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호

3개월 아이돌그룹 댄서 대가 60만 원… 4분 위해 8시간 기다린다

일한 만큼 돈 못 받아도 춤을 포기 못 하는 이유

  • 이나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dlskdud3790@naver.com

    입력2022-07-0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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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전 10시 출근해 2~3일 밤샘 허다

    • 한 달 택시비 180만 원 나올 때도

    • 3만 명이 동시에 소리 지르던 순간

    • ‘웃음 한 방으로 내 심장 강타하시네’

    • 안무 배워 연습하는 시간도 일인데…

    [Gettyimage]

    [Gettyimage]

    7년차 댄서 이현익(25) 씨는 고2 때 본격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관객이 많은 큰 무대에 서겠다는 꿈이 있었다. 1년 뒤 관객 3만 명이 넘는 아이돌그룹의 팬 미팅 무대에 서게 됐다. 무대에 이틀간 오르기 위해 3개월을 준비했다. 거의 매일 연습했다. 오전 10시쯤 연습실로 출근하면 2~3일 밤새는 경우가 허다했다. 

    팬 미팅 무대에서 춰야 하는 춤을 배우는 동시에, 아이돌그룹 신곡의 안무를 만드는 시안 작업을 맡았다. 이씨는 무대에서 10곡 이상을 췄다. 팬 미팅 당일까지 3개월을 일하고 통장에 들어온 돈은 60만 원. 꿈의 무대에 오른 대가로 ‘열정페이’를 감수했다. 

    일한 만큼 급여를 받지 못한 건 이현익 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0년째 댄서로 활동하다 올해 그만둔 최기훈(27) 씨는 계약서상 받아야 할 돈의 절반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이돌그룹이 국내 팬 미팅 리허설을 하는 날이었어요. 무대 뒤에서 기획사 직원분이 계약서를 보여줬는데 급여가 명시돼 있는 걸 그날 처음 봤어요. 하루에 100만 원이었고, 저흰 이틀 일해서 200만 원을 받아야 했는데 통장엔 100만 원만 들어온 거예요. 아는 변호사님과 얘기해 보니까 계약서가 원래 쌍방으로 있어야 하는데 저희한텐 계약서를 안 줘서 고소해도 물증이 없어 힘들 거라고 하더라고요.” 

    백업 댄서로 설 기회

    댄서들은 엔터테인먼트 회사나 방송국에서 급여를 직접 받을 때도 있지만 보통 자신이 속한 팀의 디렉터에게 받는다. 무대 경연 방송 프로그램에서 아이돌그룹의 안무를 만들며 디렉터로 일하는 전종영(29) 씨를 4월 16일 만났다.



    “2주 동안 밤낮 안 가리고 오랜 시간 일하는데 한 명당 30만~40만 원밖에 못 줘요. 노력 대비 적은 금액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주고 싶지만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조율하기 쉽지 않아요. 그래서 택시비나 식비라도 다 지원해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조금씩 나아지는 건 분명한데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많아요.” 

    이현익 씨가 한창 백업 댄서로 방송 일을 하던 스무 살 땐 지금처럼 댄서를 배려해 주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택시비만 한 달에 180만 원 넘게 나왔다고 말했다.

    “방송 시간대를 맞추려면 대중교통을 못 타요. 집에서 새벽 4시에 택시를 타고 KBS로 가면 3만 원 나오고, 끝나고 강남에 있는 연습실에 가면 또 2만 원 정도 나왔어요. 그리고 음악방송 무대 대기하는 시간엔 방송국 땅바닥에서 잘 때도 있어서 잠을 못 잤어요. 택시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잘 수 있으니까 탄 것도 있어요.” 

    불안정한 급여와 망가져 가는 몸 때문에 춤을 포기하려 한 시기도 있었다. 스물두 살에 군대에서 휴가 나온 날 건강검진을 받은 그는 위에 용종 3개와 위궤양, 역류성 식도염이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춤을 놓지 못한다. 무대 위에서 춤을 출 때 느낀 감정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이현익 씨에게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이 언제냐고 묻자 19세 때 섰던 아이돌그룹의 팬 미팅 무대를 꼽았다.  

    “3만 명이 동시에 소리를 지르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처음 들어보는 함성이었어요.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죠. 분명 가수한테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저한테 지르는 것 같아서 신기했어요. 춤도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한데, 무대가 진짜 마약이에요.” 

    댄서가 지금보다 많이 주목받지 못하던 시절에도, 무대는 그들이 스스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자리였다. 무대는 7년 동안 춤을 추는 원동력이 됐다. 

    이씨는 경쟁이 치열한 댄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팀과 방송활동을 병행했다. 열여덟 살 때 더빕스라는 팀에 들어가고 1년 뒤엔 백업 댄서로 방송활동을 같이 했다. 일종의 생존 전략이었다. 

    “방송 쪽에선 연락이 오는 곳이면 다 갔어요. 사람들한테 제가 잘 따르는 동생이란 인식을 주면서 백업 댄서로 설 기회도 같이 노린 거죠.” 

    ‘잘나가는’ 댄서가 된 경위

    요즘엔 스트리트 출신 댄서들이 방송활동을 병행하는 게 당연해졌다. 예전엔 그 둘을 같이 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씨는 “예전엔 ‘그 춤도 아닌 걸 왜 해?’라며 방송 댄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었다”고 말했다. 4년차 댄서인 우기정(25) 씨는 “당시에 스트리트 댄스를 추던 사람들한테는 방송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늘 올라가고 싶은 무대만 올라갈 순 없다. 멋있지 않은 무대를 위해서도 연습해야 했다. 막상 무대 위에 올라서면 기분이 달라졌다. 

    “무대에 올라갈 땐 항상 즐겼던 거 같아요. 그런데 흔히 말하는 ‘짜치는’(기대에 못 미치는) 무대에 서야 할 때도 있어요. 나이 많으신 무명 트로트 가수 분들과 같이 서는 무대가 있는데, 무대에 올라가면 또 재밌어요. 일이어서 억지로 재밌게 한다기보다는 앞에 있는 관객들 보고, 옆에 있는 동료 댄서들이랑 눈 마주치면서 추다 보면 저절로 즐기게 돼요.” 

    물불 가리지 않고 일하던 이현익 씨의 노력에 보답하듯이 그를 유명세에 오르게 한 영상이 있다. 가수 선미의 백업 댄서로 한창 활동하던 2018년 7월, 서울 송파구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물을 맞으며 춤을 추고 있었다. 사람들이 물총 싸움을 하며 가수들의 무대를 즐기는 ‘워터밤 페스티벌’이 열리는 날이었다. 그날 선미가 무대에 올랐고, 이현익 씨는 백업 댄서 중 한 명이었다. 선미는 몸에 딱 붙는 흰색 구찌 나시에 청반바지를 입고 관객들과 함께 물을 맞으며 20분가량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팬들은 선미의 모습을 4K 영상으로 담아 유튜브에 올렸다. 일명 ‘직캠’으로 불리는 해당 영상은 조회수 567만 회(4월 27일 기준)를 기록하며 ‘대박’이 났다. 그러나 이 영상의 주인공은 선미뿐만이 아니었다. 좋아요 2600개를 받은 영상 속 댓글이다.

    ‘1:13 남자 댄서분 웃음 한방으로 내 심장을 강타하시네;;’

    카메라 초점이 맞춰져 있는 선미 옆엔 지금보다 앳된 얼굴의 이현익 씨가 있다. 청바지 위에 상의를 걸치는 대신 춤으로 다져진 근육을 보이며 동작을 이어간다. 노래의 분위기가 180도 달라지는 순간, 관객이 쏜 물을 맞고 싱긋 웃는 그 찰나의 표정을 포착한 사람들은 그의 팬이 됐다.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이씨는 소위 ‘잘나가는’ 댄서가 됐다. 현재 5만6000명이 넘는 틱톡 팔로어를 가진 그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국내 팬뿐만 아니라 해외 팬들에게도 자신의 춤을 널리 선보이고 있다. 

    최저임금보다 낮은 시급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사회적 협동조합 ‘청연’ 사무실. [이나영]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사회적 협동조합 ‘청연’ 사무실. [이나영]

    댄서로서 순탄한 길을 걷던 이현익 씨는 잠시 방향을 틀어 올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는 올해 1월 댄서들을 위한 사회적 협동조합인 ‘청연’을 만들었다. 현재 ‘청연’은 비영리법인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돼 있다. 이씨는 저소득 청년 댄서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새로운 활동 영역을 발굴하기 위해 설립했다고 말했다. 그가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계기는 여동생이었다. 

    “처음엔 사람들을 제쳐 1%의 우수한 댄서가 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제가 (선미 영상으로) 유명해진 후에 제 여동생이 자기도 댄서가 되고 싶다는 거예요. 그제야 과거 제 모습과 동료들의 현실이 다시 눈에 들어왔어요. 사실 동생이 댄서가 안 됐으면 했는데 동생 꿈이 확고하더라고요. 그래서 차라리 선배인 내가 이 환경을 바꿔놓아야겠다는 생각에 ‘청연’을 만들게 됐어요.” 

    지난해 방영된 댄서 경연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춤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방영 이후 댄서들은 처우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99%의 댄서들은 여전히 자신이 일한 만큼의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올해 4년차 댄서인 강세영(24·가명) 씨의 말이다. 

    “가수 백업 댄서로 음악방송 무대에 오를 때마다 급여를 7만 원 정도 받아요. 사전 녹화를 하면 무대가 빨리 끝나는데, 만약 생방송으로 무대에 서면 기다리는 시간 합쳐서 거의 8시간 걸려요. 행사나 방송 일이 갑자기 잡혀서 기존에 있는 안무를 배워 연습하면 1주일 정도 걸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연습하는 시간은 일하는 것으로 인정을 못 받아요.”

    올해 4년차 댄서인 우기정(25)씨는 안무를 구상하고 이를 댄서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7월 가수 콘서트의 첫 무대에서 출 춤을 만들었다. 안무를 짜는 데 하루가 걸렸고, 안무를 가르치기 위해 매일 2~3시간씩 10번 정도 연습실에 갔다. 그러나 일한 시간으로 보면 그는 최저임금보다 낮은 시급을 받았다. 

    이현익 씨는 동료 댄서들이 정당한 급여를 받으며 일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청연’을 키워나가고 있다.

    “몸이 근질거리죠”

    4월 18일 이현익(가운데) 씨가 동료들과 안무를 구상하고 있다. [이나영]

    4월 18일 이현익(가운데) 씨가 동료들과 안무를 구상하고 있다. [이나영]

    서울 금천구 시흥동 유통산업단지에 있는 ‘청연’ 사무실을 4월 12일 방문했다. 원자재가 상가 골목 앞에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는 건물 바깥과는 달리 조명이 설치된 사무실 내부는 화사하다. 사무실의 오른쪽 벽면은 거울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처음엔 춤을 연습하기 위해 설치했지만, 이젠 ‘청연’ 미팅 일정을 적는 화이트보드 용도로 쓰고 있다.

    이씨는 지방자치단체 홍보영상에서 댄서들이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기획을 제안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울엔 그가 발급받아서 제출해야 할 증명서와 서류 이름이 나열돼 있다. 

    ‘청연’ 일에 몰두하기 위해 방송이나 뮤직비디오 섭외 제안을 거절하고 있는 이씨에게 춤을 못 춰서 아쉽지는 않으냐고 물었다.

    “몸이 근질거리죠. 더기 댄스라고 제가 좋아하는 춤 장르가 있는데 댄스학원 가서 배우고 싶어요. 근데 지금 ‘청연’ 만든 지 얼마 안 됐는데 이 기회를 놓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청연’ 얼른 성장시키고 다시 복귀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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