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복인: 백복인 KT&G 대표이사 사장. [KT&G]
백복인(58) KT&G 사장(CEO)의 임기 만료일이 약 3개월 남았습니다. 자연스레 그의 연임 도전 여부에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죠. 이번 연임에 유독 관심이 모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백 사장이 연임에 도전한다면 재임, 3연임을 넘어 ‘4연임’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백 사장은 1993년 KT&G 전신 한국담배인삼공사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2015년 사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공채 출신 첫 사장입니다. 말단에서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셈이니 샐러리맨이라면 누구나 되길 원하는 입지전적 인물이라고도 할 만하죠.
‘어쩌다 한번’ 사장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2018년 3월 재임, 2021년 3월 3연임에 성공했죠. KT&G 역사상 최장수 CEO입니다. 명분은 뛰어난 경영 성과입니다. 백 사장이 부임한 이래 KT&G는 매출 부문에서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2016년 4조4689억 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5조8565억 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찍었습니다.
매출 부문 성장 거듭, 주가는…
매출의 성장은 곧 회사의 성장을 의미합니다. 회사를 키운 공로만 놓고 보면 백 사장이 4연임을 하는 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논란이 존재할 이유도 없고요. 하지만 내실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같은 기간 동안 영업이익은 1조4688억 원에서 1조2678억 원으로 13.7% 감소했습니다. 실속이 다소 떨어진 셈이죠. 문제는 올해엔 매출마저 떨어질 가능성이 제기되며 연임 명분이 더 약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10월 13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는 KT&G가 올해 매출 5조8481억 원, 영업이익 1조1343억 원을 거둘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지난해 대비 매출은 0.1% 감소, 영업이익은 10.5% 떨어진 수준입니다.
사실 백 사장으로선 더 아픈 손가락이 하나 있습니다. ‘주가’인데요, 2015년 10월 8일 백 사장 취임 때 KT&G 주가는 10만8000원이었습니다. 그러다 2016년 7월 1일 최고가 13만7000원을 찍고 쭉 내리막길을 걸었죠. 27일 주가가 9만1000원이니 최고가에 비하면 약 33.6%, 취임 때와 비교하면 약 15.8% 떨어진 셈입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가 2019.53에서 2495.66으로 약 23.6% 오른 것을 감안하면 퍽 초라한 수치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해 10월부턴 안다자산운용, 플래시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 등 행동주의 펀드의 맹공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KT&G 주가는 만성적 저평가 상태”라며 한국인삼공사(KGC) 분리 상장, 추천 사외이사 선임 등을 골자로 한 주주제안을 단행했죠.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중간 배당을 제외한 행동주의펀드의 모든 제안이 부결돼 백 사장으로선 급한 불은 끈 셈이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임기 만료가 다가올수록 이러한 공격은 다시 거세질 것이고, 이에 연임 명분에도 더 상처가 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백 사장의 장기 연임을 탐탁찮게 바라보는 시선도 만만치 않습니다. KT&G는 KT, 포스코, 여러 금융지주사들과 같은 대표적 소유분산기업입니다. 소유분산기업은 막강한 대주주가 없기에 CEO가 장기 연임하는 현상이 벌어지곤 합니다. 이에 대해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오너 일가만 장기집권하는 게 아니다. 경영권을 장악한 전문경영인도 ‘참호’를 파 자리를 보전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백 사장의 연임 때마다 논란은 있었습니다. 첫 연임 때엔 사장 자격을 KT&G 전‧현직 임원 혹은 자회사 대표 출신으로만 제한해 외부 인사를 막았죠. 3연임 때엔 사외이사 6인으로 구성된 사장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가 사장 공모를 발표한 이후 불과 이틀 만에 서류 접수를 마감했습니다. 대개 5일 이상 공모를 받는 것이 일반적임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빠른 것이죠. 이때도 지원 자격을 전‧현직 전무 이상으로만 한정했습니다. 그 결과 연임, 3연임 때 모두 백 사장은 단독 후보로 당선됐습니다. 특히 3연임 때엔 후보부터 사장 확정까지 11일밖에 걸리지 않아 비판을 받기도 했죠. 이에 대해 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백 사장이 ‘30년 KT&G맨’인 점이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기업에서 오랜 기간 근속한 인사는 회사 사정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만큼 ‘정치적 이해관계’로 얽혀 카르텔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사회를 구워삶아 유명무실하게 만든 후 ‘셀프연임’하곤 한다.”
이 때문인지 정부 당국도 소유분산기업 CEO의 셀프 연임을 경계하는 모양새인데요. 1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업무 보고에서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가 선진화돼야 한다”고 당부한 바 있습니다. 구현모 전 KT 대표,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 등 타 소유분산기업 CEO의 연임 포기도 이러한 기조에 압박을 받은 것으로 보는 시선이 많습니다. 이 역시 백 사장의 연임 도전엔 부담이 되는 요소겠죠.
“연임 쉽게 포기하진 않을 것”
물론 백 사장이 연임에 도전하리라 보는 전망도 여전합니다. 아직 60세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 성장하고 있는 해외 시장 매출 등이 이유입니다. 또 최희문 메리츠증권 부회장, 임병용 GS건설 부회장 등 실제 4연임을 한 CEO 사례가 제법 있다는 것도 근거가 되고 있고요.한 재계 관계자는 “백 사장이 4연임을 한다 해도 아직 젊어 ‘용퇴’해야 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업황은 세계적 경기를 타기 때문에 잠시 안 좋을 수 있다. 투자는 길게 보고 해야 한다. KT&G의 해외 사업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으로선 회사 사정에 해박한 백 사장이 연임해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다른 재개 관계자는 ‘애사심’을 근거로 들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한 회사에서 평생 일하다보면 그곳이 단순한 ‘직장’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본인의 삶 전체를 쏟아 부은 곳이니 애정이 오죽하겠나. 애정이 큰 만큼 자기 손으로 더 잘 키워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쉽게 직을 내려놓진 못할 듯하다.”
KT&G 측은 백 사장의 연임 도전 여부에 대해 줄곧 “정해진 바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추측만 더해지고 있죠. 올해 초 백 사장은 2027년까지 약 4조 원을 투자해 KT&G의 매출을 10조 원까지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백 사장은 이 계획을 스스로 이뤄내려 할까요. 현재로선 백 사장의 속내는 그 스스로만이 알고 있겠죠. KT&G의 차기 사장이 누가 될지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