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대한노인회 성북구지회 인근의 노인보호구역. [이경은 기자]
6월 17일 서울 성북구 대한노인회 성북구지회 앞 노인보호구역(실버존)을 지나던 요양보호사 김모(65) 씨는 이곳이 실버존으로 지정된 사실을 아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성북구의 한 경로당에서 일하는 김씨는 “배달용 오토바이와 차량이 빠르게 다녀 어르신을 경로당에서 댁까지 모셔다 드린 후 퇴근한다”고 말했다.
“노인보호구역 지정 효과 없어”
이곳은 2019년 8월 5일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지정 후 1년 동안 노인 보행자 사고 건수가 기존 0건에서 3건으로 오히려 늘었다(기준점 반경 300m내 기준). 이 중 두 건은 사고를 당한 노인이 중상을 입었다. 대한노인회 성북구지회 관계자는 “우리 지회 건물에 경로당, 시니어클럽도 함께 있어 인근이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됐지만 효과가 없다”고 전했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은 반경 300m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증감을 기준으로 보호구역 지정 효과를 분석한다. 통계만 놓고 보면 이곳은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됐으나 그 실효성이 없는 셈이다.노인보호구역의 교통안전 관리가 미흡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성북구청 교통행정과 관계자는 “보호구역에 해당하는 도로 구간이 아닌 기준점 반경 300m 내 보행사고는 보호구역과는 무관하다”고 답했다.
노인보호구역은 도로교통법에 따라 양로원, 경로당, 노인복지시설 등 노인 통행량이 많은 곳에 설치된다. 노인보호구역을 지나는 차량은 시속 30㎞ 이하로 운행해야 하고 주·정차도 금지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보행사고 사망자 중 65세 이상 노인 비율은 2018년 56.6%에서 2019년 57.1%, 2020년 57.5%로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19.8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7.6명)보다 2.6배 이상 많다. 노인 교통안전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따라 같은 ‘교통약자’로 분류되는 어린이보다도 취약하다. 2020년 교통사고로 인해 사망한 노인 보행자는 1342명으로 만 13세 미만 어린이 보행자 사망자 수 24명의 56배에 달했다. 그럼에도 지난해 기준 서울 내 노인보호구역은 163곳으로 어린이보호구역(1741곳)보다 훨씬 적다.
안적 확보 위한 실질 조치 부족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돼도 교통안전 확보를 위한 실질적 조치는 부족하다. 도로교통법에 따라 어린이보호구역엔 감시카메라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노인보호구역은 그렇지 않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어린이를 다치거나 사망케 하면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가중 처벌된다(사망 시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 상해 시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 벌금). 노인보호구역 내 교통사고에 대해선 이와 같은 가중처벌 규정이 없다.노인 교통사고가 빈발하지만 인근에 노인 관련 시설이 없다는 이유로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서울지하철 3호선 홍제역 인근에서는 지난해 노인 교통사고 13건이 발생했고 그중 9건은 중상자가 나왔으나 노인보호구역이 설치되지 않았다. ‘어린이‧노인 및 장애인 보호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규칙’에 따라 노인보호구역은 노인복지시설 설립·운영자의 신청을 받은 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장이 지정한다. 노인복지시설이 없는 홍제역 인근엔 보호구역 지정이 어렵다는 것이 서울시 측 설명이다. 서울시 보행정책과 관계자는 “법적으로 노인보호구역은 인근에 노인복지시설이 있을 경우 지정하도록 돼 있어 그 외 지역은 지정이 어렵다”며 “사고가 빈번한 홍제역 인근은 교차로 간 방호울타리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박무혁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노인보호구역이 어린이보호구역에 비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핵심 원인은 규제 법안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면서 “심각한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노인보호구역에) 무인단속장비 설치를 의무화하고 교통사고를 일으킨 경우 강력 처벌하는 등 선제적 입법 조치로 노인 교통안전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