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대학 등록금 마련과 결혼 준비 등으로 목돈이 나갈 나이에 장년층은 은퇴를 맞는다. 우리나라 평균 은퇴 연령은 53세. 65세 이상 우리나라 노인층의 상대적 빈곤율도 49.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인층 빈곤율 1위다. 개인이나 정부나 필사적으로 ‘일자리’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자리를 마음대로 늘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고민은 깊다.
그런데 경기도의 노력과 그 결과로 맺은 열매는 정부나 타 지자체가 벤치마킹할 만하다. 경기도는 5월 20일 고용노동부로부터 ‘2015 전국 지방자치단체 일자리대상’을 받았다. 지난해 광역단체 부문 대상을 받은 데 이어 올해는 최고 영예인 ‘종합대상(대통령상)’을 수상한 것.
‘일자리대상’은 전년도 ‘지역일자리목표공시제’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둔 지자체를 시상하는데, 단체장이 임기 중 추진할 일자리 목표와 대책을 공시토록 하고 정부는 그 성과를 평가해 포상하는 제도다. 경기도가 ‘종합대상’을 수상한 것은 전국의 243개 지자체 가운데 일자리 정책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는 뜻이다. 경기도는 어떻게 일자리를 늘렸을까.
6월 1일 오전, 경기 남양주시 금곡동의 한 빌딩 3층에 있는 남양주 고용복지플러스센터. 월요일 이른 시간이지만 10여 명의 방문객이 제각각 상담을 하거나 차례를 기다렸다. 김현용 취업지원팀 팀장은 “실업급여 신청을 문의하려는 40~50대와 일자리를 원하는 50대 이상 중장년층, 육아 등의 사정으로 취업 경력이 단절된 30~40대 주부(경단녀) 등이 이 시각에 많이 온다”고 말했다.
전국 최초 일자리센터
남양주 센터는 지자체인 경기도와 정부기관 간 협업을 통한 융·복합 서비스를 목표로 지난해 1월 전국 최초로 문을 열었다. 기존의 고용센터(고용노동부), 일자리센터(지자체), 복지지원팀(보건복지부, 지자체), ‘경단녀’를 위한 새일센터(여성가족부), 서민금융센터(금융위원회)를 한 공간에 모아 수요자 중심의 ‘원스톱 고용복지통합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이러한 형태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새로운 시스템과 서비스 모델이 돼 국정과제로 선정됐고, 현재 전국적으로 확대, 추진 중이다.
김현용 팀장은 “작년에만 중앙 부처와 타 시·도의 120개 기관에서 650여 명이 우리 센터를 방문했다.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모델이라 어떻게 운영되고 어떻게 실적이 나오는지 연구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 같다”고 자랑했다.
남양주 센터의 실적은 한눈에도 두드러진다. 통합 이전에는 3391명에 그친 취업자 수가 통합 이후 4985명으로 늘었다. 취업 실적이 47% 증가한 것. 지난해 12월에는 동두천시에 또 하나의 센터를 열었다. 동두천 고용복지플러스센터는 기존의 정부기관 외에 보훈처, 문화관광부가 입주기관으로 추가됐다. 지역 특성상 남양주시와 달리 문화커뮤니티, 제대군인 취업지원 서비스 기능을 보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 현재 동두천 센터는 강원도와 철원군을 포함한 초광역 서비스를 실시한다.
기온이 30˚C를 웃돌던 6월 2일 오후 2시. 안산시 상록수역 광장에는 이글거리는 뙤약볕 아래 대형버스 한 대가 서 있었다. 더위 탓에 광장은 비교적 한산했지만, 버스를 향한 사람들 행렬은 꾸준히 이어졌다. 경기도가 ‘양질의 방문 취업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버스 내부구조를 개조해 마련한 ‘찾아가는 일자리 버스’.
오후 3시가 가까워지자 30~40대 수십 명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버스 안은 순식간에 만원이 됐다. 안산시 일자리센터 박민숙 직업상담사는 “잠시 뒤 제조업체 두 곳에서 면접이 예정돼 있어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렸다. 기업들이 구인 계획을 밝히고 우리에게 요청하는데, 오늘 이곳에서 현장면접 일정이 잡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2개 기업의 15개 일자리를 놓고 면접에 응한 사람은 40여 명. 그중 한 명인 남정옥(45) 씨는 중국교포 2세로 10여 년 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초등 2학년 아들을 뒀다고 했다. 자신의 면접 순서를 기다리던 남씨는 “일용직으로 일하는데 일당을 받는 탓에 수입이 적고 일자리가 불안정하다. 월수입 130만~140만 원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 면접에 꼭 합격하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그는 “집이 안산시 원곡동이어서 전철을 타고 왔다. 역에 내리자마자 일자리 버스가 있어서 이용하기 편하다”고 말했다.
31개 시군 돌며 일자리 알선
2012년 3월 시동을 건 일자리버스는 경기도내 31개 시·군을 순회하며 사람이 많이 모이는 전통시장, 버스터미널, 역 등을 순회한다. 지난해 이곳을 방문한 사람은 7200여 명. 1만1000여 건의 취업 알선이 이뤄졌다. 그 가운데 2300여 명이 일자리를 찾았다. 올해 방문자는 벌써 2500명을 넘어섰다.정성찬 경기일자리센터 팀장은 “지난해 일자리 버스를 통해 취업한 2325명 중 생산직과 단순노무직 비중이 각각 28%, 26%로 가장 높았다. 올해는 사무직, 전문기술직으로 일자리 영역을 넓히려 노력했고,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 버스는 구직자들이 원하는 직종에 맞는 구인 기업을 찾기 위해 고용노동부 일자리 정보 사이트 ‘워크넷’의 전 직종을 대상으로 정보를 찾아 밀착 지원한다. 상담 또는 면접이 이뤄진 구직 희망자에 대해서는 구직 등록 후 취업이 될 때까지 추적 관리하고, 이력서 작성 요령과 면접 전략 등을 도와준다. 지난해 3월부터 15차례 실시한 현장면접 사전 취업특강에는 749명이 참여했다.
안산시 일자리센터에 근무하면서 지난해부터 일자리 버스에서 취업상담을 해온 박난영 직업상담사는 “필요하면 구직자와 함께 기업에 동행면접도 간다. 일자리 버스 이용에 연령 제한은 없지만 아무래도 정보에 어둡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40대 이상 구직자가 주로 이곳을 찾는다. 안산은 제조업체가 많다보니 생산직 수요가 많아 특히 중장년 여성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한편 관리직에서 은퇴한 후 개인 사업을 하다 구직 대열에 합류한 이억만(53) 씨는 경기도가 시범사업으로 추진한 민관 협업형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을 통해 1월 일자리를 얻는 데 성공했다. 이씨의 경험담은 이렇다.
“구인광고를 보고 근무 환경이나 보수가 괜찮다 싶어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막상 가서 일해보니 면접 시 제시했던 근무 조건과 보수와 너무 달랐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구직자들을 현혹하는 구인 업체가 적지 않다. 어렵게 구한 직장에서 얼마 못 버티고 사표를 낸 경험이 경기도 취업성공패키지를 이용하는 계기가 됐다. 믿을 수 있다.”
경기도는 2013년부터 정부가 추진한 토털취업지원사업인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에 지자체도 참여할 수 있도록 건의해 지난해부터 길을 텄다. 그 결과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민관-협업형 취업성공패키지 시범사업을 실시하게 됐고, 진로설정→직업훈련 →취업알선 및 사후관리 과정을 거치게 해 지난해 473명에게 취업지원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러한 ‘경기도형 취업성공패키지 모델’은 현재 전국적으로 확산 중이다. 그뿐 아니라 경기도는 올해부터 사업 대상을 청장년층으로 확대해 ‘취업자 1만 명’을 목표로 삼았다. 4월 말 현재 청장년층 4200명이 사업에 참여해 276명이 취업했다.
일자리 절반이 경기도에서 생겨
군 간부로 전역한 홍윤기(33) 씨는 제대 후 지역인적자원개발위원회를 알게 돼 대한상공회의소 경기인력개발원에서 면접을 봤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홍씨는 “전공 때문에 면접 대상이 되기 어려웠는데 ‘면접만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다행히 면접을 통과해 6개월간 기계설계 분야 교육을 받고 ‘전산응용기계제도 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훈련기간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무료로 훈련받고 월 20만 원씩 수당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격증 취득 후 곧바로 중소기업에 취업해 현재 회사에서 제품설계를 담당한다.
지역민의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경기도의 노력은 전방위적이다. 전국 최초로 읍·면·동 주민자치센터에 전문 직업상담사 384명을 전면 배치했다. 또 한국폴리텍대 경기북부캠퍼스를 유치하고 스위스식의 ‘산학일체형 도제 학교’도 시범 운영 중이다. 물류단지 총량규제 폐지 등 규제합리화를 통해 향후 6만3000명 개 일자리 창출 기반을 마련했다. 더불어 지난해에는 전국 기능경기대회에서 종합우승 3연패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러한 노력에는 지난해 7월 출범한 민선 6기 경기도의 강력한 일자리 창출 의지가 바탕이 됐다.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인 만큼 경기도는 지난해 10월 ‘일자리 70만 개 창출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7개 분야 173개 사업에 8조4269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하고, 사회경제과, 사회적일자리과 신설 등 일자리 기구와 인력을 대폭 보강하는 게 핵심 내용. 경기도는 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매월 도지사 주재로 전략회의를 개최하는 등 도정 역량을 집중했다. 그 결과 2014년 취업자 총수가 622만6000명에 달했다. 이는 전년 대비 23만8000명이 증가한 수치. 일자리의 질을 평가하는 상용근로자 수도 325만6000명으로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일자리 창출에서 두드러진 실적은 각종 수상으로 이어졌다. 경기도는 지난해 전국 대상 일자리 정책 평가에서 지역 노·사·민·정 협력 활성화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민원행정개선 우수사례 총리상, 여성새로일하기센터 사업평가 장관상 등 총 10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다. 부문별 일자리 성과를 총망라한 결과는 ‘2015 전국 지방자치단체 일자리 대상’ 종합대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일자리대상 시상식에서 “경기도가 2014년 23만8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이는 전국(53만3000명)의 45%에 달하는 규모로 경기도가 정부 고용률 70% 달성을 견인하는 대한민국 성장의 주역이라는 의미”라고 축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