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한강이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열린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참석해 한 소감이 눈길을 끈다.
한강은 이날 시상식장에서 “1994년 1월에 첫 소설을 발표했으니 올해는 글을 써온 지 꼭 30년이 되는 해다. 통설에 따라 작가들의 황금기가 보통 50~60세라고 가정한다면 6년이 남았다”며 “6년 동안 마음 안에 있는 책 세 권을 쓰는 데 몰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행사 참석은 포니정재단(이사장 정몽규)이 지난달 19일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수상자로 한강을 선정하면서 이뤄졌다.
흥미로운 것은 한강이 밝힌 “작가로서 황금기 동안 책 세 권을 쓰겠다”는 이유를 5년 전 인촌상 시상식장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2019년 10월 11일 제33회 인촌상 수상자(언론‧문화부분)로 선정된 한강은 “글을 쓰게 된 이후로 가끔 직접 만나본 적 없는 분들에게서 뜻밖의 편지를 받을 때가 있다. 사실 며칠 전에도 그런 편지를 받아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다음과 같이 사연을 밝혔다.
“(당시 팬으로부터 편지는) 당부의 편지였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전성기가 50~60세 정도인 것 같은데, 앞으로 10년 동안 책을 계속 써 달라. 그 후로도 계속 쓰면 좋겠지만 일단 10년 동안 써주면 좋겠다. 뒤를 돌아보지 말고. 그냥 그것만 부탁하고 싶다’고 썼다.”
이어 그는 “장편소설 한 편을 쓸 때 얼마나 걸리나 계산을 해봤더니, 평균 3년이 걸리더라”며 “10년이면 운이 좋으면 한 세 편, 운이 나쁘면 두 편 정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독자 손 편지 사연…“진정성을 갖고 독자와 소통하는 것”
1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타워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서 소설가 한강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처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면 뒤에서 누가 밀어주잖느냐. 밀어주면 계속 밀어주는 줄 알고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나 놨다’ 뒤에서 얘기하면 이제 제가 스스로 균형을 잘 잡고 달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그 편지를 받고 앞으로 10년 동안 쓸 수 있을 만큼의 글을 쓰고, 더 허락한다면 더 쓰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면서 “그런 마음을 먹었으니 그렇게 마음이 기울어진 대로 내 삶이 흘러가 주기를 바라게 됐다. 열심히 하겠다”며 수상 소감을 마쳤다. 독자의 바람대로 글 쓰는 데 매진하겠다는 취지였다.
이와 같이 5년 전 인촌상 시상식 수상 소감이 지금까지 이어진 데 대해 업계에선 “독자에 대한 한강의 진심을 보여주는 일화”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출판업계 관계자는 “한강이 5년 전 독자의 편지를 통해 다짐한 마음을 잊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은 과거 수상 소감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방증한다”며 “이는 한강의 독자에 대한 책임감과 함께 그가 진정성을 갖고 독자와 소통함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강은 1993년 ‘문학과 사회’에서 시 ‘서울의 겨울’,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을 걸어왔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면서 널리 이름을 알렸다. 2017년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2018년 ‘채식주의자’로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받았다.
2019년에는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인촌기념회가 언론출판, 학술 등 사회분야에 공적을 쌓은 인물에게 제정‧수여하는 인촌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올해 10월 10일(현지 시간)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한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강의 제33회 ‘인촌상’ 수상소감 전문>
2019년 10월 11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인촌기념회에서 열린 ‘제33회 인촌상’ 시상식에서 소설가 한강이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매거진동아 유튜브]
그래서 제가 장편소설 한 편을 쓸 때 얼마나 걸리나 계산을 해봤더니, 가장 길게 걸린 게 4년 반이고 가장 짧게 걸린 게 1년 반이었어요. 그러니까 아마 평균을 내면 한 3년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 10년이면 ‘운이 좋으면 한 세 편, 운이 나쁘면 두 편 정도 쓸 수 있지 않을까, 그것만 해도 굉장히 운이 좋은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고요.
그리고 ‘정말 그걸 실행하려면 뭘 해야 할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물론 시간이 허락돼야 될 거고요. 누구도 앞일은 모르는 거니까. 그래서 그것은 이제 운에 맡겨야 하는 것이고, 그리고 또 하나는 제가 자전거를 배울 때 경험이 떠올랐어요. 처음 자전거를 배우면 뒤에서 누가 밀어주잖아요. 밀어주면 계속 밀어주는 줄 알고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나 놨다” 이렇게 뒤에서 얘기하면 이제 제가 스스로 균형을 잘 잡고 달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죠.그래서 그 다음에 브레이크 걸어서 멈추는 법도 배웠고요. 그러고 나서 이제 저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준 사람에게 ‘그럼 오른쪽으로 가고 왼쪽으로 가는 건 어떻게 하면 되냐’고 했더니 ‘일단 페달을 밟고 달리는 법만 알게 되면 오른쪽으로 갈까 생각하면 저절로 몸이 기울어져서 자전거가 오른쪽으로 가고, 또 왼쪽으로 갈까 생각하면 저절로 자전거가 커브를 틀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제가 그 편지를 받고 앞으로 10년 동안 쓸 수 있을 만큼의 글을 쓰고, 더 허락된다면, 더 쓰면 좋겠죠. 그런 마음을 먹었으니까 그렇게 마음이 기울어진 대로 저의 삶이 흘러가주기를 바라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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