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호

“음주운전=살인”이라던 文이 침묵한 아이러니

[노정태의 뷰파인더] 음주운전 줄이려면 ‘혹형주의’보다는 ‘소확벌’로 대처해야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jeongtaeroh@ries.or.kr

    입력2024-10-1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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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때 “음주운전 엄중 처벌” 역설한 문재인

    • 문다혜 음주운전에 함구하는 문재인‧민주당

    • “내로남불” 비난보다 ‘혹형주의’ 되짚어볼 기회

    • 음주운전자들, 수치심‧후회 없이 안 걸릴 거라고 믿어

    • 처벌 ‘확실성’에 초점 맞춰야 범죄 예방 효과↑

    2017년 5월 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왼쪽)가 유세 후 딸 문다혜 씨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2017년 5월 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왼쪽)가 유세 후 딸 문다혜 씨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지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음주운전 교통사고에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이 25만 명이 넘는 추천을 받아 올라와 있습니다. 그 청원이 말하는 대로 음주운전 사고는 실수가 아니라 살인행위가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행위가 되기도 합니다.”

    2018년 10월 1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모두발언이 시작됐다. 유튜브를 통해 지금도 확인할 수 있는 5분 47초짜리 영상 속에서, 문 전 대통령은 절반에 가까운 2분 30초를 음주운전 문제에 할애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확고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제는 음주운전을 실수로 인식하는 문화를 끝내야 할 때입니다.”

    ‌‌엄벌주의. 문 전 대통령이 제시한 해법은 이 한마디로 요약 가능하다. 그는 음주운전의 재범률이 높은 것은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이 엄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동승자에 대한 적극적 형사처벌, 상습 음주운전자 차량 압수와 처벌 강화, 단속기준을 현행 혈중알코농도 0.05%에서 0.03%로 강화하는 방안만으로 부족하면 다른 수단도 동원하겠다”고도 했다. 그리고 그의 모두발언은 이 말로 마무리됐다.

    “특히 재범 가능성이 높은 음주운전 특성상 초범이라도 처벌을 강화하고, 사후 교육시간을 늘리는 등 재범 방지를 위한 대책을 더욱 강화해주기 바랍니다.”

    2018년 10월의 모두발언을 살핀 이유는 음주운전을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문 전 대통령이 단순히 ‘편승’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는 흔히 대통령의 가장 큰 권력이라고 하는 ‘의제 설정 능력’을 적극 활용해 음주운전에 대한 혹형주의, 엄벌주의의 기조를 사회 전반에 퍼뜨렸다. 지금 우리 사회에 음주운전 사고에 대해 10년 전보다 더 크게 분노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면, 그것은 문 전 대통령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형사정책 전반 ‘혹형주의’ 되짚어볼 기회

    2018년 10월 10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이날 음주운전 교통사고와 관련 “이제 음주운전을 실수로 인식하는 문화를 끝내야 한다”며 처벌 강화를 주문했다. [뉴스1]

    2018년 10월 10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이날 음주운전 교통사고와 관련 “이제 음주운전을 실수로 인식하는 문화를 끝내야 한다”며 처벌 강화를 주문했다. [뉴스1]

    문 전 대통령의 6년 전 발언이 새삼스럽게 화제가 되고 있다. 5일 발생한 한 건의 교통사고 때문이다. 문 전 대통령의 딸 문다혜 씨가 이태원 해밀턴호텔 인근에서 음주운전 후 택시를 들이받은 것. 사고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149%. 운전면허 취소 기준을 가볍게 넘기는 수준이다. 경찰을 뿌리치려 할 정도로 만취해 있었지만 도주 등의 어리석은 행위를 하지는 않았기에, 현재 불구속상태로 수사를 받고 있다.

    실망 어린 탄식과 비난이 쏟아짐은 당연한 수순. 문재인 정권 때 야당이던 현 여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빗발쳤다. 표현 방식은 다양했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그토록 음주운전을 비난하던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이 이 사건에 함구하고 있다니, 너무나 전형적인 ‘내로남불’ 아니냐는 것이다.

    음주운전을 엄벌하겠다던 대통령의 딸이 음주운전을 저질러 적발된 상황. 당연히 ‘내로남불’을 떠올릴 수 있고, “네 딸도 살인자냐”고 빈정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는 건 옳지 않다. 특히 정치권이 내놓는 반응은 너무도 말초적‧피상적인데, 몹시 실망스러운 일이다. 이는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가 음주운전, 더 나아가 형사정책 전반에 있어서 휩쓸려있던 ‘혹형주의’를 되짚어볼 수 있는 드문 기회기도 하다.

    2018년 10월 10일 문 전 대통령의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 이후 급히 마련돼 2018년 12월 24일 개정된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흔히 ‘윤창호법’이라고 부른다. 그 가운데 재범 가중처벌 부분은 2021년 11월 21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결정을 받아 효력을 상실했고, 지난해 7월 4일부터 보완된 법이 시행되고 있다.

    음주운전 처벌, ‘일벌백계’ 아닌 ‘백벌백계’ 필요

    ‘윤창호법’ 시행 첫 날인 2019년 9월 25일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에서 경찰이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 [뉴스1]

    ‘윤창호법’ 시행 첫 날인 2019년 9월 25일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에서 경찰이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 [뉴스1]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윤창호법’은 과연 음주운전을 막는 데 도움이 됐을까. 특히 문 전 대통령이 강조했던 재범률은 얼마나 내려갔을까. 언론 보도와 인터넷의 자극적 여론에 쉽게 휩쓸리는 국민 감정 및 그에 호응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권에서 잠시 벗어나, 몇 편의 학술 논문을 통해 팩트를 확인해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큰 효과가 없었다. 재범 처벌규정이 강화되면 가중처벌을 피하기 위해 음주운전을 안 할 것이라는 예상은 틀렸다. 적어도 2016년부터 최근까지 음주운전 단일범죄 판결문을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그렇다. 형량 강화론 음주운전 재범을 막을 수 없었다. 한 논문을 인용한다.

    “제1 가설에선 음주운전 재범 처벌규정이 강화됨에 따라 가중처벌 기준이 되는 재범 발생이 억제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전과횟수에 따른 비율을 분석해 도로교통법 개정안 시행 전후를 비교해 보았을 때 개정 이후 가중처벌 대상이 되는 전과 1회 재범의 비율이 오히려 월등히 증가(약 40% 증가)했고, 전과 2회 이상인 재범만 전체적으로 감소되는 현상이 관찰됐다(전과가 2회인 재범의 비율: 약 31% 감소, 3회인 재범의 비율: 약 11% 감소).” (김현준, 최민, 황원석. 2023, 판결문 데이터를 통해 본 음주운전 처벌규정 변경이 불러온 변화 -재범발생율과 법원 선고형 변화를 중심으로-, 형사정책연구, 34(4), 33-61, 49쪽.)

    이 논문의 결론은 씁쓸하기 짝이 없다.

    “음주운전 단일범죄 판결문 분석 결과 음주운전을 저지른 피고인들은 대부분 음주운전 전과를 갖고 있었는데, 재범 처벌강화규정은 재범 발생을 충분히 억제하지 못하고 있다.”(54쪽).

    음주운전자들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술을 마시면 운전해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이나 사명감을 느끼기라도 한단 말인가.

    또 다른 논문은 그 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준다(박찬혁, 최응렬. 2015, 음주운전 비공식억제요인에 관한 연구, 사회과학연구, 22(1), 49-74). 비록 10여 년 전 연구이며 조사 대상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한계가 있으나, 운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진행한 연구이므로 가치가 있다.

    연구자들은 수치, 당황, 처벌 회피에 대한 자신감을 묻는 문항을 추가했다. ‘내가 음주운전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안다면 나는 수치심을 느낄 것이다’ ‘내가 음주운전을 한다면 주변 사람들이 비난할 것이다’ ‘음주운전을 한 사람이 100명 있다고 가정하면 그 가운데 처벌받는 사람은 얼마라 생각하는가’ 등의 문항에 답을 하도록 했다.

    그 결과는 독자 여러분의 예상과 같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수치심이나 후회가 1단위 증가할 때 음주운전 의도가 34.2% 감소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음주운전자는 애초에 음주운전에 대한 수치심과 후회를 그리 느끼지 않았다. 응답자의 처벌회피에 대한 자신감이 1단위 증가할 때 음주운전 의도가 높아질 확률이 81.0% 증가했다는 사실 역시 그다지 놀랍지 않다. 음주운전자는 ‘어차피 단속에는 걸릴 놈만 걸린다. 나는 안 걸린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즉 음주운전자는 음주운전에 대해 수치심‧후회를 느끼지 않으며, 폭넓은 단속이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본인은 단속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충만해 있다. 심지어 사고를 내거나 단속에 걸려서 음주운전으로 인해 전과자가 된 후에도 같은 사고방식을 지속한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하다. 한 사람을 처벌하여 백 명을 계도하기, 즉 일벌백계로는 음주운전을 막을 수 없다. ‘음주단속에 나는 안 걸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시범 케이스’를 아무리 보여줘 봐야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보다는 백 사람이 죄를 저지르면 백 사람 모두를 처벌하는 것, 즉 ‘백벌백계’가 낫다. 여기서 중요한 건 처벌 방식이다. 타 범죄와 균형이 맞지 않을 정도의 혹독한 처벌일 필요까지는 없다. 현직 판사인 권보원(특허법원) 역시 이하 글을 통해 같은 견해를 피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처벌강도를 높이는 것보다 범죄를 확실하게 적발하여 처벌해 낸다는 의미의 ‘확실성’을 높이는 것이, 범죄억지에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이 대체적 견해다. 베카리아는 ‘범죄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 방법은 형벌의 잔혹성이 아니라 확실성에 있다’고 단언한 바 있다.”(권보원, 2020, 음주운전 처벌법이 사회규범으로 작동하기 위한 조건: 통계와 행동경제학이 주는 교훈, 법경제학연구, 17(1), 55-136, 86쪽).

    범죄 예방 방식, 혹형주의에 국한돼야 하는가

    이쯤 되면 반론이 예상된다. 예컨대 일본에선 음주운전을 강력하게 처벌하기 시작한 후 음주운전의 초범, 재범률이 확연히 줄어드는 성과가 있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문제는 일본의 음주운전 통계 기준이 한국의 그것과 다르다는 데 있다.

    한국은 일괄적 음주운전 단속에서 혈중 알코올농도가 기준치를 넘는 사람 모두를 음주운전으로 처리한다. 반면 일본은 술을 마신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하지 않고 ‘주취사고’로 처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술이 교통사고의 가장 큰 원인일 때에만 음주운전 사고건수로 취급한다. 한국에 비해 음주운전이 적게 집계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음주운전자를 강하게 처벌해서 사회 전반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사례로 흔히 거론되는, 이른바 ‘2006년 후쿠오카 교통사고’를 살펴보자. 본 사고는 22세의 공무원이 음주운전을 저질러 일가족이 탄 차를 들이받아 바다에 빠뜨린 사건이다. 피해 가족 가운데 부부는 탈출했지만 아이 셋 중 둘은 구조된 후 사망했고, 나머지 한 명은 사망한 채 발견됐다.

    가해자의 죄질은 불량했다. 사고를 내고 도주하다 차가 멈추자 차를 버리고 도망쳤다. 물을 마셔 음주 흔적을 지우려 하기도 했다. 이 사건엔 2001년 제정된 위험운전치사상죄가 적용됐고, 가해자는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다.

    국내에서는 이 판결을 강력한 처벌이 음주운전을 줄인다는 증거로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실상은 그리 간단치 않다. 처벌을 받은 건 가해자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고 다음 날 후쿠오카 시장이 사죄의 기자 회견을 열었고, 본인의 그달 급여 가운데 20%를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부시장과 이하 관계자들도 10%의 급여 삭감을 자진했고, 피고인의 상급자들은 징계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으로 인해 후쿠오카 시장은 재선에 실패하고 만다.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두말할 나위 없이 질 나쁜 범죄다. 해안가에 차를 대고 경치를 감상하던 일가족 가운데 아이 셋을 죽게 만든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2006년 후쿠오카 교통사고의 처리 과정을 ‘사이다’로 봐도 되는 것일까. 이것은 일본 특유의 집단주의가 발현된 결과로 보는 편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가령 경기 성남시 공무원이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냈다면 그 책임은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그 사고가 아무리 끔찍하다 해도, 그런 이유로 성남시장 및 해당 공무원의 상급자들이 임금 삭감을 자청하고, 징계를 받고, 시장은 선거에서 ‘민심의 심판’을 받기까지 한다면, 이 나라는 과연 합리적 개인주의에 기반한 법치국가라 할 수 있을까.

    이 글의 목적은 음주운전을 옹호하거나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줄이자는 것이 아니다. ‘일벌백계’로 음주운전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 그런 발상의 바탕에 깔려있는 엄벌주의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한 번쯤 짚어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따름이다.

    범죄를 예방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모든 시민이 마땅히 품어야 한다. 하지만 그 방법이 꼭 혹형주의에 국한돼야 할 필요는 없다. 혹형주의는 너무 크고 무거운 칼이다. 혹형주의를 부르짖던 사람 본인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자신의 가족이 범죄자가 되는 아이러니는 현실 속에서도 드물지 않게 벌어진다. 2018년 10월 근엄하게 음주운전을 꾸짖던 문 전 대통령이 올해 10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이 현실이 증명하는 바다.

    음주운전을 줄이는 가장 근본적 방법은 운전자의 행태를 바꾸는 것이다. 그러자면 ‘누구 하나만 걸려라’는 방식으론 부족하다. 음주운전의 습벽을 지닌 이들이 두려워할 만한 ‘소확벌(소소하지만 확실한 처벌)’을 설계하고 꾸준히 실행해, 공권력과 사법체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높여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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