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서재
환자들에게 답하는 마음으로 쓴 책
“고통이 사그라지는 시간이 꼭 와”
e메일 주소 ‘sunboy’
김혜남의 서재. 책장을 두 겹으로 구성했다. 가장 앞에 있는 책꽂이에 약과 함께 그녀의 책들이 보인다. [김혜원]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죽고 싶다는 말은 간절히 살고 싶다는 뜻이었다 / 천 개의 죽음이 내게 말해준 것들 /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 죽음의 에티켓
약 아래에는 죽음에 관한 책들이 놓여 있다. 반면 약이 놓인 곳 위에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관해 쓴 그의 책들이 꽂혀 있다.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이곳은 김혜남의 서재다.
“한 발짝씩 떼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
1959년생 김혜남은 정신분석 전문의이자 작가다. 2014년까지만 해도 대중은 그를 ‘글 잘 쓰는 의사’로 알았다. 2015년 이후에는 수식어가 하나 더 붙었다. 글 잘 쓰는 파킨슨병 의사. 김혜남은 2001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그로부터 20년간, 김혜남은 책 열 권을 냈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 직장, 결혼, 집, 관계에 대한 문제로 우울과 불안을 안고 있는 현대인에게 김혜남의 책은 큰 위로가 된다. 그의 책들은 수십만 부씩 팔리는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독자들은 주로 ‘공감 간다’ ‘따뜻하다’ ‘위로가 됐다’는 서평을 남긴다. 정신분석 전문의로서 가진 지식과 사람에 대한 통찰력이 더해진 덕분이다.
정신분석학회 초대 회장 조두영은 김혜남에 대해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직관은 나보다 10년은 앞선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김혜남의 이야기가 감동을 주는 것은 김혜남 본인이 마음과 몸의 고통을 겪고도 희망을 말한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김혜남이 처음부터 글을 쓸 생각이었던 것은 아니다. 정신분석 전문의에 그치지 않고 미국으로 유학을 갈 계획이었다. 학문적 훈련을 받고 정신분석가가 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렇게 국립정신병원(현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12년간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하고 나와 개인 병원을 차린 지 1년도 안 된 때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파킨슨병은 도파민을 분비하는 신경세포를 잃어가는 병이다. 갈수록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기 어려워진다. 몸이 떨리거나 근육이 굳는다. 발병 원인은 밝혀진 바 없고 뚜렷한 치료법도 없다. 병이 악화되면 우울증, 치매, 편집증(피해망상)을 겪을 수 있다. 충격에 누워 있던 김혜남은 한 달 만에 다시 일어나 일을 했다. 진료를 보고 의사로 일하며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책을 썼다. “환자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지 답하는 마음으로” 썼다.
2014년 1월, 김혜남은 진단받은 지 13년 만에 끝내 병원 운영을 접어야 했다. 요양차 제주도로 내려갔다. 어느 날 밤, 소변이 마려워 일어났는데 몸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등에서는 땀이 뻘뻘 나는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넘어질 뻔하며, 화장실을 바라봐야 했다. 문득 발을 쳐다보았다. 한 발만…. 김혜남은 한 걸음 내디뎠다. 한 발만 더…. 그렇게 화장실에 도착했다. 2015년 조선일보와 인터뷰하며 김혜남은 이때를 회상했다.
“먼 곳 바라보지 말고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내 발을 내려다보며 한 발짝씩 떼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걸 알게 됐다.”
사람들에게,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을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6번째 책을 썼다.
할 수 있는 일, “지푸라기라도 덮는” 일
김혜남은 8번째 책 이후로 “건강이 안 좋아져서 글을 못 쓴다” 했다. 그때 박영미 포르체 출판사 대표가 책 출간을 제안했다. ‘어른이 되면 괜찮아질 줄 알았던’ 어른들을 위한 책이다.“(워킹맘으로 지내며) 나 요즘 너무 사는 게 힘들다고 아무것도 아니고 쓸모없는 존재로 느껴진다고 그러니까, 아마 거기에 감화되신 것 같아요.”
그렇게 박영미가 김혜남을 인터뷰하면서 9번째 책이 나왔다.
지난해 12월, 10번째 책이 나왔다. 컴퓨터 앞에 앉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김혜남은 원고를 “구술로 수정”했다. 김혜남은 더는 책을 못 낼 것이라 말한다. 몸은 계속 무거워지고 있다. 오후 세 시 반이면 피로가 쌓여 낮잠을 자야 한다. 때로 너무 아프다.
하지만 김혜남은 한 가지는 분명히 안다.
“그냥 고통스러울 때는, 세상의 어떤 생각을 해도 고통스러워. 고통 앞에서는 아무것도 이길 수가 없어. 무기력해. 그런데 고통은 사그라지는 시간이 있거든. 그때 그 시간이 주어진 것은, 감사하고 즐기면 되는 거야. 고통의 의미를 찾고, 이럴 필요도 없고. 내가 밤에 잘 때, 팔다리가 꼬여. 더럽게 아파. 그럴 때는 아파하는 수밖에 없어, 어떡해. 그런데 기다리면서 아파하는 거야. 이 고통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필요한 약을 먹고 뭐 하고, 이러면서 얼음찜질을 하고, 이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거야. 내 고통에 대해서, 그러면 고통이 사그라지는 시간이 꼭 와. 다시 고통스러운 시간이 또 오겠지만. 그러면 그 시간을 그냥, 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니까, 감사하면서 즐겁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거지.”
김혜남은 삶에 바람이 불어오면 “바람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안다. “엎드려 있다고 해도 찬 공기가 흙모래가 입안에 들어갈 것이고, 바위 뒤에 숨는다고 찬 공기가 따뜻한 공기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김혜남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지푸라기라도 덮는” 일. 김혜남에게는 운동이다.
“운동을 계속해서, 내 근육을 계속 키워서 계속 걸을 수 있게끔. 계속 뇌를 자극하려고 하는 거. 내가 고통을 경감시킬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한다, 그다음에는 기다리는 거지.”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30년 지기 친구 류분순이 그 노력을 안다. “파킨슨이, 균형감각이 잘 안 생겨요. 그러니까 계속 앉게 되고, 기운이 없으니까 눕게 되고 하니까 근육이 자꾸 소실되지, 안 걸으니까. 그러니까 당연히 근육을 키우는 그런 물리적인 운동이 필요한데, 이 친구는 이제 너무 열심히 하는 거지.”
오후 세 시 반이 넘었다. 인터뷰를 마친 김혜남이 손을 앞으로 뻗었다. 류분순이 그녀를 도와 일으켜 세웠다. 김혜남은 천천히 일어났다. 앞으로 쭉 뻗은 팔을 류분순이 잡았다. 류분순이 미소 지었다. 친구의 어깨에 팔을 걸친 김혜남은 천천히 문 앞으로 걸어갔다. 160㎝가 될까 말까 하는 작은 키와 살짝 처진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매끄러운 갈색 마룻바닥에 맨발이 스윽스윽 스쳤다. 문턱 없는 방문을 지난 김혜남이 천천히 침실로 향했다. 방문을 닫고 짐을 정리하는데 밖에서 누구 것인지 모를 ‘음음’ 하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사막의 소리
김혜남이 어떤 사람이냐는 말에 반건호 경희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김혜남의 e메일 주소를 아느냐고 물었다. 갸웃거리자 그가 웃으며 설명했다. “썬보이거든요, 썬보이.” 이름의 ‘혜’를 발음이 유사한 해로 바꾸고, 남녘 남을 뜻하는 한자도 소년으로 바꿔서 e메일 아이디를 ‘sunboy’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게 김혜남 선생님의 이미지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아주 밝고 에너지가 많고, 해님처럼 다른 사람들을 이렇게 따뜻하게 비춰주고.”2015년까지만 해도 왜 살아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알 수 없다 답하던 김혜남은 2017년 책에 사막 그림과 함께 글을 남겼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세요.
저 모래 속에서 들리는 아주 작은 소리를.
저 메마르고 뜨거운 모래 속에서도
생명은 웅크리고 때가 되길 기다리고 있고,
혹은 나름대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느라
조심스러운 행보를 계속하고 있는 저 소리를.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찬가를 부르는 이 아이러니,
그러나 그것은 바로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 말해주는
친절한 신의 소리입니다.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자신의 답을 찾은 것이냐고 묻자 김혜남이 답했다.
“그렇지. 우리는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야. 삶을 살고 있으니까, 재미있게 살고 있는 거고. 재미있게 살고 있으니까, 남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거고. 남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으니까, 세상을 따듯하게 반길 수 있는 거고.”
김혜남의 목소리 역시 누군가를 위한 사막의 소리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