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식 지음, 블루엘리펀트, 각권 344쪽, 각권 1만9000원
“외무부에서 정보를 제공한 자를 대라.”
“반골 XX는 죽여야 해. 사표 써”
김 기자는 ‘잘못하면 취재원 장 과장이 다칠 수 있다’고 마음속으로 되뇌며 고통을 견뎠다. 구타, 심문, 모욕 주기가 계속 이어졌다. 수사관들은 편집국장도 잡아와 1985년 2·12 총선 이후 정권에 비협조적인 기사를 내보낸 저의를 캐물으며 고문했다.
“편집국장 인신 처리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전두환) 각하도 양해한 사실이다. 당신을 비행기에 태워 제주도로 가다가 바다에 떨어뜨릴 수도 있고….”
안기부의 불법 연행, 가혹 행위에 대해 분노한 기자들이 기자 총회를 통해 성명을 발표했지만, 관련 기사는 안기부의 철벽에 막혀 단 한 줄도 나가지 못했다.
‘5공 남산의 부장들’ 저자 김충식 가천대 교수. [뉴스1]
이 책에 담긴 특종 비화도 여럿이다. 안기부는 ‘북한의 3자회담 제의’가 기사화됐다고 외무부 차관까지 데려다 구타하고, 미국대사관 리셉션에 김대중을 초대한 죄(?)로 장관과 국장을 내치며, 전두환 신당을 만들기 위해 기업인의 돈을 염출하려 했던 일은 처음 공개되는 이야기다.
5공의 싹은 1979년 10·26에서 텄다. 그날 유신 독재가 김재규의 총탄으로 무너지자 국민은 이듬해 ‘서울의 봄’을 열망했다. 하지만 권력 탈취 야욕에 들뜬 전두환과 이른바 신군부는 그 열망을 전면적으로 차단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무참히 짓밟았다. 삼청교육대와 정치·언론·학원·노동의 현장, 평범한 시민의 삶터에서 ‘인간’을 파괴하고 유린해 갔다. 그 자리에는 고통의 신음 소리와 비명, 선혈이 낭자했다.
전두환의 철권통치 8년간 그나마 호황으로 경제가 발전했지만 악행과 억압 정치가 극에 달하면서 부천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같은 초유의 일들이 일어났다. 결국 1987년 참지 못한 시민들이 들고일어났고, 5공화국은 6월 항쟁을 계기로 저물기 시작했다.
언론계를 떠나 가천대에 재직 중인 김충식 교수는 요즘 학생들을 가르치며 노년을 보내고 있는데, 아직도 한 세대 전 5공 시절을 잊을 수 없다. 그는 그 시절을 돌아보며 “백미러 보지 않고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구시대의 잘못과 시행착오를 백미러를 통해서 보고, 현재의 좌표와 미래상을 찾아가야 공정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원작자인 김 교수는 이번 후속작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쓰이는 밑돌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