 대일평화조약에 한국의 독립이 명시됐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한국은 대일평화조약의 당사국이 되지 못했다. 한일 양국의 국교 협상이 난관에 봉착했던 상황, 식민 지배를 둘러싼 국제법적 공방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결국 냉전의 격화라는 국제정치 상황과 경제발전을 위한 자금 때문에 박정희는 국교 정상화를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옳았다고 평가된다.
다만 그 후유증으로 과거사, 독도, 위안부, 강제징용 배상 같은 문제가 한일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됐다. 필자는 사법부의 일관되지 못한 판결, 국제법 원칙의 무시, 시민단체의 반복되는 사과 요구로 한국의 입지가 좁아졌다고 본다. 과거사나 친일 문제는 당시 국제법과 국제정치 상황을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상하이 의거로 부상당한 노무라 기치사부로 해군 중장과 시게미쓰 마모루 공사는 각각 주미 일본대사와 외무대신으로 태평양전쟁의 개전과 종전에 개입했다. 조선인 도공의 후손 도고 시게노리는 외무대신으로 활약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한일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프랑스의 나치 부역자 처벌과 독일의 전후 배상이 가진 정치적 함의도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친일 문제를 논할 때 당시 유럽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토착왜구’와 ‘죽창부대’로 상징되는 친일과 반일 논란에 대해서는 중립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려면 일본과 우리의 근대사를 제대로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일본을 편견 없이 알고 싶어 하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한국의 행동원리
오구라 기조 지음, 이재우 옮김, 마르코폴로, 164쪽, 2만2000원
“일본인은 한국인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고, 한국인은 일본인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본의 평화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다. 양국의 근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단지 대중문화 교류를 해봤자 성숙한 한일관계 성립은 불가능하다. 좁은 의미의 문화가 아니라 체제와 이념이라는 넓은 의미에서의 양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더 중요하다.” 한국에서 공부한 지한파 저자가 일본인에게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쓴 책이다. 한국 사람이 봤을 때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없지 않지만, 일본인이 한국과 한국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들의 속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에마뉘엘 토드 지음, 김종완 옮김, 피플사이언스, 192쪽, 1만6000원
역사 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저자는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경고를 무시한 서방 측 처사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의 주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본디 우크라이나 문제는 ‘국경 수정’이라는 ‘지역적 문제’였으나 미국이 우크라이나 무장을 지원해 ‘사실상’ NATO 가입국으로 만들어 세계 문제로 확산했다는 것. 저자는 현 상황이 ‘강한 러시아가 약한 우크라이나를 공격한다’고 보이지만 지정학적으로 보면 ‘약한 러시아가 강한 미국을 공격하는 형국’이라며 미국과 러시아가 충돌하는 이상 ‘장기전’ ‘지구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