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호

BTS, 손흥민, 박찬욱, 송강호… 大國 향한 길은 文化에 있다

[백승주 칼럼]

  • 백승주 국민대 석좌교수·前 국회의원 kidabsj@gmail.com

    입력2022-07-01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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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구가 예언한 ‘문화대국’ 韓國

    • 문화가 곧 영향력인 문화영토 경쟁 시대

    • 南北 문화영토 차이 원인 ‘자유’

    • 尹 정부 문화 강국 지향해야

    5월 31일 미국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에서 네 번째)과 BTS 멤버들이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BTS 트위터]

    5월 31일 미국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에서 네 번째)과 BTS 멤버들이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BTS 트위터]

    방탄소년단(BTS)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백악관을 방문했다. 축구선수 손흥민이 세계 최고 축구 리그인 프리미어리그(premier league)에서 득점왕이 됐다. 칸(Cannes)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이 감독상을, 송강호 배우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교포 이민지 선수를 포함한 한국계 선수 4명이 LPGA US여자오픈에서 우승 등 TOP 5를 차지했다. 올해 5월 말에서 6월 초에 한국인의 어깨를 들썩이게 한 소식이다.

    글로벌 스타로 우뚝 선 한국인 소식을 접하는 사람마다 감회는 다를 듯하다. 필자는 김구의 ‘백범일지’속 ‘나의 소원’ 부분에 나오는 ‘문화국가 비전’을 생각했다. 김구는 대한민국이 장차 문화대국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는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힘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김구의 삶은 무장 독립투쟁으로 점철된다. 그의 종착(終着)적 애국 사상이 왜 문화대국으로 귀결됐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혜안은 70여 년이 지나 현실이 됐다. 광복과 분단 이후 한국의 ‘정치영토’는 고착돼 있지만 우리의 ‘문화영토’는 무한 확장되고 있다. 그 힘은 무엇에 있는가. 바로 자유다. 자유 확대를 지향한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한국과 비슷한 DNA를 가진 북한과 비교하면 명백히 드러난다.

    문화영토의 시대

    정치영토란 하나의 정부가 국경선을 통해 배타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지역을 말한다. 이와 비견되는 문화영토란 ‘유통되는 세계문화 속에서 하나의 민족이 차지하는 문화적 비중’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문화영토의 크기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의 문화 역량에 따라 확대될 수도, 위축될 수도 있다.



    정치·군사적 영토의 크기는 전쟁과 갈등의 진행 및 종결 양상에 따라 변하긴 하지만 비교적 고정돼 있다. 반면 문화영토는 시시각각 유동적으로 변한다. 평생 민족문화를 연구한 홍일식(86) 전 고려대 총장은 ‘문화영토의 시대’라는 개념을 통해 역사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고 예측했다. 정치·군사적 경계선을 동물의 생존 차원 경계선 획정에 비유하면서 “정치적 영토시대는 인류에게 전쟁과 비극을 강요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 발생을 완화시키기 위한 인류의 노력들이 합리적으로 전개된다면 문화영토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역설했다. 또 “문화영토 시대엔 ‘정치적으로 힘 있는 문화’가 ‘정치적으로 힘 없는 문화’를 구축해 버리는 획일적 문화의 흐름이 아니라 ‘양질의 고급문화로 문화가 유통되고 그러한 문화가 조화롭게 존재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홍 전 총장의 주장은 국제정치학에서 ‘소프트 파워(정보과학이나 문화 ·예술 등이 행사하는 영향력)’ 개념을 제시한 조지프 나이 교수의 이론과 맥을 같이 한다. 문화영토 경쟁의 시대에 BTS, 손흥민, 영화인 등 문화계 종사자들이 영토 확장의 첨병으로 활약하는 것이다.

    모든 나라 최고 지도자의 눈빛과 몸짓, 말은 뉴스가 된다. “뉴스는 진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위에서 나온다”는 명제는 ‘여론 선전학’의 기본이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 대통령의 눈빛과 말은 국제정치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다. 바이든 대통령의 BTS 초청 자체가 메시지를 내포한 것이다.

    6월 4일 BTS를 백악관에 초청한 바이든 대통령은 환담 자리에서 두 가지 정치적 메시지를 전했다. 첫째, BTS가 하는 일은 큰 변화를 만든다. 둘째, ‘혐오는 근절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중요하다. BTS를 따로 만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역시 “증오와 편견은 사람들을 두렵고 외롭게 만든다”며 “외로움을 느끼는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킬 수 있도록 여러분이 목소리를 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아울러 백악관은 ‘아시아계 미국인·하와이 원주민·태평양 도서 주민 유산의 달(AANHPI Heritage Month)’ 행사를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BTS를 초청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1990년 이후 매년 5월 아시아·태평양 주민의 문화를 미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기리는 행사를 하고 있다.

    미국은 아직 국민통합(Nation Building)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잔존하는 인종차별 의식 속에 폭력과 갈등이 미국 사회의 통합을 위협한다. 아시아인에 대한 주류사회의 혐오, 편견도 존재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BTS 초청을 통해 미국의 통합 방향을 제시하고 인종차별 관련 폭력으로 말미암은 상처를 치료하고 싶었던 것이다.

    BTS의 다른 이름 방탄소년단(防彈少年團)에서 ‘방탄’은 ‘총알을 막아낸다’는 의미다. 10대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힘든 일, 편견과 억압을 막아내겠다는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2013년 데뷔해 국내외 신인상을 휩쓴 BTS는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최정상 보이 그룹으로 성장했다. 전 세계적 열풍을 일으키며 ‘21세기 팝 아이콘’이 됐다.

    이러한 BTS가 세계 정치의 중심인 미국의 대통령에게 ‘고통을 막아내는 데 앞서 달라’는 SOS를 받은 것이다. BTS는 바이든 대통령과의 환담에서 “우리는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 우리의 목소리도 내고 싶다.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전부”라며 “오늘은 우리에게 역사적이고 의미가 큰 날”이라고 당당히 말했다. 대견스러움을 넘어 감격을 느끼게 한다.

    세계인 편견 깨뜨린 손흥민

    손흥민(토트넘)은 아시아인 최초 EPL 득점왕에 등극해 세계인의 편견을 깼다. [토트넘 홋스퍼 페이스북]

    손흥민(토트넘)은 아시아인 최초 EPL 득점왕에 등극해 세계인의 편견을 깼다. [토트넘 홋스퍼 페이스북]

    1988년 서울올림픽 대표 구호였던 ‘벽을 넘어서’는 올해 2월 26일 별세한 고(故)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최고의 걸작이다. 이 전 장관은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개·폐회식을 총괄 기획했다. 서울올림픽 직전의 모스크바 올림픽과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냉전의 파고 속에 반쪽 진영만 참가하는 불구 올림픽으로 끝났다.

    이 전 장관은 이를 치유하는 상징이자 슬로건으로 ‘벽을 넘어서’를 택해 온전한 올림픽을 만들어냈다. 정말 멋진, 역사에 남을 슬로건이다. 서울올림픽 이후 곧 냉전체제가 붕괴됐기에 이 전 장관이 만든 이 슬로건은 냉전체제 종식을 예상한 위대한 영감처럼 느껴진다.

    손흥민은 ‘벽을 넘은’ 선수다. 그가 활약하는 프리미어리그가 어떤 곳인가.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 리그다. 그곳에서 득점왕에 올랐다. 득점왕은 매년 나오는데, 왜 손흥민의 득점왕 등극이 더 특별하고 위대한가. 아시아인 최초이기 때문이다. 손흥민으로 인해 세계 축구팬의 아시아 축구 선수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손흥민은 스포츠 분야에서 한국의 문화영토를 넓힌 셈이다.

    문화 강국 위한 여건은 국가 몫

    영화감독 박찬욱이 5월 28일 제75회 칸 국제영화제가 열린 프랑스 남부 칸 ‘팔레 데 페스티벌(Palais des Festivals)’에서 열린 폐막식에 참석해 감독상 트로피를 들어 보이며 기념촬영하고 있다. [뉴스1]

    영화감독 박찬욱이 5월 28일 제75회 칸 국제영화제가 열린 프랑스 남부 칸 ‘팔레 데 페스티벌(Palais des Festivals)’에서 열린 폐막식에 참석해 감독상 트로피를 들어 보이며 기념촬영하고 있다. [뉴스1]

    배우 송강호가 5월 28일 제75회 칸 국제영화제가 열린 프랑스 남부 칸 ‘팔레 데 페스티벌’에서 열린 폐막식에 참석해 수상한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뉴스1]

    배우 송강호가 5월 28일 제75회 칸 국제영화제가 열린 프랑스 남부 칸 ‘팔레 데 페스티벌’에서 열린 폐막식에 참석해 수상한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뉴스1]

    영화배우 전도연이 2007년 5월 27일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필자는 당시 ‘어린이동아’에 ‘외교이야기’라는 주간 연재만화의 구성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만화의 ‘풍선 속 글’에 ‘대중문화와 문화영토’라는 주제로 다음과 같이 썼다.

    “과거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나라를 방문하여 역사유적을 관광하느냐, 즉 관광객 수가 문화영토의 크기를 결정했다. 그러나 현대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각국이 생산한 대중문화에 관심을 갖고 소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특정한 나라의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특정한 나라의 상품 수입과 소비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올해 박찬욱 감독이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고 송강호 배우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진심 어린 축하를 보낸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일시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 관광객 수에서는 유럽의 관광국가에 뒤지지만 대중문화 소비 부문에선 앞설 수 있다는 가능성과 자신감을 보여준 쾌거다.

    문화영토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총체적 국력 신장이 필요하다. 영국이 자랑하는 문화상품은 ‘영어’다. 영국은 지난 300여 년 동안 정치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영어 통용 지역을 확대했다. 미국은 10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세계 최고의 국력을 자랑한다. 미국은 이러한 힘을 십분 활용해 할리우드를 대중예술의 메카로 만드는 등 미국식 대중문화를 세계 도처에 침투시켰다.

    한국의 문화가 이렇게 우뚝 서게 된 것 역시 세계 10위권으로 성장한 경제력 덕분이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 자유형 62㎏급 부문 금메달을 획득해 광복 이후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양정모(69) 선수는 1972년 뮌헨 올림픽 참가 자격을 얻었음에도 가지 못한 아픔을 겪은 바 있다. 올림픽 참가 비용을 절약하려는 국가정책 때문이었다. 문화영토 확장 전선에서 싸우는 건 문화인이지만 싸움을 위한 여건은 국가가 만들어줘야 한다.

    자유 없이는 문화도 없다

    한국이 ‘문화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바탕은 ‘자유’와 ‘국력’이다. [Gettyimage]

    한국이 ‘문화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바탕은 ‘자유’와 ‘국력’이다. [Gettyimage]

    바이든이 BTS를 초청한 시기에 맞물려 북한은 또다시 8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리고 또다시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북한은 여전히 문화영토보다 정치·군사영토 확장에 관심을 더 집중하고 있다. 확장 대상은 중국, 일본, 러시아가 아닌 바로 한국이다.

    북한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과 북한의 문화영토 크기를 비교해 봤다. 계량적 지수를 통해 설명하긴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정치영토 크기는 1953년 정전협정 시기에 고착돼 비슷하나 문화영토 크기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세계가 관심을 가질, 혹은 세계에 영향을 미칠 문화를 보유하지 못했다.

    한국인과 북한인은 같은 DNA를 가졌으나 한국엔 세계적 수준의 문화가 있고 북한엔 없다. 이유가 뭘까. 답은 간단하다. 자유다. 한국엔 자유와 이를 확대해 나간 현대사가 있다. 그러나 북한엔 자유가 없다. 북한의 현대사는 자유의 위축·소멸로 점철된다.

    자유는 크게 ‘억압으로부터의 자유(Liberty)’와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자유(Freedom)’로 나눌 수 있다. 문화는 두 가지 속성의 자유가 모두 보장될 때 만개한다. 양심으로 상징되는 내면의 자유와 행동·표현으로 설명되는 외면의 자유가 다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문화가 융성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자유가 확장되는 바람직한 방향성을 띠었다. ‘10대가 감당해야 하는 억압과 편견을 막아내겠다’는 BTS의 각오는 10대가 누려야할 자유에 대한 의지를 상징한다. 이러한 뜻이 그들의 퍼포먼스에 녹아있기 때문에 세계 제1의 뮤지션이 될 수 있었던 것이라 믿는다. 강조하건대 자유 없이 좋은 문화는 만들어질 수 없다.

    문화대국 향한 王道, 국력과 자유

    앞서 언급한 바이든 대통령과 BTS의 환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BTS의 히트곡 ‘버터(Butter)’를 틀고 “여러분이 집처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이 노래 익숙하지 않으냐”며 분위기를 띄웠다.

    필자가 현역 정치인 시절 젊은 유권자와 더 가까워지기 위한 마음에 BTS의 노래를 반복해 들었던 게 생각났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잘 들리지 않았다. 1942년생인 바이든 대통령이 ‘버터’의 가사를 정확히 이해했을지 궁금하다. ‘버터’의 가사 중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버터처럼 부드럽게 너를 누구보다도 강하게 끌어당기며(Smooth like butter, pull you in like no other)”

    모든 언어엔 다중적 의미가 있다. 노래 가사도 그렇다. ‘버터’의 가사에 다중적 의미가 있다면 여기서 버터란 자유를 상징하는 음식이 아닐까. 과거 한국 사회는 미국에서 생활하거나 유학한 사람을 “버터 냄새가 난다”고 조롱했으나 사실 버터 냄새란 미국식 자유의 상징이었다.

    더 큰 문화대국으로 성장하기 위해 정부는 국력을 키워야 하고 국민에게 더 큰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국력과 자유는 문화대국으로 가는 왕도(王道)다. BTS의 노랫말 속 버터처럼 부드럽게 세계를 끌어당기는 문화 강국이 한국 정부가 지향해야 할 모습이다.

    백승주
    ● 1961년 출생
    ●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前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前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중국 베이징대 방문교수
    ● 前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 現 국민대 석좌교수
    ●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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