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조 원 가치는 어디로?
커지는 스타트업 거품론
3분기 나스닥 상장 목표
적극적 M&A 행보
‘흙수저’ 이수진 스토리
불우한 환경을 딛고 자수성가한 것으로 알려진 이수진 야놀자 총괄대표. 야놀자는 하반기 나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다. [야놀자]
손정의 회장은 스스로를 비전 투자자로 정의한다. 아무 곳에나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두고 투자처를 신중하게 고른다. 손 회장이 야놀자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이전까지 단순 숙박 예약 앱 운영회사 정도로만 여겨지던 야놀자가 알리바바나 쿠팡처럼 혁신을 바탕에 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얼마 뒤 야놀자는 인터파크를 품에 안으며 다시 한번 시장을 놀라게 했다. 일련의 행보는 한 가지를 가리키고 있다. 이르면 올 3분기로 예정된 나스닥 상장이다.
왜 나스닥 상장인가
야놀자가 올해 하반기를 목표로 미국 나스닥 상장을 진행하고 있다. 상장 주관사는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다. 야놀자는 앞서 2020년 한국 상장을 목표로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했지만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이후 행선지를 미국으로 돌렸고, 상장 주관사들도 지난해 9월 외국계 투자은행(IB)들로 재정비했다.야놀자의 나스닥행은 지난해 소프트뱅크로부터 2조 원을 투자받았을 때부터 예견된 수순이다. 한국 상장이 거론될 당시 거론되던 몸값은 최대 5조 원 안팎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2조 원 투자 유치 당시 10조 원의 몸값을 인정받으면서 나스닥 상장이 사실상 기정사실이 됐다. 국내 증시에선 소프트뱅크의 눈높이에 맞추기는커녕 당시 인정받은 10조 원의 가치조차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야놀자는 투자 유치 직후 인터파크 인수전에 뛰어들었고 12월 인수가 확정됐다. 인터파크의 여행·항공·공연·쇼핑 등 사업 부문에 대한 지분 70%를 2940억 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인터파크가 국내 항공권과 공연 예매 시장의 선두인 만큼 여행과 여가 관련 사업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나스닥 상장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외형 확대에 나선 것으로도 풀이된다. 투자 유치에 따른 자금 유입→신규 투자→기업가치 증대→투자금 회수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에 들어선 셈이다.
인터파크 인수는 야놀자에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야놀자는 인터파크 인수를 통해 글로벌 여행 시장 공략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자체 보유한 기술력 및 글로벌 네트워크와 인터파크의 브랜드 가치, 서비스 노하우를 결합해 여행 예약부터 이동, 숙박, 체험, 구매까지 총망라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나아가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초개인화 서비스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를 통해 인터파크를 글로벌 ‘트래블 테크’ 기업으로 적극 육성하겠다는 포부를 제시했다. 야놀자는 이에 앞서 지난해 6월 ‘테크 올인(All-in)’ 비전을 선포하며 전체 임직원의 70% 이상을 R&D 인재들로 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야놀자를 창업한 이수진 총괄대표는 지난해 6월 테크 올인 비전을 밝히며 “글로벌 테크 기업을 목표로 기업문화부터 일하는 방식까지 모두 바꿔 업계 표준을 세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상장 앞두고 ‘몸집 키우기’
상장을 앞두고 야놀자는 기업가치 제고에 총력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야놀자는 활발한 M&A(인수합병)를 통해 성장한 곳인 만큼 기업가치를 키우는 과정에서도 이전과 같이 인오가닉(Inorganic) 전략을 쓸 것으로 보인다. 인오가닉은 자체 경쟁력 확대를 통해 회사를 성장시키는 오가닉(Organic)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M&A나 지분 투자 등 외부 수혈을 통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전략을 일컫는 용어다.야놀자는 2015년 처음 투자를 유치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유입된 자금을 통해 꾸준히 기업에 투자하거나 아예 다른 기업을 인수했다. 2016년부터 올해까지 인수하거나 투자한 기업만 15곳을 넘는다. 2016년 호텔 예약 서비스 ‘호텔나우’를 시작으로 2018년엔 ‘레저큐’(여가·레저 서비스) ‘한국조달물류’(숙박비품 유통) ‘더블유디자인호텔’(호텔체인)을 인수했다.
2019년에는 객실관리시스템(PMS·Property management system) 기업인 ‘가람과 시리얼’을 인수했다. 같은 해 ‘우리펜션’(펜션 예약 서비스) ‘데일리호텔’(숙박 예약 플랫폼) ‘이지테크노시스’(PMS)를 사들인 데 이어 2020년엔 ‘나우버스킹’(식당 대기 서비스)에 투자했다. 지난해에는 ‘산하정보기술’(호텔 솔루션)과 ‘인터파크’를 인수했다.
올 들어선 기업공개가 가시권으로 접어들면서 더욱 다양한 사업을 눈여겨보고 있다. 최근엔 골프장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야놀자의 자회사 야놀자클라우드가 뮤렉스파트너스와 함께 ‘이츠원’ 투자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츠원은 골프장 운영에 필요한 모든 시스템을 다루는 통합 솔루션(ERP)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골프 시장은 젊은 층이 대거 유입되면서 향후 몇 년 동안 성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밖에 야놀자클라우드는 티케팅 IT 솔루션 기업 ‘스마틱스’에 인수조건부 투자도 진행했다. 스마틱스는 전국 300여 개 문화·레저 시설에 온·오프라인 통합 티켓 솔루션과 현장 운영 대행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밖에 렌터카 모빌리티 플랫폼 ‘캐플릭스’에도 투자해 2대 주주에 올랐다. 해외시장도 두드렸다. 인도의 프리미엄 호텔 솔루션 기업 ‘인키 인포시스템즈’에 인수조건부 투자를 진행했다.
활발한 M&A를 뒷받침한 건 야놀자의 성장 가능성을 일찌감치 눈여겨본 투자자들이다. 첫 투자 유치는 2015년이다. 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가 100억 원을 투자했다. 이후 최근까지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KT, 한화투자금융 등으로부터 모두 2조4000억 원에 이르는 투자를 유치했다. 첫 투자 때 2000억 원이던 기업가치는 지난해 기준 10조 원으로 50배 증가했다.
글로벌 스타트업 거품론은 악재
지난해 3월 11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쿠팡은 주당 69달러까지 올라 기업가치가 130조 원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난 5월 한때 주가가 주당 9달러까지 떨어지는 굴욕을 겪었다. [쿠팡]
쿠팡은 지난해 3월 나스닥에 화려하게 입성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당시 공모가를 주당 35달러로 책정해 기업가치 72조 원으로 상장했다. 상장 첫날 주가는 42달러까지 치솟아 하루 만에 기업가치가 100조 원을 찍었다. 한때 주당 69달러로 기업가치가 130조 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6월 들어 주가는 13달러 안팎을 오가고 있다. 5월 한때 9달러까지 떨어져 한 자릿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나스닥 상장 자체도 힘들지만 상장 이후 평가를 잘 받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이유로 야놀자보다 먼저 제2의 쿠팡으로 불린 컬리는 최근 국내 상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일각에서 스타트업 거품론이 불거지고 있다는 점도 악재다. 지난 5월 1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테크 스타트업의 파티는 끝났다(For Tech Startups, the Party Is Over)’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스타트업으로 향하던 자금줄이 말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5월 12일 손정의 회장은 지난해 연간 실적을 발표하며 “스타트업에 대한 신규 투자 규모를 작년 대비 절반 또는 4분의 1(25%)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처음 야놀자가 2조 원의 투자를 유치했을 당시 업계에서 거론되던 야놀자의 몸값은 무려 30조 원 수준에 이른다. 그러나 지금 30조 원 얘기는 쏙 들어간 지 오래다. 장외시장에서 야놀자의 몸값은 8조~9조 원대에 그친다.
야놀자 실적이 꾸준히 우상향하고 있지만 여전히 매출 규모가 작다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야놀자는 2020년 흑자 전환에 성공한 데 이어 지난해 영업이익을 대폭 늘리는 데 성공했다. 야놀자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은 3748억 원으로 전년보다 29.8% 증가했다.
영업이익 증가 폭은 더욱 놀랍다. 536억 원으로 109억 원을 기록했던 전년 대비 392% 급증했다. 국내 여행 수요가 몰리며 숙박·레저 등 여가사업 전반이 호조세를 보인 영향이다.
그러나 야놀자는 앞서 나스닥행이 거론됐던 기업들과 비교해 덩치가 지나치게 작다. 지난해 매출을 살펴보면 쿠팡은 22조2256억 원, 컬리는 1조5614억 원이었다.
사업 무대가 국내에 한정됐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야놀자가 적극적으로 해외 사업 확대에 나서 현재 세계 170개국에 진출해 있지만, 해외 매출은 미미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야놀자를 창업한 이수진 총괄대표의 성공 스토리는 독특한 사례로 거론된다. 쿠팡과 컬리 등 국내 스타트업 업계엔 해외 명문대 출신이 즐비하다. 하버드 출신의 김범석 쿠팡 의장, 골드만삭스 출신의 김슬아 컬리 대표가 대표적이다.
남다른 성공 스토리, 상장 플러스 요인되나
이수진 총괄대표는 말 그대로 역경을 딛고 자수성가했다. ‘돈의 소중함’을 숨기지 않고 강조하는 것도 다른 창업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함이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돈에 대한 절실함을 느끼게 됐고 성인이 된 이후부터 꾸준히 투자 혹은 창업을 통해 부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거듭했다.이 총괄대표는 1978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4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6살 때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할머니 손에 자랐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기본적인 글자만 읽을 수 있었을 정도로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학비가 저렴했던 천안공업전문대(현 공주대) 금형설계학과에 진학했으나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에 막노동에 뛰어들었다. 군대 역시 돈을 벌기 위해 프레스 금형 설계를 하는 업체에서 병역특례요원으로 3년간 복무했다.
이후 힘들게 모은 4000만 원을 주식 투자로 모두 잃은 이 총괄대표는 갈 곳마저 없어 모텔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다시 저축해 27세이던 2005년 자본금 5000만 원으로 ‘모텔투어’라는 숙박 관련 다음(DAUM) 카페를 인수했다. 그러나 상표권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모텔투어(모투)의 상표권을 경쟁사에 빼앗겼고, 기사회생으로 2007년 지금의 야놀자를 공식 출범했다.
그러던 중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며 기회가 찾아왔다. 야놀자에서 2014년 선보인 숙박 당일 예약 시스템이 호응을 얻기 시작하면서 회사 성장세에 속도가 붙었다.
야놀자의 성공 비결로는 M&A와 함께 적극적인 인재 영입이 손꼽힌다. 특히 야놀자의 성공을 얘기할 때 이 총괄대표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김종윤 대표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총괄대표는 2015년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 재직 중인 김종윤 대표를 삼고초려 끝에 영입했다. 김 대표는 지난해 비전펀드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때도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